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32화 (532/563)

제532화

제7편 결혼식 (3)

결혼식은 도시 중앙에 있는 교단 신전에서 진행되었다.

영지의 병사와 기사들, 여왕과 같이 온 왕실 기사들이 신전 주위를 철통같이 지켰고.

도시에 있는 영지민들은 신전 밖에서 나름대로 영주의 결혼식이라는 축제를 즐겼다.

하늘에서는 폭죽이 터지고, 거리에는 색종이와 꽃잎이 쏟아졌다.

영지민들에게 관대하기로 유명한 영주는 창고를 열어 영지민들에게 고기와 곡물을 베풀었고.

영주가 모았다는 공연단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흥겨운 도시와 달리, 신전 안은 엄숙하면서도 성스러웠다.

원래부터 선남선녀인 결혼 당사자들도 한껏 꾸며놓으니 천사 같아 보였다.

교단에서 파견되었다는 주례를 서는 신관은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몸 주변에 성스러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신랑 신부와 주례도 신비로웠지만, 예식을 지켜보는 하객들의 면모는 더 대단했다.

유명한 기사이자, 자신의 힘으로 작위를 얻고, 얼마 안 돼서 백작까지 오른 대단한 인물이라, 주변 영지의 영주들과 대단한 귀족들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인 그레시아 공작과 그의 첫째 아들 내외가 찾아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고.

하지만, 공국의 대공녀와 왕세자, 왕국의 대귀족들과 왕실 기사단장, 거기다, 종친인 세우타 공작까지 이 영지로 달려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자리에는 여왕이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인원이 모이는 바람에 나름 이 지역에서 어깨에 힘을 준다는 귀족들은 구석에 밀려나 놀란 눈으로 주변을 훔쳐보고 있었다.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귀족들의 면모를 보고 놀란 듯했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레시아 공작을 보고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그는 지금 어머니 아만다의 옆에 앉아 있었다.

나로서는 공식적인 자리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드디어 아버지와 나란히 앉게 된 어머니는 지금 행복하신 걸까?

나는 나중에라도 어머니께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차례차례 식순이 진행되었다.

신에 대한 기도와 찬양.

물론, 예복을 입어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신관은 엉뚱한 신에게 기도와 찬양을 했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짧은 주례.

이어진 혼인 서약서의 작성.

혼인 서약서는 교단의 신관 앞에서 작성한 계약서였다.

전생과 달리, 어기게 되면 상대방이 알게 되는 능력이 담긴 진짜 계약서.

덕분에, 결혼 때에 서약서 내용을 합의하는 데 두 가문이 오랜 협상을 벌이고, 서약서 내용을 피해 가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쓰게 만드는 결혼식에서 제일 중요한 문건이었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아예 신관에게 뇌물을 주어 혼인 서약서의 효력을 부여하지 않게 하거나 하는 일도 많다고 들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내게는 저 서약서가 효과가 없었다.

지금도 대주교의 능력 일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주례를 서는 신관도 다른 신을 섬기는 신관이었으니, 서약서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리가 없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이 되어버릴 계약서에 사인했다.

발레아도 그 아래에 사인했고.

사인을 마치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마침내, 주례를 맡은 레스티 사제가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선포했다.

“이로써 신의 이름으로 알렉스 디 샤를 백작과 발레아 디 샤를 백작 부인의 성혼을 선포합니다!”

레스티가 혼인 서약서를 들어 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화아아악.

서약서에 환한 빛이 모여들더니, 그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빛은 신전에 모인 사람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몸에 빛이 스며든 뒤에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맙소사. 상처가 치료되고 있어.”

“설마, 마나도 회복되는 건가?”

“어라,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은데.”

흉이 되어버린 상처가 사라지고, 기사들의 마나가 회복되었다.

지친 서기관의 기운이 되살아났고, 힘이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치유술이 아닌데요? 이건 일종의 버프 같은데.”

“아니, 평범한 치유술이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느낄 수가 없을 텐데요.”

놀란 사람들은 모두 주례를 선 신관을 쳐다보았다.

“누구죠? 평범한 신관은 아닌 것 같은데.”

“교단 본단에서 오셨데요. 혹시 추기경이 아니실까요?”

“설마, 그럴 리가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앞에 선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적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었던 신관은 천으로 가린 얼굴 뒤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에게 부탁한 것은 단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퍼포먼스였었다.

하지만, 흥에 겨웠던 그는 새로 각성한 능력을 힘껏 사용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대단하네요. 찾아온 사람들의 면면도 대단한데, 주례를 맡은 신관도 평범한 분이 아니신 것 같고.”

“제국과 거리가 가까웠다면 제국에서 특사를 보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좀…….”

“그렇겠죠?”

작게 들려온 소리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2 황자가 알았다면, 진짜 특사를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이번에는 제대로 실력을 보였으니, 황자가 직접 왔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제국에는 알리지 않았다.

왕궁이 제국과 사이도 좋지 않은데, 특사가 찾아오면 곤란할 뿐이었다.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다행히 예식은 잘 끝났다.

예식이 끝난 뒤에 주례를 섰던 신관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신관은 벌써 사라진 뒤였다.

예식이 끝난 뒤에 사람들은 저택으로 자리를 옮겨 피로연을 이어갔다.

집사장이 필사적으로 준비한 피로연 파티는 밤까지 이어졌다.

발레아와 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같이 음식을 즐기고 술을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지에 도착했을 때, 표정이 굳어 있었던 대공녀도 지금은 밝은 얼굴로 우리를 축하해 주었다.

그녀의 표정이 바뀐 것은 결혼식 전 여왕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뭔가, 내가 모르는 흉계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과 달리, 나는 웃어 넘길 수 있었다.

무슨 흉계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니까.

지금 행복한 얼굴로 축하를 받을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축하를 받은 뒤, 피로연이 끝났다.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도시에 숙소를 잡은 사람들은 숙소로 향하고, 저택에 남은 사람들은 손님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침실로 올라왔다.

시녀들이 따라와 발레아의 화장과 의상을 정리해주고 물러났다.

이제 침실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발레아를 바라보았다.

화장이 지워진 얼굴이고, 화려한 드레스가 아닌 실내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뭐라 말을 꺼내야 할까.

정말 오랫동안 싸움만 해 와서인지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멍하니 발레아를 바라보고 있자, 발레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같이 밤을 보내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발레아의 말은 내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말이었다.

“결혼식을 한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걸요. 저는 굳이 같이 자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발레아는 내가 잠자리를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하긴, 그렇게 오래 같이 다녔는데,

그녀와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으니,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상속 능력 때문에 아무나하고 자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이 전생보다 윤리적인 세계는 아니었다.

애를 만든 뒤에 결혼하는 귀족도 많았고, 평민과 하룻밤을 보낸 뒤 그냥 떠나버리는 귀족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자를 멀리하는 생활을 해왔으니.

지금 생각하니, 발레아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숨기려 했는데, 숨겨진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핑계를 댔다.

“걱정하지 말아요. 어차피 쉬는 삶이니까.”

내 말에 발레아는 작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나를 욕했다.

발레아가 듣기에는 정말 쓰레기 같은 말이었다.

결국, 아기를 낳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였으니까.

어쨌거나, 내 말을 듣고 발레아가 침대로 다가왔고, 그렇게 신혼 첫날밤이 지나갔다.

눈을 뜨니, 햇살이 벽을 내리쬐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시선을 내리자, 침대에 발레아가 잠들어 있었다.

어깨를 드러낸 채로 조용히 잠든 발레아.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킨 채로 발레아를 바라보았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결혼해서 잠자리까지 같이하면 회귀할 생각이 들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발레아를 보고 있자니, 회귀는커녕 죽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이런 기분인데, 아이들까지 생기면 어떻게 될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옮겼다.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눈앞을 채우고 있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사자 회귀’ 능력이 상속되었습니다.>

예상대로였다.

내 능력이 상속되었다.

죽은 뒤 과거로 돌아가는 내 능력.

대전쟁 때의 선조처럼 나도 능력을 후손에 남긴 것이었다.

나는 다시 발레아를 바라보았다.

내 능력이 상속되었다는 말은, 이불에 덮여있는 그녀의 배에 새 생명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역시 예언가를 죽인 뒤로 그녀의 능력 일부를 얻은 모양이었다.

안 그랬으면, 이렇게 예상대로 흘러갈 리가 없었다.

아니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거쳐왔던 삶이 있었을지도 몰랐고.

어찌 되었든 간에, 내 마지막 계획도 생각대로 잘 되었다.

미래를 위한 준비이자, 발레아를 붙들어둘 족쇄.

그리고, 내 희망이 자리 잡은 것이다.

내가 발레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발레아가 눈을 떴다.

몇 번 깜빡인 뒤에 나를 빤히 바라보는 발레아.

나는 눈을 뜬 발레아에게 말했다.

“일어났어요?”

“네.”

계속 그렇게 그녀를 보고 싶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서둘러요. 손님을 배웅해야 하니까.”

가라앉는 기분을 흩어버리기 위해 나는 억지로 크게 말했다.

그러자,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깨기를 기다리던 시녀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아침 만찬을 끝내고, 저택에 남아 있던 손님들을 배웅했다.

“금방 다시 봐요.”

대공녀가 떠나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고.

여왕은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왕실 기사단과 함께 도시를 떠났다.

세우타 공작도 떠나고, 아버지, 그레시아 공작과 형님 내외도 떠났다.

그렇게 손님들이 떠나자, 저택은 한가해졌다.

집사장은 고용인들을 부려 저택 대청소를 시작했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축제의 뒤처리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고.

발레아와 나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모든 일을 구경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나는 결혼식 뒤풀이 만찬을 벌였다.

집사장은 질색했지만, 어차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일 뿐이었다.

어머니와 발레아, 오헨 경과 그의 수양딸, 기사들과 벤자민까지.

우리는 모두 즐거운 만찬을 나누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나는 잠든 발레아를 깨우지 않고, 홀로 응접실로 나와 갑옷을 입었다.

검을 차고, 유물 주머니를 가슴속에 넣고, 테이블 위에 편지를 남겨놓았다.

다른 이들에게 보낼 편지는 어젯밤에 집사장에게 맡겨 놓았다.

편지를 열어보지 말고 오늘 사람들에게 보내라고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늦지 않게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잠시 편지를 보던 나는 침실로 고개를 돌렸다.

닫혀 있는 침실 문 앞에 실내복을 입은 발레아가 서 있었다.

역시, 마지막까지 발레아의 등장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편지에 다 남겨놓았으니, 발레아가 깨기 전에 떠났으면 했지만, 발레아에게 숨기기는 어려울 거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발레아가 알아차리면 할 말을 준비해놓았었는데…….

그녀를 보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 대신 발레아가 입을 열었다.

“돌아오시는 거죠?”

언제나의 질문.

그냥, 쉬어가는 삶이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전처럼 약속을 지킬 거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다.

“……노력해볼게.”

나는 억지로 대답한 뒤에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전송’이라고.

말이 끝난 뒤, 시야가 바뀌고 나는 탑 앞에 서게 되었다.

마물 시체가 가득한 섬 위에.

나는 삶을 충분히 즐겼다.

이제, 해야 할 일을 할 차례였다.

나는 탑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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