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31화 (531/563)

제531화

제6편 결혼식 (2)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을 물리고, 나를 반갑게 맞이했던 여왕은 내가 내민 청첩장을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청첩장에 적힌 내용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고.

“백작 부인 발레아?”

여왕은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왕으로서 분노한 것이 아니라, 10대 소녀의 울화였다.

얼핏 눈물까지 고여 있는 것처럼 보여서 난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참을 나를 노려보던 여왕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내게 청첩장을 돌려주려 했다.

“발레아가 정실이라니. 이 결혼은 내가, 아니, 카를로스 왕실이 인정할 수 없어요.”

“네?”

뜻밖의 말에 나는 멍청한 반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분명 여왕은 좋아해 줄 거로 생각했는데.

분명, 지나간 삶에서 발레아와 결혼하겠다고 여왕에게 말했을 때도 그녀는 내게 축하해 주었었다.

그런데, 청첩장 하나에 이렇게 바뀔 줄이야…….

여왕은 내 앞에 청첩장을 내려놓은 뒤, 천천히 왜 내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샤를 백작, 백작은 본인의 위치를 잘 아셔야 해요.

당신은 왕국 북부에 대영지를 가진 영주이자, 여왕의 기사로 그레시아 공작과 함께 우리 왕실파의 대표 귀족이에요.

그런데, 샤를 백작의 제1 부인이라는 중요한 카드를 이렇게 함부로 써버리다니요.

저도 발레아를 좋아하지만, 샤를 백작의 명예와 민감한 국내 정치 상황에는 무척이나 안 좋은 결정이에요.”

여왕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가, 곧 내 실수를 깨달았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마왕만을 상대해온 덕분에 왕국의 정치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한 것이었다.

반왕실파의 핵심 귀족을 내가 죽인 뒤로 카를로스 왕국에서 여왕과 그레시아 공작을 반대하는 세력은 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왕에 반대하는 세력, 반왕실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왕과 그레시아 공작의 힘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반대파의 결집도 더 강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더구나, 마물을 막겠다는 이유로 계속 왕실 소유의 기사단과 군대를 강화하고 있으니, 귀족들의 불만이 적지 않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 간은 결혼, 특히 내 결혼은 무척이나 중요한 카드일 터였다.

하지만, 여왕의 말을 듣고, 이해한 지금도 그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이런 왕국의 정치적인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여왕이 대단하게 여겨지고.

두 손을 꼭 쥐고 나를 쳐다보는 여왕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내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왕국의 백작이자, 한 영지 주인의 결혼이었다.

여왕도 내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

다만, 여왕에게 한 가지 더 남아 있던 볼일은 뒤로 미뤄야 할 모양이었다.

나는 청첩장을 책상에 남겨둔 채로 집무실을 나와, 수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나누어주었다.

지금도 거인으로 보이는 왕실 기사단장에게도.

“오, 결혼한다고? 그럼 내가 가서 축하해 주어야지.”

아직도 정정한 세우타 공작에게도.

“흠, 말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도 백작의 결정이니, 어쩔 수 없겠지. 나도 가서 축하해 주겠네.”

그리고, 벤자민에게도.

“대단한 결심을 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일이 있어서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네? 영지로 와서 일해보지 않겠냐고요? 그럼, 당연히 가야죠.”

나는 마지막으로 그레시아 공작에게 청첩장을 건네주었다.

공작은 청첩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는 청첩장을 보면서 내게 말했다.

“……재상이자, 고문관으로서는 탐탁지 않은 결정이지만…….”

공작은 그답지 않게 말을 주저했다.

“네 아버지로서 나는 뭐라 할 말이 없구나.”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공작은 검술과 마나로 아직도 나이답지 않게 젊고 단단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든 공작은 전에 보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축하한다.”

그는 어떤 조언도, 반대도 하지 않고, 축하한다는 말만 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공작에게 고개를 숙이고, 공작의 집무실을 나서려 했다.

공작은 갑자기 떠올랐는지, 뒤돌아서는 내게 말했다.

“여왕님이 찾으시더구나. 떠나기 전에 뵙고 가거라.”

공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엄청 화가 났었는데……. 지금은 화가 좀 가라앉은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작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집무실 문을 닫는 순간, 내 귀에 공작의 말이 들려왔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마나로 귀를 강화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였다.

“……미안하다.”

아버지의 사과였다.

여왕은 전과 달리, 십 대 소녀가 아니라 여왕의 얼굴로 결혼을 축하했다.

“다시 생각하니까, 반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불렀어요. 저도 결혼식에 방문하겠어요. 샤를 백작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반대하던 여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무척 어리둥절했다.

더구나 여왕이 직접 찾아온다니.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였다.

그래도, 반대하는 것보다야 백번 천번 좋은 일이었다.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궁금했지만, 여왕의 표정을 보니, 이유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듣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거기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볼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집무실에 ‘기사의 검’을 소환했다.

여왕은 내가 소환한 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왕이 왕실의 신물을 보고 저런 표정을 짓다니…….

하지만, 여왕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들으니, 그런 의문은 쏙 들어가 버렸다.

“정말 싫어, 검이 없어질 때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여왕만 믿고, 마음대로 소환했던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 대신이라고 할까. 나는 여왕에게 새로운 능력을 줄 생각이었다.

초대 왕 카를로스 용사의 능력.

이 검을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는 여왕의 손에 ‘기사의 검’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여왕에게 능력을 심어주었다.

내가 없어져도 용사 카를로스의 왕국이 계속되기를.

나는 여왕에게 능력을 심어주며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여왕에게 새로운 능력을 일깨워주고, 여왕의 집무실을 나오자, 왕궁 집사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궁 밖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안내도 필요 없었고, 형식적인 안내도 이제는 대부분 시녀나 집사들이 담당했었는데, 늙은 집사장이 나서다니.

조금 의아했지만, 나는 집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왕궁 복도를 걸었다.

그가 안내하는 동안 복도에는 신기하게도 지나가는 고용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서 있는 기사와 병사 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텅 빈 복도.

그런 복도를 걸어가고 있으니, 늙은 집사장이 내게 말했다.

“……얼마 전까지 여왕님의 심기가 많이 안 좋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게 백작님이 찾아오신 뒤라고 들었습니다.”

집사장의 물음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확실히 백작인 내게 함부로 물을 말은 아니었다.

집사장답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어쨌거나, 그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왕실과 여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여왕님께서 제 청첩장을 받고 화를 많이 내셨죠.”

내 말에 집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뭔가 담백한 대답.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의 질문에 나도 한 가지 물어볼 게 떠올랐다.

“여왕님께서 오늘은 제 결혼을 축하해 주셨는데, 혹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집사장이 알지 못하거나,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뭔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제가 알려드린 왕실 법 때문일 겁니다.”

왕실 법?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나는 걸음을 멈출 뻔했다.

“여왕님께서 왕의 결혼에 대한 왕실 법을 확인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왕의 남편, 국서가 될 사람이 이미 결혼했을 때, 여왕과 결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서열은 어떻게 될지 물어보셨지요.”

아니, 잠깐만,

황당한 이야기에 나는 결국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마나를 퍼트려 방음벽을 펼쳤다.

집사장도 자리에 멈춰서서 계속 말했다.

“다행히 왕실 법에 그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왕의 결혼은 앞선 귀족의 결혼을 무시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여왕께서 귀족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귀족이 여왕의 국서가 되시는 것이라서 앞선 결혼들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집사장이 나를 기다린 이유가 여왕이 왜 화가 났는지 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여왕님께서는 그 내용을 보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여왕님께서 백작의 결혼을 축하해 주신 것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그는 지금 이 말을 내게 하려고 나를 기다린 것이다.

더구나, 복도에 사람들을 다 비우면서까지.

나는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말을 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여왕님과 이 왕실의 집사장입니다. 여왕님과 왕실을 위해 최선을 다할 따름입니다.”

담담히 말하는 집사장을 보고, 나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화낼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니까.

나는 고개를 젓고는 왕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전송을 통해 내 영지, 집으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여왕이 온다는 소리에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경비도 강화되어야 하고, 시설이나, 행사도 다시 점검해야 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준비해나갔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떠맡기고 발레아와 함께 영지를 돌아다녔다.

나는 영주답게 기사들의 훈련을 시찰하고, 도시 곳곳을 방문해 영지의 분위기를 살폈다.

밖으로 쏘다니던 영주의 시찰에 기사들과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도시의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지만,

사실, 내가 발레아와 함께 돌아다닌 것은 시찰이 아니라 나들이였다.

제국과 대륙 곳곳을 넘나드는 여행이 아니라 거리와 사람들을 구경하는 데이트.

식사 시간에 오헨 경과 서기관들과 모여 영지와 도시의 발전을 어떻게 할지 떠들고, 일과가 끝나면 기사들과 함께 술을 나누는 시간.

발레아와 어머니, 오헨의 수양딸인 이바나와 함께 다과를 즐기는 시간까지.

결혼식을 준비하는 관리들과 오헨 경은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나는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왕실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여왕이 영지를 찾아왔고, 그레시아 공작과 많은 귀족도 여왕과 함께 찾아왔다.

공국에서는 대공녀와 왕세자가, 그레시아 공작가에서는 시몬 형 내외가 도시를 찾아왔다.

그 외의 축하 사절도 가득 찾아왔다.

도시는 북적였고, 내 결혼을 기념하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마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마왕이 깨어날 시점은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발레아와 함께 찾아온 사람들을 환영했다.

그리고, 마왕의 봉인이 풀리기 사흘 전.

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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