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3화
제13편 올빼미 눈 용병단 (1)
“저도 각성 때 외부에서 온 사람이 있었어요. 로브로 몸을 꽁꽁 감은 남자였는데, 죽은 아버지가 함부로 대하지 못했어요.”
발레아도 그 ‘현자’가 능력을 발현시켰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발레아는 그녀의 아버지인 남작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능력만으로 따지면, 제국의 검호 이상, 대륙에서 손에 꼽을 강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사자 회귀’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져서 그렇지, 발레아의 능력을 의심했다면, 예전에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
“그때,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용병처럼 보이는 이들이었는데,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는 그 뒤에 보지 못했지만, 용병 같은 이들은 그 뒤에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영지를 방문했었어요.”
용병이라……. 그녀의 말에 언뜻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알렉스 처음 저희 영지에 왔을 때도 그들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 안 나세요?”
확실히 기억이 났다.
남작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막 저택을 나서던 이들이 있었다.
용병 차림의 남녀였는데, 남자 쪽이 떠나면서 내게 한마디 말을 남겼었다.
‘빨리 이 영지를 떠나는 게 좋다고 했었던가.’
그의 말대로 남작의 영지에서 꽤 고생했었다. 한 번 죽기도 했었고.
생각해 보면, 내게 도움을 주려 했던 이들이었다.
“그 뒤에 동생이 영주 대리를 하고 있을 때 강도와 용병들이 영지를 공격했었잖아요. 그때, 그 강도와 용병들을 꾄 게 그 두 사람이었어요.”
아, 최소.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발레아의 가족이 사는 영지를 먹어 치우려 했으니, 최악의 악당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서, 계속 두 사람을 찾아보고 있었어요. 레스티 씨에게도 부탁했고. 그래서 얼마 전에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찾아가려고 했는데…….”
쯧쯧.
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려서…….
나는 예전에 까먹은 일이었는데, 발레아는 아직도 잊지 않았었다. 거기다, 여태 두 사람을 추적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현자’를 추적할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디 있죠?”
“……지금은 이피로스 왕국의 수도에서 용병단을 이끌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피로스 왕국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피로스 왕국이라면, ‘전송’도 불가능하니 서둘러야 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발레아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혼자 가실 건가요?”
나는 다른 때와 비슷한 말로 그녀에게 부탁했다.
“필요하면 부를게요. 나 대신 영지를 부탁해요.”
똑같은 말이었지만, 발레아의 대답은 전과 조금 달랐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발레아는 내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계속…….”
집무실을 나서면서도 ‘계속’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녀의 ‘계속’은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마치,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자신에게 전하는 듯한 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현자’를 찾는 데 집중해야 했다. 실마리를 찾았는데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 * *
이피로스 왕국의 수도.
내전에 가까운 싸움 끝에 새로운 왕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왕국과 수도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몸을 사렸고, 경기도 얼어붙었지만, 이런 때에 더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용병들이었다.
마물들의 난동과 각국의 내전으로 용병들의 몸값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물론, 힘든 시기이기에 용병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들이 모두 실력 있는 용병들이 될 리가 없었고, 실력 있는 용병들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얼마 전에 이피로스의 수도에 자리를 잡은 용병단 ‘올빼미 눈’도 몸값이 오른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들 실력이 좋고, 이런 대목에도 일을 가려 받으니, 몸값이 치솟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일을 가려 받는다는 이야기는, 일을 맡기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지금 용병단 1층에서 소란을 떠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다.
“왜 안된다는 건가! 계약금을 두 배를 준다고 했잖은가! 잘하면 귀족의 눈에 드는 것도 가능한 일이란 말일세!”
중년 남자가 신청을 받는 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을 향해 계속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영지는 저희가 활동하기로 한 곳과 거리가 있어서요. 더구나, 그 정도 인원은 남아 있지도 않아서요.”
목소리만 들으면, 여성은 그의 말에 정상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중한 사과까지 하는 것을 보면, 거친 용병치고는 고객 접대를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상대는 더 화가 난 모양이었다.
중년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함을 질렀다.
“감히! 자작님의 지시를 받고 온 나를 무시하다니! 내가 자작님께 말해서 너희들이 경을 치게 할 것이다!”
남자는 벌겋게 달군 얼굴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살펴 가세요.”
여자는 떠나는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침 2층에서 내려오던 남자가 그 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고객 상대?”
여자는 단도를 집어넣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손님을 내쫓는 게 아니고?”
“어차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요. 조건이 안 맞는 사람이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내보내다니.
“그래도, 고객인데, 잘 상대해야지.”
“잘 상대했잖아요. 친절하게 사과도 했고.”
여자의 말에 단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손님 얼굴도 보지 않고, 단도로 손톱을 다듬으면서 건성으로 하는 말이 참도 친절하겠다.”
단장의 말에 여자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뭔가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거기다 안 되는 이유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다 사실이잖아요. 저희 활동 영역도 아니고, 숫자도 안 맞는데요.”
“아니,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을 세어봐…….”
계단을 내려와 앞에 털썩 앉은 단장의 말에 여자는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하나, 둘, 셋, 넷……. 단장까지 10명이네요.”
“저쪽에서 원한 것은 8명이었잖아요.”
“그러니까요. 출발 조 셋에, 귀환 인원 셋인데, 여덟 명이 어떻게 나와요.”
단장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은 그걸 모르잖아.”
“그걸 말할 수도 없잖아요.”
“그럼, 다른 이유를 대야지.”
“그렇군. 잘못했네요.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여자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단장에게 사과했다.
그녀의 사과에 단장은 우울한 얼굴로 술을 따랐다.
“1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미안하다. 내가 너를 망쳤나 보다.”
오히려 이리저리 튀는 자신을 막는 역할을 하곤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그게 단장님 탓이겠어요. 일을 망친 조직 탓이겠죠. 아니면, 코빼기도 안 보이는 우리 대장 탓이던가.”
그녀의 말에 곳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들 여자와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이었다.
단장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수백 년간 잘 돌아가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엉망이 될 줄이야.
사실, 이렇게 된 것은 카를로스 왕국에 벌려놓은 일들이 엉클어졌기 때문이었다.
내전으로 왕자들이 죽고, 그분이 심어놓은 각성자들도 죽거나, 관찰할 수 없게 되었고.
더구나, 조직도 철수해버려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어 결국, 용병단은 카를로스 왕국을 빠져나와야 했다.
재정비 뒤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재정비는커녕, 조직과의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마물들이 날뛰고, 조직도 제국도 엉망이 되고, 그분의 연락도 뜸해지니, 사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 용병단이 ‘조직’을 만든 용사의 직속 용병단이라지만, 결국, 조직의 도움으로 만든 용병단이었다.
용사의 능력으로 두 가지 이상의 능력을 얻고, 직접 용사의 일을 돕는다지만, 어디까지나 이 용병단의 단원들은 조직을 뿌리로 두고 있었다.
더구나, 이 일을 하면서는 세상에도, 조직에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다.
나중에 ‘조직’에 돌아가게 되어 제국의 한 자리를 차지할 기대들을 했었겠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돌아갈 곳이나 멀쩡하게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방금 들어온 소식이라면 다들 기운을 차릴 게 분명했다.
“방금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그분을 뵐 수 있을 테니, 다들 힘내도록.”
“정말입니까?”
“어, 정말 오신대요?”
모두 놀란 얼굴로 단장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에 눈을 가져다 댔고.
단장은 여자를 손으로 밀면서, 다시 말했다.
“지금, 이 왕국으로 오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다행이네요.”
모두 표정이 밝아지고,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온 새로운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올빼미의 눈’ 용병단입니다.”
그녀의 말에 안으로 들어온 젊은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요.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다른 용병단과 달리 조건들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들어드릴게요.”
옆에 앉아 있던 단장은 젊은 손님을 살펴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깨끗하고 정갈한 옷과 아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호감 어린 얼굴.
거기다, 어린 티가 아직 남아 있는 모습까지.
젊은 손님은 딱 요하나 취향이었다.
“마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사는 아닌 것 같고……. 종자이려나.”
종자가 가져온 일감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분이 곧 오시니, 큰일은 맡지는 못하더라도, 가벼운 일을 받아 기분 전환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요하나의 말에 손님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사람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사람 찾기요? 그건 좀 어려운데…….”
요하나는 손님의 말에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사람 찾기라니.
내전이 막 지난 왕국에서 없어진 사람을 찾기란 바닷가에서 바늘 찾기에 가까웠다.
더구나, 살아 있을 확률도 낫고.
요하나는 물론이고, 단장도 고개를 저었지만, 젊은 손님은 개의치 않았다.
“여러분이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네?”
“여러분보다 더 잘 찾아줄 사람은 없거든요.”
그는 확신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자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을 강제로 각성시키는 용사. 혹시 이름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콰당, 촤아아아앙!
한순간에 의자들이 뒤로 넘어가고 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기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마나가 가득 메워져 스파크가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계속 미소를 짓던 여성도 굳은 얼굴로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넌 누구지?”
단장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말을 하는 단장의 표정이 이상했다. 자신이 왜 뒤로 물러섰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역시 잘 찾아왔군요. 저는 알렉스 디 샤를, 샤를 백작입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가슴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환하게 빛나는 신검.
신검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검게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