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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35화 (535/563)

제535화

제10편 용사 (1)

싸움을 시작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 호수 너머 섬 위에 탑이 보였다.

마왕과 나의 싸움에 반파된 탑.

기껏 마나를 되찾은 탑이 다시 흉물로 변해버렸다.

탑이 망가진 것처럼 내 몸도 엉망이었다.

퉤.

핏물이 섞인 침을 뱉었다.

피투성이가 된 몸.

다행히 잘려 나간 부위는 없었지만, 잘려 나간 갑옷 사이로 힘줄과 내장이 언뜻언뜻 보이는 게 보통 사람이었으면 바로 목숨이 오락가락했을 게 분명했다.

거기다, 내부는 더 엉망이었다.

몸속의 마나는 헝클어지고, 허파에도 피가 가득 차 있었다.

내장도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고.

그래도,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손에 들린 ‘전쟁신의 검’ 덕분이었다.

물론, 처음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였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결국,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으니.

그건, 그동안 계속 이어온 싸움 덕분이었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이 정도 상처라면 충분히 잘 싸운 것이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마왕을 죽인 뒤의 도주는 불가능했다.

마왕이 죽은 뒤에도 펼쳐놓은 결계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마왕의 육체가 박살 나서 핏물로 돌아갔는데, 결계가 남아 있다니.

이 결계는 ‘봉인’처럼 육체가 아니라, 능력이나 영혼으로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내 ‘전송’ 능력은 공간 이동과 달리 마왕이 친 결계 안에서는 이동할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호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미리 준비해놓은 언데드를 향해 ‘전송’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에도 그랬지만, 내 ‘전송’ 능력도 이 결계 밖으로는 이동할 수 없었다.

다행히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가능해 보였지만, 다른 사람을 소환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소환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이 될 뿐이니까.

물론, 결계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달려서라도 결계 밖으로 나가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송’으로 호수 밖으로 나와보니, 두 발로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수 주변에 마물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그르르르릉.

거대한 괴수와 사람보다 큰 벌레들, 바위 껍질을 뒤집어쓴 거인.

그리고, 하늘을 나는 마물들까지.

이 주변, 아니 봉인지의 마물들이 전부 이 호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왕은 나와 싸우면서 마물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제 나도 마물들에게는 쉽게 죽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기는 했다.

전멸을 시키는 것은 무리지만, 몇만이나 되는 마물 군단이라도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건 마왕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외부로의 ‘전송’이 막힌 이상 마왕이 부활하는 짧은 시간 안에 저 마물들의 포위망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멀찌감치 호수를 둘러싼 마물들은 호수에 더 접근하지도, 호수 앞에 있는 나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르렁거리면서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호수에서 마왕이 걸어 나왔다.

온몸에 상처와 얼룩이 가득해서 옷을 입지 않았는데, 나체로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흉하네.”

마물들의 세상에 떨어져 마나 충돌로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은 마왕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래서 항상 로브로 자신의 모습을 가렸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실대로 말하는 나에게 항상 죽음을 내렸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마왕은 내 말에 움찔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정말 죽음을 부르는 말인데……. 하지만, 죽일 수는 없으니, 평생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내리도록 하지.”

전에도 마왕을 죽여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마왕을 죽여보기도 하고, 반복되는 삶 끝에 나 혼자 죽인 적도 있었고.

그렇게 죽고, 부활한 마왕은 언제나 지금처럼 감정이 풍부해져 있었다.

기계가 사람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거기다, 마왕은 죽기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럼, 우선 이것도 막아 봐.”

물가에 선 마왕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과과과!

마왕이 손을 뻗자, 호수의 물들이 소용돌이치며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들은 나를 향해 쏟아졌다.

밀려오는 소용돌이들은 각각 마왕이 부여한 독과 전류, 열기를 담고 있었다.

녹색의 점액질처럼 보이는 소용돌이가 내 위로 쏟아졌고, 다른 소용돌이가 내 주변의 땅을 적신 뒤, 전류를 흘려댔다,

거기다, 거대한 열기를 머금은 수증기가 주변 일대를 감쌌고.

아마,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 한 수에 그대로 죽었을 만한 공격이었다.

다행히 나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전쟁신의 검’으로 독액의 소용돌이를 가르고, 열기의 수증기도 검기로 날려버린 뒤, 전류가 흐르는 젖은 땅을 벗어났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내려선 나를 보고 마왕은 손뼉을 쳤다.

“역시, 내가 보아왔던 인간 중에 가장 검술 실력이 좋아. 능력의 활용도 대단하고, 마치 신화시대에 있었다는 신의 용사처럼 보일 정도야.”

감탄과 칭찬처럼 보였지만, 결국, 놀리는 말일 뿐이었다.

이번 공격은 부활한 마왕이 새로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부활한 마왕이 전과 같다면, 그동안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을 리가 없었다.

마치, 죽음으로 각성을 한 것처럼, 부활한 마왕은 처음에는 쓰지 않던 능력들을 써댔다.

염력과 화염. 번개까지.

검술과 육체 능력 위주로 싸우던 마왕을 겨우 쓰러뜨렸는데, 마왕은 부활 뒤에는 이렇게 또 다른 능력을 꺼내 보였다.

아마, 여기서 또 죽이면 마왕은 부활 뒤에 더 많은 능력을 드러낼 터였다.

마왕은 용사들의 능력을 다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까.

죽여도 부활을 하고, 부활하면서 강해지는 마왕.

이런 일을 겪은 뒤에는 희망을 가지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그래서 봉인하려 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결국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반복된 삶 끝에 정신이 나가버린 그때처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조금의 승산이 보이지 않아도, 싸워야 했다.

나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한 번 죽이다니, 정말 대단해. 말 안 듣는 그 검이 몸을 맡길 만해.”

검을 가리키며 빙글거리던 마왕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날 함정에 빠뜨린 놈은 실력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달라질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너는 차라리 나와 닮았을지도 모르겠군.”

수천 마리의 마물이 주위를 포위하고, 수만 마리의 마물들이 모여드는 호숫가.

마왕의 몸 위로 거대한 마나가 일렁이고, 마왕 뒤에 호숫물이 수십 미터를 치솟은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마왕의 언행은 무척이나 유치했다.

이게 마왕의 원래 성격이었을까?

아니면, 더 망가진 걸까?

실력이 비등하기라도 했으면, 저 성격을 이용해서 틈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능력 차이가 너무 나는 게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정말, X신이군. 몸만 흉한 줄 알았는데, 머릿속도 쓰레기였냐.”

마왕의 부모 안부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내 말을 듣고, 마왕은 득달같이 내게 달려들었으니까.

“감히! 멸망할 인간 따위가!”

마왕은 너무 화가 났는지, 죽여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를 공격했다.

그만큼 틈이 보였고, 나는 마왕과 다시 싸워나갔다.

최고의 기사와 수많은 능력을 갖춘 귀족이 한 몸을 이룬 것 같은 마왕.

그 마왕은 죽어도 다시 살아날뿐더러, 실시간으로 회복도 되었다.

점점 회복이 더뎌지는 나와 다르게.

능력들을 피해 가며 겨우 마왕에게 접근해서 그의 팔을 자른 나였지만, 그 대가로 하반신에 가득 화상을 입어버렸다.

‘전쟁신의 검’을 던져 허파를 꿰뚫었을 때는 한쪽 팔이 날아가 버렸고.

결국, 마왕의 심장에 내 대검을 박아 넣을 때는 내 머리 한쪽이 터져나간 뒤였다.

거의 공멸한 상황이었지만, 정신력은 내가 더 강했다.

나는 오락가락한 정신에도 마왕의 몸을 헤집었다.

심장이 멈춰 움직이지 못하는 마왕의 몸을 단검으로 마구 잘라냈다.

회복하지 못하도록, 적어도 다시 죽어서 부활하도록.

산산이 분해해나갔다.

마왕의 몸을 잘라내는 단검을 보며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마왕 도살장이라도 차리면 부자가 되었을 텐데.

혹시나 하고 흩어진 살점을 지켜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왕의 몸이 다시 핏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계도 그대로였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마물들도 흩어지지 않았다.

마왕은 부활할 터였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더 강한 모습으로.

그리고, 나는 돌아온 마왕과 더는 싸울 수 없었다.

던져버린 전쟁신의 검을 다시 쥐었지만,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검의 회복력을 다 사용한 것이다.

몸의 반이 불타버리고, 팔 하나가 잘리고, 뇌가 보일 정도로 머리가 박살 났으니, 회복력이 남아 있다고 해도 치료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당장은 죽지 않을 것 같고.

이대로라면, 마왕이 되살아나면 꼼짝도 못 하고 잡혀버릴 것 같았다.

아니, 이 정도라면 마왕도 되살리지 못하려나.

다만, 어느 쪽이든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왕이 나를 치료하면 마왕에게 잡힐 테고, 운이 좋아서 죽게 되면 마왕과 싸우는 시간이 반복될 뿐이었다.

어느 쪽이든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이런 결과가 나와 버렸다.

이제는 마왕이 나를 회복시키지 못하기를 기대하는 것 말고는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안 돼요! 일어나요! 여기서 져버리면 절대 안 돼요. 마왕이 나를 다시 가지면 안 돼요. 나는 다시 분해될 수는 없어요. 제발 일어나요!]

머릿속으로 검 정령의 공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백 년간 몸이 잘린 채로 마나와 능력을 빨아 먹혔으니, 저렇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도 마지막인데 좀 조용히 해 주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그제야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통증은 심해졌지만, 수많은 죽음을 거쳐왔던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고통이었다.

다만, 검을 놓은 게 자살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도, 마왕이 치료하지 못해서 죽게 되는 저주스러운 희망이 남아 있으니까.

머릿속이 조용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터져나가서인지, 이번에는 환청이 들린 것이다.

‘돌아오기로 약속하셨잖아요.’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발레아의 음성.

환청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거짓말일 뿐이었다.

다만,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지키지 못했다.

혹시라도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저를 지켜준다고요? 제가 언제 지켜달라고 했나요?’

발레아의 환청은 내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에도 바로 반박이 들려왔다.

환청이라서 그런지, 아니며 내 양심이 환청이라는 방식으로 내게 묻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나는 환청에 대답했다.

“그게 내가 발레아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이었으니까…….”

나는 수많은 삶 동안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아왔다.

적과 평범한 이웃과 소중한 사람까지.

그 죽음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의 죽음으로 모두 살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내 말에 다시 환청이 대답했다.

‘저는 알렉스를 위해 살고 있어요. 당신의 분신이나, 당신이 남긴 것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환청이 이상했다.

분신이라니.

그건 내가 남긴 편지에 적혀 있는 것일 텐데?

점점 환청이 아니라 진짜 발레아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환청이 아니에요. 전송 능력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조금 전에 전송 능력이 강화되었다는 문자가 내 앞에 나타났어요.]

환청이 아니었다. 발레아였다.

하지만, 전송 능력이라니.

전에 느꼈던 전송 능력 강화가 이런 능력이었나?

정보창을 보지 않길 잘한 것 같았다.

전송 능력이 강화된 게 마지막으로 발레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라니.

큰 쓸모는 없는 능력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고마운 능력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레아에게 남길 말을 고르는데 발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으로 제가 알렉스에게 말을 건 거는 강화된 능력의 부산물일 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 이어서 내 머릿속에 속삭였다.

[발레아를 주인 알렉스에게 전송.]

머릿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울고 있는 화난 얼굴의 발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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