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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28화 (528/563)

제528화

제3편 휴가 준비 (1)

시간의 늪에 휘말렸던 걸까?

정말, 반쯤 미쳐버렸던 걸까.

한바탕 울고 난 뒤에 맑아진 머리로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토록 무식하게 같은 일을 반복하다니.

수년이 지났을까? 아니면 수십 년?

처음에는 그래도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가지고 삶을 반복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멍한 정신으로 삶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마물을 잡다가, 마왕과 싸우고, 죽고 다시 회귀하고.

물론,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는 마왕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

반복해서 싸우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삶을 반복해도 마왕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그동안 잡을 수 있는 마물은 다 잡았고, 마왕의 패턴도 파악이 끝났었다.

덕분에 혼자 힘으로 마왕을 죽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내가 죽은 뒤에 다시 회귀하듯이, 마왕 또한 계속 부활했다.

마왕을 죽일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마왕의 부활을 막아야 하겠지만,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유물의 기억에도 책에도 마왕의 부활을 막는 법이 나와 있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게 있었으면, 대전쟁 때에 벌써 마왕을 봉인하는 대신 없애버렸겠지만.

결국, 나는 언젠가 마왕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핑계로 끝없이 삶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예 포기하고 용사의 말대로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마왕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못하는 삶.

이도 저도 아닌 패배자의 삶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발레아에게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정신을 차렸어요.”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발레아 덕분이었다.

“그동안의 일들은 제국에 돌아가서 설명해줄게요.”

아쉽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다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발레아 말대로 이번에는 쉬도록 할게요.”

발레아의 말이 맞았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반복했는데, 한 번 정도는 쉬어도 되었다.

나는 아직도 눈앞에 남아있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봉인 능력을 얻으시겠습니까?>

나는 처음으로 이 메시지에 다른 대답을 했다.

‘네’라는 대답을.

주의 사항과 함께 메시지가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이 저장 시점은 사라졌다.

이제 얻을 수 있는 저장 시점은 마왕의 봉인이 깨지는 순간 남지 않았다.

물론, 그사이에 타살로 죽게 되면 다시 ‘저장 시점’이 생기겠지만, 나는 마왕을 만날 때까지 죽지 않을 생각이었다.

결국, 나는 마왕을 봉인할 때까지 삶을 반복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발레아에게 말한 것처럼 이번 삶은 건너뛰고, 다음 삶에서 봉인을 결정해도 되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삶을 반복하면서,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감정도 메말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마왕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었다. 봉인하기로 했는데,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네’라고 대답한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나는 결정을 뒤로 미룰 수 없었다.

다음번 삶으로 결정을 미루게 되면, 다시 ‘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영지에 있는 이들과 내 친우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뒤에 그들을 떠날 자신이 없었다.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발레아를 떠날 자신이 없었다.

사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마왕과 싸워온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결국, 앞뒤가 바뀐 결말이 나와버릴 뻔했지만, 정신을 차린 지금, 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연기해서인지, 발레아는 내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아직도 내 연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발레아까지 속였으니, 더 실력이 올라간 걸까?

아무튼 우리는 지하 도시를 정리한 뒤에 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곳은 교단 본부의 최상층에 있는 대주교의 응접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발레아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반복해서 마왕과 싸워나간 일.

결국, 홀로 죽이기까지 했지만, 아직도 쓰러뜨리려면 까마득해 보인다는 말까지.

까마득한 것과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차이가 꽤 있었지만, 내 말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기다, 봉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봉인을 알게 되면 발레아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게 될 테니까.

“너무 오래 싸움을 반복해서 정신이 나간 모양이에요.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번부터는 매번 진행 상황을 알려줄게요.”

아마, 다음번은 없을 테지만, 나는 발레아의 눈을 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

발레아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잘 통한 것 같았다.

발레아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방을 빌려준 교단 대주교 조아나와 내 누이, 그리고 2 황자와 함께 다과를 나누었다.

나는 다과를 나누면서 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다과의 맛과 차의 향에 대한 이야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엘레나 누이가 얼마나 나를 따라다녔는지 모르실 겁니다. 조금만 머리가 아프다고 해도 치료해주겠다고 난리를 피우는데, 머리가 더 아플 지경이었다니까요.”

“알렉스!”

“오, 차 맛이 좋은데요. 이건 어디 차죠?”

누이를 놀리다가, 얼굴이 붉어진 누이를 보고 차를 품평하고,

조아나의 사제 때 이야기를 듣는 평화로운 시간.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같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만 2 황자만은 다과를 즐기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그는 아직 도망자 신세였고, 수도를 장악하려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렇게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2 황자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와 발레아가 도와줄 테니까. 수도를 장악하는 것은 발레아가 도와줄 테고, 나는 황제를 맡겠습니다. 황제는 수도로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겁니다.”

발레아에게는 미리 말해놓았었다.

쉬는 회차라도 해놓아야 할 일이 있다고.

그중에 하나는 당연히 파편을 모아 ‘전쟁신의 검’을 복구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 뒤에도 한참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대주교 조아나가 일이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조아나가 일어나자, 다과 시간은 끝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려면, 할 일들을 빨리 끝내놓아야 했으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기다릴게요.”

나는 발레아의 대답을 들은 뒤에, 복도로 나갔다.

복도로 나가, ‘전송’ 능력을 바로 쓰는 대신에 가슴에서 검의 파편을 꺼냈다.

회귀 직후, 마물 기사에게서 꺼낸 파편.

나는 파편에 마나를 밀어 넣으며 머릿속으로 ‘전쟁신의 검’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검의 이미지에서 검이 부서진 파편까지 이미지를 이어갔다.

“전송, 검의 파편으로.”

이 파편과 비슷한 다른 파편을 떠올리며 중얼거리자, 눈앞의 광경이 일그러졌다.

수많은 삶을 반복하면서, 나는 계속 성장했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향상되고, 새로운 능력을 배우기도 했다.

성장한 ‘사자 회귀’ 덕분에 그 능력들은 삶을 반복해도 내 몸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많은 능력이 성장했지만, 변하지 않은 능력들도 있었다.

한계까지 성장했기 때문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장비 소환> 능력도 변하지 않는 능력 중 하나였다.

물론, 이미 장비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능력이었지만, 그동안 큰 도움이 된 능력이라,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그래도, 많은 반복된 삶 동안에 <장비 소환> 능력의 다른 활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른 유물과 사람에게는 쓸 수 없는, 한가지 유물에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바로 ‘전쟁신의 검’ 파편을 써서 다른 파편으로 전송하는 방법이었다.

어차피 한가지 유물에서 나온 파편들이었다.

그중에 한 파편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파편으로 ‘전송’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냥 파편을 소환해버릴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마물 왕과 일체화되어버렸는지, 소환이 불가능했다.

일그러졌던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시야가 돌아오자, 눈앞에 마물이 보였다.

오래된 나무 같은 피부를 가진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을 닮은 마물.

마물들을 통솔하는 마물 왕이었다.

내가 전송된 곳은 탑의 옥상이었고.

나는 손을 뻗어, 마물 왕의 아래턱에 쑤셔 넣었다.

푹.

내 손은 마물 왕의 아래턱을 뚫고, 뒷머리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져나온 손에는 검 파편이 들려있었다.

두 번째 파편이었다.

나는 생기가 사라진 마물의 턱에서 팔을 빼냈다.

마물 왕치고는 어이없는 죽음이었지만, 몇 번이고 반복된 일이라, 담담하게 파편을 쥐고 다른 손에 들린 검을 옆으로 휘두를 수 있었다.

검에서 빛의 선이 퍼져나갔고,

퍼퍼퍼퍽.

옥상에 있던 마물들이 전부 반으로 잘려 나갔다.

마왕은 물론, 마왕을 지키던 하늘을 나는 마물들이 일격에 몰살된 것이다.

나는 검을 땅에 박아넣고, 큐브를 꺼냈다.

이 마물들을 모두 언데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시 탑에 돌아올 때, 전송의 목적지로 삼을 필요도 있었고, 다른 곳을 이동할 때 쓰기 위해서였다.

방금 내가 죽인 고목 마물 왕도 언데드로 되살릴 수 있었지만, 이 마물 왕은 쓸모가 없었다.

마물 왕의 능력, 마물을 통솔하는 힘과 지혜는 대부분 검의 파편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

나는 마물들을 모두 언데드로 되살리고, 다시 다음 파편으로 이동했다.

일렁이는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니, 눈앞에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거인이 보였다.

내가 좀비 거인이라고 이름 붙인 마물 왕. 지겹게 싸워왔던 마물 왕이었다.

크아아아앙!

마물 왕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괴성을 지르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하늘을 가득 덮어버린 마물의 발을 보고,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한 마물 왕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대검을 꺼내 손에 쥐고, 마나를 밀어 넣었다.

마물 왕의 발이 나를 내려찍었고, 동시에 나도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싸움은 금방 끝났다.

발에 구멍이 나고, 심장이 도려내진 뒤에 투구와 함께 목이 잘린 마물 왕의 몸은 그 상태에서도 계속 움직이려 했지만, 나는 그 몸을 무시하고 머리에서 파편을 뽑아냈다.

진정한 시체가 된 마물 왕 주변에는 아직 황제도 기사단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빨리 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황제는 이 마물 왕과 싸우기 전이었다.

황제는 지금쯤 늑대를 타고 다니는 마물 왕과 열심히 싸우는 중일 터.

“내가 찾아가면 되니까.”

나는 조금 전에 만든 언데드 한 구를 소환했다.

언데드 마물이 내 앞에 나타났다.

언데드 마물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내가 올라타기를 기다렸다.

머리가 잘려 나가 꽤 섬뜩한 모습일 테지만, 이런 모습의 언데드를 여러 번 타왔던 나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언데드에 올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지금쯤 황제가 있을 곳을 향해 언데드가 날아가게 했다.

이제 황제를 죽이고, 대공녀에게 이 파편들을 주어서 검을 복구시키면 될 터였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기계적으로 반복했던 삶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때도, 마왕을 상대하고, 봉인지의 마물들을 쉽게 잡기 위해 제일 먼저 ‘전쟁신의 검’을 복구했었다.

이번에도 제일 먼저 검을 복구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유는 전과 달랐다.

마왕을 봉인하기로 한 이상, 이 검, 신의 유물은 꼭 복구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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