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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87화 (487/563)

제487화

제12편 금고지기 (3)

생각 이상으로 노인은 강했다.

아니, 노인이 강한 게 아니라, 노인이 가지고 있는 유물들과 노인의 유물 활용 능력이 대단했다.

더구나, 오래된 유적이자 집을 유물처럼 활용하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쾅! 콰앙! 쾅!

어두운 밤.

제국 수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장원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제국 수도 차르마니아의 성벽에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타오르는 불.

장원 안에 있는 저택이 불타오른 것이다.

수백 년을 버틴 건물이 반파된 채로 불타고 있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이었기에 살아남은 사람은 많지 않은 듯했다.

그나마 무사한 사람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저택의 불을 끄려 했지만, 불붙은 저택은 우물에서 떠온 물로는 꺼지지 않았다.

저택에 있던 두 사람, 이 장원의 주인과 그의 아들이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장원의 주인이 있던 집무실은 박살 난 채로 지금도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당연히 접근도 못 하고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장원의 주인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더구나, 사람들은 주인의 아들이 저택에 온 것은 알지도 못했다.

그 아들이 타고 온 마차는 첫 폭발에 휘말려 박살 나버렸다.

마차가 박살 날 때, 마부도 죽었고.

평범한 화재라면 마나를 가진 마부가 휘말려 죽었을 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저택에서는 전부터 크고 작은 폭발과 이상 현상이 일어났었기 때문이었다.

전부, 각국의 비밀 창고와 금고에서 빼낸 유물을 연구하다가 생긴 사고들이었다.

당연히 장원의 주인은 사고의 이유를 고용인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 장원을 귀신이 붙은 곳으로 여기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번 화재도 그런 일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걱정해온 일이 드디어 벌어진 것이라고…….

나는 그때, 멀리 떨어진 벌판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원을 보고 있었다.

지금 저택을 태우고 있는 저 불은 나도 기겁을 하게 만들었던, 그런 공격이었다.

저 불은 자신의 공격들이 소용없게 되자, 노인이 자폭 비슷하게 터트린 불이었다.

끈적거리는 느낌의 마나로 만들어 낸 불.

백린탄이나 네이팜탄 같은 느낌의 불이라 질색을 하고 몸을 피했었다.

무척이나 잘한 일이었다.

저 불은 한번 붙으면 도무지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나도 전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휘말릴뻔했다.

그렇게 나는 다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전부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저택 전체에 불이 붙기 전에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고,

불을 일으킨 사람과 그의 아들도 온전히 불을 피하지 못했다.

지금 내 앞에는 화상을 입은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금고지기와 그의 아버지인 노인이었다.

들을 이야기가 있어서 둘을 데리고 빠져나왔지만, 나와 달리 두 사람은 엄청난 화상을 입고 말았다.

불도 잘 꺼지지 않아, 옷가지는 물론 살도 잘라내야 했으니, 포션을 써도 고통을 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두 사람을 보았다.

생각해보니, 노인은 물론이고, 금고지기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걸까.

아무튼 이대로는 정보를 얻기는커녕, 무덤만 두 개를 만들고 끝날 듯했다.

나는 신검을 꺼내 마나를 불어넣은 뒤, 두 사람 몸에 각각 가져다 댔다.

화아아악.

검에 빛이 흐르고, 두 사람 몸에 가득했던 화상이 빠르게 치료되었다.

거친 숨이 많이 가라앉았고, 벗겨진 피부에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의 숨이 어느 정도 돌아오자, 바로 검을 거뒀다.

아직, 화상이 모두 나으려면 멀었지만, 다 치료해줄 생각은 없었다.

대답이 가능할 정도면 충분했다.

숨이 돌아오자, 노인이 숨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 분명, 마물 왕도 상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것인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유물만으로 그 정도 준비해 놓은 것은 감탄할 만했다.

결국, 나도 따지고 보면 도망친 것이었으니.

“그, 그건 그가……. 컥.”

그의 말에 어느 정도 회복된 금고지기가 대답하려 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다시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나는 아들이 하고자 했던 말을 해주었다.

“마물 왕을 상대하는 정도로는 무리입니다. 나는 마물 왕도 쓰러뜨렸으니까.”

내 말에 노인이 억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보게 된 것은 투구를 눌러쓴 용병 차림의 남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신음을 흘리며 내게 물었다.

“그, 그럼, 왜 우리를 살려준 거지?”

궁금할 만했다. 확실히, 나는 두 사람을 살려놓았다.

죽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 속에서 구출한 것이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나는 정중한 어조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내 대답에 그는 이리저리 눈을 움직였다.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듯했다.

하지만, 고통이 그의 잔머리를 멈추게 했다.

그는 인상을 쓰며,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대답하면 살려줄 텐가?”

나는 옆에 누워 멍하니 우리를 보고 있는 금고지기를 가리켰다.

“금고지기, 아드님을 보셨잖습니까. 아드님과 한 계약은 거짓말로 한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감시했을 뿐입니다. 그가 계약을 지켰다면 나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겁니다.”

내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실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나는 계약 때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내가 다시 나섰을 때도 금고지기가 말을 꺼낸 뒤였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한 말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말이었으니…….

역시, 노인도 유혹에 걸려들었다.

그는 내 말을 믿고, 달려들 듯이 내게 말했다.

“그럼, 나와도 계약을…….”

“네. 그렇게 할 겁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지만, 금고지기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술이 깨고 이성을 찾게 되니, 노인과 달리 아들 쪽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들 쪽에는 볼일이 없었다.

나는 아들 쪽은 신경을 끊고, 노인에게 물었다.

“나에 대해 차도프 자작에게는 들은 게 없나 보군요.”

“차, 차도프 자작에 대해서도 알다니……. 아, 그렇군, 수도 앞에서 마물 왕을 쓰러뜨린 용병이 자네였지. 으윽, 그럼 벌써 2 황자가 차도프 자작 파벌과 손을 잡은 건가.”

노인은 고통 속에서도 내가 마물 왕을 잡았다는 정보를 가지고 빠르게 추측을 이어갔다.

그는 2 황자와 조직안에 있는 차도프 자작의 파벌이 손을 잡고, 나를 보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듯한 추측이었지만, 전제부터 잘못되었기에 그의 예측은 전부 틀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별문제가 안 될 오해였고, 문제가 되는 오해라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해하게 된 덕분에 대화는 더욱 부드러워졌다.

노인이 잘만 대답하면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철석같이 믿게 된 것이다.

“제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아……, 차도프 경에게 자세히 못 들었던 모양이군.”

그 뒤로 노인은 계속 말을 늘어놓았다.

노인은 대답 사이에 계속 반문과 설득을 끼워 넣었다.

노인은 화상의 통증 속에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나와의 대화에서 이익을 얻으려 한 것이다.

나는 그런 쓸데없는 소리도 다 들어가며, 그에게 원하던 정보를 계속 얻어냈다.

몇 가지 질문 끝에 나는 고문을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조직 내부의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었고, 귀족을 강제로 각성시키는 능력을 가진 ‘현자’라는 이의 정보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까지.

“사실, 마왕이 봉인을 풀고 밖으로 나오면 제국도 대륙의 인간들도 그를 막을 수 없지. 사실 죽은 예언가의 예언도 그런 거였고, 대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기록도 그렇게 남아 있었고. 그 시설의 용사들이 없다면 이번에 침공은 인간들이 버티지 못할 거야. 그래서 우리는 대륙이 멸망해도 인간이 살아갈 곳을 만들었지.”

노인, 조직의 원로라는 이들은 마왕을 막아내려는 이들과 달리 대피처를 만들고 있었다.

발레아가 만들고 있는 지하 도시와 달리, 일부의 귀족만 피난할 수 있는 그런 피난처.

노인은 자신과 손을 잡으면, 나에게도 한자리를 줄 수 있다며 나를 꾀었다.

내가 지긋이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정색하며 내게 말했다.

“공간 이동으로 가게 되는 곳이라, 그 위치는 아무도 모르네. 나도 모르니, 나를 겁박해도 알아낼 수는 없을 걸세.”

확실히 그런 식이라면, 당장은 알아낼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는 노인이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살아날 수 있다고 믿게 되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 텐데…….

아쉽지만 이제 현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저택을 불태우던 불은 더욱 켜져 이제는 장원 전체를 태우고 있었다.

덕분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외진 장원이었지만, 불길을 보고 사람들이 달려올 시간이 된 것이다.

다른 장원이나, 수도의 기사와 병사들까지.

그들이 오면, 휑한 벌판에 있는 우리도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다.

나는 신검을 들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왜, 갑자기…….”

“조금 전에 당신의 몸을 치료한 것은 이 검의 능력입니다. 포션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런 유물이 있다……. 설마! 셀린의 신검인가?”

대를 이어 유물을 다루는 집안답게 노인은 금방 검을 알아보았다.

나는 검을 알아본 노인을 칭찬하는 대신, 설명을 이어갔다.

“이 검으로 몸을 베어내며 동시에 상처를 치료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름 좋은 고문법이지 않을까요?”

발레아가 있다면 신검을 그런 식으로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런 일에 열심히 일하는 발레아를 불러올 수는 없었다.

내 말에 노인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계약해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지푸라기를 붙잡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지만,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 지푸라기를 잘라버렸다.

“거짓말입니다.”

“그런!”

노인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자, 옆에 있던 금고지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늙으신 분입니다. 아버지를 고문하지 마시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시죠.”

“그렇지 않아도 물어볼 생각입니다.”

노인에게만 쓸 생각은 없었다.

금고지기도 어찌 되었건 계약을 어긴 상황이었다.

노인이 한 말을 검증하려면 아들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아들이 대답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우선, 공간 이동진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들어야겠군요. 피난처의 위치는 몰라도 공간 이동진이 어디 있는지는 알 테니.”

내 말에 노인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내 말에 충격을 받은 걸까? 아니면 화상의 고통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이제 더한 고통이 그에게 가해질 테니.

나는 우리를 감싸는 방음벽을 펼치고, 치유력을 가득 불어넣은 신검을 노인을 향해 휘둘렀다.

그가 너무 다치지 않을 정도로.

예상대로 방음벽 밖으로는 아무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 * *

잠시 뒤, 방음벽을 걷었을 때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처럼 두 사람이 내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처럼 화상이 가득한 모습이 아니라, 몸은 모두 치료되어 오히려 건강해 보였다.

내가 신검으로 두 사람을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쓰러져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

내 말에 두 사람은 움찔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옷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어디 다친 곳이 없이 내 말에 따라 똑바로 내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원래의 노인과 금고지기의 모습이었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의 눈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데드가 된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바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저택으로 돌아가라. 불 속에 몸을 던져 다시 죽은 거다.”

기껏 조직과 손을 잡기로 했는데, 의심을 살 수는 없었다.

평상시에도 화재나 사고가 많은 집이었으니, 집 안에 두 사람의 주검이 있으면, 실수나 두 사람이 싸우다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터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언데드들이 저택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불타는 저택에 도착한 노인과 금고지기는 불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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