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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30화 (530/563)

제530화

제5편 결혼식 (1)

발레아와 함께 돌아온 내 영지는 무척이나 활기찼다.

사방에서 마물들이 소란을 벌이고 있었지만, 아직 봉인지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전이었다.

영주가 영지를 지키지 않고, 자주 밖으로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서기관과 기사들이 영지를 잘 지켜주고 있었다.

영주 대리를 맡고 있었던 노기사도 나보다 나았고.

다만, 영주 대리는 마음에 안 들었는지, 돌아온 내 앞에 서류를 산처럼 쌓아놓았다.

“이건 전부 영주님이 처리해주어야 하는 안건들입니다.”

산처럼 쌓은 서류들을 보고, 나는 책상 앞에 선 노기사를 쳐다보았다.

“오헨 경이 처리하셨어도 되는 것들인데요.”

내 말에 노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안건들입니다. 엄연히 영주님이 계시는데, 제가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서류를 들춰보았다.

우리 영지로 도주한 영지민들에 대한 주변 영주들의 항의,

수도의 귀족과 영주들의 초청장,

지역 유지들의 다툼에 관한 내용과 단순한 도시 내의 소란까지.

전부 영주가 알고, 처리해야 할 일이기도 했지만, 담당자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착실한 영주 대리라면 자신이 직접 했을 만한 일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서류들을 앞에 선 노기사에게 밀었다.

“죄송합니다만, 당분간은 오헨 경이 처리해주었으면 합니다.”

내 말에 노기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바로 또 자리를 비우시려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결혼식을 하려면 제가 좀 바쁠 것 같아서요.”

“네?”

내 말에 노기사의 눈이 커졌다.

반복되는 삶 동안, 대부분의 삶을 발레아와 결혼하고, 그녀를 백작 부인으로 세웠었다.

내가 봉인지의 마물들을 잡는 동안 영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름뿐인 부부이자, 한 번도 같이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사이였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발레아는 충실하게 나 대신 영지를 잘 감당해 주었었다.

그래서 나는 영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없어진 뒤에도, 발레아는 이 영지를 잘 관리해 줄 테니까.

결국, 이번에도 나를 위한 결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전과는 다르게 진행할 생각이었다.

영주 대리를 놀라게 한 뒤에 나는 발레아를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그리고, 반가워하는 어머니께 말했다.

“발레아와 결혼식을 하겠다고?”

내 말에 발레아도 놀라고 어머니도 놀라셨다.

“네.”

어머니는 내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발레아와 결혼하는 것은 나도 찬성이란다. 이제라도 결정을 내린 게 다행이고.”

어머니는 발레아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하지만, 결혼식이라니……. 혹시 가족끼리 여는 결혼식을 말하는 거니? 그 정도라면 흠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뇨. 형님이 했던 것처럼 제대로 결혼식을 할 생각입니다.”

사람들을 초청하고, 영지민의 축복을 받는 제대로 된 결혼식.

그런 결혼식을 해야, 내가 사라진 뒤에도 발레아가 영지를 지켜낼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 나는 발레아에게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주고 싶었다.

내 말에 어머니는 떠듬거리며 내게 물었다.

“제대로 된 결혼식이라니……. 설마…….”

“네, 발레아를 샤를 백작의 본부인으로 세울 생각입니다.”

나는 발레아를 후처나 2부인 같은 자리에 둘 생각이 없었다.

따로 아내를 얻을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더구나, 내 욕심으로 하는 결혼이었다.

금방 남편을 잃게 될 발레아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 주어야 했다.

“그건 안된다! 그렇게 되면, 네 명예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어!”

어머니는 처음으로 화를 내셨다.

“하지 마세요. 결혼식은 안 해도 돼요. 본부인 자리는 필요도 없고요.”

발레아도 나를 말렸고,

하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다.

“지금의 제 지위, 제 명예는 제가 세운 겁니다. 저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발레아를 본부인으로 삼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겁니다.”

사실, 서자로 고통받았던 내 삶을 어머니께 말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반대는 바로 사라졌을 터였다.

하지만, 어머니께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좋은 말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리고, 내가 마왕을 봉인한 것을 알게 되면 발레아를 본부인으로 세운 것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나는 어머니를 최대한 설득하고, 발레아와 함께 복도로 나섰다.

“정말이에요. 결혼식이나 본부인 자리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알렉스와 같이 있을 수 있으면 다 괜찮은데…….”

복도를 걸어가며, 발레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발레아를 바라보았다.

표정을 봐도 발레아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확실히, 발레아는 그런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발레아를 보고, 공작 아들, 백작 부인 자리에 욕심을 내서 내게 붙어 있는 것이라고 말해왔었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발레아는 나, 알렉스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없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마왕을 봉인하는 대가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발레아는 바로 나를 죽이려 들 터였다.

아니, 내가 봉인하는 것을 막거나, 나를 따라 죽으려 하겠지.

그렇게 안 하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녀는 개의치 않을 터였다.

‘설마, 마왕 편에게 서자고 하지는 않겠지?’

진짜 그럴 것 같아, 계속 이어지는 생각을 털어버렸다.

나는 마지막까지 발레아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제대로 안전장치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그 안전장치는 내가 떠난 뒤, 그녀가 나를 찾아 헤매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단단한 안전장치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발레아의 말에 다른 핑계를 댔다.

“그때 발레아가 말했잖아요. 이번 삶은 잠깐 쉬는 삶이라고. 제대로 쉴 생각이에요. 발레아도 같이 즐겨 줘요.”

“아…….”

당연히 통할 수밖에 없는 핑계였다.

거기다, 쉰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번 삶은 마지막까지 삶을 즐길 생각이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발레아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기억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아니에요.”

발레아답지 않게 늦은 대답.

역시 많이 아쉬운 듯했다.

발레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알렉스가 말해 줄 거잖아요. 다음에 꼭 내게 알려줘야 해요.”

“네. 약속할게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지만,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발레아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샤를 백작의 영지가 발칵 뒤집혔다.

외유에서 돌아온 백작이 결혼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발레아 영애와의 결혼.

사실, 여태까지 결혼만 안 했을 뿐 부인 역할을 해왔기에 그녀와의 결혼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도 없는 작은 남작가의 딸을 백작가의 본부인으로 삼아, 결혼식까지 거행한다는 말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평범한 영지민들은 영주의 결혼식에 기뻐했지만, 영지 내의 유지나, 귀족들은 영주의 결혼 발표에 혀를 찼다.

하지만, 영주는 다른 사람이 반대하든 말든 상관없이,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서, 결혼 예물을 구하러 오신 건가요?”

도시 중앙에 있는 유물 경매장.

그곳에서 경매장 주인이자, 셀린 여신의 사제가 내게 물었다.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지만, 저는 영주님의 결혼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런 의미로 다음 경매에 나올 물건 중에 어떤 물건이라도 원가로 드리겠습니다.”

“돈을 받는다고?”

“원가입니다. 원가. 영주님이라고 공짜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경매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저희 교단을 겨우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락망을 유지하고, 가난한 신도들을 구제하고, 겨우겨우 버텨나가고 있는데, 그걸 강탈해가시면…….”

레스티가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농담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주례를 부탁하러 왔어.”

내 말에 레스티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셀린의 성기사가 다른 교단의 사제에게 주례를 받을 수는 없잖은가.”

신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례를 받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아예 신이 존재하지도 않는 ‘교단’의 사제에게 주례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교단의 신전에서 진행될 텐데요…….”

“대주교가 우리 편인데 뭐가 걱정이야. 조아나와 이야기해서 본단에서 파견 나온 사제나 신부로 위장하면 될 거야.”

내 말에 레스티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제가 교단의 치유술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신검을 들고 갈 수도 없는데, 들킬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고개를 내젓는 레스티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성물을 가지고 있지?”

엉뚱한 이야기에 레스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우리 영지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전에 내가 찾아온 성물.”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하지만, 그 성물은 신검 같은 능력이 없습니다.”

“가져와 봐 보도록. 내가 쓸 수 있게 해줄 테니.”

내가 가지고 있는 신검이 성기사가 쓰는 성물이라면, 내가 섬에서 찾아 건네준 ‘왕관’은 셀린의 진정한 성물이었다.

다만, 아무나 쓸 수 있는 성물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셀린의 사제 중에서도 능력을 가진 일부만 쓸 수 있는 성물.

아쉽게도 능력을 갖춘 사제들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제국이 셀린 교단을 탄압하고, 대전쟁을 치르면서 모두 사라진 것일 터였다.

당연하게도 셀린의 마지막 사제인 레스티는 사제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감정 능력을 가진 평범한(?) 귀족일 뿐이었다.

결국, 셀린의 성물은 교단을 대표하는 기념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없었다면.

사람의 능력을 깨우는 ‘현자’의 능력을 얻은 나는 성물을 통해 사제의 능력을 깨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결혼식 주례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례를 정했으니, 청첩장을 보낼 차례였다.

결혼식 준비로 한창인 도시 밖으로 청첩장을 지닌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갔다.

병사들은 그레시아 공작령과 왕국 수도를 비롯한 여러 영지를 향해 정신없이 말을 달렸다.

결혼식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곳으로 청첩장을 보냈지만, 당사자가 직접 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결혼식?”

내가 직접 전해 준 청첩장을 받은 상대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상했다.

분명 미안한 일을 한 게 아닌데, 미안한 기분이 들다니.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청첩장을 들고 나를 노려보는 사람은 어린 여왕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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