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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25화 (525/563)

제525화

제25편 용사의 기억

예상대로 단도를 잡고 마나를 밀어 넣으니, 기억이 보였다.

보이는 것은 하나의 기억. 단도를 보고 있는 남자의 기억이었다.

단도의 날에 내가 빙의한 남자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이 남자가 바로 마왕을 봉인한 용사였다. 다른 용사의 기억에서 보았었던 용사.

용사의 얼굴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게 된 그의 눈은 지쳐버린 노인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날에 비친 자신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반갑다고 말하면 될까. 지금도 누가 보게 될지 확신이 안 서지만, 그래도 이 기억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그는 바로 내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내 후손일 테지.”

예상대로였다. 마왕을 봉인한 용사, 내 선조는 이 검을 각성한 후손에게 보내는 편지로 쓰고 있었다.

“인사말은 이렇게 하면 될 것 같고. 그럼 내 기억을 보는 세 번째 회귀자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용사는 말을 하면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은 많은데 뭘 먼저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의 말에 이상한 내용이 섞여 있었다.

세 번째 회귀자라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의 말은 수백 년 전에 남겨진 기억일 뿐이었다.

“뭐, 마왕이 올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좀 길게 이야기해도 되겠지.”

그나마 다행이었다.

교단과 용사의 후손들이 정말 꼼꼼하게 역사를 지운 덕분에 세 번째 회귀자라는 말을 포함해서, 지금도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더구나 기억을 보는 동안은 현실의 시간이 거의 흘러가지 않으니, 많이 들을수록 더 좋았다.

“알고 있겠지만, 지금 마왕에게 대충 멸망한 제국은 대륙의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신의 용사를 흉내 내서 우리 용사들을 만들어냈지.”

“그렇게 만들어낸 첫 번째 용사는 제국이 다른 세상에 날려버렸고. 다음 용사들은 신이 보낸 용사가 가졌던 능력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우리 양산형 용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

근데 생각보다 먼 옛날이야기부터 꺼낼 모양이었다. 아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조금 답답해졌다.

그렇게 멍하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늘한 느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잠깐.

용사들에게 능력을 나누어주었다면, 결국, 마왕은 그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그중에서 ‘회귀 능력’을 얻게 된 게 나였고.”

결국.

“아, 방금 말에서 알아차렸지? 첫 번째 회귀 능력을 얻은 게 누군지.”

용사의 말은 마왕도 회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마왕이 맞아. 하지만, 다행히도 마왕이 다른 세상으로 쫓겨나기 전에는 능력들을 제대로 쓰지 못했었던 모양이야. 회귀 능력도 그렇고.”

제대로 쓸 수 있었으면, 마물들 세상으로 쫓겨났을 리도 없고, 실험실에서 인간 실험을 당하고 있었을 리도 없었다.

“불사체라 죽일 수도 없는데, 다른 능력들과 함께 회귀 능력도 각성하는 듯했으니, 제국이 식겁해서 다른 세상으로 쫓아 보낼 만했지.”

지금도 답이 없는데, 마왕이 회귀자라니,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마왕이 회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쉽게 봉인될 리가 없을 텐데…….

죽지 않아서 봉인된 걸까?

의아한 내 심정은 생각지도 않고, 용사는 말을 이어갔다.

“제국은 마왕이 회귀 능력이 발휘되어도 차원은 넘어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 뭐, 틀린 생각은 아니었고, 우리가 용사로 만들어질 때까지 마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제국 황실과 용사 연구소 사람들은 그가 그쪽 세상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사실은 정반대였지.”

마왕이 그렇게 강해진 것은 결국, 회귀 능력 때문이려나.

“그는 그쪽 세상에서 회귀 능력을 사용해서 엄청나게 강해져 버린 거야. 제국은 죗값을 덤터기로 받게 된 거고.”

역시, 회귀 능력 때문이었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이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나 했더니, 결국 나와 같은 이유였다.

그리고, 용사는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사실 마왕이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것은 내 탓도 있어. 내가 회귀 능력을 각성하는 순간, 그는 회귀 능력을 잃게 되었으니까.”

어? 마왕의 회귀 능력이 없어졌다고?

용사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어서 검날에 반사된 용사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에 얼마나 놀랐는지,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내 심정을 알고 있는지, 용사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나도 메시지를 보고 알았지만, 회귀 능력자는 같은 시간대에 한 명 이상 있을 수 없는 모양이야. 회귀자끼리 시간대가 충돌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모양인데, 나도 정확하게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용사가 본 메시지를 보지 못했지만,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용사도 나와 비슷한 메시지를 보는 모양이었다.

용사가 본 메시지를 내가 못 본 건, 아마도 다른 회귀 능력자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메시지를 떠올리니, 다시금 골치가 아파졌다.

신이 보낸 메시지라 하기에는 뭔가 기계 냄새가 가득 나는 메시지.

메시지를 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메시지를 누가 보낸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전생에 플레이하던 게임의 시스템 메시지와 비슷한 메시지.

전생을 기억하는 나에게 맞춰진 메시지가 아닐까 했지만, 용사의 말을 들으니, 내가 본 메시지와 다를 바가 없는 듯했다.

“어쨌거나, 내가 각성한 순간, 마왕도 자신이 회귀 능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고, 마왕은 게이트를 열고, 이 세상으로 돌아온 것일 테지.”

“원해서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원죄가 있으니, 도망을 갈 수도 없고……. 결국, 이런 꼴로 마왕을 기다리고 있게 된 거야.”

그게 무슨 원죄라고.

호구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용사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와 있었으니까.

“마왕을 이곳으로 오게 한 것도 다른 게 아니야. 내가 회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렸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 정도 들었으면, 의심하기 시작했으려나?”

용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의심은 지금이 아니라, 마왕을 봉인한 용사가 회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그대가 각성한 덕분에 마왕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의심이…….”

솔직히 말하자면, 의심 정도가 아니었다.

마왕을 봉인한 용사가 회귀 능력 능력으로 마왕을 봉인했는데, 회귀 능력을 가진 나 때에 봉인이 풀리다니.

이걸 우연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어차피 봉인을 유지하는 것은 죽어버린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탑의 마나로 하는 것이니까. 그대가 태어나서 봉인이 약해질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봉인은 약해질 테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선조인 용사는 성격이 상당히 안 좋은 것 같았다.

위로도 아니고, 책임을 지라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말에 마음만 더 심란해질 뿐이었다.

“어쨌거나 이 기억을 보았다는 것은 아직 봉인이 풀리기 전에 봉인 앞에 도착했다는 것일 테고. 작은 확률을 뚫고, 예언가의 예언이 맞았다는 소리가 되겠지.”

“예언가 본인도 쉽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결국, 내 고생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게 되는 걸까? 정말, 누군가 봐주었으면 좋겠군.”

용사도 많이 심란해 보였다.

이 검의 기억을 누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일까?

아니면 죽음을 앞두어서일까.

그렇게 심란한 얼굴로 검을 바라보던 용사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제일 중요한 말을 못 할 뻔했네. 아직 마왕을 봉인하는 능력이 열리지 않았다면, 봉인이 풀리기 전에 봉인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불어넣어 봐. 도움이 될 거야.”

이제야,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다니…….

용사와 대화만 되었으면 욕을 퍼부어주었을 터였다.

내가 용사에게 속으로 욕을 하는 사이, 용사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봉인하는 능력이 생겨나면…….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처럼 시간을 희생해서 마왕을 봉인하고 미래를 대비해도 되고, 그냥 원하는 만큼 시간을 반복하다가 마왕에게 멸망해도 되고.”

모두를 위해 희생하게 된 용사의 충고일까.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충고는 내 속을 쓰리게 만들 뿐이었다.

역시 이 용사는 성격이 안 좋았다.

내가 혀를 차는 순간, 검에 비친 용사의 얼굴이 흔들렸다.

용사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만 흔들린 게 아니었다.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왕이 도착한 모양이네. 나도 준비를 해야 하니 이제 끝낼 시간이야. 그럼, 내 뒤를 부탁해.”

그 말을 끝으로 세상이 어두워졌다.

기억이 끝난 것이다.

다시 세상이 환해지니, 눈앞에 손에 쥔 단도와 누워 있는 해골이 보였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바닥에 내려놓고, 해골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보았을 때는 한바탕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여기에 홀로 남은 해골에게 차마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희생으로 수백 년간 이 대륙의 인류를 지킨 용사였으니까.

나는 용사에게 욕을 하는 대신, 해골 앞으로 걸어갔다.

해골 앞에는 소용돌이치고 있는 마나의 반구가 있었다.

반구 안에 회전하는 마나는 지금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반구는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도 못 버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반구 앞에 섰다.

바람은 없었지만, 옷과 머리가 펄럭였다.

반구를 휘감은 유형화된 마나가 내 몸을 스쳐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꺼질 것같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반구 안의 마나는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범한 능력자, 귀족이라면 움직이는 마나에 갈려버릴 것처럼 보였다.

나도 손대기에는 위험해 보였지만, 손을 들어 천천히 반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반구를 타고 도는 마나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스르륵.

반구에 손을 대자, 반구를 타고 돌던 마나는 내 손을 타고 지나갔다.

손에 이어, 팔까지 흘렀다가 다시 빠져나가고, 이어서 어깨까지, 그리고 몸 전체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몸 안에서 묘한 감각이 피어나는 게 느껴졌다.

마치 능력이 성장해서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는 것 같은 그런 감각.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봉인에 접속했습니다. 정보를 획득 중입니다.>

욕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얼마나 마물을 잡아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이런 방법을 남겨주다니.

성격은 이상했지만, 내 선조는 진짜 도움이 되는 분이었다.

<정보 획득이 끝났습니다.>

잠시 뒤,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간질거리는 느낌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당장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회귀를 하게 되면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회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앞에서 회전하던 봉인구가 사라지고 내 눈앞에 마왕이 서 있었으니까.

마왕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마왕이 어떤 식으로 봉인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마왕은 지금 한순간에 수백 년을 건너뛴 것이다.

나는 첫 번째 회귀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초대…….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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