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94화 (494/563)

제494화

제19편 두 번째 대결

마왕이 마나로 만든 검날이 산산이 부서져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수백, 수천 개로 변한 검날. 아니 마나의 파편이 세상을 뒤덮은 것처럼 보였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만천화우가 이런 걸까.

빛나는 화살 비가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관총이 예광탄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쏟아지는 마나 파편은 스치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피할 수도 없이 빼곡히 들어찬 마나 칼날들.

나는 ‘전쟁신의 검’을 믿고, 내게 쏟아지는 파편을 검으로 쳐냈다.

캉, 캉. 캉. 캉.

내게 쏟아지는 파편을 튕겨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파편을 날린 마왕과 나밖에 없었다.

검호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마법사’의 화염 회오리도 마왕이 날린 마나 파편들을 막지 못했고, 여검호도 마왕의 공격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노인도 쏟아지는 파편을 피하지 못했고, 그건 투레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방금까지의 싸움은 제대로 된 싸움이 아니었다.

검호들은 진심이 담긴 마왕의 공격을 한순간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떨거지들을 치워버렸으니, 어떻게 그 검을 복구시켰는지 들을 수 있겠지.”

일 검으로 검호 넷을 죽여놓고도 마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나는 죽어버린 검호들을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이렇게 모두 죽어버린 이상 검의 능력으로 회복시킬 수도 없었다.

그걸 알고 마왕도 한순간에 모두를 죽여버린 것일 터였다.

이런 식의 공격이 있을 줄 알았으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이 능력은 저번 삶에도, 마왕의 기억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마왕은 쓸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더구나, 방금 공격은 아무리 봐도, 내 ‘마나 방출’의 상위 능력이었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마왕의 능력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보다 신기하군. 동료들이 죽었는데 전혀 동요가 없어. 억지로 참는 것도 아니고, 부동심 같은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마왕은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오해를 한 듯했지만, 마왕의 말대로 검호들의 죽음에 동요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동요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마왕이라는 적과 싸우기 위해 잠시 함께했던 이들일 뿐이었다.

공동의 적을 향해 검을 들게 되면 모두 동료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얼마 전, 아니 지금도 마왕이 없다면 내게는 적일 뿐이었다.

그런 이들이 죽었다고 동요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나는 수많은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죽음을 보아왔었다.

그것도 무늬만 동료가 아닌, 진정한 동료와 친우, 소중한 사람의 죽음까지 보았었다.

그런 나에게 검호들의 죽음은 특별한 일이 될 수가 없었다.

단지 조금 기분이 안 좋은 정도일 뿐이었다.

“마왕이 감정 같은 것을 말하다니. 감정이 뭔지 알고나 있나?”

“아……. 그렇군. 난 마왕이었지. 확실히 네 말이 맞아.”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마왕은 내 말에 수긍했다.

그걸 수긍하다니. 뜻밖의 수긍에 나도 할 말을 잃었다.

잠시 대화가 멈추자, 내 눈에 주변의 광경이 들어왔다.

엄청난 수의 마물이 주변을 포위하고, 등 뒤에 요새에는 마물들을 막기 위한 귀족과 기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성벽 아래, 내 주변에는 제국이 자랑하는 검호의 주검들이 놓여 있고,

나는 지금 마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확실히 실력을 보니, 너는 그 검을 지닐 만하군. 저기 널려있는 시체들은 기본도 안 되는데 왜 덤볐는지 모르겠어.”

내가 말을 멈추자, 마왕이 입을 열었다.

그는 나를 인정하는 동시에 죽은 검호들을 가차 없이 내려 깠다.

아니, 그래도 이들은 제국이 자랑하는 검호였다.

일수에 전부 죽였다고, 이렇게 내리깔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왕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용사라고 자칭하던 실험체들과 비슷한 능력을 쓰던데, 이상하게 한가지 능력만 쓰려고 하더군. 하나만 갈고 닦아서 꽤 쓸만하게 만든 것 같은데, 그래봤자, 반의반 쪽도 안되는 능력일 뿐이잖아.”

마왕은 죽은 검호들이 한가지 능력만 쓰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마왕의 말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마왕이 왜 말이 많고 궁금한 것이 많은지, 왜 검호들과의 싸움을 연습처럼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마왕은 지금 봉인을 깨고 나온 상태였다.

당연히 수백 년이 지난 세상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삶에는 옆에서 이야기해줄 이도 내가 죽여버렸으니.

마왕은 수백 년 전, 봉인되었던 시간에 멈춰있었다.

‘그럼, 내가 마왕에게 지금 세상을 설명해야 하는 당사자로 선택된 건가?’

“묻고 싶은 게 좀 있지만, 그건 천천히 알아보면 될 테고, 당장은 검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수백 년간 고통을 받았으니, 이제 내 말을 못 들은 척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쉽게도(?) 나는 마왕에게 그런 역할이 아니었다.

마왕은 나보다 이 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안 돼요! 주지 말아요. 빼앗기지도 말아요. 그런 경험을 다시 할 수는 없어요!]

마왕의 말대로일지도 몰랐다.

마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검의 정령이 비명을 질러댔다.

마왕의 말대로 정령은 파편으로 나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었다.

“거절하겠다. 너는 이 검의 주인도 이 시간대의 존재도 아니다.”

나는 검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너는 봉인 속에, 아니 추억 속에 가만히 있어 주면 되는 거였어.”

아직도 실력 차가 확연했고, 예상과 달리 ‘전쟁신의 검’은 마왕에 대해 트라우마까지 생겨버린 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왕을 앞에 두었는데, 싸워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는 ‘전쟁신의 검’, 용사의 검을 들고,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캉! 카앙! 캉!

마왕이 만들어낸 빛의 검과 ‘전쟁신의 검’이 부딪쳤다.

무한한 듯이 보이는 마왕의 마나로 만든 검과, 수백 년간 마나를 뿜어냈던 ‘전쟁신의 검’은 격렬하게 부딪쳤으나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마왕과 싸웠던 경험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당한 경험이었지만, 적어도 마왕이 어떻게 싸우는지는 알고 있었다.

덕분에 저번 삶에서보다는 더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부족한 마나는 ‘전쟁신의 검’ 마나를 끌어다 쓰고, 부상은 ‘신검’ 대신 ‘전쟁신의 검’으로 회복시켰다.

부족한 검술은 한번 상대했었던 경험으로 해결했고, 발레아의 부재는 원래 준비했던 검호 대신 뜻밖의 사람들이 대신해주었다.

쨍그랑! 쨍그랑!

너무 빨라 막아내지 못한 마왕의 공격이 내 주위에 펼쳐진 방어막에 막혀 허공에 흩어졌다.

내 반지로 펼친 평범한 방어막이었으면 절대로 막아내지 못할 공격이었지만, 그 방어막이 여러 겹, 수십 겹으로 겹쳐 있으면, 마왕의 공격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이미 조금 전에도 보여주었었고, 지금도 같은 사람들이 그 방어막을 내 몸 주위에 펼치고 있었다.

내가 ‘전쟁신의 검’으로 회복시켰던 제국의 귀족들이 성벽 위에서 내 몸을 감싸는 방어막을 만든 것이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감싸는 방어막을, 그것도 외부의 공격만을 막는 방어막을 수십 명이 동시에 펼치다니.

이건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다.

“귀찮군.”

그건, 마왕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또 한 번 방어막에 막혀 싸움을 끝내지 못한 마왕은 뒤로 훌쩍 물러서더니, 위로 번쩍 손을 올렸다.

“크아아아아앙!”

그 순간,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마물들이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마물들이 앞으로 달려왔다.

요새를 포위하고 있던 수만, 아니 그 이상의 마물들이 요새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왕이 다시 마물들을 부른 것이다.

확실히, 처음 사용했던 공성 검술은 바로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성벽을 부수었던 그 공격을 다시 쓸 수 있다면 마왕 성격에 직접 쓸어버렸을 터였다.

이것으로 확실하게 마왕의 한계를 하나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요새의 병력들은 마왕의 공격이든, 마물들의 공격이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울 수 없었다.

마물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방어막의 도움이 확 줄어들어, 마왕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도 마왕은 제대로 싸우는 것 같지 않았다.

검호들과 싸울 때처럼 장난같이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검의 능력을 확인하고자, 이리저리 테스트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쟁신의 검’을 들었는데도 본 실력을 모두 뽑아낼 수 없다니.

무력감이 담긴 신물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듯했다.

무력감이 담기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물이 넘어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왕의 강대한 마나와 ‘전쟁신의 검’의 강대한 마나가 계속 충돌하니, 내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부상은 계속 치료하고 있었지만, 몸에 누적된 피로와 손상은 검의 치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신의 검’을 들고도 이런 차이라면, 이번 삶에서 마왕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 삶을 포기하고 다음 삶을 기약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해봐야 할 게 많이 남아 있었고, 마왕에 대해서도 더 알아내야 했다.

옆을 지나가는 마물들은 나와 마왕이 싸우는 지역을 피해 요새를 공격했다.

마물은 성벽을 오르고, 성문을 부쉈다.

그 공격을 막아낼 검호와 내가 없는 상황에서 몇 배나 많은 마물의 공격을 요새가 버텨낼 리가 없었다.

잠시 뒤, 나를 도와주던 방어막이 뚝 끊어지고, 성벽 위에서는 마물들의 괴성만 들리게 되었다.

아직 요새 안에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모두 죽게 될 터였다.

마왕은 요새가 점령되는 것을 보고, 잠시 검을 멈추었다.

“역시 죽이기 아까워. 그 검이 복구되었으니, 마물이 된 황태자도 죽어버렸을 거고, 대신 널 내 부하로 만들어야겠군.”

마왕은 웃기게도 저번 삶과 똑같은 말을 했다.

당연히 나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때처럼 죽기 직전도 아니었고.

하지만, 마왕도 멀쩡한 나를 두고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니었다.

“봉인을 푼 지 얼마 안 돼서 능력을 따로 쓰기가 번거롭군.”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검을 들지 않는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흡수.”

화아아아악.

동시에 주변의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물들의 몸에서 마나가 뽑혀 나오는 게 보였다.

그 마나는 모두 높이 들린 마왕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나를 빨아들일수록 더 강해지는 마왕의 마나.

젠장, 여기서 더 강해진다는 건가.

“그럼, 끝을 내지.”

마왕이 모아온 마나를 다시 검에 불어넣었고,

나도 급하게 다른 손을 펼쳤다.

“막아!”

내 말에 바닥에 누워있던 검호들이 마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몸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마왕에게 달려드는 검호들.

“살아있었나?”

마왕도 놀랐는지, 언데드가 된 검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사이, 나는 교단 대주교, 조아나에게 건네주었던 내 유물을 떠올렸다.

“전송.”

검호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끝으로, 시야가 바뀌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