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6화
제16편 용사 (2)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마왕을 봉인한 용사와 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마왕을 봉인한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내 말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웃어버렸다.
“봉인이라…….”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알렉스, 아니 지금은 샤를 백작이었나? 어쨌건 멀리 남쪽에서도 자네의 활약에 대해서는 계속 듣고 있었지.”
그는 계속해서 내가 살아온 내용을 이야기했다.
“공작의 서자로 태어나, 서자답지 않은 실력을 갖춰서 수도로 유학을 가고, 아카데미에서 공주와 대공녀를 만나 왕위 계승 전에 뛰어들었고.”
“공주의 기사로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작위를 받고, 제국의 사절로 활약까지 했었지.”
반복을 이어온 길고 길었던 내 삶이었지만, 그 반복된 삶을 빼버리니 두 단락만으로 정리가 되었다.
하기야, 년 수로 치면 몇 년 안 되는 기간이었다.
“지금은 카를로스 왕국 제일의 기사이고, 마물 왕을 쓰러뜨렸다는 소문까지 도는 대전쟁 이후 용사에 제일 가까운 기사라고 소리도 들려왔고.”
역시, 그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 겉모습만이긴 했지만.
“대단한 기사이자, 기대되는 귀족의 등장이라, 손을 안 대고 물러나 주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을 몰랐군.”
손을 안 댔다고? 그럼 공작부인은?
“물러났다는 사람이 마리아 공작부인의 능력을 다시 되살렸습니까?”
“그거야, 강제로 능력을 잃은 정신 계열의 각성자가 흔하지 않았으니까. 능력을 되살리면 어떻게 될지 알아봐야 했지.”
“……그걸 말이라고.”
어이가 없었다.
이건, 사람을 실험용 모르모트로 보고 있다는 소리였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다니.
무슨 미친 과학자도 아니고.
마왕의 손에서 인류를 구해낸 용사가 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 카를로스 왕족들을 마구 각성시킨 것도 실험 때문이었습니까?”
“아……. 그건 조직 쪽 부탁이었어. 마왕의 부활에 대비하기 위해 카를로스 왕국을 소란스럽게 해 달라고 해서……. 조직도 나도 뜬금없이 공주가 능력을 각성해 내전에서 이길 줄을 생각도 못 했지.”
세상에…….
이건 또 조직의 부탁이었다고?
그는 결과를 얻기 위해 윤리를 버린 미친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냥 망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지친 얼굴처럼, 너무 오래 살아서 망가진 사람.
그에게서는 기억에서 보았던 모두를 위해 조직을 떠나 고난을 자처하던 용사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고, 조금은 남아 있던 용사에 대한 기대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말을 돌렸다.
“아니, 이런 이야기는 필요 없지. 마왕을 봉인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좋아, 알려주지,”
그는 로브와 봇짐을 벗어던지고, 철봉을 양손에 들었다.
봉인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싸울 준비를 하다니.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나를 이긴다면.”
역시.
이런 식으로 흘러갈 모양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세상은 뭘 하든지 결국 싸움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싸움에서 이기는 것하고, 정보를 알려주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저렇게 지치고, 망가진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려워 보였으니까.
“대신 내가 이기면,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듣도록 하지. 마왕의 봉인과 나와 용병단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어차피 곧 마왕이 봉인을 풀고 나올 시간이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을 말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
“좋아!”
갑자기 변한 내 말에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는 내 대답에 만족해했다.
설마, 내 말을 믿는 걸까?
아니면, 상대방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있는 유물이라도 가지고 있나?
뭐, 상관없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나는 가슴에서 신검을 꺼냈다.
다른 검들도 있었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으려면 신검을 쓰는 게 제일 좋았다.
내가 꺼낸 검을 보고,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셀린의 신검?”
“아는군.”
“가브릴의 검이라……. 셀린 교단이 가브릴의 검을 찾은 거군. 그러면, 자네가 당대의 성기사겠군.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나 했더니, 셀린의 성기사가 되어서 그렇게 된 거군.”
그는 내가 꺼내든 검을 보고, 착각을 이어가더니, 알아서 결론을 내버렸다.
나는 한순간에 셀린 교단이 비밀리에 키운 성기사가 되어버렸다.
그는 그리운 눈으로 내 검을 보더니, 철봉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가브릴의 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그는 나를 보며 한탄하듯이 말을 이었다.
“대전쟁이 끝나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지. 거기다 교단은 과거를 지워버렸고. 동화는 남았지만, 이제 용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용사들의 힘과 능력. 그들의 희생을. 용사들의 힘을 이었다는 귀족은 용사의 파편,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용사의 후손을 아무리 모아도 용사에 비할 바가 못 돼. 그런데 용사에 비등한 기사라고? 웃기는 소리지.”
그의 음성에 점점 감정이 실렸다.
한탄에서 분노로. 그 분노는 앞에 있는 내게 쏟아졌다.
“검호로 불리는 놈들이 달라붙어도 한 명의 용사에도 비할 수 없어. 그런 용사들이 도저히 죽일 수 없어 겨우 봉인했는데. 봉인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알려줘도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분노에 찬 목소리가 길 위에 울려 퍼졌다.
그 나름대로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동감해줄 수 없는 분노였다.
그 용사들이 남겨놓은 준비들이 나를 계속 죽여왔었기에.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승패의 결정은 어떻게 하지? 심판도 없는데?”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그건……. 당연히 한 명이 죽는 거지!”
말과 함께 철봉이 앞으로 쏘아져 왔다.
그리고, 몸이 무거워졌다.
‘중력이 늘어난 건가?’
저 철봉 유물의 능력인 듯했다.
“내가 알려주지, 용사가 무엇인지. 싸우지 못해서 피한 게 아니라는 것을!”
중력으로 굳어진 나를 향해 봉과 하나가 된 용사가 짓쳐 들어왔다.
자신만만한 목소리.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실력이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용사는 검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유물을 활용하는 능력도 달랐고, 귀족과 달리, 여러 개의 능력을 동시에 쓸 수 있었다.
웬만한 검호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거기다, 여러 가지 능력까지 동시에 사용하니, 나조차도 조금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신검을 쓰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아마, 그와 싸우다가 죽여버렸을 테지.
다행히 신검 덕에 싸움이 끝난 뒤에도 그를 죽이지 않았다.
신검이 배에 꽂힌 채로 박살 나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만, 용사는 아직 살아 있었다.
“내가 아직 안 죽은 건가?”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으니까.”
“아……. 그렇군. 내가 정신이 없었군. 그래도 이렇게 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용사는 살아 있었지만, 단지 살아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는 양다리가 잘려 나가고, 배가 갈라져 내장이 반 이상 뜯겨나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할 상황이었지만, 분명 신검을 쓰면 회복이 가능한 상처였다.
하지만, 용사는 회복되지 않았다.
신검을 뽑지 않은 것도 신검의 능력으로 그의 생명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검을 써도 겨우 현상 유지를 할 뿐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왜 안 죽었나 했더니, 이 검은 셀린의 신검이었지. 대전쟁 때 여러 번 도움을 받았었는데…….”
그는 배에 박힌 검에 손을 올렸다.
그는 검을 매만지며 계속 이야기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 현상 유지만으로도 대단한 거니까. 셀린의 신검이라도 어차피 인간의 생명력을 사용해서 몸을 되살리는 거니까. 남은 생명력이 거의 없는 나는 재생이 불가능하지.”
현상 유지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나는 정겹게 검을 쓰다듬는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살을 할 생각이었나?”
용사는 정말 죽음으로 승부를 가리려 했다.
자신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을 때도, 패색이 짙어졌을 때도 그는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검에서 손을 떼고, 나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내 말대로 혼쭐을 낼 생각이었다. 뭐, 나보다 강한 것을 알고는 생각이 바뀌었지만.”
진짜로 죽을 생각이었군.
“마왕의 봉인을 물어본다는 것은, 마왕과 싸울 생각이라는 것일 테고. 뒷일을 맡길 사람이 나왔으니, 지친 용사는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거지.”
내가 본 대로였다. 용사는 예전에 망가져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희쭉 웃었다.
“날씨가 좋네.”
웃는 얼굴로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마왕이 봉인을 깨고 나오는 것을 대비했다. 조직을 세우고, 사람들을 각성시키면서 그가 원하는 일을 해왔지.”
“그?”
“마왕을 봉인한 용사. 우리의 대장인 노아 진. 그가 부탁했었어. 마왕을 봉인하러 떠나며 남은 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부탁했지. 언젠가 봉인을 풀게 될 마왕을 대비해 달라고.”
드디어, 용사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노아 진이라, 이 세계에서 처음 듣는 특이한 이름이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어.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어. 조직은 변하고, 나는 지쳤지. 아무리 사람을 각성시켜도 반쪽짜리 귀족만 나왔고, 그가 원하는 능력자는 보이지도 않았어.”
그의 넋두리는 거기서 끝났다.
그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봉인하는 법은 알려줄 수 없어. 나도 모르는 거거든. 봉인은 노아 진, 단지 그의 능력이야.”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거짓말에 속았다는 건가?
“처음 그가 마왕을 봉인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그런 표정이었지.”
“하지만, 그와 같이 지내면서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마왕을 탑으로 유인하는 것까지 성공하니, 결국 모두 그를 믿게 되었어. 그래서 나도 그의 말을 믿고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온 건데…….”
용사의 얼굴에는 실망과 회한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용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다.
신검의 능력으로도 더는 버티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어. 죽을 곳으로 생각했는데도 그만 따라가면 신기하게 살아나기도 했고, 마왕을 봉인하는 능력을 얻으려면 능력을 더 올려야 한다고 강한 마물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어라? 이상하게도 그의 말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말만 하면서 죽어도 자기 능력은 안 알려줬지.”
이제 그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회상을 멈추지 않았다.
죽을 때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는데. 아마도 용사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모양이었다.
용사의 숨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숨을 멈췄다.
나는 멍하니 죽은 용사를 바라보았다.
검을 뽑을 생각도 못 했다.
그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사자 회귀가 도대체 뭔데…….”
죽기 전 용사가 남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