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90화 (490/563)

제490화

제15편 검호

모아온 병력을 배치하고, 마물들을 방어할 준비를 하는 동안, 차례로 봉인지 쪽에서 소식이 들어왔다.

봉인지에 나가 있던 제국의 모험가들과 정찰을 떠난 용병들이 가져온 소식이었다.

전과 다른 봉인지의 모습을 전해오던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그 소식을 요새 안에 임시로 만든 지휘 막사에서 듣게 되었다.

원래 요새에는 제대로 만들어진 지휘소가 따로 있었지만, 그 지휘소는 요새가 반파될 때 부서져 버렸다.

“봉인지에 정찰을 나간 모험가와 용병들의 연락은 전부 끊어졌습니다.”

정찰을 담당한 기사의 침중한 말에 모두 고개를 저었다.

침음을 흘리는 사람들 사이에, 관록이 가득해 보이는 중년 귀족이 입을 열었다.

“봉인지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끊어졌다는 것만으로는 봉인지 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군요.”

말을 한 중년 귀족은 요새로 찾아온 다른 검호였다.

제국 서쪽에 큰 영지를 가지고 있는 영주로 그는 ‘마법의 검호’로 불리고 있었다.

사실, 이 세상에서는 ‘마법’과 ‘마법사’는 동화책에만 등장하는 이름이었다.

고대 제국 전에는 실제로 그렇게 불리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 중년 귀족도 실제로 다양한 마법을 써서 그렇게 불리는 게 아니었다.

단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양하게 활용해서 여러 개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의 말에 옆에 앉아서 나를 노려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가서 알아 올까? 나라면 들키지 않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노인의 말에 중앙에 앉아 기사의 보고를 받던 투레 백작이 혀를 찼다.

“올 때도 마차를 타고 왔지 않은가. 가다가 허리가 삐끗하지 않을까 모르겠군.”

항상 점잖고, 고지식한 투레 백작이 저런 말을 하다니.

마차를 볼 때의 미소에서도 느꼈지만, 투레 백작은 저 노인과 정말 친한 모양이었다.

“아직은 괜찮아. 지금도 내가 기세를 죽이면 이 안의 사람 중에 바로 나를 찾을 사람은 아무도……. 아니 한 사람밖에 없어.”

노인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다시 노려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 거야.”

그렇게 나를 노려보다가 노인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올 때는 보자마자 한바탕 손이나 섞어 볼 생각이었는데……. 꼴을 보니 정말 싸우다 허리가 나갈 것 같아.”

노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투레 백작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실력이 좋은 기사였지만, 투레 백작처럼 실력이 특출나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내가 보아온 누구보다도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의 기세도 그만큼 잘 파악하는 듯했다.

마나를 눈으로 보지는 못하는 듯했지만, 변하는 내 기세를 눈으로 좇는 것을 보니, 그는 거의 내 감각을 따라오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처음 나를 볼 때부터 계속 나를 노려보았고, 자주 투덜거렸다.

시선에 신경을 쓰느라 조금 피곤해졌지만, 덕분에 좋은 점도 있었다.

그가 나를 인정한 덕분에 다른 이들이 나와 대련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 말한 중년 남자는 물론, 한쪽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성까지.

요새에 온 마지막 검호인 그녀는 무척이나 창백한 얼굴만큼 사람들과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래도 성격은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다른 검호들은 그녀를 무척이나 꺼림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대련하지 않게 되었다지만, 다른 검호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이 말을 멈추자, 중년 귀족이 나를 힐끗 본 뒤에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건 마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군요. 그렇다면, 오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있겠군요.”

그는 특별히 누구에게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는 그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장교와 귀족들을 후방으로 돌린 이유를요. 분명, 제대로 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는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다른 검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투레 백작은 물론, 말이 없던 여성 검호까지 나를 바라보았다.

요새에 와서 병력을 배치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약간의 조언을 할 뿐 투레 백작과 다른 이들이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명예직이라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고, 투레 백작도 내가 터치를 하지 않자, 스스로 나서서 열심히 병력을 지휘했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해하고 있을 때, 나는 모두에게 한가지 명령을 내렸다.

조금 전에 ‘마법의 검호’가 말한, 방어 능력을 가진 능력자의 후방 배치였다.

사실, 방어 능력을 지닌 귀족만 뒤로 무른 게 아니었다.

방어막 유물을 가진 자도 뒤로 보내고, 요새를 뒤져 방어막 유물도 전부 찾아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뜬금없는 내 지시에 반발했다.

투레 백작도 이해가 안 되는 듯했고.

하지만, 나는 이 명령 하나는 절대 무르지 않았다.

따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고.

결국, 불만에 찬 채로 사람들은 내 지시를 따랐다.

지금 보니, 마물들과 싸울 때 내 지시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검호들부터 먼저 들고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의 말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휘 막사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을 때, 병사 한 명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투레 백작에게 큰소리로 보고 했다.

“관측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봉인지에서 대규모 이동이 파악되었답니다.”

병사의 말에 가라앉은 분위기가 바로 달아올랐다.

“대규모 이동?”

노인의 물음에 병사가 다시 대답했다.

“마물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쪽, 저희 쪽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중년 귀족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병사에게 물었다.

“얼마나 몰려오는 거지? 설마, 마물 왕들이 뛰쳐나왔을 때보다 심한가?”

그의 물음에 병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관측지의 연락으로는 봉인지의 마물 전부가 다 움직인 모양입니다.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마물이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병사의 말에 여태껏 조용하던 여자 검호가 입을 열었다.

“봉인지 마물 전부라고요?”

생각보다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에 이어, 귀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조직이 허풍을 친 게 아니라는 건가.”

놀란 ‘마법사’에 이어 노인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클, 왜 은퇴한 나까지 불러냈나 했더니, 봉인지의 마물들이 몽땅 쏟아져나오는 일이었나? 설마 마왕이라도 봉인을 불고 나오는 건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조직도 나도, 다른 이들에게는 마왕이 봉인을 풀고 나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조직은 내 말을 백 프로 신뢰하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먼저 공포에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제국의 일이었다.

나는 조직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조직의 말을 따르는 것은 마물들이 움직이기 전까지였다.

직접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비밀로 할 이유가 없었다.

내 말에 검호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투레 백작도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방어 능력을 가진 귀족들을 후방에 보낸 것도?”

“네. 마왕 대비용입니다.”

마왕 대비라고 보다, 테스트용에 가까웠지만, 제국 입장으로는 이 정도 대비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럼 설마, 대전쟁이 다시 벌어지는 건가?”

노인의 말에 ‘마법사’가 벌컥 화를 냈다.

“이런 건 미리 말해줬어야!”

나는 투구를 쓴 채로 고개를 저었다.

“믿어주질 않았습니다. 조직도 반신반의 정도로 믿어준 덕분에 겨우 이렇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좀 더 노력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믿어주었을지도 몰랐다.

내 신분을 밝히고, 내 능력을 알리면서 모두를 설득했으면, 조직도 황제도 모두 제대로 믿고, 더 지원해 주었을지도…….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내 영지와 왕국의 여왕에게는 마왕에 대해 말해 놓았었다.

왕국도 내 영지도 마왕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었고.

하지만, 내 나라도 아닌 제국에게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미리 말해주는 것이 좋았을지, 아니면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게 좋았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내 생각이 어떻든 간에, 사람들은 내 대답을 수긍했다.

“확실히……. 지금도 믿기지 않는데…….”

‘마법사’는 끄덕이며 내게 사과했고, 노인은 막사 밖을 보며 혀를 찼다.

“알리지 않을 만하군. 병사나 기사들의 동요가 장난이 아닐 것 같구먼.”

그리고, 투레 백작은 침중한 어조로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비밀로 하도록. 마왕이 등장할 때까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네.”

그는 조직과 같은 결정을 내린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는 순간, 나는 우리 주변에 방음벽을 펼쳐 두었었다.

방음벽 안에 있던 사람들은 투레 백작과 검호들뿐.

소식을 가져온 병사와 기사도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결국, 마왕이 봉인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나와 투레 백작, 검호들만 알게 되었다.

소식이 전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새에서도 몰려오는 마물들이 보였다.

하늘과 땅, 봉인지 방향의 모든 곳에는 마나가 가득했고, 동쪽 봉인지 밀림은 다가오는 마물 때문에 숲 전체가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바람에 밀밭이 춤을 추는 것처럼, 거대한 숲이 춤을 추었다.

마나를 볼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었지만, 출렁이는 숲만 보고도 기사와 병사. 요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숨을 멈추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간신히 꺼낸 마법사의 말에 노인이 신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기세군. 이거 막을 수 있으려나…….”

움직이는 숲만이 아니라, 노인은 주변에 펼쳐진 기세와 살기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충격을 받는 게 당연했다.

“마물 왕들이 마물들을 끌고 왔을 때, 그런 대단한 광경은 다시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금방 더한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나마, 얼마 전에 비슷한 광경을 보았던 투레 백작은 다른 이들보다 덜 놀란 것 같았지만, 그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더 대단한 마물 군단을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숫자와 힘만으로 밀고 오는 게 아니라, 전략과 전술을 갖춘 마물의 군단을.

그리고, 그 군단과 한참을 싸웠었다.

따지고 보면, 방어 병력은 지금이 더 많았다.

검호로 불리는 실력자도 더 많았고.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은 해 볼 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잘하면 여기서 마물의 진군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할까.

물론, 그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마물들 뒤에는 그 ‘마왕’이 있었다.

마왕을 막지 못한다면 전부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투레 백작이 비장한 얼굴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마나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군! 무기를 들어라! 우리 뒤에는 제국이, 가족이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제국을 지킨다!”

심금을 울리는 외침.

요새의 모든 이들은 그의 외침에 검을 치켜들었다.

“제국을 위해!”

거대한 외침이 요새를 울리자, 숲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크아아아앙!”

마물들의 괴성들.

마치 사람들의 외침에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외침과 괴성이 사라지기 전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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