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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73화 (473/563)

제473화

제23편 축제

사람들은 영지에 도착한 나와 발레아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나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먼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발레아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니, 어머니는 뭔가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부터 가끔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으면 고개를 저으실 뿐.

그래도 내가 삶을 반복할수록 저 표정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을 보니,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인지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그 대신, 저번 삶에서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발레아를 정식으로 백작 부인 자리에 올리겠습니다.”

“겨우 결심이 섰구나.”

“네.”

순서는 바뀌었지만, 어머니는 이번에도 기뻐해 주셨다.

“아쉽지만, 결혼식은 지금 하기 어렵겠구나. 정략결혼 상대와 같이 결혼식을 해야 할 테니…….”

이것도 저번에 들은 이야기였다.

저번 삶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얼마 뒤에는 마왕이 등장해 대륙을 쓸어버릴 터였다.

그 뒤에는 이런 관례와 형식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른 때였으면, 그런 관례는 집어치우고 거창한 결혼식을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지도 않을 일을 말해서 어머니를 걱정시켜 드릴 이유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결혼식 대신, 다른 것을 할 생각이었다.

“결혼식은 하지 않는 대신, 작게 피로연을 열 생각입니다. 그냥, 영주가 벌이는 작은 파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내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정도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문안 인사를 끝내고, 나는 집무실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발레아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응접실에 남았다.

집무실에는 저번 삶에서처럼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가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두 선임 기사들과 영주 대행을 맡고 있던 퇴역 기사, 우리 저택의 집사장과 셀린 여신의 마지막 신관까지.

저번 삶에서 마지막을 함께 했던 이들을 다시 보게 되자, 잘 움직이지 않던 감정이 다시 요동쳤다.

역시,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는 마왕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아쉽게도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

벤자민 선배였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와 함께 영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가 왕국 수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벤자민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제국에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쯤 이피로스 왕국에서 우리 왕국으로 돌아오고 있을 터였다.

그가 없으니, 미안하지만, 집사장과 함께 오헨 경이 일을 더 해 주어야 했다.

가벼운 인사 후 나는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자마자 지시를 내려서 미안하지만, 해 주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

내 말에 집사장은 자세를 바로 하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노기사도 한숨을 내쉬었지만, 내 말을 따라주었다.

“사흘 뒤, 도시에 대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영지민 전체에게 알려서 사람을 모아주십시오.”

“네? 갑자기 대공사를요? 하지만, 도시 안에 영지민들을 모을 정도로 큰 공사를 할 만한 곳은 없을 텐데요. 영주님이 다른 이들이 사는 곳을 그냥 부숴버리고 공사를 하실 것 같지도 않고…….”

집사장이 내 눈치를 보며 반문했다.

내 말에 전 영주의 전횡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의 말에 나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올려, 바닥을 가리켰다.

“지상에서 공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공사를 할 곳은 지하입니다.”

“네?”

내 말에 집사장과 오헨 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큰 공사는 발레아, 백작 부인이 진행할 겁니다. 일꾼들은 백작 부인을 도와주면 됩니다.”

“지하라고요? 물론, 발레아 님이 하신다면 문제는 없는데……. 어, 잠깐, 백작 부인이라고 하신 건가요?”

“네. 발레아를 백작 부인으로 세울 생각입니다. 내일 바로 공포할 겁니다.”

내 말에 모두 기뻐했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영지의 안주인이 세워졌군요.”

“너무 늦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저번 삶과 같은 반응들.

한 번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또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모두의 축하를 받은 뒤,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몇 명이나 모을까요?”

나는 집사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최대한 많이, 영지민 전체가 지원해도 상관없습니다.”

내 말에 집사장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다른 영지에서 무한정으로 식량과 자재들을 사들이십시오.”

“영지의 자금이 풍족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많지는 않습니다.”

“자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제국의 황실 금고에는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왕국 보물 창고에 있던 금은보화는 우습게 볼 만한 재화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황실 금고는 곧 우리 영지 지하에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자금도 그렇지만, 그렇게 물자를 모으면 주변의 영지도 그렇고 왕실에서도 이상하게 볼 가능성이 큽니다.”

오헨 기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해해도 상관없습니다. 기간은 두 달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두 달 정도가 지나면 더 모으기가 어려워질 겁니다.”

영지전을 준비한다는 오해를 사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두 달만 지나면 우리 영지에 관한 말은 쏙 들어갈 것이다.

그때쯤이면 봉인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로 모두 정신이 없을 테니.

“설마, 두 달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내 말을 들은 우고 기사가 질문을 던졌다.

“제국에서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봉인지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설마 마물 웨이브가 다시 벌어지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웨이브가 아닙니다. 봉인지에 있는 모든 마물이 군단을 이뤄 진군을 시작할 겁니다. 대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대전쟁이라는 내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집사장과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오헨 기사.

반신반의한 얼굴의 두 선임 기사까지.

그동안 내가 한 말을 다 믿어주었던 두 기사도 ‘대전쟁’이라는 내 말을 바로 믿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설마, 예언의 때가 온 겁니까?”

내게 물은 사람은 셀린의 신관 레스티였다.

그도 예언을 알고 있었다.

하기야, 그는 수백 년간 교단에게서 도망쳤던 셀린의 신관이었고, 지금은 교단 대주교까지 셀린의 신도였으니, 예언에 대해 아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도들을 모아 대피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니면, 이제부터 만드는 지하 시설로 대피하는 것도 괜찮고요.”

“설마, 지하에 만드는 게…….”

“네. 도시민 전체를 대피시킬 대피소입니다. 만약을 대비해서요.”

나와 레스티의 대화를 듣고,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굳었다.

그들도 대화를 듣고 겨우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이, 미겔이 입을 열었다.

“그런 대피소라면 차라리 피난을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평범한 웨이브나 전쟁을 생각하면 당연히 나올 만한 말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만약입니다.”

하지만, 그 만약은 마왕이 무사히 봉인에서 풀려난다면, 무조건 이루어질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번 삶에서처럼 급하게 지하 대피소를 만드는 대신, 커다란 지하 도시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도시민들은 물론, 영지민들까지 오래 지낼 수 있는 그런 도시를.

물론, 그런 지하 도시도 잠시 멸망할 시간을 늘려줄 뿐이겠지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전쟁이라는 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만, 집사장은 아직도 그 대전쟁을 실감하지 못한 듯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내게 현실적인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사흘 뒤에 시작하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씩 웃었다.

“내일부터 이틀 동안 축제를 열 생각입니다. 내 결혼과 새로운 백작 부인을 축하하는 축제입니다.”

내 말에 다들 묘한 표정들을 지었다.

물론, 영주가 영지 전체에 결혼 기념 축제를 벌이는 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 축제는 이틀 이상 벌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낸 영주는 조금 전 수백 년 만에 다시 대전쟁이 벌어진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만약을 위해 도시 아래에 거대한 지하 대피소를 만들자는 소리까지 했는데, 갑자기 축제라니.

다들 표정이 이상할 만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 축제는 꼭 해야만 했다.

이 축제는 결혼식을 하지 못한 발레아의 피로연이었고, 평범한 시절의 마지막 축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 축제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축제는 저번 삶에서 내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축제였다.

이 축제는 같이 싸운 이들에게 한 잔 술을 사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축제였다.

약속한 사람들에게 술을 돌리려면, 하루만으로는 부족했다.

시간이 부족하고, 벤자민 선배도 없었지만, 다음 날 축제가 시작되었다.

급한 축제였기에 큰 공연도 없었고, 유력자들을 위한 파티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창고를 열어, 식량과 술을 도시와 영지 전체에 풀어버렸다.

어차피, 축제가 끝나면 다시 채워 넣을 창고였다.

관리들은 영주의 갑작스러운 행패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다.

나는 발레아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저번 삶에서 내게 검을 치켜들었던 기사들과 잔을 마주쳤고, 돌을 나르던 영지민들의 잔을 채워주었다.

병사들과 어울려 군가를 불렀고, 용병들과 함께 발레아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둘째 날 밤. 영지의 광장에서 발레아와 춤을 추었다.

왕궁의 아름다운 무도회가 아니라, 영지민들과 함께 추는 거리의 춤이었다.

광장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 올랐지만, 춤을 추던 영지민들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모두 축제의 마지막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발레아도 나도 그들 사이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다.

환하게 웃는 발레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도 계속 웃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가…….’

수많은 삶 속에서 처음 느낀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내일부터는 또다시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일들을 다 잊고 발레아와 춤을 추었다.

즐겁게 춤을 추던 발레아가 나를 보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백작님이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나는 이 시간을 기억 못 하겠죠?”

발레아는 이제 내가 얼마나 많이 과거로 돌아갔었는지 알게 되었다.

발레아는 나와 같이 한 경험들을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회귀하더라도, 매번 기억하게 해 줄게요.”

이번에 마왕을 쓰러뜨리지 못하더라도, 이 축제는 계속 반복할 생각이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아뇨.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 일들을 혼자만 기억하는 백작님이 외로울 테니까요.”

발레아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외롭지 않아요. 이렇게 즐거운걸요.”

사실, 외로웠지만,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 말에 발레아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나를 떼놓으면 안 돼요. 저번처럼 나를 떼어놓고 몇 개월이나 안 돌아오면, 이번에는 내가 봉인지로 갈 테니까요.”

역시 저번 삶에서 일어났던 일을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으려나…….

나를 지긋이 쳐다보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녀와 함께 봉인지로 떠날 수 없었다.

발레아는 지하 도시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약속했다.

“매일 돌아올게요. 그리고, 마왕이 봉인된 유적에 도착하면 바로 부를게요.”

내 약속과 함께 축제가 끝났다.

일주일 뒤, 나는 봉인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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