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12화 (512/563)

제512화

제12편 현자 (2)

수백 년을 살면서 조직을 만들고, 대륙을 여행하며 사람들의 능력을 일깨웠던 현자라 불렸던 용사.

마왕을 봉인한 용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 용사를 찾아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를 만났다는 사람들과 그가 만든 조직. 그리고, 그가 남긴 유물에 담긴 기억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 찾아낸 유물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가 만들었던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가까운 일.

그를 만났었다는 사람들도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우선 지금으로서는 그를 보았던 이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먼저, 공간 이동이 가능한 카를로스 왕국 수도로 향했다.

교단의 공간 이동진으로 왕국 수도로 이동한 뒤에 나는 왕궁으로 향했다.

여왕이나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왕궁의 구석진 객실에서 이 왕궁의 집사장을 만났다.

“무슨 일로 저를 따로 만나겠다고 하신 거죠?”

그의 질문에 나는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죽은 두 왕자의 각성식 때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두 왕자와 만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 그건…….”

다행히 노인은 뭔가 아는 것 같았다. 단지, 바로 대답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비밀입니까?”

왕가의 비밀인가?

그럼 여왕이 시켰다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따로 협박해야 할까?

바로 집사장의 입을 열게 할 여러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백작님이라면 아셔도 되겠군요.”

다행이었다.

하지만, 집사장은 왜 나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보며 비밀을 이야기해준다고 하는 거지?

“백작님은 남이 아니시니……. 그건 왕실 종친분들의 지시였습니다. 왕께서도 허락하셨고요. 왕가의 전통인 듯했습니다.”

“저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하니 왕실 종친분들에게 물어보시면 될 듯합니다.”

집사장은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카를로스 왕실의 종친이라…….

다행히 종친이라면 나도 아는 사람이 있었다.

세우타 명예 공작.

그는 강력한 기사였다가 마물 왕으로 인해 능력을 잃어버린 왕실의 종친이었고.

아카데미에서 나에게 따로 검을 알려주고, 왕실 기사단장을 소개해준 왕실 기사단의 고문이었다.

나는 집사장과 헤어진 뒤, 바로 수도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노인은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오랜만이군. 알렉스 학생, 아니 지금은 샤를 백작님이신가.”

그는 전보다 더 쇠약해 보였다.

이제는 움직이는 데도 부축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렇게 쇠약한 노인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 전 집사장에게 한 질문을 노인에게 다시 했다.

“죽은 두 왕자의 각성식 때 왕실 종친들이 외부인을 불러들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부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내 말에 반가워하던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걸 누구에게 들었지?”

노인의 말에 거짓말로 얼버무릴까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왕가의 비밀을 캐내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좋았다.

“마왕을 봉인한 용사를 조사하다 보니, 귀족의 숨겨진 능력을 일깨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왕자와 공국의 왕과 왕세자도 그에게 능력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내 말에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 알고 있구먼. 하긴 지금까지 비밀이 지켜진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노인은 허탈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다 알면서 뭘 물어본다는 건가.”

“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를 찾아야 하니까요.”

내 말에 생각에 잠겼던 노인이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글쎄, 그 이상은 우리도 아는 것은 많지 않네. 어디 보자……. 그의 일족에게는 오래, 아니 왕국이 세워질 때부터 도움을 받아왔네.”

역시, 여기서도 그 용사는 본인이 아니라 후예라고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백 년 동안 살아온 당사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그리고, 이어진 노인의 말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대에 한 명은 무조건 왕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알고 있나?”

그 용사를 찾는다는데, 노인은 계속 왕가의 역사를 꺼내 놓았다.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왕가의 계보는 예전에 끊어졌을 것일세. 다른 나라처럼 결국, 엉뚱한 능력을 갖춘 왕이 왕으로 세워졌겠지.”

“설마, 그의 능력으로 이 왕국은 계속 ‘마나 감응력’을 가진 왕이 나왔다는 겁니까?”

“그렇지. 수백 년간 그렇게 잘 내려왔었는데……. 이번 대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맙소사, 이 왕국의 왕은 우연이나 각성자의 재능이 아니라 그 용사의 손에 결정되었다는 소리였다.

수백 년간 왕을 결정하는 것을 정체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맡겼다니, 이 왕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네.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고 있으니까.”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수백 년간 안전하게 정통성을 이어왔으니, 그 용사를 믿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래서 여왕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걸세. 이제 그 일족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여왕도 자네도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왕의 능력을 깨워버렸으니……. 앞으로는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역시, 이들도 그와 손을 끊을 생각인 듯했다.

“다음 대 왕은 ‘왕의 능력’을 가지지 않은 왕이 세워질지도 모르지만……. 자네가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

좀 전에 집사장도 그러더니, 세우타 공작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아예 나를 왕실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한 말.

이제는 대충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오해였으니까.

아쉽게도 세우타 공작도 그 용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왕족의 각성식 때도 그가 알아서 찾아왔고, 왕실 종친들은 그의 연락처도 사는 곳도 알지 못했다.

단지 알고 있는 것은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신표, 유물밖에 없었다.

용사의 새로운 유물.

‘유물을 조사해야 하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유물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용사의 정보 대신 왕가의 비밀을 듣게 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노인에게 말했다.

“여왕도, 그레시아 공작도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테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말을 마친 뒤,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텐데…….

친한 사이라서 그런지, 괜한 말을 해 버린 듯했다.

단단히 다짐했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었다.

노인의 집을 나온 뒤, 나는 여왕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수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는 현자’, 용사가 만났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차례로 다시 만났다.

나는 동쪽으로 말을 달려, 누이의 어머니이자 그레시아 공작의 두 번째 부인, 그녀의 본가로 향했다.

그녀는 나를 죽이려다가, 공작에게 능력을 잃고 쫓겨난 뒤에 본가인 영지에서 능력을 되찾아 그 영지민을 전부 세뇌했던 사람이었고.

내가 직접 죽인 어머니였다.

아쉽게도 며칠 동안 말을 달려, 도착한 영지에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

영지는 폐허로 변했고,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지나가던 용감한 행상에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자작은 그녀가 죽은 뒤, 쇠약해져서 죽게 되었고, 예상대로 능력을 잃었던 그의 아들은 바로 영지를 떠난 모양이었다.

영주의 딸에게 세뇌되어 가족과 친척을 죽였던 영지민들도 영주가 죽자 모두 영지를 떠나고, 결국 영지는 유령이 나오는 버려진 분지가 되어버린 듯했다.

시간 낭비가 되어버렸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나는 걸음을 돌려, 이번에는 그레시아 공작령에 들렸다.

시몬 형과 형수가 갑자기 방문한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담담한 얼굴로 두 사람의 환대를 받아들였다.

내 힘으로 얻은 영지와 작위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전처럼 시몬에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에게 뭔가 기대할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으니, 이제는 평범하게 그를 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 파란만장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던 형수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내가 자란 영지로 온 것은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나이 든 시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받아냈던 시녀들.

그녀들을 만나려 한 것은 몇 번이나 보았던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 때문이었다.

삶을 반복하면서 나에 대해 뭔가 말하려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남과 다른 내 능력.

이세계물의 주인공도 아니고, 내가 남과 다르다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일 터.

그래서 나는 내 능력도 그 ‘현자’가 일깨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각성식 때는 아무도 보지 못했고, 내가 가진 제일 중요한 능력은 태어나자마자 가지고 있었으니, 태어났을 때나 임신했을 때, 그가 내 능력을 일깨운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

사실,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고, 이곳 그레시아 영지를 지나가는 김에 시녀들에게 물어보려 한 것이었다.

“아뇨. 외부에서 오신 분은 없었는데요.”

“아만다 님, 아니, 공작부인께서 최대한 사람을 안 만나고 싶어 하셔서 외부인은커녕 다른 고용인들도 거의 뵙지를 못했어요.”

하긴, 태어나자마자 계속 죽어 나갔던 나였다.

임신했을 때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니, 외부인이 나를 볼 리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가 내 능력에 연관이 되어있다면,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능력자들 때문에 고생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만든 조직 때문에 죽은 것도 여러 번이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그를 만난 뒤에,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것은 무리였다.

묶어놓고 즐겁게 고문을 하는 거면 모를까.

그런 상황에서 그가 능력도 만들어주었다면,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덕분에 내 능력에 대해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얻은 것은 아니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편한 마음으로 영지를 떠났다.

나는 바로 공국으로 향했다.

공국왕을 만나 현자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다.

아쉽게도 공국왕에게서는 원하는 답은 듣지 못했다.

전에 왕세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내 영지로 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영지에 돌아온 뒤에 나는 레스티를 불러, ‘현자’를 찾게 했다.

저번 삶에는 그에게 말해 셀린의 신도들을 피하도록 했지만, 이번에는 마왕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일 뿐이었다.

레스티에게 부탁도 했고, 이제 교단에게도 부탁을 하고.

“그리고, 조직원들을 만나보면 되는 걸까…….”

그렇게 하면, 이번 삶에서 할 일은 다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번 삶에서 찾으리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 삶에서 정보를 최대한 얻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삶에서 한 단계 더 나가고, 그러다 보면, 언제가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조금 뒤에는 마왕이 나와 세상을 다시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되겠지만, 그건 버티면 되는 일이었고…….

“발레아를 불러야겠네.”

나는 집무실에 앉아, 발레아를 소환했다.

내 앞에 발레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눈을 껌벅이다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와요. 수고했어요.”

내 말을 듣고도 그녀는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의아해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국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도 않으시네요.”

아, 그렇군.

실수를 한 듯했다.

“그렇네요. 제국은 어떻게 되었나요? 2 황자가 수도를 장악했죠?”

내 말에 발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 2 황자가 수도를 장악했어요. 황제가 마물 왕을 끌고 수도로 오고 있고요.”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도 더 발레아가 잘해준 모양이었다.

나는 만족했지만, 발레아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물었다.

“사실 관심도 없으시잖아요. 무슨 일인지, 내가 알면 안 되나요?”

표가 많이 났나…….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그녀가 알아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발레아의 말에 나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어서 나는 ‘현자’라는 용사를 찾고 있어요.”

내 말에 발레아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보다니?

그런 모습은 내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잠시 뒤, 고개를 내린 발레아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제가 알고 있어요. 아니, 그와 같이 왔던 사람을 알고 있어요. 지금 어디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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