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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504화 (504/563)

제504화

제4편 초대 왕의 재림과 신이 보낸 용사

얼마나 잘 기절시킨 것인지, 여왕은 수도를 벗어나고도 한참 뒤에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깨어난 여왕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같이 있는 이들이 카트린과 나밖에 없는 것을 알고는 화를 내다 말고 서럽게 울어버렸다.

“돌아가야 해요. 제발 부탁해요. 어머니도 거기 있잖아요. 공작도 시녀들도, 다들 남아 있는데, 내가 이렇게 도망칠 수는 없어요. 제발요.”

화를 멈추니, 그동안 보여주었던 노련해 보이던 왕의 꺼풀이 벗겨지고, 마차 안에는 통곡하는 10대 중반의 소녀만 남아 있었다.

울고 있는 소녀를 그녀의 이모, 카트린이 안아 주었다.

“왕비님께서 직접 부탁하셨어요. 여왕님은 기절하셔서 보지 못하셨지만, 시녀들도 총집사도 마지막까지 여왕님을 배웅했어요.”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여왕을 배웅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떠날 때까지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여왕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겠지.

나는 카트린 대신에 마차를 몰며 마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카를로스의 왕이에요.”

“네. 왕이시죠. 이제 막 왕이 되신 어린 왕. 그래서 살아 남으셔야 해요. 많은 이들이 죽고, 수도가 무너져도 초대 왕의 핏줄이 살아 있으면, 나라는 다시 설 수 있어요.”

“그건 궤변이에요. 백성이 없으면 왕도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초대 왕의 핏줄이라니요. 지금 난, 전 평범한 기사만도 못한 계집애일 뿐이라고요.”

사실, 여왕 실력이라면 평범한 기사 정도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여왕이 된 뒤에는 훈련하지 못해서 정체된 것 같지만, 여왕은 학원 때부터 앞으로가 기대되는 재목이었다.

“거기다, 초대 왕과 비슷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앞에서 마차를 몰고 있는 백작님이잖아요. 카를로스 용사의 재림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 같은 걸 살릴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갑자기 마차를 모는 나에게 화살이 날아왔다.

설마, 여왕도 그런 이야기가 신경이 쓰였던 걸까?

“아뇨. 샤를 백작은 용사로 불릴 만한 훌륭한 기사이긴 하지만, 초대 왕의 마지막 후손이자, 지금 이 나라의 왕은 아이샤 당신이에요.”

카트린은 교수 때로 돌아간 것처럼 단호한 말로 여왕을 꾸짖었고, 이어서 조금 슬픈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희망이라도 필요한 거랍니다.”

카트린의 말이 끝나고, 마차 안은 조용해졌다.

아니, 좀 더 무슨 말이 오갔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들의 말을 듣지 못했다.

마차를 몰며, 마물들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도가 저렇게 공격받고 있는데, 다른 곳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영지로 향하는 길에 수시로 마물이 튀어나왔다.

웨이브 수준의 마물 떼는 아니었지만, 마차 안에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여유롭게 마차를 몰며 상대할 만한 숫자도 아니었다.

마차를 모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한 손으로 마차를 몰며 다른 손으로 검기를 날려 마물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말을 타고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괜히 카트린 대신 말을 몰아주겠다고 한 건가?

나는 검을 휘두르다가, 마차가 길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보고 급하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이이잉.

엄선한 왕실의 군용 말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잘 달려주는 말들이었지만, 내 거친 운전은 말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카트린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뒤쪽에서 카트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차는 제가 몰게요.”

카트린이 마차의 창문으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나는 냉큼 마부석으로 넘어오는 카트린에게 고삐를 건네주었다.

“백작님도 못 하는 게 있네. 마부는 적성에 안 맞는가 봐.”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서 그렇지, 마차만 모는 거라면 카트린만큼은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걸 보여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나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물었다.

“여왕님은 좀 안정되셨나요?”

“저는 괜찮아요. 옷을 갈아입느라 늦었던 거예요.”

카트린 대신, 이번에는 조수석 뒤편에서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왕도 조수석 쪽 마차 창문을 통해 몸을 빼내고 있었다.

달리는 마차의 문을 열 수는 없겠지만, 매번 마차 창문으로 빠져나오다니.

도대체, 이 나라의 귀족 예법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여왕은 창문을 빠져나와 마차 지붕에 올라갔다.

공주의 말처럼 그녀는 입고 있던 드레스가 아니라,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카데미에서부터 쓰던 검이 들려 있었고…….

여왕은 아카데미에서 보았던 기사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놀란 얼굴로 쳐다보니, 여왕, 아이샤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입었는데, 이상해 보이나요?”

여왕이 갑옷을 입은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거라면, 얼굴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 정도였다.

“제 실력으로는 백작이 싸우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백작도 제가 보이는 곳에 있는 게 좋겠죠?”

여왕의 말대로였다.

물론, 상대가 인간이거나, 이 마차가 전생의 방탄차 정도로 튼튼했다면 마차 안에 있는 게 나았다.

하지만, 이 마차는 평범한 마차였고, 지금 마차에 달려드는 것은 마물들이었다.

마차는 마물의 입김도 버티지 못할 터였다.

거기다, 여왕은 자기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기사였다.

“물론이죠.”

나도 몸을 띄워 마차 위로 올라갔다.

나는 마차 지붕으로 올라가는 사이에도 검기를 날려 마물 하나를 잘라냈다.

철퍼덕.

목이 날아간 마물이 바닥을 굴렀다.

여유로운 내 모습에 여왕이 내게 물었다.

“마물들이 이렇게 쉽게 죽는 거였나요? 마물이 약해졌을 리도 없고, 공이 전보다 훨씬 강해진 거죠?”

강해진 게 맞았다.

다른 능력도 올라갔지만, 근래 검기를 많이 썼더니, ‘마나 유형화’ 레벨마저 꽤 올라간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마물 왕 둘과 붙어도 해볼 만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래봤자, 마왕에게는 아직도 비빌 각이 안 보였지만.

“역시, 수도에만 마물이 있는 게 아니었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달려가는 마차 옆으로 부서진 마차와 피난민들의 잔해가 스쳐 지나갔다.

길옆의 집들은 폐허로 변해 버렸고, 숲 위로는 멀리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내전 때 폐허를 보기는 했지만,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끼리의 싸움과 달리, 지금은 멸망한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저 연기가 올라오는 곳도 마을이 있던 곳이겠죠?”

“글쎄요.”

모르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발레아가 살았던 영지.

그녀의 동생이 영주로 있는 곳이었다.

발레아의 어머니는 얼마 전에 우리 영지로 모셔왔지만, 그녀의 동생도 동생의 어머니, 전영주의 부인도 영지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발레아는 어머니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도 내가 억지로 데려온 것에 가까웠으니, 다른 사람은 말하나 마나였다.

어쨌거나, 아는 이들이 사는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착잡했다.

내가 이런데, 이 나라의 왕인 아이샤 여왕은 더 힘들 터였다.

그래도, 검을 들고 마차 지붕에 서 있는 여왕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검을 들어 자신을 지키는 동안에도, 주변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달려드는 마물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마차가 빨리 달려서일까요?”

확실히, 수도에 몰려드는 마물들을 생각하면, 길에 모습을 드러낸 마물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웨이브 같이 몰려온 적도 없었고.

하지만, 이건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여왕의 질문에 딴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저는 초대 왕의 재림 같은 게 아닙니다.”

“아, 그건……. 그냥 홧김에 말한 거예요.”

여왕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지만, 나는 마차 뒤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초대 왕 카를로스 용사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마차 뒤에는 내가 죽인 마물의 시체가 길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나마 온전한 모습의 시체들이었다.

그 시체들이 지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물들이 움직여요! 죽지 않았나 봐요!”

여왕의 말은 반만 맞았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맞았지만, 모두 죽은 시체였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시체들은 모두 내가 되살린 언데드들이었다.

일어난 언데드 마물들은 바로 양쪽 숲으로 뛰어들었다.

“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죽은 마물을 잠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잠시라는 게 생각보다 좀 길고, 황궁 터 지하에 있는 놈들은 수백 년을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 움직이는 놈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터였다.

저 몸으로 다른 마물들을 막아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몰랐겠지만, 이건 수도에서 멀어진 뒤, 계속 있었던 일이었다.

마차에 덤벼드는 마물이 생각보다 적은 것은 마물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차에 덤벼들기 전, 숲에서 많은 수가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마차가 달리고 있는 길 양쪽의 숲에는 언데드와 마물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내가 마차를 몰며 동시에 하고 있던 세 가지 일 중에 마지막 일이 이것이었고, 이것만 아니었으면 카트린에게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을 터였다.

발레아도 알고, 다른 이들도 알기 시작했으니, 여왕에게도 알린 것이었다.

어차피 영지에 있으면 보게 될 터였고.

이 능력을 보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테니.

이제 여왕에게 알리는 것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죽은 마물을 되살리는 능력이라니……. 동화책에도 안 나오는 능력이잖아. 이건 뭐, 옛날 신화시대에 나오는 신이 보낸 용사도 아니고…….”

내 말을 들은 카트린이 투덜거렸지만, 카트린과 여왕도 전보다 표정이 밝아졌다.

내게서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여서였을까.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희망이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기운을 되찾은 것은 다행이었다.

수시로 마물이 공격하고 세상이 망해가고 있었지만, 어쨌든 간에 아이샤와 카트린과 오랜만에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우울한 동승자와 같이하는 것보다 밝은 사람들과 여행을 하는 게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간의 여행 끝에 우리는 영지로 돌아왔다.

도시로 떠나 텅 빈 영지의 마을들에는 야생 동물이 아니라 마물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덤벼드는 마물만 처리하고, 영주 도시로 달려갔다.

텅 빈 마을들을 지나니 도시가 보였다.

튼튼한 성벽과 강한 기사들. 그리고, 발레아의 영역이 지키는 내 영지, 내 도시였다.

며칠 자리를 비웠지만, 발레아의 영역은 그대로였고, 성벽을 지키는 기사들이 내뿜는 기세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너지고 있는 수도와 달리, 내 도시는 안전했다.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우리는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여왕은 대공녀와 발레아의 환대를 받고, 어머니의 인사도 받았다.

내 예상대로 여왕은 내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한 사람의 기사로 싸우고 싶어 해서 나를 곤란하게 했다.

더구나, 발레아도 대공녀도 여왕의 말에 찬성해버리니, 결국, 그녀를 지하 도시에 들여보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작은 해프닝들을 겪으며, 나는 최대한 싸울 준비를 끝내놓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마왕이 오긴 전에 제대로 준비를 끝냈다.

지하 도시도 만들고, 영지민도 대피시켰고, 사람들도 최대한 영지로 불러들였다.

발레아는 물론, 대공녀와 여왕에 카트린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기사단도 준비되었고, 유물도 풀고, 발레아의 영역도 전보다 잘 준비되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이들과 현자를 찾지 못한 것처럼 몇 가지 아쉬운 일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영지에서 두 번째 맞이하는 마왕이었다.

이번 삶에서도 두 번째 보는 마왕.

그 마왕의 마나가 멀리 북쪽 하늘에 떠 올랐다.

마왕이 영지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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