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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20화 (520/563)

제520화

제20편 차르마니아 방어전 (1)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화염과 번개들.

땅이 갈라지고, 거인과 용, 각종 환상이 달려오는 마물들에게 쏟아졌다.

모두 성벽에 모인 귀족들이 쏟아 보낸 능력들이었다.

대단한 광경이고 위력이었지만, 지면을 덮으며 달려오는 마물들에는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수십, 수백의 마물이 쓰러졌지만, 마물들이 쓰러진 자리는 뒤따라오는 마물들이 뒤덮어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대단하게 보이긴 했지만, 방금 공격은 지휘부가 생각한 수준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 공격인 모양이었다.

지휘부의 혼란은 꽤 떨어진 곳에 있는 나도 느낄 정도였다.

귀에 마나를 집중하니, 혼란스러운 지휘부의 상황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투레 백작이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고,

“어떻게 된 거야! 왜 이것밖에 안 돼?”

상황을 알아본 참모들이 다급한 얼굴로 대답했다.

“귀족들이 많이 안 보입니다.”

“안 보이다니 무슨 소리야. 포위망을 뚫고 도망갔다는 거야? 아니면 집에 숨어 있다는 소리야?!”

“확인해 보니, 몇몇 귀족이 가족과 함께 사라진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몇몇 귀족이 아니잖아!”

마물들이 수도를 포위한 덕분에 투레 백작과 지휘부는 귀족들이 도망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

도망가지 못하니, 전부 싸우러 나올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을 터.

거기다, 사라진 귀족들은 전부 수백 년을 내려온 전통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도망치리라고는 모두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

“크크큭. 역시 제국은 망조가 들어 있었어.”

2 황자는 옆에서 비웃는 얼굴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투레 백작이 버럭 화를 내며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찾아내! 마물에게 포위되었으니 수도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을 거다!”

물론, 의미 없는 지시였다.

마물들은 이제 성벽 바로 앞까지 몰려오고 있었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넓은 제국 수도에 숨어버린 귀족들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더구나, 수도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지휘부나 투레 백작은 알지 못했지만, 사라진 귀족들은 수도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라진 이들은 모두 ‘조직’의 핵심 인원들이었다.

저번 삶 동안 ‘낙원’이라 불리는 곳에서 보았던 귀족들.

사라진 귀족들은 모두 공간이동을 통해 낙원으로 도망친 것이다.

“마물의 기세가 그대로입니다! 타격이 너무 작았습니다!”

“마물들이 움직임이 이상하게 체계적입니다. 마치 군대가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진 보고에 지휘부의 혼란은 더 심해졌지만, 나는 팔짱을 끼고 마물들이 몰려오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직 내가 나설 때가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막아! 막지 못하면 차르마니아가, 제국이 멸망한다!”

투레 백작이 고함을 질러댔고, 병사와 기사들이 창백한 얼굴로 창과 검을 치켜들었다.

“투레 백작이 저런 고함을 지를 줄이야…….”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인지, 다른 삶에서 보았던 죽어도 고지식한 기사로 죽으려 하는 백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마왕은 낌새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물과 마물 왕만으로도 쉽게 수도는 정복당할 것처럼 보였으니까.

투레 백작이나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병사들도 기사들도 모두 같은 표정들이었다.

더구나, 마물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힘든 병사들은 이미 죽어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마물들이 성벽에 도착했다.

그리고,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몸에 빨판이 달린 마물은 벽에 붙어서 기어올랐고, 강한 힘이 있는 마물들은 손톱과 발톱을 성벽에 박아넣으며 위로 향했다.

더구나, 빠른 속도와 운동 신경을 자랑하는 마물들은 다른 마물들보다 먼저 평지처럼 벽을 타고 올랐다.

철로 된 문으로 겹겹이 막아놓은 성문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몸에 단단한 껍질을 두른 마물들과 사람보다 몇 배나 큰 거인들이 성문으로 몰려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벽 아래에 마물들이 모여들자, 앞에 모든 공격보다 더 두려운 장면이 보였다.

모여든 마물들이 벽에 붙어서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튼튼한 마물들이 아래를 받치고, 다른 마물들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며 성벽을 점점 덮어간 것이다.

마치 벽을 오르는 개미들처럼, 마물들은 성벽에 마물로 쌓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인간처럼, 아니 인간도 하지 못할 협동이었다.

물리적인 충격은 무시할 수 있는 마나 방벽을 가진 마물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

하지만 인간 같은, 아니 인간 이상의 협동이 필요한 행동이었다.

“막아! 마물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해!”

개별적으로 벽을 박차고 오른 마물들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기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고함은 의미가 없었다.

개별로 올라오는 마물들은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성벽을 덮으며 올라오는 저 마물 무리는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이 쏘는 화살과 창은 당연히 효과가 없었고, 미리 준비한 끓는 기름을 부어도 성벽을 덮으며 올라오는 마물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몇몇 기사들이 마물들을 막기 위해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기도 했지만, 그건 의미 없는 개죽음일 뿐이었다.

결국, 투레 백작과 암살자 노인 검호가 참지 못하고 움직이려 했다.

하기야, 지금 위로 올라오는 저 마물 탑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수도가 함락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못했다.

그 전에 다른 이가 마물 탑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마물들을 공격한 것이다.

퍼퍼퍼퍽!

성벽 전체에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대검보다 더 크고, 날카로운 칼날들이 성벽 전체를 뒤덮었다.

크아아아아악!

성벽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성벽을 오르던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빨판으로 벽을 기던 마물도, 손톱으로 성벽에 구멍을 내던 마물도, 성벽을 가득 덮으며 올라오던 마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물들은 몸에 피를 튀기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추락한 마물들의 몸에는 칼날에 찢긴 자국이 가득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추락한 마물 중에는 죽은 마물도 있었다.

그리고, 마물들이 추락한 성벽에는 아직도 튀어나온 칼날에 꿰인 채로 남아 있는 마물들도 있었다.

황당하게도 성벽에서 튀어나온 칼날들은 마나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황당한 눈으로 칼날이 솟구친 성벽을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발레아가 성벽에 가시를 만드는 것은 여러 번 보았지만, 이 정도 위력은 아니었었다.

사라진 삶에서 영지를 지키며 오랫동안 싸웠을 때도, 그녀의 영역은 이 정도 위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더구나, 내 옆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발레아는 아직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능력 하나를 더 깨웠을 뿐인데 이 정도 위력이라니.

이 정도라면, 발레아 혼자 마물 왕과 붙어 볼 만했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한참 동안 성벽을 지킬 수 있어 보였다.

나는 팔짱을 꼈던 팔을 내렸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더 지켜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당장은 발레아를 지킬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부탁할게요.”

내 말에 발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지만, 나는 그 표정을 못 본 척하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면서 본 성벽 아래의 광경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추락한 마물들과 깔린 마물들, 다친 마물들이 섞여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벌판에서 밀려오던 마물들은 잘 훈련된 군대처럼 다시 물러나기 시작했지만, 성벽 아래의 난장판은 바로 해결되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뛰어내린 것이었고.

예상치 못한 반격에 마물들의 진영이 붕괴한 상황.

마물들을 지휘하는 마물 왕이 있는 이상, 이런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웠다.

콰직!

나는 일어나고 있는 마물의 머리를 박살 내며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몇 번의 칼질로 주변에 있는 마물들을 정리했다.

생각 같았으면, 그냥 위로 솟구쳐서 마물들의 머리를 밟고 달려가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기습할 생각인데, 괜히 눈에 띄는 짓을 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조금 무리이려나.”

하지만, 마물 군단 전체가 혼란에 빠진 것도 아니었으니, 혼자 기습을 하기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발레아가 도와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발레아가 성벽을 지켜야 했으니.

그리고, 지금은 혼자 움직이는 게 좋았다. 경험치를 어떻게 받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앞으로 날리려 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묘한 감각이 걸렸다.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뭔가 있는 듯한 작은 감각.

전이었으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겠지만, 검을 휘두르는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알아차린 건가?”

내 뒤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모습과 마나, 기척을 감추는 검호, 저번 삶에서 내가 암살자 노인이라고 불렀던 검호였다.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검을 휘둘러 굴러오는 다른 마물의 몸을 반으로 잘라냈다.

“투레의 말이 사실이었군.”

노인은 휘둘러진 내 검을 보고, 휘파람을 불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을 들어, 내가 내려온 곳, 발레아가 서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이상하게 변한 성벽도 자네 옆에 있었던 영애가 한 일이지?”

“제 아내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니,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뜨끔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물 왕을 거의 혼자 쓰러뜨렸다는 말을 듣고, 계속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지.”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뭐, 위험에 대비하자는 생각도 있었고.”

노인은 마물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검호라는 실력자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의 기척 때문일 터였다.

그래서인지 정신을 차린 마물들은 노인을 눈치채지 못하고 내게만 다가왔다.

서걱.

“그런데 어디를 가는 건가? 이런 기회에 겨우 몇 마리를 잡을 생각은 아니겠지?”

내게 덤벼들다가 잘려 나가는 마물들을 보고 노인이 말했다.

“마물 왕을 잡을 생각입니다.”

내 말에 노인은 눈을 찡그렸다.

“마물 왕을? 성벽을 부수는 놈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아무리 봐도 저거 금방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는 내가 보는 방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방향을 제대로 짚어 주었다.

그가 보는 곳보다 조금 위로.

“아뇨. 제가 잡을 마물 왕은 그 마물 왕 위에 있는 마물입니다.”

그가 보고 있는 거대한 두더지 마물 위에 작은 인간형 마물이 서 있었다.

“그냥 평범한 인간형 마물 같은데.”

마물 왕을 타고 있는 마물이 평범한 마물이 아닐 거라는 것은 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형 마물에게서는 별다른 기백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육체적으로 강한 마물 왕이 아니라, 이 마물들을 전부 통솔하고 있는 마물 왕입니다. 저 마물 왕을 잡으면 이 마물들은 평범한(?) 마물로 돌아갈 겁니다.”

내 말에 노인은 지그시 나를 노려보았다.

“그건 어떻게 안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긴, 그렇지.”

노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내가 소란을 만들면 되는 건가?”

“네. 최대한 큰 소란을 부탁드립니다.”

급한 내가 여기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노인도 나를 도와줄지를 결정하기 위해 내게 말을 건 것이었고.

“좋아. 투레 놈이 부탁한 대로 널 도와주지. 대신 마물 왕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줘야 하네.”

“알겠습니다.”

직접 나선 게 아니라 투레 백작이 부탁한 것이었나?

역시 상황이 달라졌어도 투레 백작은 제대로 된 지휘관인 모양이었다.

내 대답을 듣고, 노인이 몸을 날렸다.

숨겨놓았던 기척을 모두 드러내며.

마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마물 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서둘러야 했다.

필요한 일이었지만, 노인과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지형이 다시 갖춰지기 전에, 마물들을 통솔하는 마물 왕이 알아차리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그리고, 마왕이 도착하기 전에 두 마물 왕을 잡아야 했다.

이번 삶의 마지막 목표는 저 마물 왕 둘의 경험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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