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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78화 (478/563)

제478화

제3편 마지막 파편 (2)

만약을 위해 다른 준비들을 해 놓는 것은 똑똑한 마물 왕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대는 마물답지 않은 훌륭한 전술가였지만, 이쪽도 전술을 모르지는 않았다.

나도 어렸을 때는 전생의 기억으로 천재로 불렸고, 많은 삶에서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거쳤다.

상대를 마물이 아니라, 똑똑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대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탑을 오르는 동안, 마물 한 마리를 탑의 반대 방향으로 따로 날려 보낸 것이다.

그리고, 뜬금없는 부패독 공격으로 마물들과 함께 추락하게 되었을 때, 따로 날려 보낸 마물에게 내 몸을 전송한 것이다.

해골이 일으킨 언데드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마물들은 내가 직접 일으킨 언데드들이었다.

내 소유인 언데드로 전송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옥상에 내려선 뒤, 마물 왕과 대화를 해보려 했다.

저번 삶에서 저 마물이 인간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대화를 원하지 않았다.

마물 왕은 내 인사에 대답하는 대신, 고목 같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크아아앙.

마물 왕이 나를 가리키는 순간, 옥상에 있던 마물들이 모두 나에게 달려들었다.

손에 칼날이 달린 곤충 같은 마물도, 돌 거인 같은 마물도, 앞뒤 가리지 않고 내게 달려든 것이다.

더구나, 부패독을 뿌리던 지렁이 마물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몸이 쪼그라들 정도로 연기를 뿜어냈다.

얼마나 무식하게 뿜어내는지, 시야가 가려져서 코앞도 안보일 지경이었다.

앞이 안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마나가 보였다.

서걱. 서걱.

대검을 뽑아 휘두를 때마다 마물이 잘려 나갔다.

마나로 몸을 강화한 마물도 내 검에 속절없이 잘려 나갔고, 양손에 달린 칼날이 마나로 빛나던 마물도 칼날이 부서져 나갔다.

나는 그렇게 덤벼드는 마물들을 차례로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물 왕이 서 있던 곳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덤벼오는 마물이 없었다.

그리고, 마물 왕도 그 자리에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 도망칠 생각이었나…….”

지렁이 마물들이 뿜어내고 있는 부패독은 이번에는 진짜 마물 왕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연막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마물이 사람을 보고 도망치다니.

더구나 마물 군단을 지휘하는 마물 왕이 인간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인간처럼 생각하는 마물이니 그럴만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연기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이 마물 왕은 마물 왕답지 않게 마나를 거의 드러내지 않아, 이런 연기 속에서는 찾기가 힘들었다.

잠시 서 있으니,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지렁이 마물들이 부패 독을 뿜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이런 높은 곳에서 연기가 유지될 리가 없었다.

이 옥상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연기가 가득 메웠던 것은 전부 지렁이 마물들이 가지고 있던 부패독을 모두 토해냈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대로 연기가 걷히자, 부패독을 토해내던 지렁이 마물들은 모두 말라비틀어진 채로 죽어 있었다.

내게 덤벼들었던 마물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죽어 있었고.

나는 죽은 마물들을 다시 일으켜 마물 왕을 쫓지 않았다.

이렇게 제대로 도망칠 준비를 해 놓은 마물 왕이었다. 지금 쫓아간다고 해도 금방 잡기는 어려울 터였다.

더구나, 이제껏 보아온 것처럼 무슨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멀러 떨어져 있는 마물들도 전부 불러 모았을 테니.

나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미리 준비해 놓았었다.

옥상에 내려선 순간, 내가 가진 최강의 무기를 소환한 것이다.

옥상의 반대편 끝.

마물 왕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옥상 일부가 늘어나 마물 왕을 매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 최강의 무기이자, 아내인 발레아가 서 있었다.

역시, 이 마물은 육체적인 능력이 대단치 않았다.

발레아에게 산 채로 잡힐 정도니, 마물 왕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저번 삶에서 왕국과 제국, 인간들에게 제일 피해를 준 것은 이 마물 왕이었다.

대전쟁 때, 고대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아마 이 마물 왕이 마물들을 이끌었기 때문일 터였다.

나는 한걸음에 마물 왕 앞으로 왔다.

발레아 옆으로 ‘전송’한 것이다.

내가 앞에 나타나자, 허공에 매달린 마물이 내게 말했다.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마물은 저항도 하지 않고, 내가 물으면 바로 대답할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로브 안으로 보이는 마물의 머리를 확인했다.

인간을 닮아 눈도 두 개, 코도 하나, 입도 하나였지만, 절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물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로브 안에 있는 마물의 머리는 겉으로 드러났던 팔처럼 마른 고목 나무 같았다.

말라비틀어진 거친 고목.

나는 저 머리를 본 적이 있었다.

마왕의 기억에서.

마물의 세계에 있던 마왕의 기억 속에서 고목 나무를 닮은 인간형 마물들이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었다.

그 마법진은 이쪽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고, 그 인간형 마물들은 모두 죽어버렸었다.

그 뒤로 본 적이 없어서,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있는 마물이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답.해. 주.겠.다.”

마물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렸다.

발레아는 인간의 말을 하는 마물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지만, 나는 예전에 들었던 말일 뿐이었다.

마물의 말에 발레아가 내게 물었다.

“물어볼 거라도 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어볼 게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발레아에게 산 채로 잡아두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저 마물은 내 질문에 답하면서 시간을 끌 생각일 터.

그사이에 다른 마물들이 달려오는 것을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마물이 가진 정보가 아니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마물의 몸속에 있는 검의 파편이었다.

마물을 죽지 않게 잡아두라는 것도, 잘못해서 파편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잠. 잠.깐.…….”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마물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전에 나는 발레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발레아는 내 신호에 맞춰 주먹을 움켜쥐었다.

콰직.

마물을 움켜쥐었던 탑의 일부분이 마물을 쥐어짰다.

고목나무가 으스러지고, 몸이 꺾여나갔다.

이 마물은 죽을 때도 식물처럼 느껴졌다.

발레아는 늘어뜨린 탑 일부분을 움직여 죽은 마물을 바닥에 눕혔다.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로브가 젖혀진 마물의 뒤통수에 검 파편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불쑥 튀어나왔던 탑의 일부분이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가자, 발레아가 휘청거렸다.

깜짝 놀라 그녀를 붙잡으니, 발레아의 몸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영역을 만드는 데 방해하는 게 없다면서요!”

내가 버럭 화를 내자, 발레아가 풀썩 웃었다.

“탑이 좀 이상해요. 영역을 만드는 걸 방해하지는 않는데, 제 요청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어요.”

그녀는 말을 듣지 않는 탑을 억지로 움직인 모양이었다.

나도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발레아가 쉽게 영역을 만들 수 있었다면, 탑을 드나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발레아는 영역을 사용해서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탑의 외벽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더구나 실수라도 했다면, 일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

나는 제대로 발레아에게 주의를 주려했다.

하지만, 발레아의 얼굴을 보니, 다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내 옷깃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왜 그녀가 말을 안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발레아는 쓸모없어진 자신을 내가 돌려보낼까 봐 말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같이 갈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숨기지 말아요.”

“……네. ……죄송해요.”

발레아가 입술을 우물거리다, 내게 사과했다.

생각해보니, 발레아에게 처음 듣는 사과인 것 같았다.

나는 발레아의 사과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그녀도 실수하고 사과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실 고개 숙인 발레아의 입가에 언 듯 미소가 스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건 내 착각일 터였다.

나는 발레아의 사과를 듣고, 바닥에 누워 있는 고목 나무의 머리에서 파편을 뽑아냈다.

검자루가 달린 검의 파편.

마왕의 검 파편이 맞았다.

그리고, 파편을 손에 쥔 순간.

시야가 어두워졌다.

파편의 기억이 시작된 것이다.

어두워졌던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뼈로 가득 찬 거대한 홀.

뼈로 만든 옥좌에 내가 앉아 있었다.

전에 본 적이 있던 곳이었다.

다른 파편의 기억 때 보았던 마왕의 성.

이곳은 마물 세상의 마왕 성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왕이 되어 있었다.

내가 빙의해 있는 마왕의 앞에는 인간형 마물들이 서 있었다.

방금 내가 죽인 마물 왕과 같은 종족이자, 우리 세계로 넘어오는 문을 만들었던 마물들이었다.

그 마물들이 마왕 앞에 서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마물들은 마왕이 무서워 몸을 떠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홀을 가득 메운 마왕의 마나에 저항하고 있었다.

고목나무 마물들의 머리 주변에는 붉은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마물들의 마나가 머릿속으로 스며들려는 마왕의 마나를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 아니 마왕의 머릿속에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 음성이라기보다 일종의 정보이자 의사소통이었다.

[오염된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정신을 붙잡고 있던 우리입니다. 왕께서는 강제로 우리를 계약시킬 수 없을 겁니다.]

맙소사. 계약이라니.

어디선가 본 듯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마왕이 저들에게 강제로 계약을 부여하려는 모습이었다.

저 마물들은 그 계약에 저항하고 있었고.

그 광경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 무력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데, 마왕은 마물에게 강제로 계약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설마, 그럼 다른 마물들도 계약 때문에 마왕을 따르는 걸까?

말도 안 되는 무력에 계약까지.

거기다, 마왕은 또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죽음을 거쳐 마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아직 나는 마왕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마왕의 능력에 저항하는 저 마물들도, 단순한 마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저건 인간과 달랐지만, 분명 인격을 가진 이 종족, 사람이었다.

[왕, 왕의 말대로 계약을 하겠습니다. 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고목 나무 사람들의 대표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우리의 생명을 마왕에게 바치는 대신, 우리 중 한 명을 다른 이들처럼 문을 넘게 해주십시오. 우리에게 희망을 남겨 주십시오.]

그의 말에 시야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마왕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냐. 살아남을 자는.”

마왕의 앞에 선 이들이 좌우로 비켜섰다.

그러자, 한 명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과 전혀 달랐지만, 어딘가 어리숙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이였다.

[우리의 마지막 자손입니다. 지혜도 지식도 갖추지 못했지만, 우리의 희망입니다.]

“좋다. 약속하겠다. 그는 살아남아 나와 함께 문을 넘을 것이다.”

마왕의 말을 끝으로 다시 시야가 어두워졌다.

기억이 끝난 것이다.

이번 기억은 마음에 안 들었다.

적의 사정이라니.

전쟁 중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마물이 아니라, 오염을 버텨낸 이종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내가 할 일은 달라질 게 없었다.

그래봤자, 대전쟁 때 제국을 멸망시킨 마물이었고, 저번 삶에서 영지를 무너뜨린 마물 왕이었다.

그는 내 적일 뿐이었다.

잠시 뒤, 다시 밝아진 세상에서 나는 내가 멸족시킨 일족의 마지막 시체를 확인했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어……. 마물 시체는?”

“슬슬 마물들이 탑으로 몰려오는 것 같아서 아래로 던져버렸어요. 던져 버리면 안 되는 건가요?”

발레아의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역시 괜한 감정을 가질 때가 아니었다.

마왕이 봉인을 부수기 전에 할 일이 많았다.

마지막 파편을 모았다.

이제, 이 파편을 하나로 합칠 차례였다.

나는 발레아와 함께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가슴에서 죽음의 성물을 꺼내 들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발레아 말대로 탑으로 마물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내가 죽인 시체들을 다시 되살렸다.

되살린 것은 탑 주변에 널려있는 하늘을 나는 마물들.

크르르르르.

떨어지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마물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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