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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21화 (521/563)

제521화

제21편 차르마니아 방어전 (2)

마물이 가득한 평야.

마물들이 진형을 다시 갖추고 있는 벌판을 나는 홀로 질주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주변은 마물들로 가득했고, 암살자 노인이 일으킨 소란도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몸을 바닥까지 낮추고, 기척을 최대한 감춘 채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마물들은 기척을 숨긴 나를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물들의 덩치가 커서 바닥에 붙어 전진하는 나를 보지 못해서였기도 했지만, 마물들이 엉망이 된 진형을 다시 갖추라는 명령을 받아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암살자 노인처럼 마나와 기척, 모습까지 숨길 수 있지 않으니, 작고 예민한 마물들에게는 들킬 수밖에 없었다.

푹.

나는 그런 마물들에게 들킬 때마다 머리와 가슴 깊숙이 검을 밀어 넣었다.

피가 튀지 않고,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물들을 일격에 쓰러뜨렸다.

내 감각이 더 뛰어나서인지, 나는 마물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먼저 마물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눈치를 챈 마물들을 쓰러뜨리며 엉클어진 진영을 파고들다 보니, 결국, 마물 왕에게 들키고 말았다.

마물 왕들 쪽으로 마물들이 뜬금없이 픽픽 쓰러지고 있으니, 높은 곳에서 지켜보던 마물 왕이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물 왕은 나를 너무 늦게 발견했다.

나는 이미, 두 마물 왕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마물 왕 앞에 도착한 나는 작은 성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마물 왕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저번 삶에서는 한방에 이 마물 왕을 쓰러뜨렸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지금 내게는 그때 썼던 ‘전쟁 신의 검’이 없었다.

‘현자’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마지막 파편을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마지막 파편을 가지고 있는 마물 왕은 지금 내 앞의 거대한 마물 왕 위에 서 있었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자살이 가능했다면 죽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좋아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순간, 머리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 거대한 발바닥이 보였다.

마물 왕의 발바닥이었다.

이 거대한 마물 왕은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에 다리를 들어 올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밟을 모양이었다.

내가 온 것을 알아차렸는데도 마물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이상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마물들로 공격하는 것보다, 거대 마물 왕이 발로 짓이기는 편이 좋아 보였다.

거대한 발의 크기를 보니, 저건 물리적인 광역 공격에 가까웠다.

실력이 좋은 기사라도, 능력이 강한 귀족이라도, 무게로 눌러버리는 저런 공격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공격일 뿐이었다.

나는 발이 떨어지기 직전에, 발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콰앙!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를 마물 왕의 발이 쑥밭으로 만드는 사이, 나는 그 다리를 밟고 위로 치솟아 올랐다.

어차피,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고, 단단하기만 한 마물 왕이었다.

조금 전의 공격은 예상외라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타고 오를 기둥이 생겨서 바로 저 위에 있는 고목을 닮은 마물 왕에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철판처럼 느껴지는 껍질을 밟고, 나는 쭉쭉 위로 올라갔다.

마물 몸 위에 둘러쳐 있는 마나 방벽이 계속 나를 밀어냈지만, 나는 심법을 움직여 마물 왕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몸 주변에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마물 왕의 무릎을 지나, 어깨를 거쳐, 마물 왕의 등에 올라섰다.

등에 올라서자 나무줄기처럼 보이는 털 사이로 로브를 둘러쓴 인간형 마물이 보였다.

하지만, 이 마물 왕 등에는 로브를 둘러쓴 인간형 마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줄기 같은 털 사이사이에 다른 마물들이 숨어 있었다.

날개를 접고, 숨어 있던 하늘을 나는 마물들이었다.

탑에서 보았던 마물들이자, 저번 삶에서 내가 잘 타고 다녔던 마물들이었다.

저 인간형 마물 왕은 탑에 있었던 마물들을 호위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캬아아악!

내가 등 위로 올라서자, 털 사이에 숨어 있던 마물들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간형 마물 왕을 지키고, 나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것은 실수였다.

나무줄기같이 두꺼운 털이 가득한 마물 왕의 등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마물들이 등에 있는 이를 공격하기에는 단단하고 두꺼운 털들이 방해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공격 대상이 그 털들 사이를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이동하는 기사라면, 이건 방해 정도가 아니었다.

끼에엑! 퍼더덕!

날 덮치던 마물들이 단단한 털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황당하게도 털에 날개가 잘려 나가는 마물도 있었고, 마물들끼리 부딪쳐서 아래로 떨어지는 마물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털 사이를 빠르게 움직여 로브를 둘러쓴 마물 앞에 도착했다.

깊게 눌러쓴 로브 아래로 고목을 닮은 얼굴이 보였다.

어리숙하면서도 늙은 나무처럼, 지혜가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

그 얼굴은 바로 앞에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 마물 왕에게는 궁금한 게 있었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지평선 멀리.

거대한 마나가 막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물 왕 옆을 지나가며 나는 검을 휘둘렀다.

서걱.

고목을 닮은 마물의 머리가 위로 솟구쳤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마물의 머리 사이로 반짝이는 검 조각이 보였다.

‘전쟁 신의 검’의 마지막 파편이었다.

저 파편만 모으면 ‘전쟁 신의 검’을 복구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나는 그 파편을 외면했다.

저 파편을 가지게 돼도, 이번 삶에서는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대공녀를 만나러 갈 생각도 없었다.

키에에엑. 카카아앙.

마물이 죽으니, 벌판에 펼쳐져 있던 마물 진형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마물들은 옆에 있던 마물과 싸움이 붙고, 마물들은 진형에 상관없이 성벽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물 왕 위를 날아다니고 있던 하늘을 나는 마물들도 나를 버려두고, 수도로 날아갔다.

통솔하는 마물 왕이 없어졌으니,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 것이다.

쿵. 쿵.

내 아래에 있는 거대 마물 왕도 성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두더지 거대 마물 왕은 이대로 성벽을 들이받아 무너뜨릴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하게 놔둘 수는 없지.”

나는 들고 있던 검을 땅에 던진 뒤, 가슴에서 대검을 뽑아 올렸다.

“이 아래에 심장이 있었을 거야.”

나는 저번 삶의 기억을 되새기며 대검을 거꾸로 잡고, 힘껏 바닥에 박아넣었다.

푹.

검은 손잡이만 보일 정도로 깊이 박혔다.

마물 왕의 마나 장벽을 한순간에 찢어버리고 깊게 박아넣은 검.

하지만, 이 거대한 마물 왕에 비하면 작디작은 상처일 뿐이었다.

마물 왕은 검에 찔렸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검에 계속 마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마나를 변형해서 마물 왕에 박혀 있는 검날을 길게 늘였다.

‘마나 유형화’

카트린의 단검으로 배운 마나 검이었다.

검날 대신 마나의 검이 마물 왕의 살을 뚫고 점점 길어졌다.

1m, 2m…… 10m.

크르르릉.

계속 길어지니, 앞으로 걸어가던 마물 왕이 결국,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고통을 느꼈을 뿐이었다.

아직 심장에도 닿지 않았고, 치명상을 입히기는 턱없이 길이가 모자랐다.

나는 다시 ‘전쟁 신의 검’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젓고는 가슴에서 다른 유물을 꺼내 목에 걸었다.

‘조직’에서 만든 목걸이였다.

마나를 증폭하는 목걸이.

마나를 증폭하는 대신, 다루기가 어려워져서 한참 전부터 쓰지 않았던 목걸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목걸이가 필요했다.

이 마물 왕을 쓰러뜨리려면 대단한 검술보다, 조금이라도 강한 마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목걸이를 차자, 몸속의 마나가 목걸이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나는 목걸이를 거쳐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다.

더 강하고 거친 마나가 되어.

빠직. 빠지직.

동시에 목걸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는 감당이 안 되는 건가.”

하긴 이 목걸이는 고대 제국이 만든 유물도 아니었다.

강해져서 돌아온 마나도 더 강해진 이상으로 다루기가 곤란했고.

결국, 이런 때가 아니면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뭐, 원래 자폭용으로 썼던 거였으니까.”

나는 되돌아온 마나를 검에 밀어 넣었다.

부르르르.

거친 마나에 검이 마구 떨렸다.

다른 검이었으면 바로 깨져나갔을 떨림이었지만, 이 검은 부러지지 않는 유물 검이었다.

검은 거친 마나를 모두 받아내고, 마나로 만들어진 검날을 지나, 마물의 몸속에서 터져나갔다.

‘마나 방출.’

나는 허공을 향해 쏘아 내던 검기를 마물의 몸속으로 쏟아냈다.

정확하게 심장이 있는 방향으로.

그렇게 내 몸에 있는 마나를 모두 퍼붓자, 목걸이는 결국 박살이 났다.

동시에, 내가 퍼부은 검기가 마물 왕의 심장을 찢어버렸다.

쿠아아악!

마물 왕의 걸음이 멈추었다.

입이 벌어지고, 피가 쏟아졌다.

쿵.

그리고, 마물 왕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나는 휘청이는 몸을 다잡았다.

마나가 거의 고갈되어버리니, 나도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자세를 잡은 나는 무너져내린 마물 왕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마물 왕 앞에 성벽이 보였다.

내가 공격하는 사이, 마물 왕은 성벽 앞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성벽에는 마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성벽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 마물들도 많았지만, 태반이 성벽에서 솟아난 칼날에 꿰인 마물들이었다.

지상에서 마물들이 버글거렸다.

마물 왕에 깔린 마물들이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고.

하지만, 지금 성벽을 공격하는 마물들에게서는 체계나 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물들은 인간을 향해 내달릴 뿐이었다.

나는 주변을 확인하고,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벽 위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발레아가 보였다. 그 옆에 그녀를 지키고 있는 투레 백작도 보였고.

나는 피식 웃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전송 발레아.’

시야가 바뀌고, 다음 순간 나는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이런. 공격할 뻔했잖은가.”

옆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레 백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설마, 공간 이동 능력 같은 건가? 도대체 능력이 몇 개나 있는 건지.”

나를 보고 혀를 내두르던 그는 정색을 하고는 내와 발레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둘에게 정말 감사하네. 두 사람이 제국을, 차르마니아를 구해주었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성벽 위에 병사와 기사들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리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벽을 부수는 마물 왕은 쓰러졌고, 발레아가 성벽 전체를 이용해 마물이 올라오는 것을 홀로 막아 내고 있었다.

더구나 마물들이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으니, 다들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게 분명했다.

“황자님께서도 후회하고 계시네. 이번 싸움이 끝나면 제대로 상을 내리실 것이네. 이번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테니.”

지휘부 쪽을 보니, 귀족들과 참모들은 나를 외면하고 있었고, 2 황자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피식.

나는 투레 백작의 말과 지휘부의 모습을 보고, 웃고 말았다.

전부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대검을 난간에 걸쳐두고, 머릿속으로 유물 하나를 떠올렸다.

내 영지, 내 집무실에 있는 유물을.

“전송.”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시야가 다시 바뀌었다.

집무실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집무실로 전송된 것이다.

나는 바로 발레아를 불러들였다.

“소환 발레아.”

화악.

발레아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소환에 휘청이는 발레아.

발레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발레아가 할 일은 다 했어요. 이제 발레아는 영지를 돌봐주세요.”

내 말에 발레아가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알렉스도 저와 같이 영지에 있을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는 다시 가봐야 해요.”

“그럼, 일이 끝나고 돌아올 건가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니, 차마 끄덕일 수가 없었다.

돌아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곧 제국 수도로 찾아올 마왕과 싸우다 죽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마물 왕을 죽이느라 마나가 거의 고갈되어버렸다.

마왕은커녕 마물 왕도 이기지 못할 상황.

다행히,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제 죽을 때였다.

“돌아오지 않을 거면, 저도 같이 있게 해주세요.”

내가 대답을 못 하자, 발레아가 내게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저번 삶으로 충분했다.

나는 앞으로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미안해요.”

나는 발레아에게 사과하며, 제국 수도에 남겨놓은 대검을 떠올렸다.

“전송.”

말과 함께 발레아의 슬퍼 보이는 얼굴이 사라졌다.

대신, 제국 수도 밖의 평야가 보였다.

다시금 마물들이 진영을 갖추기 시작하는 평야.

그 평야의 지평선 위로 거대한 마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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