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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71화 (471/563)

제471화

제21편 반복 (2)

2 황자가 수도를 장악한 것이 빨라진 이상으로 황제에게 연락이 간 것도, 저번 삶보다 훨씬 빨랐다.

좀비 거인을 공격해 기사 대부분과 병사들을 잃기 전, 첫 마물왕인 늑대인간을 잡고 난 뒤에 그에게 연락이 간 것이었다.

혹시나, 좀비 거인을 버려두고, 회군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황제는 이번에도 마물왕을 끌고, 수도로 회군했다.

전에 마물왕을 데려온 것은 병력이 부족해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얼마 뒤, 황제가 유인한 마물왕은 수도 앞까지 다가왔고, 나는 수도 밖으로 나가 마물왕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황제에게 병사와 기사들이 남아있었지만, 마물왕을 유인하는 기사들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대신, 유인하는 기사들 사이에 늙은 검호가 껴 있었다.

투레 백작이 이들과 같이 마왕을 유인한 것이었다.

황제 옆에 기사들이 충분하니 마물왕을 유인하는 쪽에 가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수도에 마물왕을 끌고 왔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를 만났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그는 마물왕을 수도로 끌고 올 생각이 없었다.

“연락병인가? 수도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피하라고 해! 우리가 다른 곳으로 유인하려 했지만, 방향을 안 바꾸고 있어!”

내가 달려온 것을 보고, 백작은 나에게 소리쳤다.

“이 마물은 다른 마물왕과 다르네. 도저히 죽일 수가 없네! 나와 기사들이 시간을 벌어볼 테니, 자네는 차르마니아로 돌아가 모두 피하라고 하게!”

그는 천천히 걸어오는 마물왕을 향해 검을 뽑아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황제가 기사들을 이끌고, 비밀 통로를 통해 황궁으로 가고 있네. 2 황자에게 알려서 피하라고 전해주게나.”

저번 삶과 달리, 투레 백작은 황제와 완전히 선을 그은 것 같았다.

나는 투레 백작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마물왕이 다른 곳으로 유인되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저 좀비 거인은 저번 삶과 마찬가지로 나를 추적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물왕은 저 멀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가 비밀 통로를 통해 황궁으로 가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과 달리, 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황제를 따라 비밀 통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비밀 통로는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저번 삶에서 황제가 비밀 통로를 통해 황궁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발레아에게 들었었다.

이미 들은 비밀 통로를 확인해 두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런 비밀 통로를 확인하는데 제격인 사람도 있었고.

쿠궁.

작은 진동과 함께 내 뒤쪽 수도 근처 땅이 길게 푹 꺼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땅속 동굴이 무너져서 땅이 꺼진 것처럼 보이는 긴 구덩이였다.

땅이 꺼지는 것을 보고 나는 투레 백작에게 말했다.

“비밀 통로는 지금 무너졌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붕괴로 황제와 같이 지하 통로를 지나가던 기사와 병사들은 태반이 죽었을 것이었다.

물론, 황제는 죽지 않을 것이다.

발레아에게 말해 놓았으니, 황제는 2 황자 앞에 무사히 서게 될 것이다.

황제는 2 황자의 몫이었다.

2 황자의 복수심은 황제를 직접 만나야 풀릴 터였다. 괜히 미리 죽여서 일이 꼬이게 할 수는 없었다.

황제 쪽은 잘 처리되었으니, 이제는 마물왕을 처리할 차례였다.

“도대체 자네는 누군가.”

내가 돌아가지 않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마물왕을 상대하려던 백작과 기사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2 황자를 도와주고 있는 기사입니다.”

백작의 질문에 나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저번 삶에서는 싸우다가 투구가 날아가 버려서 내가 누구인지 밝혀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다른 귀족 앞에서도 얼굴도, 이름도 드러내지 않았었다.

2 황자를 제외하면, 수도를 장악한 귀족 중에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저번에는 신분이 알려져서 곤란할 때가 많았었다.

기껏 예언자를 죽였는데, 신분을 들키다니.

조직안에 다른 세력이 있지 않았으면, 마왕을 만나기 전에 조직과 결판을 지어야 했을 터였다.

이번에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갑옷도 정말 평범했고, 투구로 얼굴도 잘 가려 놓았다.

다른 기사들과 다른 점이라면 들고 있는 검이 크다는 점밖에 없었다.

더구나, 목소리도 일부러 굵게 했다.

백작이 내 마나를 보지 않는 한 나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백작은 여유로운 내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더니, 내 쪽으로 마나를 보냈다.

타탁.

백작이 보낸 마나였지만, 스파크는 백작과 가까운 쪽에서 튀어 올랐다.

“나보다 마나량이 많다고?”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을 보고,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한참 아래로 보이는데……. 설마, 내가 파악하지 못할 실력자라는 건가?”

확실히, 저번 삶보다 실력 차가 더 벌어져 있었다.

내가 저번 삶의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백작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검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궁금한 것은 나중에 풀고, 달려오는 마물왕이나 처리하죠.”

마물왕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내 말에 백작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파악 못 할 실력이라면……. 자네가 지휘하게. 나와 기사들은 따르도록 하지.”

사실 혼자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백작과 함께 싸우면 시간도 줄이고, 잘하면 다른 기사들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죠. 그럼 백작님은 나와 함께 움직이고, 다른 기사들은 산개해서 내 지시를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을 하고, 나는 백작과 함께 달려오는 좀비 거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거인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제는 누더기 거인을 너무 많이 본 모양이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저 괴기하고, 징그러운 몸도 별로 징그럽게 보이지 않았다.

좀비 거인도 반가운지 나를 향해 괴성을 질렀고, 나는 백작과 함께 거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백작과는 호흡이 잘 맞았다.

실력 차이가 크게 났지만, 그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시선을 끌어 주어, 좀비 거인은 계속 내게 집중할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었다.

백작은 검을 휘두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만난 적이 있었나? 왜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거지?”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싸우기도 여러 번 싸워 봤고, 저번 삶에서는 이 마물왕을 둘이서 같이 상대해 보기도 했었다.

내 실력도 더 올라가고, 전에도 같이 싸워 본 상대였으니, 더 잘 싸울 수밖에 없었다.

저번 삶에는 베고 또 베어 내어 더는 회복을 못 하게 해서 마물왕을 쓰러뜨렸었다.

정말, 힘들기 그지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써 볼 생각이었다.

나는 공격을 피해 가며, 마물왕의 몸을 밟고, 머리 쪽으로 올라갔다.

마물왕의 머리에는 투구가 씌워져 있었다.

이제는 마물왕이 왜 투구를 쓰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구멍이 뚫린 마물왕의 두개골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두개골 속에 있는 검의 파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저 투구는 마물왕이 살아있을 때는 마물왕의 몸처럼 부서지지도 잘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물왕이 죽자, 투구도 내 검에 쉽게 잘려 나갔다.

마물왕이 살아있을 때 투구가 부서지지 않은 것은 마물왕의 마나 때문이었다.

아니, 마물왕 머릿속에 있는 검의 파편 때문이었다.

검의 파편이 투구를 지켜준다면 방법이 있었다.

잘될지 모르겠지만, 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잘 안되면, 저번 삶에서처럼 회복이 안 될 때까지 마물왕을 회칠 생각이었다.

백작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마물왕 투구 위에 올라선 나는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물 주머니에서 꺼낸 ‘검의 파편’을 투구에 가져다 댔다.

얼마 전, 봉인지 황궁터에서 가져온 ‘검의 파편’이었다.

마물 기사가 무한한 마나를 뿜어내게 했던 마왕의 검 파편.

마물왕 머릿속에 있는 파편과 같은 파편이었다.

나는 투구에 파편을 가져다 댄 뒤에, 반대편 손에 들린 대검을 힘껏 아래로 휘둘렀다.

캉!

엄청난 소리와 함께 투구가 종처럼 흔들렸다.

충격이 있었는지, 마물왕도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투구는 부서지지 않았다.

‘결국, 죽을 때까지 잘라내야 하는 건가…….’

내가, 투구 위에서 버티며 혀를 차는 사이, 거인은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손을 내려쳤다.

하늘을 덮으며 아래로 내려오는 거대한 손.

나는 그 손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쾅!

폭음과 함께 검이 튕겨졌다.

그리고, 나도 투구 밖으로 튕겨 나갔다.

내가 튕겨 나가는 순간, 거인의 손이 투구를 내려쳤다.

그 순간.

쩍!

뭔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손으로 내려친 마물의 머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앙!

거인이 비명을 질렀다.

됐다! 투구가 깨진 것이다!

나는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발버둥을 치는 거인의 몸을 밟고, 박살난 머리로 솟구쳤다.

투구가 깨져 안이 보이게 된 마물의 머리 안쪽, 깨진 두개골 안에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마물왕이 정신을 차리기 전, 두개골 안에 몸을 던져 ‘검의 파편’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이번에도 유물의 기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파편을 빼낸 뒤, 몸을 빼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좀비 거인은 쓰러졌다.

무한한 회복력이 사라졌으니, 좀비 거인은 제풀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좀비 거인은 바닥에 쓰러져 조금씩 숨이 약해져 갔다.

허물어지는 피부와 점점 약해지는 심장 소리.

이건 마물왕 답지 않은 허탈한 최후였다.

“돌아가죠. 황궁도 마무리되었을 겁니다.”

너무 빨리 싸움이 끝나서일까?

나를 경외하는 얼굴로 보는 기사들과 달리, 투레 백작은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머리가 약점이었나? 어떻게 자네는 그게 약점인지 안거지?”

나는 이미 한번 싸워봤기에 안 것이었고, 이 약점은 다른 사람이 알아도 쓸모없을 약점이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운이 좋았다.

나도 마물 기사의 검 파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빠르게 잘 해결되었으니, 이제 열심히 일한 보상을 얻을 때였다.

모두의 환호성을 받으며, 우리는 수도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발레아가 일을 잘 처리해서 황제는 2 황자 앞에서 죽게 되었다.

이번에도 2 황자가 조금 다쳤지만, 목숨은 괜찮아 보여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황제와 함께 지하 통로로 가던 병사와 기사들은 모두 땅속에 묻힌 모양이었다.

웬만하면 살려서 써먹고 싶었지만, 발레아도 그들을 살리기는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분명 발레아가 일부러 죽인 것은 아닐 터였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하루 동안 여러 일이 지나가고, 수도에 밤이 찾아왔다.

어두운 밤.

성벽 위로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불을 가득 피워 올렸지만, 마물왕이 쓰러져 있는 벌판에는 불이 닿지 않았다.

물론, 거인의 시체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평범한 광경을 계속 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모두 발레아가 만든 환상이었다.

병사들이 환상을 보는 사이, 발레아와 나는 죽은 거인 시체 앞에 서 있었다.

거인 시체 앞에서 나는 성물을 꺼내 들었다.

내가 꺼내 든 것은 죽음의 성물, 큐브였다.

나는 성물에 마나를 밀어넣었다.

우우우우웅.

큐브가 떨리고, 거대한 마물의 시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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