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92화 (492/563)

제492화

제17편 요새 방어전 (2)

성벽을 오르던 마물들이 물러서고, 멀리 동쪽 숲에서 거대한 마나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나는 먼저 요새 안 지휘 막사로 향했다.

한걸음에 달려간 지휘 막사 안은 요새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마물들이 물러가고 있습니다!”

“북쪽과 남쪽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물러나는 마물들이 인간들처럼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령들이 달려와 앞뒤가 안 맞는, 그리고 믿기지 않는 소식들을 전해왔고,

투레 백작도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고정관념 때문일까?

내가 이전에 말해 준 게 있으니, 마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투레 백작 정도면 쉽게 유추가 가능할 텐데.

투레 백작과 같이 인상을 쓰고 있던 ‘마법사’가 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물었다.

“지금 상황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막사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향했다.

나는 담담하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마왕이 오고 있습니다.”

떠들썩하던 막사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말하기 전에 방음벽을 펼치지도, 소리를 줄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막사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내 말을 들었다.

투레 백작도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한가?”

“네. 확실합니다.”

그는 다시 한번 내게 확답을 받고, 막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모두 전투 준비를! 마왕이 나왔다고 달라질 건 없어! 우선 마물들이 물러난다고 쉬고 있던 자들을 모두 닦달해서 움직이게 해!”

“그리고, 수도에 전령을 보내. 마왕이 출현했다고!”

“네……. 네!”

내 말에 얼어붙었던 이들은 투레 백작의 말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뒤에 백작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네. 후위에 두었던 귀족들과 장교들을 내보낼 때입니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전부, 지금을 위한 준비였으니…….”

백작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기하던 이들에게 당장 모두 성벽 위로 올라오라고 전하게.”

그 병사도 바로 튀어 나갔다.

“지휘소를 성벽 위로 옮기도록. 앞으로 지휘는 성벽 위에서 하겠다.”

“봉인되었던 마왕이 수백 년 만에 다시 등장했는데, 얼굴도 보지 않고 뒤에서 명령만 내릴 수는 없겠지.”

백작의 말에 나는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사실, 지휘소를 성벽 위에 세우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마왕.

한 방에 지휘부가 몰살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왕에게 검이라도 휘두를 수 있는 검호를 후방에 놔둘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따로 준비해놓은 방법이 먹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투레 백작과 ‘마법사’ 그리고 나는 다시 성벽 위로 향했다.

성벽 위에는 다른 검호들이 와 있었다.

노인과 약화 능력을 쓰는 여성. 그들은 멀리 동쪽 숲을 보고 있었다.

“지독한데……. 마물왕을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노인은 숲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무서운 게 다가오고 있어요.”

말이 없던 여성도 겁먹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게 마왕이 내뿜는 기세인가…….”

성벽 위로 올라온 투레 백작은 숲을 보고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었다. 나같이 마나를 볼 수 없어도, 노인처럼 마나에 민감하지 않더라도, 웬만큼 실력이 되는 이들은 마왕이 뿜어내는 기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검호나, 숲을 보고 있는 몇몇 기사나 귀족들처럼.

다른 이들이 다가오는 기세에 질려있는 동안 투레 백작은 숲으로 향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 성에 달라붙었던 마물들이 지금은 멀리 숲 근처까지 물러나 있었다.

더구나, 북쪽과 남쪽에도 거대한 먼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휘 막사에서 들은 마물 떼가 분명했다.

다른 요새를 무너뜨리고, 이제는 이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가오는 마물들이었다.

투레 백작의 시선에 따라, 다른 검호도 숲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요새는 전부 무너진 것일까요.”

‘마법사’의 말에 노인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차례로 연락이 끊어지고, 저렇게 마물들이 몰려온다면 다른 이유가 없겠지.”

두 사람이 멀리서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투레 백작은 전과 다른 마물들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물러서서 차분히 대기하고 있는 모습.

마물들의 모습은 인간의 군대처럼 보였다.

“정말 마왕은 마물들을 조종할 수 있는 거였군.”

투레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기를 바랬지만, 아쉽게도 신은 내 소망을 들어주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탑에서 마물을 조종하는 마물왕을 쓰러뜨린 뒤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 이건 기대로 끝나게 될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마물왕이 마물을 통솔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검의 파편을 얻은 뒤의 일.

마왕이 봉인될 때 얻은 능력이었다.

결국, 대전쟁 때 마물을 통솔해서 고대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은 마왕이 한 일이었다.

“결국, 마왕과 마물들을 같이 있게 하면 안 된다는 건데…….”

마왕이 마물들을 통솔할 수 있다면, 마물들과 전면전을 벌인 뒤 남은 병력으로 마왕을 쓰러뜨린다는 계획은 성공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다만, 마왕이 근처에 있지 않으면 마물을 통솔하기가 어려운 것 같기는 했지만, 다른 요새에 있던 마물들까지 불러오는 것을 보면, 통솔 범위가 엄청난 것 같았다.

“어디까지 되고, 거리에 따라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하려나?”

“그게 무슨 말인가?”

내 혼잣말을 투레 백작이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지금 성벽 위로 올라오는 귀족과 장교들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올라오는 귀족들의 지휘권을 잠시만 사용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게나.”

어차피 내가 준비시킨 인원이었다.

더구나, 정확한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그런 정확한 사정은 모르고 있었지만, 투레 백작은 내가 지휘를 하는 것을 승낙했다.

어차피, 공동 지휘관이었으니, 승낙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승낙을 받은 뒤, 나는 가슴 높이의 성벽 난간 위에 올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높은 성벽에서 폭이 좁은 난간 위에 올라서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지만, 모두 내 실력을 보았기에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난간 위에 올라선 채로 성벽 위를 훑어보았다.

성벽 위에는 방금 올라온 귀족과 장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백 명에 가까운 인원.

방어 능력과 방어 계열 유물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제국의 저력이 새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들도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마왕이 오고 있다는 소문을.

나는 모두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목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모두 주목.”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주위에 모인 귀족들 말고도, 멀리 떨어져 있는 기사와 병사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우선 모인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동안 불만을 참고 내 지시를 따라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이들은 내 계획에 따라 움직여주었다.

결국, 내 말로 움직일 사람들이었으니,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 남들이 싸울 때, 뒤에서 욕을 먹으며 훈련했던 것을 써먹을 시간입니다.”

내 말에 몇몇 귀족들은 피식 웃어 버렸다.

사실, 귀족들을 뒤로 빼놓은 뒤에 나는 이들을 놀고 있게 놔두지 않았다.

능력을 쓰는 것이라고 해도, 훈련 없이 실전에서 바로 사용할 수는 없는 법.

나 혼자 움직이거나, 검호들과 함께면 모를까, 평범한(?) 능력자인 귀족들은 서로 간에 합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틈나는 대로 나와 함께 훈련을 해왔었다.

물론, 그 와중에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귀족 몇이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그 항의는 내 물리적인 대답을 듣고는 바로 조용해졌었다.

지금도 내 말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바로 잠잠해졌다.

나름 기세를 펼쳐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건 이들도 준비는 된 듯했다.

그때였다.

척. 척. 척.

멀리, 정면의 마물 진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던 마물들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번 삶에서도 본 모습.

바로 마왕이 등장할 때의 광경이었다.

“자기도 왕이라 이건가.”

처음 봤을 때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깨닫지 못했지만, 다시 똑같은 광경을 보니, 전생의 중세 왕들이 자신의 세를 자랑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일종의 퍼포먼스랄까.

하지만, 두 번째로 보게 된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마물들의 질서정연한 움직임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쿵. 쿵. 쿵.

마물들이 좌우로 움직여 진영 중앙에 길을 만들고, 동시에 마물 전체가 똑같이 발을 구르는 모습은 다시 보아도 대단하긴 했다.

“정말 마왕이다.”

“마왕이 진짜로 있었어.”

“우리는 다 죽는 걸까?”

사실, 퍼포먼스 한 번에 이쪽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으니,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잠시 뒤 마왕이 등장하자, 애매하게 변했다.

마왕이 나타난 숲 언저리는 요새에서는 보통 사람이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리였지만,

이곳에는 눈에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마왕을 보게 되었고,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인데?”

“저게 마왕이라고?”

“인간형 마물인가? 근데 너무 작잖아. 우리하고 다를 바 없는데…….”

하지만, 마왕을 본 모두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 아니죠. 저렇게 무서운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저렇게 작은 몸에 이런 기세를 담을 수 있는 건가…….”

여자 검호의 말에 노인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마나가 밀려나는 느낌이 들다니……. 이런 적은 처음인데…….”

‘마법사’는 나타난 마왕을 보고 손을 떨었다.

투레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실핏줄이 솟구칠 정도로 검을 움켜잡고 있었다.

모두가 마왕을 보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기세에 눌리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본 상대였다.

아직도 벽은 높고, 찾은 방법은 다시 막혀버렸지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마왕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모두에게 소리쳤다.

“모두 정신을 차려요! 마왕이 공격합니다!”

마물들이 만들어낸 길로 천천히 걷던 마왕이 점차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검이 들려 있었다.

대충 아무 곳에서나 주운 것처럼 보이는 검.

하지만, 나는 저 검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가슴에서 검을 꺼내며, 모아 놓은 귀족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전부 능력을 펼쳐!”

존댓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새 성벽 앞까지 다가온 마왕이 위로 훌쩍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동안의 훈련이 통했는지, 내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백 명에 가까운 귀족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

마나가 뿌려지고, 방어막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백 개나 되는 크고 작은 방어막이 성벽 위에 펼쳐졌다.

동시에 성벽 위로 치솟은 마왕의 검이 환하게 빛을 발했다.

저번 삶과 똑같은 능력과 기술이었다.

다시 봐도 정말 대단한 기술이었다.

저 빛에 비하면, 성벽 위에 펼쳐진 백 개의 방어벽은 작은 거품 방울일 뿐이었다.

하지만, 저 빛에 비해 거품 방울이 약한 것은 마나가 부족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마나를 보충할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검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빛 속에서 마왕의 눈이 조금 커진 것을 본 것 같았다.

마왕이 무슨 표정을 짓건 간에, 나는 검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용사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검의 정령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내가 밀어 넣은 마나가 미친 듯이 증폭되었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검이 마왕이 들고 있는 검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왕의 검.

아니, 전쟁 신의 검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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