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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07화 (507/563)

제507화

제7편 계획대로

크아아아앙!

마왕의 통제를 거부한 마물들이 성 아래를 가득 메우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성문 역할을 하지 않게 된 성문을 부수기 위해 마물들이 달려들었고,

조금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는 마물들은 성벽을 기어올랐다.

도시를 둘러싼 외성을 지키는 인간들도 치열하게 마물들을 막아 냈다.

“최대한 광역으로 능력을 흩뿌려! 하나하나 죽이는 데 집중하지 마!”

귀족들의 원거리 능력들이 성벽 아래의 마물들에게 쏟아지고, 기름과 돌덩어리, 발리스타가 성벽을 오르는 마물들에게 쏟아졌다.

“어차피, 성벽 아래로 떨구는 데는 마물이라도 평범한 돌덩이면 충분해! 전부 쏟아부어, 충격을 주는 거다!”

귀족들의 원거리 능력과 달리 돌과 기름, 발리스타는 마물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성벽 아래로 떨구기에는 충분했다.

기사들도 창을 들고, 성벽 위로 올라오는 마물들을 밀어냈다.

인간들은 마물들을 죽이기보다, 성벽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주력했다.

성벽 아래에 마물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나중에 가서는 더 힘들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성벽 위로 마물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전투는 격렬했다.

벌판에 가득한 마물들이 성벽을 향해 밀려왔고, 그 마물들 위로 각종 능력이 쏟아졌다.

성벽도 반 이상 마물들에 뒤덮여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흰개미에 뒤덮인 개미집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개미들은 아직 성벽 위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사이.

마왕이 도착했다.

마왕의 모습은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입고 있던 옷이 달라지고, 새로운 검을 들었다는 정도일까.

그의 표정도 지루해 보이는 눈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재미있군.”

마왕은 숲을 나온 뒤, 멀리 마물에 뒤덮인 성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벽 위의 하늘을 보는 그의 눈은 전과 달리 작은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역시, 내 앞에서 도망쳤던 인간이 저기 있었군.”

마왕의 눈에 보이는 성벽 위 하늘에는 처음 인간과 싸운 전투에서 보았던 마나가 다시 보이고 있었다.

자신 앞에서 도망친 인간을 찾기 위해 다시 활성화한 능력, ‘마나 감응력’ 덕분이었다.

마왕이 조종하는 마물들은 저 마나를 볼 수 없어서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마왕은 처음 만난 상대가 생각보다 재미가 있자, 다른 인간들과의 싸움을 기대했었다.

어차피 멸망시킬 인간들이었지만, 마왕은 그 인간들이 자신에게 허무하게 쓸려버리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마왕은 오래전 용사라는 놈에게 봉인이라는 뒤통수를 맞았을 때도 분노만큼이나 감탄이 컸었다.

역시, 인간은 자신이 복수할 만한 상대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겪은 그 외로움과 분노, 슬픔과 고통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봉인을 당하기 전에 제국을 무너뜨리면서 조금 갚아 주긴 했지만, 아직 부족했다.

하지만, 봉인을 깨고 나온 세상은 그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자신 앞에서 도망친 인간을 보고, 생겨난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자신이 박살 냈던 제국은 다른 이름으로 대륙을 지배하고 있었고, 멸망에 가깝게 죽였던 인간들도 다시 수를 회복해서 대륙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제국과 대륙의 인간은 수백 년 전 그를 막아섰던 인간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대륙은 용사들의 후손이라는 반쪽짜리 능력자놈들의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대륙을 지배하고 있었고,

종교도 신도 사라지고, 이상한 교단이라는 가짜 종교만 성행하고 있었다.

새로운 유물도 보이지 않고, 마나를 쓰는 기사들도 약해져 있었다.

차라리, 첫 전투에서 죽었던 반쪽짜리 용사들이 제일 나았을 정도였다.

이래서야 그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세운 제국의 수도라는 곳을 무너뜨릴 때도, 북부 산맥 사이에 있는 공국이라는 곳을 지나 올 때도 마물들만 보냈다.

그래서 지금, 전에 보았던 마나를 보게 되자, 마왕은 오랜만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생각지도 못한 능력들과 실력에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인간들이 마왕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용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그 인간이 보여준 광경도 다른 인간들과 달리 마왕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저 인간은 봉인을 푼 뒤에 처음으로 자신의 마물에 대한 통제를 깨트렸다.

진영은커녕, 이성을 잃고 성에 매달리는 마물들을 보고, 마왕은 다시 ‘재미있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도망치기 전에 내가 휘두른 검을 보고 만든 전략인 건가.”

확실히 저런 난전이면, 그때처럼 큰 공격을 했다가는 인간 이상으로 마물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될 터였다.

물론,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마왕인 자신에게는 의미 없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무시할 수는 없겠지.”

마왕은 언제나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실 마왕은 요새 때와 같은 식으로 공격할 생각은 아니었다.

전술과 전략을 모르는 게 아니고,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것만이 아닌데, 똑같은 수를 또 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요새 때의 공격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것도 재미겠지.”

준비한 수가 박살 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터였다.

마왕은 검을 들고,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파파팟.

먼지도 나지 않는 평범한 달리기였다. 속도도 빨라 보이지 않는.

하지만, 마왕은 순식간에 벌판을 가로질러, 성벽 근처에 도착했다.

수많은 마물이 앞을 가로막은 상황.

마왕은 마물들을 움직여 길을 만들지 않고, 그냥 발을 굴러 몸을 띄웠다.

퍽.

마왕은 앞을 막는 마물의 머리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밟은 마물 머리가 그대로 터져나갔다.

마왕은 쓰러지는 마물을 뒤로하고, 계속 나아갔다.

마물의 머리와 어깨, 등과 얼굴을 밟으며!

퍽! 퍽! 펑! 펑!

그가 밟은 마물들의 몸이 계속 터져나갔다.

무슨 이유건 마왕의 수하들은 마왕의 명령을 어겼다.

인간이든 마물이든, 마왕은 자신의 명령을 어긴 자를 그냥 놔둘 생각이 없었다.

마왕은 수하들을 죽이며, 성벽 앞으로 다가왔고, 거대한 고릴라를 닮은 마물의 등을 밟고 위로 솟구쳤다.

쾅!

고릴라를 닮은 마물은 마왕이 밟는 순간, 온몸이 터져나갔다.

위로 솟구치며 마왕은 검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끼이이익.

마왕의 손에 들린 검은 마왕의 마나를 받아들이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역시, 이 검도 그의 마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쟁 신의 검’은 어찌 되었건 그의 힘을 잘 버텨주었었는데…….

마왕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검은 그럭저럭 쓸 만한 검이었다.

적어도 공격 한 번에 박살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검이 눈부시게 빛을 뿌리고, 빛나는 검을 든 마왕은 성벽 위로 치솟았다.

마왕은 허공에 뜬 채로 성벽 위를 내려다보았다.

성벽 위에 인간들이 있었다.

기사들과 병사들. 귀족들까지.

그리고, 마왕은 자신의 검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묘하게 자신과 비슷한 눈을 한 어린 인간.

그는 지팡이를 든 여성 옆에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왕은 성벽에 몰려 있는 마물들을 개의치 않고 공격하려 하는 자신을 보고도 상대가 놀란 표정을 짓지 않자 조금 의문을 느꼈지만.

상관없었다.

어찌 되었건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부우우우웅!

마왕은 성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세상을 가득 메울 빛이 성벽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빛과 함께 폭음이 세상을 뒤덮었다.

화아아악!

그리고, 반투명한 벽이 성벽을 감쌌다.

방어막이 성벽을 감쌌지만, 빛과 열기는 방어막을 넘어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마나로 눈을 보호할 수 없었던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고, 방어막과 가까웠던 병사들은 손발에 약한 화상을 입었다.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마왕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 정도 피해라면, 피해도 아니었다.

사실 제일 고통스러워한 사람은 병사들이 아니라, 지팡이를 치켜들고 있는 대공녀였다.

“으윽.”

대공녀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휘청거렸다.

옆에 있던 내가 바로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입술을 깨문 대공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마왕의 공격을 막은 방어막은 대공녀가 신의 성물인 지팡이로 펼친 것이었다.

성물의 힘으로 막은 것이긴 했지만, 마나를 빌려준 대공녀도 방어막이 막아 낸 힘의 여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말,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혼자였다면 막아 내지 못했을 거예요.”

역시 마왕이었다.

신의 지팡이, 성물로도 마왕의 공격을 막아 내기는 어려웠다.

대공녀의 말대로 그녀 혼자였다면, 방어막이 박살 났을 게 분명했다.

내 손에 들린 검. ‘전쟁 신의 검’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지금 ‘전쟁 신의 검’이 만들어 내는 마나가 대공녀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신의 지팡이가 만들어 낸 방어막이 마왕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끝없이 솟아나는 검의 마나 덕분이었다.

결국, 성물 두 개가 힘을 합쳐서야, 마왕의 공격을 막아 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랐다.

마왕의 공격이 끝난 지금도 방어막이 멀쩡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어막이 마왕의 공격을 버텨낸 것이다.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요새에서 확인한 마왕의 공격은 대공녀의 지팡이와 내 검의 힘을 더하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 보였고.

실제로 버텨낸 것이다.

덕분에 마왕의 공격은 사람들의 눈을 잠깐 멀게 하고, 화상을 입게 했지만, 성벽을 조금도 망가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성벽에 달려들었던 마물들은 달랐다.

빛이 사라진 뒤 성벽에는 더 이상 마물들이 매달려 있지 않았다.

모두 마왕의 공격에 쓸려나간 것이다.

그리고, 성벽 아래에 가득했던 마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성벽 아래에는 마물의 시체가 가득했다.

아니, 성벽 아래, 마왕이 공격했던 근처에는 갈가리 찢겨나간 시체의 파편과 피 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의 마물들은 괜찮아 보였지만, 성벽 아래에 모여들었던 마물 태반이 마왕의 공격에 죽어버린 것이다.

공격 한 번에 수천 마리의 마물이 죽어버리다니.

내가 만든 광경이었지만, 마왕의 무시무시한 힘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럼,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했다.

나는 부축하던 대공녀를 놓아주었다.

“괜찮아요. 버틸 수 있어요.”

대공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잠시 그녀를 보고는 뒤를 향해 소리쳤다.

“여왕님! 뒤를 부탁합니다!”

“네!”

뒤에서 여왕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성벽 아래, 피 웅덩이 위에 마왕이 홀로 서 있었다.

솔직히 조금 겁이 났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여왕과 내 영지군이 나머지 마물들을 다 정리할 때까지 마왕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마물들을 정리하고, 마왕이 혼자 남게 되면, 이제 마지막 싸움이 남게 되는 것이다.

내 영지, 내 사람들, 내가 준비한 모든 것과 마왕 한 명과의 싸움.

그것을 위해 나는 이제껏 준비한 것이었다.

나는 마왕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작게 속삭였다.

“발레아, 부탁해!”

[네.]

바람 사이로 발레아의 대답이 들려왔고, 나는 검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마왕이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도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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