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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98화 (498/563)

제498화

제23편 손님맞이 (1)

나는 여왕과 공작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영지로 돌아왔다.

영지로 돌아오기 전, 그레이스 공작, 내 아버지는 한쪽으로 나를 부른 뒤, 여왕이 듣지 못하게 방음벽을 치고 내게 물었다.

“영지 지하에 만들었다는 피난지는 안전한 게 확실한가?”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버려두고 피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둘째 형과 공작부인을 피신시킬 생각이신가?

“네. 안전합니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번 삶에도 내가 먼저 죽어버려서 지하 도시가 얼마나 버텨냈는지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공간 이동으로 달아나버린 ‘조직’을 제외하면 제일 안전한 곳일 터였다.

거기다, 이번 삶에는 더 확실히 준비했었다.

내 대답에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정말 상황이 안 좋아지면, 네 말대로 여왕님을 네 영지, 샤를 백작의 영지로 대피시킬 생각이다. 여왕님은 반대하시겠지만, 왕국의 문을 여기서 닫을 수는 없다.”

그는 수도가 위험하게 되면 여왕을 강제로 내 영지로 보낼 생각인듯했다.

그게 잘 진행될지는 둘째치고, 공작의 머릿속에는 가족을 피신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그는 영지를 지키고 있는 첫째 형과 형수, 그리고 수도에 있는 둘째 형, 공작부인의 피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도원에 들어간 뒤로 딸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고.

공작은 영지에 있을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영지가 제일 중요했던 그때처럼 지금도 공작은 가족보다, 왕국과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제삼자가 본다면 왕국과 왕가를 먼저 생각하는 훌륭한 귀족이라고 칭찬이 자자할 만한 행동이었다.

거기다, 공작의 행동은 이 세계의 훌륭한 귀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가족과 친우, 주변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거겠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영지에 있을 때, 공작의 무시와 외면은 나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서자인 내가 더 심했겠지만,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래서 둘째 공작부인이 그런 짓을 한 것일 테고.

공작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봤자 듣지도 않을 테고.

뭐라 할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의 가족이 내 가족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왕국 수도를 떠났다.

‘전송.’

다시 시야가 일그러지고, 나는 잠시 뒤에 발레아 앞에 나타났다.

응접실에 앉아 있던 발레아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발레아는 돌아온 내게 그동안의 일을 묻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 만족한 듯했다.

“어머니를 만나고 올 테니, 사람들 좀 불러줘.”

“어머님을 뵙기 전에 먼저 씻으셔야 해요.”

발레아의 말에 나는 내 몸을 살펴보았다.

공국으로 가기 전에 갑옷은 갈아입었지만, 씻지를 못해서 손과 발에 마른 피가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피 때문에 공국에서도 왕국 수도에서도 사람들이 의심을 안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만날 때 싸운 흔적을 보여드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발레아의 말대로 깨끗하게 씻고 시녀들이 내온 새 옷을 갈아입은 뒤,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나를 반기면서도 뭔가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다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말씀하지 않으셨고, 나는 인사를 끝내고 방을 나섰다.

어머니가 고민하시는 장면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는 어머니가 언젠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지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음에 뵐 때는 무슨 고민인지 꼭 들어볼 생각이다.

어머니를 뵙고 회의실에 가니, 사람들이 와 있었다.

두 선임 기사와 영주 대리 오헨 경, 집사장과 벤자민.

그리고 저번 삶에서는 신도들을 피신시키느라 영지를 떠났던 레스티까지.

내 수하들이자, 내 동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회의실 안에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영지의 신료들이 영주에게 하는 인사였다.

저번 삶 때에는 무척이나 반가워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몇 개월간 자리를 비웠던 저번 삶과 달리, 이번에는 틈틈이 영지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빌헬름 요새의 마지막 싸움 뒤로 처음 오는 것이긴 했지만, 날짜로 따지면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나는 인사를 받은 뒤, 발레아와 함께 회의실 자리에 앉았다.

오래 못 만난 건 아니었지만, 할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마왕이 나타났습니다. 빌헬름 요새는 무너지고, 제국군과 마지막 검호들은 패했습니다. 지금 제국은 마왕과 마물 군단에 유린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말한 것처럼 모두에게 제국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은 이들의 반응은 다른 곳과 또 달랐다.

“저번에 백작님이 말씀하신 예상대로라면, 몇 주안에 마왕이 공국을 지나 우리 영지까지 오게 되겠군요.”

“다행히 준비는 그전에 다 끝날 것 같습니다.”

“이제 피난민이 문제겠군요. 식량은 충분히 모아놓긴 했지만, 피난민을 마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곧 소문이 퍼질 테니, 다들 불안해할 겁니다. 넘치는 피난민도 그렇고, 치안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할 겁니다.”

“마왕이 등장했으니, 이제 주변 영지의 압력도 줄어들겠군요.”

“어차피, 마물들이 날뛰는 바람에 우리 영지에 신경 쓸 처지가 안 되었습니다.”

모두 내 말에 의문은커녕,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이들은 모두 내 말을 듣고, 그동안의 계획을 바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모두 잘하고 있었다.

내가 나설 것도 없었다. 여기서 마왕의 무서움을 더 강조해봤자, 사기만 떨어질 터였다.

나는 잘 진행되는 일들은 놔두고,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지하 도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물음에 집사장이 대답했다.

“자잘한 정리는 필요하지만……. 완성은 되었습니다. 몇몇 인원은 벌써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땅속에 거대한 지하 공간을 만들고, 구획을 나누고, 지반을 다지는 중요한 일들은 모두 발레아가 한 것이었지만.

그 공간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바꾼 것은 집사장이 한 일이었다.

뒤에 사람들을 나누고, 지하로 이동시키는 일은 벤자민과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내 감사를 받을 만했다.

잠시 뒤, 회의를 마치고, 나는 발레아와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완성되었다는 지하 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원래 이 지하 도시는 봉인지에 있는 황궁 터 지하 도시처럼 만들 생각이었다.

거대한 공동 안에 진짜 도시가 들어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 보려 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기술로는 그런 도시를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그 도시는 고대 제국의 역량을 모두 모아 만든 도시였다.

그런 공간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공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공간의 낭비도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내 영지의 지하 도시는 전생에 보았던 지하 쇼핑몰처럼 만들었다.

중앙에 큰 광장이 있고 주변에 집들이 있는 그나마 답답하지 않은 지하 도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높이는 많이 낮추고, 공용 면적과 여유 공간은 조금 많게.

사실, 전쟁의 벙커나 땅굴처럼 만들면 훨씬 더 쉬웠겠지만, 이 지하 도시는 수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가야 했다.

물론, 그런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공간을 만들고, 영역을 나누는 것이야 발레아가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이 세상의 기술로는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도, 오물을 정화 시키고, 전기로 빛을 만들 수도 없었다.

나는 없는 기술을 모두 유물로 대체했다.

지하 도시의 광원은 빛을 뿌리는 유물로 대체했고, 오물의 정화는 정화 능력이 있는 유물을 사용했다.

공기의 순환도, 바람을 일으키는 유물을 썼고.

그렇게 가지고 있는 유물을 전부 활용하니, 황실 터 지하의 도시 정도는 안 돼도, 제대로 굴러가는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황실 금고를 강탈해오지 않았더라면, 지하 도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확인한 지하 도시는…….

내 처음 생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벌집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아요.”

커다란 원형 광장 주변 벽에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발레아의 말처럼 지하 벽에 층층이 늘어선 집들은 벌집처럼 보였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길쭉한 5층 아파트를 원형으로 벽에 박아놓은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거나, 많은 사람을 수용하면서 공간에 여유를 주려면 층층이 쌓는 수밖에 없었다.

여긴 원래 벽이었으니, 파내면 그만이었고.

그렇게 되어, 조금 이상한 모습의 지하 도시가 된 것이었다.

아직 도시는 많이 비어 보였다.

우리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발레아와 나를 보고 급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 수가 아직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이들 중에는 나를 보고 특별한 성호를 긋는 사람도 있었다.

셀린 교단의 신도들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지 않아, 이들만 먼저 내려온 듯했다.

이제 마왕이 다가오게 되면, 이 도시는 영지민으로 가득하게 될 테지.

어머니도 내려오실 테고, 수하들과 대공녀도 이곳에서 지내게 될 터였다.

저번 삶에서 나와 같이 죽은 발레아도 이번에는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이곳에서 지내지는 못할 테지.

마왕을 쓰러뜨리면 이 도시에 들어올 이유가 없을 테고, 마왕에게 죽게 되면 과거로 돌아갈 뿐이었다.

마왕과 싸우지 않고, 같이 이곳에서 숨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아직 내게는 돌아갈 저장 시점이 남아 있었다.

영지에 돌아온 뒤, 나는 최선을 다해 마물과 마왕을 맞을 준비를 했다.

기사들과 같이 훈련하고, 영지를 돌아다니며 영지민들을 도시로 불러들이고, 식량과 물자를 확인했다.

그렇게 내가 영지에 몰두하는 동안, 왕국 전체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내가 수도에서 말했던, 마왕의 등장과 제국의 패배가 엄청난 속도로 왕국 전체에 퍼져나간 것이다.

그 덕분에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이 영지를 계속 방문했다.

오늘도 나는 뚱뚱한 귀족을 만나 정중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거절합니다. 저희는 더는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큰돈을 주겠소. 아니면 내 딸과 결혼하는 게 어떻겠소. 난 아들도 없소.”

내 앞에 앉아 있는 귀족은 내게 황당한 제안을 했다.

그가 그런 황당한 제한을 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 정도면 백작이 준비한 곳의 한자리를 주는 정도는 할 수 있잖소! 피난민이나 평민들도 받아들이면서 귀족을 거절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요!”

내 앞에 앉아 있는 귀족은 내 영지, 아니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내 피난처, 지하 도시에 들어오려 한 것이다.

열심히 막았지만, 소문이 흘러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피난민도 받지 않습니다. 영지는 봉쇄되었습니다.”

봉쇄되지 않았더라도, 이런 귀족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딱 봐도 말을 안 들을 것 같은 귀족이었다.

이런 귀족을 받느니 피난민을 받는 게 나았다.

이런 귀족도 성문에서 막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병사와 기사들에게 귀족을 막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내가 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반가운 사람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영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기사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이 귀족에게는 더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두꺼비를 닮은 귀족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귀족은 안 받는다더니! 여자는 잘만 받는군!”

내가 일어나자 그가 소리쳤다.

기사가 제대로 말하지 않기는 했지만,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지.

소문은 밝은 자 같은데,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공국의 대공녀를 거절하기는 힘듭니다. 잘 살펴 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딱딱하게 굳어진 그를 남겨두고, 방을 나섰다.

그는 이제, 선임 기사들이 데리고 나갈 것이다.

혹시라도 난동을 피우면 발레아가 나설 테고.

나는 그가 곱게 말을 따르기를 바랬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침부터 발레아가 기분이 안 좋아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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