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51화 (551/563)

제551화

제1편 외전 소피아 (7)

아카데미 역사상 유례없는 행정학부와 기사학부의 중복 수강.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중복 수강이었기에 특혜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불만을 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황태녀의 권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중복 수강이 특혜로 불릴 정도로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소피아 님 괜찮으세요?”

해가 떠오르는 아침, 사마라는 침대에 누워 있는 소피아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솔직히……. 너무 힘들어.”

소피아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몸을 꼼지락거렸다.

수업이 시작된 지 한 달, 소피아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10살짜리 소녀에게 아카데미의 중복 수업은 너무 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복되는 수업은 받지 않게 해 주었지만, 빠지는 수업은 그 이상의 과제를 내주었다.

그걸 제외해도 남들보다 두 배인 과제였고, 수업도 빡빡한 상황에서, 과제를 전부 처리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중복 수강 중 하나는 극심한 체력을 소모하는 기사학부.

소피아가 힘들어하는 게 당연했다.

사마라와 함께 그녀를 수발하는 성인 시녀가 억지로 일어나는 소피아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기사학부는 그만두던가, 조금 뒤에 다니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러다가 몸이 안 좋아지시기라도 하시면…….”

아직, 육체가 다 성장하지 않은 황태녀였다. 기사학부는 좀 더 늦게 다니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사마라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옆에서 소피아가 고생하는 것을 보니, 전속 시녀로서, 친구로서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한다면 행정학부 쪽인데, 그건 불가능하잖아.”

억지로 침대에서 일어난 소피아는 시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왜 그런 명령을 내리셔서…….”

“내가 싸우지 않기를 원하시는 거겠지.”

제국의 황제이고, 신이 내려 준 용사이어도, 딸이 싸우는 것을 원할 리는 없었다.

소피아도 황제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사학부에 들어가는 것을 강제로 막는 대신에 지금처럼 힘들게 해서 기사학부는 그만두게 할 생각이시겠지.

하지만, 소피아는 그럴 수 없었다.

아직도, 소피아는 저번 삶의 마지막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마물들. 불타는 도시와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마왕.

소피아에게는 겨우 몇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기억이 소피아를 쉬지 못하게 했다.

더구나, 저번 삶의 경험 덕분에 죽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해나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소피아의 생각대로, 소피아는 중복 수강을 버텨 냈다.

아니, 버텨 낸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1학기 중간고사,

1학년 행정학부 1위. 기사학부 1위의 결과를 보여 준 것이다.

중복으로 수강한 두 학부에서 전부 일등이라니.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 그리고, 학교 밖의 사람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이 특출난 성적이 제국 황태녀로서의 특혜가 아닐까 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2학기에 있었던 종합 실습 뒤에는 전부 사라졌다.

카를로스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역사와 전통의 봉인지 실전 수업.

실전 수업은 신제국의 황제가 마왕을 없애고, 마물 왕들은 전부 쓰러뜨린 뒤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황제가 마왕을 쓰러뜨리고, 마물 왕을 정리한 지도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봉인지의 마물들은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아니, 황제는 마물들을 전부 정리하지 않았다.

틈이 나면 마물 왕이 될 만한 마물들을 찾아 정리하고, 봉인지 외곽부터 차츰 봉인지를 정리해서, 이제는 봉인지의 밀림이 반 이하로 줄어들긴 했다.

이제는 줄어든 봉인지 밖으로 더 이상 마물들이 넘어오는 일도 없었고.

계속 정리를 이어가면 봉인지를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황제는 어느 순간 봉인지 정리를 멈추었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마물을 잊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봉인지 일부를 남겨놓은 것이다.

봉인지를 아예 없애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더구나 황제가 아니면 제대로 정리조차 불가능했기에.

결국 전보다 훨씬 줄어든 봉인지는 계속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밀림 한가운데 만들어진 커다란 공터. 작지 않은 분지에 무기와 장비를 갖춘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여 있었다.

소피아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공터와 뒤에 흐르는 강.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말해주었던 장소였다.

부모님들도 이곳에서 실습했었다는데.

어머니들은 아버지가 이곳에서 엄청난 실력을 보여 주셨다고 하셨었다.

그렇게 주변을 확인하고 있는데, 옆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봉인지라는 곳이 생각보다 분위기가 무섭네요. 소피아 님은 괜찮으신가요?”

소피아는 말을 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와 같은 신입생이지만, 소피아보다 7살이나 많은 17살 소년.

사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 나이긴 했다.

꽤나 잘생긴 소년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학기 중간고사 기사학부 2위이자, 제국이 자랑하는 천재기사였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검호, 투레 폰 슈폰하임의 아들.

그는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한 투레 백작의 첫째 아들 루카스 폰 슈폰하임 이었다.

소피아가 황태녀가 아니었다면, 당연히 기사학부 1위였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하는 천재기사.

황태녀에게 억울하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고 소문난 그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황태녀와 금방 친해져서 계속 같이 다니고 있었다.

권력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둘이 부모가 정해놓은 약혼자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은 루카스가 소피아에게 반해 같이 다니고 있었다.

아직 어린 소녀의 인품과 실력에 젊은 천재는 쏙 빠져들어 있었다.

사실은 귀여워서이기도 했지만…….

소피아는 어두워진 천재기사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녀처럼 <마나 감응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는 이곳의 마나를 제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괴기하고, 어두운 마나.

소피아는 봉인지로 공간 이동된 뒤에 넘실거리는 오염된 마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 봤다면 그녀도 루카스 이상으로 힘들었겠지만, 그녀는 저번 삶에서 지겹도록 봐 왔었다.

이보다 더 지독한 마나들을.

소피아는 이름 이상으로 훌륭한 젊은 천재의 감각을 확인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 주변에 있는 동료들. 모두 루카스 정도는 아니지만 다들 긴장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역시, 그녀와 같이 팀을 이룬 이들다웠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투레 백작의 아들인 천재기사 루카스,

그 옆에는 중간고사 상속능력학부 1위인 이피로스 왕국에서 유학 온 번즈,

반대편에는 평민이면서도 각성에 성공한 카를로스 지방 출신인 아름다운 소녀.

행정학부의 아이노아.

마지막으로 황태녀인 소피아 때문에 함께 참가하게 된 젊은 호위기사 율리안까지.

전부 황태녀와 같이 다니고, 수업이 시작된 지 몇 달 만에 모두 빼어난 실력을 보여 주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사람들이었다.

호위기사를 제외하면 전부 반 학기 만에 소피아와 마음이 맞아 함께 다니게 된 동료이자 친구들.

사실은 황태녀인 소피아의 지위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소피아는 상관없었다.

따지고 보면, 소피아도 일부러 그들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호위 기사 율리안도 막 황실 기사가 된 젊은 기사를 그녀가 뽑은 것이었고,

다른 이들도, 그녀가 직접 다가가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친화력으로 그들과 친해진 것이었다.

전부 저번 삶에 보았거나 들었던 이들.

지금도 학생 사이에서 유명한 이들이었지만, 10년, 15년 뒤에는 나라 밖까지 유명해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보고, 소피아는 다시금 아버지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 때문이라도 아카데미는 최대한 빨리 와야 했던 것이었다.

저번 삶에서도 아카데미에 다녔던 소피아와 친해진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각성한 사람들이고,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게 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이름을 드높인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평범한 친구들과 사귀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늦게 아카데미를 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번 삶에서 그녀가 아카데미를 들어갔던 것은 지금부터 7년이나 지난 17살 때.

그녀가 죽은 25살에, 친구들도 20대 중반에 불과했다.

뭔가 실력을 드러내기 어려운 젊은 나이.

이번에도 그 나이대에 아카데미에 들어갔다면 별다를 바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같이 있는 이들은 그때가 되면 30대 초중반이었다.

전부 각기 실력을 드높일 나이들.

실제로 이들은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드높였었다.

그리고, 팀원들 외에 같이 모인 2학년생들.

여러 번 얼굴을 보아, 친해진 2학년생들도 다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이들이었다.

이렇게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 중에 한가지는 착실하게 해나가고 있으니, 이제 다른 결과를 보여 줄 차례였다.

분지 너머 밀림 위로 마나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물들을 유인하러 떠났던 아카데미 기사들이 밀림에서 튀어나왔다.

“마물들이 옵니다!”

기사들은 공터를 가로질러, 강을 등에 둔 학생들에게 달려왔고, 이어서 학생들은 자신이 가진 무기를 움켜쥐었다.

소피아도 손에 들린 검을 들어 올렸다.

작은 키 때문에 대검처럼 보이는 검.

아카데미로 오게 되자, 많은 이들이 소피아에게 자신의 검을 가져가라고 하거나, 검을 진상했다.

전부 보검이거나 대단한 유물들.

거기다, 가족인 아이샤 황후는 ‘기사의 검’을 가져가라고 했고, 프리다 황비는 직접 고쳤다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검을 보여 주기도 했었다.

다들 감사했지만, 소피아는 아버지의 검,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대검을 가져오고 싶었었다.

하지만, 성인인 아버지보다 큰 대검을 어린 소녀인 그녀가 쓸 수는 없었다.

대신 그녀는 아버지가 주신 검을 가져왔다.

자루부터 검날까지 온통 검은색인 검.

검을 보고 아이샤 황후는 깜짝 놀라 황제에게 달려가기도 한, 저주받았다는 검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걱정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준 검인데 문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카데미에 온 뒤에 이 검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이 검은 사람을 수련시키는 검이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시켜서 사람과 대련시키는 검.

그곳에서 소피아는 어렸을 때의 아버지와 매일 대련할 수 있었다.

대련에서 패하면 죽을 정도로 아팠었다는데, 아버지가 고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피아는 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중간고사 1위를 하게 되었고, 오늘 모두에게 실력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달려오는 마물들을 보고 소피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 땅은 나의 왕국. 내 적은 약해질 것이고, 내 군대는 강성하리라.”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마나.

그녀를 중심으로 영역이 선포되었다.

저번 삶에서 주력으로 쓰던 능력. 몸은 과거로 돌아왔지만, 기억은 남아 있었다.

풀이 움직여 달려오는 마물들을 방해하고, 마물들의 몸이 굼떠졌다.

강해진 힘에 놀란 동료들.

동료들의 기세를 느끼며 소피아는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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