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40화 (540/563)

제540화

제15편 검술

마왕의 손에는 철로 만든 검도 창도 들려있지 않았지만, 대신 빛나는 검 하나가 들려있었다.

마나로 만든 검이었다. 빛나는 검 주변에는 오염된 마나와 충돌로 생긴 스파크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왕의 또 다른 능력이었다.

분노한 마왕은 그 검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팔다리를 자르고, 배를 따서 내장을 전부 끄집어내 주지. 허파에 구멍을 내고, 뇌를 헤집어서 이 영역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고통받게 해주마!”

전하고 비슷한 말이었지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는 전혀 달랐다.

정말 화가 난 모양이었다.

탑이 아닌 곳에서 마왕을 만났을 때 매번 로브로 몸을 감싼 이유가 다른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온몸에 만들어진 흉 때문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기야, 피부가 전부 타들어 갔는데, 겉으로 드러난 성기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도 걱정이 되었다.

물론, 자식은 보긴 했지만, 나체를 드러낸 마왕의 꼴을 보니, 자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분노한 상황에서도 마왕의 검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를 담아서인지 더 거칠게 나를 압박해왔다.

나는 검을 들어 마나의 검을 막았다.

콰과과곽!

검날을 틀어 마나의 검을 흘려냈지만, 힘 차이가 너무 나서 계속 뒤로 밀려날 뿐이었다.

한번 무아지경이 깨지니 다시 몰입하기도 어려웠다.

마나를 움직여서 잘린 손가락과 귀,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멈췄지만, 계속되는 고통이 신경을 갉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수많은 죽음과 환상통을 겪은 덕분에 내 움직임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왕이 들고 있는 마나의 검이 점점 신묘하게 움직여갔다.

처음에는 강력한 힘으로 싸우던 마왕이 부활을 이어가며 다양한 능력으로 활용하더니, 이제는 다시 검술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마왕이 여러 가지 능력을 다양하게 쓰지 않고, 마나의 검만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게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봉인되기 전 너와 비슷한 검술을 쓰는 인간을 본 적이 있었지. 물론, 네가 더 잘 싸우는 것 같지만, 어차피 그 인간과 네 검술은 그리 다르지 않군.”

“그리고, 나도 그 검술을 잘 알고 있고.”

마왕의 검이 나와 비슷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맞닿아 있는 검을 당기고, 밀고, 검의 무게를 늘이고, 줄이면서 내게 마나의 검을 휘둘렀다.

“큭.”

나는 검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절로 신음을 흘렸다.

비슷한 검술이었지만, 담겨있는 힘이 너무 차이가 났다.

쾅, 쾅, 쾅.

힘을 흘려보내고, 최대한 되돌려보냈지만, 땅이 파이고, 공기가 터져나갔다.

나는 마왕의 힘에 밀려, 계속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마왕이 검을 휘두르며 내게 말했다.

“이제는 너도 알겠지? 세상에 나와 있는 검술들은 모두 신의 용사가 쓰던 검술들이라는 것을.”

그의 말이 맞았다.

나도 신의 힘을 받는 순간, 나는 전쟁신의 용사가 쓰던 검술과 심법을 전부 알게 되었다.

기사의 검을 가지고 있던 여왕이 마왕의 팔을 날린 것도, 여왕이 초대 왕 이상의 심법과 검술을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검을 쓰는 신의 용사는 둘이 아니었다.

검의 기억을 본 바로는 검을 쓰는 신의 용사가 더 있었다.

그 용사가 쓰던 성물도 있었지만, 그 용사도 성물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제국이 실험에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제국 놈들이 그 검술과 심법 전부를 내 몸에 주입했지. 나는 신의 용사가 쓰던 모든 능력, 심법과 검술도 전부 알고 있어.”

나와 비슷했던 마왕의 검이 변했다.

마나의 검이 길어져 대검으로 변하고, 검술과 심법도 무게와 힘으로 적을 압살하는 중검술로 변했다.

마왕이 거대하게 변한 마나의 검을 힘껏 휘둘렀다.

“이런!”

나는 검으로 막는 대신, 급하게 뒤로 몸을 날렸다.

쿠아아앙!

공기가 터져나가고, 거대한 검기가 등을 훑고 지나갔다.

분명 제대로 피했는데, 등의 옷이 다 터져나갔다.

콰아앙!

그리고, 내 뒤의 땅이 뒤집혔다.

마왕은 계속 검을 휘둘렀고, 나는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추하군.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검을 휘두르며 마왕이 나를 비웃었지만,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검을 맞댈 수가 없으니, 도망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한껏 나를 놀린 마왕은 다시 자세를 바꾸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나의 검도 길이가 줄어들고, 얇아졌다.

마치, 꼬챙이처럼 얇아진 마나의 검.

마왕은 그 마나의 검으로 나를 찔러왔다.

나는 수천 발의 화살이 쏘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면으로 막고, 쳐내고, 피하고.

그렇게 했는데도 전부 막아 내지 못했다.

팔다리, 몸통 곳곳에 구멍이 났다.

중요한 근육과 장기는 겨우 지켜냈지만,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터져나간 근육과 곳곳에 잘려 나가고 뚫린 상처까지.

전과 달리 계속 악화하는 상처들이 조금씩 검을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검을 들고 끝까지 마왕의 검을 막아 냈다.

그리고, 내 검과 검술은 마왕에게 상처를 입혔다.

마왕은 검을 멈추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검붉은 흉 위로 갈라진 상처들이 보였다.

전처럼 피륙에 난 상처가 아니었다.

가슴이 갈라지고, 어깨에서 한 움큼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물론, 나보다는 적은 상처였지만, 그도 제대로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언제 이런 상처를…….”

놀란 마왕이 마나를 움직여 상처를 봉합했다.

“역시 경험이 부족하군.”

내 말에 마왕이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내가 마물과 얼마나 오래 싸웠는데! 내가 여기서, 마물의 땅에서 몇 년을, 몇 번의 삶을 반복했는데!”

고자라는 말에 벌컥 화를 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분노였다.

나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그곳에 가둔 자들에 대한 분노일까?

하지만, 마왕의 분노에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역시 경험이 부족해. 인간과 싸운 경험이.”

마왕은 나와 달리 동급의 인간과 싸운 경험이 너무 적었다.

내가 왜 지금 새로 얻은 검술을 안 쓰고, 원래 사용하던 검술을 쓰고 있는지, 마왕은 알지 못했다.

전쟁의 신이 알려준 검술과 심법은 내가 여태껏 쌓아온 검술보다 완성도도 높고, 더 강하고, 더 아름다운 검술이었다.

더구나, 따로 연습하거나, 훈련할 필요도 없었다.

검술을 얻는 즉시, 나는 그 검술과 심법을 완벽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원래의 검술을 고집했다.

초대 왕이 쓰던 검술.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으고 쌓아왔던 그 검술을.

그 검술은 초대 왕의 검술과도, ‘기사의 검’을 쓰던 용사의 검술과도 다른 검술이 되어있었다.

나는 마물과도 많이 싸웠지만, 인간과도 끊임없이 싸워왔다.

동급의 인간과도, 더 강한 인간과도, 조금 약하지만, 많은 숫자와도.

그 모든 경험이 내 검에, 내 검술에 담겨 있었다.

마왕의 말과 달리, 내 검은 용사의 검이 아니었다.

마물과 싸우고, 인간과 싸우기 위한 검.

정직한 용사의 검과 달리, 속임수가 담긴 검이었다.

멍한 얼굴이 된 마왕을 보며 나는 검을 털었다.

마왕의 피가 바닥에 뿌려졌다.

통증은 계속 느껴졌다.

몸에서 열이 올랐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이제는 피부의 통증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턱.

그리고.

마왕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선 마왕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어째서?”

그는 자신이 물러선 게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글쎄…….”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마왕의 표정을 보니, 왜 물러섰는지 알 수 있었다.

마왕이 어리둥절한 것은 당연했다.

부활하기 전인 마왕이라면 물러서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의 마왕은 감정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마왕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했지만, 다른 감정은 가지고 있었다.

분노도, 즐거움도, 기쁨도.

그리고, 두려움도.

마왕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내가 무서워서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마왕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덤벼들었다.

더 강하게, 더 힘껏.

거대한 마물 왕도 검 한 번에 박살 내고, 작은 산도 무너뜨릴 정도로.

하지만, 나는 산이 아니었다.

거대한 마물도 아니었고. 성벽도, 수천, 수만의 군대도 아니었다.

나는 마왕과 대등한 기술을 가진 기사일 뿐이었다.

열심히 피했지만, 거대한 마나와 힘은 다 피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반대쪽 팔이 뜯어져 나갔다.

터져 나오는 피를 마왕에게 뿌리며 나는 계속 검을 휘둘렀다.

손가락을 자르고, 마왕의 목을 잘라낼 뻔했다.

마왕은 손가락이 잘린 손으로 목을 감쌌다.

손 아래 검붉은 피가 흘렀다.

마왕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작지 않은 상처였지만, 나에 비해서는 큰 상처도 아니었다.

거기다 나와 달리 고통도 느끼지 못할 텐데.

마왕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분명 아플 텐데……. 어떻게 그렇게……. 넌 죽는 게 무섭지도 않나…….”

이제 마왕은 나를 보고, 대놓고 두려워했다.

나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나를 보고, 자신의 앞날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내 고통을 자신처럼 느끼고, 죽게 될 앞날을 두려워했다.

생각해 보니, 마왕은 부활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왕은 육체가 강해지는 이상으로 정신은 약해져 있었다.

아니, 부활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마왕은 자신이 죽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은 고통을 차단하고, 지루한 시간을 해결할 재미를 찾았을 뿐이었다.

이제 나를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니, 이제야 자신이 죽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듯했다.

“아니, 난 안 죽어. 시간만 벌면 돼.”

마왕은 뒤로 몸을 날리려 했다.

마왕은 도망칠 생각이었다.

마왕의 생각대로 마왕이 도망치면 나는 잡기 어려웠다.

잘린 팔과, 수많은 상처. 겉보기 이상으로 나는 엉망이었다.

그런 내가 마왕이 달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약에 따라 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마왕과 나.

그리고, 발레아의 영역이었다.

“발레아!”

[오래 기다렸어요.]

콰과과과광.

내 말에 마왕의 뒤쪽에서 뼈들이 솟아올랐다.

마왕의 기억에서 보았던 그 뼈들.

마왕의 성이 된 그 뼈들이었다.

이곳은 계약으로 이루어진 마물의 세상.

계약 이외의 사람과 물건은 이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마물의 뼈, 발레아가 만든 뼈는 충분히 이 영역 안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뼈가 달아날 길을 막자, 마왕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마왕이라면 한 수에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고, 전이었으면, 이렇게 멈추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왕이 멈춘 그 순간.

나는 몸을 날렸다.

발밑으로 마나가 뿜어져 나왔고, 경공이라 불리는 심법이 다리를 내지르게 했다.

땅이 패고, 다리의 근육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소리보다 빠르게, 마왕에게 쏘아졌다.

순식간에 마왕의 뒷머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몸속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온 마나가 검으로 흘러들고, 지나온 경험들이 근육을 움직였다.

검호들과 싸우고, 마물 왕들을 죽였던 경험들.

그동안 지내왔던 훈련과 죽음으로 이어졌던 싸움까지.

거기다, 나를 도왔던 사람들과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까지 했다.

한순간이었다. 마치 수많은 삶을 경험한 것 같은 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선이 되었다.

검에서 출발해서 마왕의 목까지 이어지는 선.

내 눈에 그 선이 보였다.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순간, 검을 완성했다는 것을.

마왕이 몸을 돌리고, 마나의 검을 치켜세웠다.

역시, 마왕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직 선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검을 움직였다.

마나의 검을 지나, 마왕의 목을 향해.

서걱.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