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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05화 (505/563)

제505화

제5편 선공

저번 삶에서 마왕을 만났을 때는 마왕에 대해 준비하지 못했었다.

주변과의 연락은 전부 끊어져 있었고, 영지는 마물에게 오랫동안 고통받았었다.

내가 돌아온 뒤에는 전보다 마물을 잘 막아 내기는 했지만, 그건 단지 하루하루 더 버텨낸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물들을 조종하던 마물 왕도 죽이고, 왕국으로 넘어온 마물 수도 최대한 줄여놓았다.

사람들도 모으고, 미리 다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어 전략도 짜놓았다.

거기다, 내가 직접 제국으로 넘어가 미리 마왕을 상대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준비해 놓은 것을 떠올리자니, 또다시 준비를 한다고 해도 이렇게 준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물론, 제국과 대륙의 사정은 저번 삶과 달라지지 않았다.

제국은 멸망했고, 공국도 연락이 끊어졌다.

공국을 떠나며 따로 놔두었던 유물이 부서졌는지, ‘전송’도 되지 않았다.

멀리 북쪽 하늘에 마왕의 마나가 보이는 것을 보니, 공국도 멸망했을 터였다.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여왕은 내 옆에 와 있지만, 수도도 다른 영지와도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마물이 군단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상대하기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다른 영지도, 나라도, 마물 군단이 아닌 평범한(?) 마물의 웨이브를 막지 못했다.

저번 삶보다 훨씬 오래 버텼지만, 결국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내 영지만으로 마왕과 싸워야 했다.

성벽에 올라, 북쪽 하늘을 보고 있는 내 옆으로 여왕이 다가왔다.

그녀는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을 보더니,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하늘에 보이는 마나가 마왕의 마나인가요?”

내가 가진 ‘마나 감응력’은 원래 왕족들이 가진 능력이었다.

당연히 여왕도 마나를 볼 수 있었다.

북쪽 하늘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는 마나.

마나를 볼 수 있다면, 그 힘과 범위에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마나를 볼 수 있었던 여왕도 하늘을 보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지만, 그녀는 단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성벽 위에는 여왕과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왕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왕으로 지내며 훈련을 계속 받아왔었기에, 마나가 주는 공포를 혼자 참아낸 것이었다.

나는 여왕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아…….”

여왕의 창백했던 얼굴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사이에 그녀의 몸에 마나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짧은 접촉이었지만, 공포를 이겨낼 정도의 마나를 전해 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왕은 나를 보며, 눈으로 감사를 표했다.

“지하에 내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뇨, 발레아도, 대공녀님도 백작과 함께 싸우는데, 저만 피할 수 없어요.”

발레아도 대공녀도 성벽 위에 없지만, 여왕의 말대로 두 사람은 나와 함께 마왕과 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왕과 싸울 때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지만, 여왕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도 않았잖아요. 정말 위험하게 되면 백작의 말을 따를게요.”

위험한 상황이라……. 그때가 되면, 피하라고 말하지도 못할 것 같은데…….

고민을 하는 내 표정을 보고 여왕이 정색했다.

“이번에는 기절시키지 마세요. 그리고, 싸우는 데 제가 방해될 정도인가요?”

사실, 한 사람의 기사로서 여왕은 꽤 유용한 자원이었다.

실력만으로 따지면, 여기 있는 기사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이었고.

다만, 여왕이라는 그녀의 직위가 문제였다.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 그녀를 살린 것도 마음에 걸렸고.

그렇지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그녀를 지하 도시로 보내는 것을 포기했다.

기사들과 병사들, 귀족들까지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여왕을 보고, 뭔가 결심을 하는 듯한 기사도 여럿 있었고.

여왕이 온 뒤에, 그녀가 직접 싸우러 나오자,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아이돌 같은 건가.’

왕의 친정이 사기를 높여준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거기다, 시커먼 남정네가 아니었으니, 더 사기가 좋아진 거겠지.

확실히 갑옷을 입고 검을 든 여왕을 보면,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지평선에 엄청난 수의 마물이 나타났는데도 동요가 크지 않았다.

그들을 훈련한 당사자로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싸우기 전에 모두에게 한 번 더 말해 두어야 했다.

나는 발을 굴러, 성벽 난간 위로 올라갔다.

난간에 올라가니, 지평선을 덮으며 다가오는 마물들이 더 잘 보였다.

확실히, 마왕과 함께 오는 마물들이었다.

저들은 중구난방으로 달려드는 마물들이 아니었다.

질서정연하게 진군하는 마물의 군대였다.

나는 몸을 돌려 내 도시, 성벽 위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주목하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여왕도, 귀족들도 기사들도 나를 보고 있었다.

성벽 위에 있는 이들은 모두 나를 보고 있었지만, 성벽 아래 도시는 텅 비어있었다.

도시에 있던 이들은 저번 삶에서처럼 모두 지하로 대피한 것이다.

어머니도, 집사장도, 노인부터 아이까지. 수천 명이 열심히 만든 지하 도시로 대피해 있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수년, 혹은 그 이상 지하에서 지낼 수 있을 터였다.

모두가 대피한 텅 빈 도시에는 저번 삶에서처럼 자원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때처럼 마물들이 도시로 들이닥치면 도시를 무너뜨릴 자원자들이었다.

이번에는 막아내 볼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지하 도시를 지키려면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그 자원자 중에는 카트린과 레스티도 있었다.

레스티는 지하 도시에 대피한 신도들을 지키기 위해 자원했고, 카트린도 싸우기 위해 남았다.

용병 출신들이라서 그런지, 둘은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다른 때였으면, 붙여놓은 둘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을 터였다.

물론, 다른 때였으면, 둘이 만나거나, 같이 있을 일도 없겠지만.

성벽 위에 있는 이들과 도시에 남아 있는 이들. 그리고, 지하 도시로 피신한 이들까지.

전부 내 영지민들이고,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반복되는 삶으로 피폐해지는 내 정신을 지켜주는 이들이었고.

꼭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나를 지켜보는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껏 나를 따라와 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힘든 훈련을 따라온 기사들에게 감사하고, 어이없는 영주의 명령을 따라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이제, 그 훈련과 명령의 결실을 볼 시간이다.”

나는 마나를 실은 목소리로 제일 먼저 모두에게 감사를 전했고,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다. 이제 인류의 적이자,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는 마왕을 쓰러뜨릴 시간이다!”

이어서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고, 마왕을 쓰러뜨릴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영주가 영지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내 거짓말을 믿고 싶었다.

나는 목소리에 마나를 가득 실은 채로 힘껏 소리쳤다.

“총원 전투 준비! 모두 검을 들어라!”

성벽과 텅 빈 도시 전체에 내 목소리가 메아리쳤고, 이어서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카를로스 왕국을 위해!”

“샤를 백작을 위해!”

“여왕을 위해!”

“마왕을 지옥으로!”

“우리는 용사와 함께한다!”

수많은 구호가 환호와 함께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번 삶처럼 장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사기는 더 충만했다.

그때는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라면, 내 앞에 있는 이들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 같은 믿음을 가지지 못했지만, 이 믿음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가오는 마물들을 보며 모두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도시를 공격하는 마물들은 전과 다른 마물들이다!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인간, 기사와 귀족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도록!”

이제 싸울 시간이었다.

지평선을 메우며 다가오던 마물들은 성 앞까지 오지 않고, 일정 거리에서 멈춰 섰다.

마물들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나는 몇 번이나 본 광경이었다.

마왕이 도착할 때까지 저렇게 기다리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나는 일단의 기사들과 함께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성벽 아래에는 수십 구의 말과 기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늙은 노기사 오헨과 우고와 미겔, 그리고 디오구와 수십 명의 기사.

추리고 추린 내 정예 기사들이었다.

사실, 오헨 경은 딸과 함께 지하 도시로 피하기를 바랐지만, 오헨은 내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나가면, 이 중에 몇 명이나 돌아올지.

불쑥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계획을 물릴 수는 없었다.

이대로 마왕이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저번 삶과 똑같은 식으로 싸움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사들과 함께 말에 올라탔다.

“모두 준비됐나?”

“네!”

내 물음에 모두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가 말을 탄 이곳은 성문과 거리가 있었다.

거기다, 바리케이드들을 도시 곳곳에 쌓아두어서, 이곳에서는 말을 타고 성문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사실, 성문으로 가도, 나갈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도시의 성벽에는 성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성문은 있었지만, 그 성문은 성문 모양을 한 철로 된 벽일 뿐 문이 아니었다.

나는 주위와 연락이 끊어지고, 피난민이 보이지 않게 되자, 성문을 모두 막아버렸다.

성문을 여는 기관을 부수고, 발레아에게 부탁해서 성문과 성벽을 하나로 이어붙였다.

이제 이 도시의 성문은 성벽보다 부수기 어려운 곳이 된 것이었다.

지금 이 도시는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밖에 있는 마물들이 성문을 통해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어서, 우리도 성문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나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탄 군마를 쓰다듬으며 작게 발레아를 불렀다.

“발레아, 부탁해.”

[다녀오세요.]

그그그그긍.

땅을 통해 들려오는 발레아의 대답과 함께, 내 앞쪽의 땅이 비스듬하게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땅이 파이고, 커다란 동굴이 만들어졌다.

말을 타고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성벽 너머, 마물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연결된 동굴이었다.

발레아의 영역이 그곳까지 닿지는 않아, 실시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미리 준비해 놓을 수는 있었다.

명령을 내리는 이는 달랐지만, 마물들은 저번 삶과 똑같은 위치에 멈춰 서 있었다.

덕분에 이 동굴을 빠져나갈 때도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 출발!”

나는 검을 뽑아 들고, 선두에서 말을 달렸다.

뒤에서 박차를 가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제일 먼저 동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수십 명의 기사가 미리 만들어진 지하동굴을 내달렸다.

성벽을 지나 벌판을 건너, 마물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이번 삶에는 먼저 공격하는 것은 마왕이 아니었다. 인간 기사들이 개전을 알릴 터였다.

우리는 마물들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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