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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27화 (527/563)

제527화

제2편 봉인 선택 (2)

현재의 저장 시점이 사라진다는 말은 중간에 죽지 않는다면, 시스템이 알려준 다음 저장 시점까지 저장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다음 저장 시점은 마왕의 봉인을 획득한 순간이었지?”

전에는 새로운 지역을 가고, 큰 이벤트나 마물 왕을 죽이면 저장 시점이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반복해서 마물 왕을 죽여서인지, 마물 왕을 죽여도 저장 시점이 나오지 않았다.

저번 삶에서 새로 저장 시점이 나온 것은 봉인의 정보를 얻는 순간, 마왕의 봉인을 푸는 그 순간밖에 없었다.

물론, 그 전에 죽으면 저장 시점이 만들어지게 될 터였다.

자살이 아니라, 봉인지에서 마물들을 상대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방법도 있고.

“설마, 그것도 자살로 취급되지는 않겠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런 것까지 다 자살로 인정되지는 않을 듯했다.

싸움에 실수가 없을 리가 없으니까.

다만, 저 메시지가 뜻하는 바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봉인을 얻게 되면 되돌아갈 수 없다고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봉인 능력을 얻으면 마왕을 봉인하고 삶을 끝내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메시지.

메시지를 보니, 기억 속에서 용사가 마지막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도 봉인 능력을 얻은 뒤에 저 메시지를 보았을 테니.

다만, 다행히도 바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은 거절하고 다시 봉인 정보를 얻으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아니요’라고 말하고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마왕이라는 벽은 크고 단단했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메시지를 지워버린 뒤, 나는 저번 삶 때와 똑같이 움직였다.

마물 기사의 목에서 파편을 뽑아내고, 큐브를 소환해서 지하 도시의 검은 마나를 빨아들였다.

이번에도 지하 도시의 언데드들은 내 소유가 되었고, 나는 발레아와 함께 제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에 발레아에게 2 황자를 도와 제국 수도를 장악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나는 봉인지 탑으로 가서 고목을 닮은 인간형 마물 왕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황제와 함께 좀비 거인까지 쓰러뜨리고, 마지막으로 대공녀에게 가서 파편들을 ‘전쟁신의 검’으로 되돌렸다.

그 뒤에 나는 발레아를 영지로 보내고, 봉인지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마물을 잡았다.

중간중간, 죽을 뻔한 위기가 닥쳐오기도 해서, 슬쩍 죽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자살이 될지 테스트해보기에는 자살 페널티가 걱정이 되었다.

처음 페널티와 달리, 심한 페널티가 걸리기라도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최대한 마물을 잡고, 다시 탑으로 향했다.

[시설을 다시 개방하겠습니다.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탑을 개방한 뒤에 시간을 확인하니, 저번 삶과 다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일주일이나 빨리 왔는데, 이 정도 시간은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투덜거리며 탑을 올랐다.

똑같은 광경이 눈이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기억을 확인하지 않았다.

길을 알고, 방해가 없으니, 그래도 저번 삶보다 빨리 최상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최상층 홀은 저번 삶과 다르지 않았다.

마나가 회오리치고 있는 반구와 그 앞에 쓰러져있는 해골.

해골 아래 깔린 단도를 잡아보았지만, 이미 봐서인지 용사의 기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마나가 회오리치는 구에 손을 올렸다.

봉인구가 사라지고 나는 마왕과 싸웠다.

탑이 부서지고, 섬이 초토화되고, 호수가 출렁였다.

그리고, 나는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렸다.

“커어억.”

심장과 허파가 같이 날아가 버려서 회복이 불가능했다.

나는 섬 위에 누워 다가오는 마왕을 바라보았다.

버틴 시간은 저번 삶에서보다 짧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다가오는 마왕의 팔 한쪽이 사라졌었으니까.

“전에 싸운 용사 나부랭이들보다 훨씬 강하군. 너 같은 인간이 많나?”

마왕의 말에 피식 웃었다.

“많지. 나는 선발대니까.”

거기다 거짓말도 해주고.

“그보다, 나와 싸운 적이 있었나? 내 검을 잘 아는 것 같던데.”

“마왕에 대한 준비는 제대로 해놓았으니까. 잘 알 수밖에.”

“그런가. 이번 싸움은 재미있겠군.”

내 허풍에도 마왕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허풍은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다가오는 어둠.

또 한 번의 삶이 끝났다.

그 뒤로 나는 계속 삶을 반복했다.

검을 복구하고 마물을 죽이고, 탑을 올라 마왕과 싸웠다.

힘들고, 외롭고, 지쳤지만, 나는 계속 싸워나갔다.

싸우는 도중에 실수하기도 하고, 운이 안 좋아서 일찍 죽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삶을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더 많이 마왕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나는 싸우고,

죽고,

다시 싸웠다.

어느새 고통도 환상통도 이제 무감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물을 잡는 것도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단지 마왕과 싸울 때만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팔이 잘려 나갈 때도 마왕의 허리에 상처를 입히려 했고, 목이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팔 하나라도 더 자르려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나는 결국 마왕을 죽일 수 있었다.

탑이 박살 나고, 초토화된 섬 위에서 나는 마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내 검이 마왕의 목을 잘라냈다.

서걱.

혹시 몰라, 마왕의 팔과 다리를 잘라버렸다.

서걱. 서걱.

그리고, 남은 몸도 난도질했다.

“헉. 헉. 헉.”

한쪽 팔이 날아가고, 옆구리가 뜯겨 나갔지만, 결국 마왕을 죽일 수 있었다.

나는 잘려 나간 머리를 호수에 던져버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조각난 마왕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결국, 혼자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조금도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 눈앞에서 마왕의 시체가 허물어졌다.

시체는 피로 변해서 땅속에 스며들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내 감각과 ‘마나 감응력’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마왕의 시체는 그냥 사라진 것이었다.

혹시나, 시체나 피 같은 것을 따로 모아두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마왕의 부활은 생물학적인 방법이 아닌 모양이었다.

멍하니 시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군. 인간이 혼자 나를 쓰러뜨린 것은 네가 처음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마왕이 서 있었다.

그는 온몸에 균열이 가득 나 있는 몸을 드러낸 채로 서 있었다.

“재미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제국이 마지막 힘을 모두 쏟았을 때나 나를 죽일 수 있었는데. 그걸 혼자 해내다니. 용사 떨거지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군.”

한 번 죽어서인지, 마왕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떠들어댔다.

“그냥 죽이기 아까울 정도야.”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는 마왕의 저런 말에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마왕과 싸우는 동안 저런 말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름 위험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왕이 나를 죽이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마왕에게 한마디 말을 했고, 마왕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한번 죽어서인지, 효과가 더 좋은 것 같았다.

마왕이 일그러진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 환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세상이 빛이 덮이고, 다시 어두워졌다.

잠시 뒤에 다시 세상이 밝아지고, 삶이 시작되었다.

<사망하셨습니다. 자동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메시지가 보이고, 환상통이 머리와 몸을 두드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몸을 움직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부터 고통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덕분에 상처를 입어도,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도 개의치 않고 계속 싸울 수 있게 되었다.

“파편을 꺼내고, 큐브에 검은 마나를 넣고…….”

나는 항상 하던 데로 지하 도시의 일을 마무리했다.

눈앞에는 언제나처럼 저장 시점 메시지에 이어 다른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경험치 상승과 봉인 정보 획득. 그리고 주의 사항.

<봉인 능력을 얻으시겠습니까?>

<주의 : 봉인 능력을 얻으시면 현재 저장 시점이 사라집니다.>

전에는 바로 치워버렸지만, 하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눈앞에 메시지를 띄우고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

뭐 그래도, 이제 치워버려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니요’라고 말하려 했다.

“알렉스!”

아마, 옆에서 발레아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바로 말했을 터였다.

나는 발레아의 말에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줘요. 정리한 뒤에 제국으로 보내줄게요. 그리고, 2 황자를 돕고 영지로 가게 해줄게요. 거기서 저를 기다리시면 돼요.”

회귀한 시점이니, 발레아라면 바로 알아들을 테지.

시간이 지나면 설명하기가 좀 귀찮아지겠지만, 지금은 신뢰가 가득할 때니까.

뭐, 시간이 지나면 볼일도 없으니, 상관없게 될 테고.

하지만, 이번 회차는 발레아의 반응이 전과 달랐다.

“알렉스! 나를 봐요!”

그동안 발레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발레아를 쳐다보았다.

발레아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발레아의 얼굴에는 의아한 표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보여주었던 실망한 표정이나, 우울한 표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표정.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표정을 하는 걸까?

전하고 다른 상황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 정도는 말로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시간이 조금 낭비되겠지만.

머릿속으로 변명할 말들을 쭉 떠올렸지만, 그 말들은 이어진 발레아의 말에 다 날아가 버렸다.

“몇 번이나 반복한 거예요. 도대체 몇 번을 죽었길래 이렇게 변한 거죠?”

나는 그녀의 말에 횟수를 계산해 보았다.

몇 번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발레아 말대로 너무 많이 죽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치워버리고,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처음은 아니지만 몇 번 안 죽었어요. 고통이 심해서 그래요.”

항상 통하던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거짓말이잖아요. 지금 고통을 느끼긴 해요?”

회귀한 뒤에 바로 움직여서 알아차린 걸까.

다음에는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제국으로 돌아간 뒤에 이야기하죠. 2 황자를 돕고 황제를 죽이고 마물 왕을 쓰러뜨리려면 서둘러야 해요.”

“아뇨. 서두를 필요 없어요. 이번에 못 하면 또 반복하면 되잖아요.”

발레아의 말이 맞긴 했다.

계속 반복되었던 삶이니, 한 번 정도는 어긋나도 상관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마왕을 쓰러뜨려야 하니까.

아니, 쓰러뜨리긴 했다.

부활해서 소용없어졌을 뿐.

하지만, 그래도 쓰러뜨려야 했다.

계속 반복을 하면 언젠가는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생각이 이어지는데, 발레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알렉스! 내가 누구죠?”

이상한 질문이었다.

“발레아잖아요.”

“네. 제가 발레아예요. 발레아는 누구죠?”

더 이상한 질문.

그래도 나는 친절하게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발레아는 메세시아 남작의 딸이잖아요.”

“그리고요?”

“영역 능력을 사용하는 강력한 능력자이고요.”

“또 없어요?”

“샤를 백작……. 의 아내죠.”

지하 도시라 공기가 탁해서일까.

발레아의 목소리가 잠긴 것 같았다.

“……그럼 샤를 백작, 알렉스는 어떤 사람이죠?”

“샤를 영지의 영주죠.”

“또요.”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이자, 아만다 부인의 아들이고.”

“또요.”

“여왕의 기사, 대공녀의 친우이고.”

“또요.”

“……당신, 발레아의 남편입니다.”

발레아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우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발레아의 모습이 뿌옇게 보였으니까.

아마, 나도 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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