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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97화 (497/563)

제497화

제22편 돌아가는 길에 (3)

대공녀 자신을 소환하라고?

대공녀 말에 발레아의 모습이 휙 하니 지나갔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지금은 실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소환에 성공하면 이동은 편해지겠지만, 그 이상으로 곤란해질 게 분명했다.

나는 대공녀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안 되는군요.”

사실, 해보지도 않았지만,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군요.”

안 된다고 말했지만, 대공녀는 별로 아쉬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실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어차피 준비할 것들이 있으니, 저는 바로 움직이기 힘들 거예요. 호위들과 함께 최대한 빨리 따라갈 테니,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아쉬워하는 대신, 내게 따로 가겠다고 말했다.

“이 지팡이도 있으니, 제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더구나 지팡이가 있으니, 제가 위험하면 직접 오실 수도 있잖아요.”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성물 지팡이의 방어막이라면, 마물 왕이나 마왕이 나오지 않는 한, 그녀와 그녀가 탄 마차는 안전했다.

나도 아직 방문할 곳이 남아 있었고.

나는 대공녀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전송.”

복도에서 전송되는 나를 지켜보는 대공녀의 표정에는 좀 전에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표정을 보니, 내가 급하게 공국을 떠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대공녀 옆에 더 있기가 힘들어 도망치는 것이었다.

마물들을 상대하고, 기사와 귀족을 상대하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럴 때는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니, 내 앞에는 여왕이 앉아 있었다.

‘어? 분명 ‘기사의 검’을 목표로 삼았는데?’

어색한 상황이 될까 봐 일부러 ‘기사의 검’으로 전송을 했는데, 여왕이 앞에 있다니.

나는 조금 전 대공녀가 한 말이 떠올라 바짝 긴장했다.

‘설마, 여왕에게 전송된 것은 아니겠지?’

다행스럽게도 여왕을 향해 전송된 것은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여왕의 무릎 위에 ‘기사의 검’이 올려져 있었다.

제대로 ‘기사의 검’을 향해 전송된 것이었다.

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르기로 한 곳은 우리 왕국의 수도였다.

나는 카를로스 왕국의 귀족이자 영주였다.

더구나, 그레이스 공작의 아들이자, 여왕의 기사.

영지에 돌아가기 전에 방문해야만 했다.

“역시, 검을 가져오기를 잘했어요.”

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집무실에 홀로 있던 어린 여왕은 환하게 웃었다.

여왕이 된 뒤에 보게 된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보았던 그 웃음.

오랜만에 보게 된 웃음이라, 나도 그녀와 같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왕이 나타났습니다. 방어하던 제국군은 전멸. 마왕과 마물들이 제국의 수도로 진격 중입니다.”

내 말에 여왕의 미소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바로 사람들을 부를게요.”

여왕은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여왕의 얼굴을 하고, 집무실을 나섰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사와 집사들은 여왕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가, 뒤이어 나온 나를 보고 몸을 움찔거렸다.

다들, 내가 왜 여왕의 집무실에서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분명 집무실 안에는 여왕만 있었는데.

이상한 소문이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왕도 나도 개의치 않았다.

곧 그런 소문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여왕은 집사들을 보내, 사람들을 소집했다.

그레이스 공작과 왕실 기사단장, 그리고, 몇몇 유력 귀족들까지.

나는 여왕이나 그레이스 공작에게만 사정을 말할 생각이었지만, 여왕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마왕이 등장했으니, 모두 직접 들어야 해요.”

하기야, 이제는 왕국 전체를 움직여야 했다. 두 사람에게만 말해서는 다른 이들이 수긍하고 따르기 어려울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일 먼저 온 것은 왕실 기사단장, 거인 기사였다.

그는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회포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레이스 공작, 아버지인 공작이 귀족들과 함께 회의실에 도착했다.

공작은 나와 눈인사를 한 뒤에 귀족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수도 기사단장과 왕국군의 장군들, 카트린의 아버지인 카트리네 백작까지.

수도에 있는 유력 귀족과 장군, 기사는 다 모인 듯했다.

생각보다 커진 회의에 놀라기도 했지만, 왕국의 유력 인사들이 이렇게 빨리 모인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유를 알아볼 상황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두 앉자, 여왕이 입을 열었다.

“샤를 백작이 제국의 정보를 가져와서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여왕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국에서 벌어진 일을 말해주었다.

물론, 내가 벌인 일은 오해를 살 게 뻔했기에 전부 빼버리고, 마물과 마왕에 대한 것만 말한 것이다.

“……그렇게 되어 마왕이 이끄는 마물들은 요새를 넘어 서쪽으로 계속 진군 중입니다. 제국군 주력이 무너졌으니, 이제 제국은 마왕과 마물 군단을 막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나는 공국왕에게 했던 그대로 제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뒤에 귀족들이 질문하기를 기다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이야기였으니, 분명,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 제국의 사정을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지, 어떻게 소식을 이렇게 빨리 들었는지,

물어볼 게 가득했다.

나는 핑곗거리를 열심히 떠올렸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귀족들은 내 예상과 다른 말들을 서로 나누었다.

“진짜 마왕이 나왔군…….”

“그래도 다행이군요. 제국으로 향했다니…….”

“하지만, 제국도 버티지 못하는데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요?”

“제국이 힘을 깎아놓았을 테니 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막지 못하면 끝입니다. 제국이 힘을 깎아놓았다는 데 희망을 걸어야겠죠.”

귀족들의 말을 들으니 그들은 내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했다.

그러고 보니, 회의실에 들어오던 귀족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웠었다.

말을 나누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의아한 얼굴로 대화를 듣고 있자, 카트린 교수의 아버지이자, 여왕의 외할아버지인 카트리네 백작이 입을 열었다.

“샤를 백작은 제국에 있어서 이쪽 사정을 모르는 것 같군.”

그도 처음 봤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카트린은 잘 있으려나…….

카트리네 백작의 말에 귀족들이 번갈아 가며 내게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얼마 전에 이피로스 왕국의 구원 요청이 왔습니다. 마물들의 전면적인 침공으로 피난 중이라고…….”

“안타깝지만, 우리 왕국도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마물들이 날뛰어서 북부 산맥과 가까운 영지 중에는 쑥밭이 되어 버린 영지도 꽤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번 삶에서도 마물들은 제국만이 아니라, 북부 산맥의 남쪽인 이피로스 왕국과 우리 왕국 쪽으로도 쏟아져 나왔었다.

마왕이 제국 쪽으로 가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남쪽 왕국들은 마왕이 오기 전에 모두 멸망했었다.

물론, 마물을 통솔하던 마물 왕도 죽었고, 이제 마물이 막 봉인지를 넘어온 시점이라, 우리 왕국이 무너질 상황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그나마, 여왕께서 준비해 두셔서 이 정도이긴 하지만…….”

“여왕께 다시 사과드려야겠군요. 여왕님의 말씀도 믿지 않고, 하시는 일에 계속 반대를 해왔는데……. 늙은이가 여왕의 혜안을 계속 방해했습니다.”

여왕은 제국으로 가기 전에 내가 말해준 마왕이 다시 등장한다는 말을 모두에게 한 모양이었다.

방금 늙은 귀족이 사과한 것을 보니, 반대도 심했던 모양인데…….

그래도 여왕은 나를 믿고, 일을 강행했던 모양이었다.

여왕의 준비 덕분에, 이렇게 귀족들이 빠르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이었고, 심각한 상황에도 소란이 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 덕분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보고를 끝마칠 수 있었다.

아니, 잠깐.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직접 말할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니었나?

예상과 달리, 여왕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예전에 치워버린 반대파 수장 뒤에 새로운 반대 세력이 나온 것도 아닐 테니.

여왕이 모두에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여왕이 입을 열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샤를 백작 덕분에 저희 왕국은 이 정도나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제국의 소식을 가져온 덕에 다음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되었고요.”

모두에게 말한 여왕은 이어서 나를 똑바로 보고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나. 카를로스의 여왕은 샤를 백작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여왕의 말에 몇몇 귀족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왕이 감사를 표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국가적인 행사나 논공행상의 자리가 아니긴 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도 모두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왕이 행하는 감사는 그냥 감사로 끝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모두에게 보고하게 한 이유는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여왕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었다.

여왕은 모두에게 내가 한 일을 알리고, 내게 보상을 줄 생각이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귀족은 여왕의 감사에 동의하는 듯이 보였다.

그 뒤에도 회의는 한참을 이어졌다.

그동안 해온 왕국군과 기사단의 운영과 마물에 대한 방어 준비.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마왕에 대한 준비까지.

회의는 귀족적인 예의와 형식을 모두 버린 채로 격렬하게 이어졌다.

내게도 여러 질문이 왔다.

핑곗거리가 필요한 나에 대한 질문 대신, 마왕과 마왕의 능력, 그리고 제국이 어떻게 졌는지에 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 정도로 열심히 하니,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왕을 막는 데는 아무 도움도 안 되겠지만.

나는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대답을 늘어놓으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나는 여왕과 공작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다른 이들은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영지를 가진 영주였다.

영주는 자신의 영지를 지켜야 했다.

나는 집무실로 돌아와 회의 때 말하지 못한 것들을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마왕과 직접 싸워본 바로는, 솔직히 말해서 막기 어려울 겁니다.”

내 말에 여왕도 공작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위험해지면 저희 영지로 오시죠. 발레아가 지하 깊숙이 피난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 말에 여왕은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녀가 짓는 미소는 아까 보았던 아카데미의 어린 소녀의 미소가 아니라, 여왕의 미소였다.

“샤를 백작. 아니 알렉스가 영주로서 영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저도 여왕으로 이 왕국을 지켜야 해요.”

여왕의 말에 나는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역시, 이 세상에서도 올바로 된 이는 살기 어려운 걸까.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니, 여왕을 보며 손가락을 까닥이는 공작이 보였다.

저 손가락은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뭔가 고민이 있다는 표식이었다.

아무래도 공작은 여왕과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다.

어쨌거나 여왕은 내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고,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백작은 제국에서 출발한 뒤에 여기보다 먼저 공국에 갔었다는 거군요.”

평범한 말인 듯했지만, 바뀐 여왕의 표정을 보니 분명, ‘나보다 먼저 대공녀를 보러 간 거군요.’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분위기를 전환하느라 꺼낸 말 같은데, 뭔가 외통수에 걸린 기분이었다.

“오는 길에 들르는 거라…….”

나는 그냥 습관적으로 전과 같은 식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그 ‘전송 능력’이 거리에 제한이 있는 능력인가 보군요.”

아니, 그런 제한은 없었지만.

서늘해진 집무실 분위기를 보니, 없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설마, 늑대 굴에서 도망친 뒤에 도착한 곳이 호랑이 굴이었나.

나는 노려보는 여왕과 공작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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