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70화 (470/563)

제470화

제20편 반복 (1)

마지막 신관이 죽었기 때문일까.

죽음의 신 성물, 큐브에게 인정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이 큐브가 온전한 내 물건으로 느껴진 것이다.

거기다, 해골이 수백 년간 쌓아온 마나를 모두 빨아들인 성물도 이제야 완전해진 것 같았다.

해골이 이 공간 전체에 계속 마나를 풀어놓았던 것도 이 성물을 복구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해골의 잔재도 사라졌으니, 이제는 이 성물이 나를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큐브를 유물 주머니에 집어넣고, 발레아와 함께 다시 제국으로 돌아왔다.

큐브와 함께 단검도 대주교의 방에 놓아두었기에 ‘장비 소환’ 능력으로 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게 무릎을 꿇었던 언데드들은 지하 도시에 남겨 두었다.

큐브가 완전해져서인지, 아니면 내가 큐브에 인정을 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얻은 언데드들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간제한이 없어져서 싸움에 써먹기에 딱 좋은 말들이 되었지만, 당장은 데리고 다닐 방법이 없었다.

언데드들은 유물 주머니에 들어가지도 않고, 유물 배낭을 가져가서 그 안에 밀어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죽음의 마나가 사라졌지만, 그 지하 도시의 환경은 유골과 미이라를 보관하기 알맞은 곳이었으니, 언데드들은 지하 도시에 놔두는 게 제일 좋았다.

그리고, 필요할 때 언데드를 부를 방법이 있었다.

무기와 사람도 ‘소환’할 수 있는데 언데드가 안될 리가 없었다.

내 소환은 마나를 가진 존재만 가능하긴 했지만, 언데드는 이미 마나로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샤를 백작님의 말대로 황제가 마물왕을 잡기 위해 오전에 친정을 떠났습니다.”

교단으로 돌아가니, 대주교 조아나가 황제의 친정을 알려주었다.

나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 대주교가 준비해놓은 술을 탄 차를 들이켰다.

따뜻한 차가 들어가자, 피곤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요 며칠 정신도 육체도 너무 바쁘게 움직였었다.

‘저장 시점’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마왕의 봉인을 풀 시간은 계속 다가오고 있으니, 마냥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나는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내 앞에는 반대로 무척이나 급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2 황자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잠시 쉬고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했지만, 그는 내가 차를 전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내가 잔을 내려놓기 전에 입을 열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을 받게 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그게 무슨 일이 되었건 간에!”

2 황자는 이번에도 복수가 제일 중요해 보였다.

하기야, 그에게는 저번 삶과 달라진 게 없으니, 복수심도 달라질 게 없었다.

지금 그는 복수가 끝난 뒤 제국을 넘기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황제 자리를 넘겨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그 자리를 받아봤자 처치 곤란일 뿐이었다.

나는 원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 그에게 물었다.

“수도 기사단장을 찾아갈 생각입니까?”

내 물음에 2 황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반문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거야 저번 삶에서 경험했으니,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발레아도 아닌데, 솔직하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황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 수도를 장악하려면 그를 먼저 만나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2 황자에게는 아는 척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았다.

나도 그렇지만, 그 같은 권력가들에게는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인간들은 꺼림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만 더 아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기사단장을 만나게 해드리는 것 말고도 한 가지 일을 더 해드리겠습니다. 일을 처리하는 데 방해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뽑아 주시죠.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2 황자는 눈을 끔뻑거렸다.

아직 황자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터.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대가는…….”

“저와 교단의 대주교에게 각각 계약 하나씩만 해주시면 됩니다.”

“계약 내용이 보상이겠군. 계약은 그 보상에 대한 보장일 테고.”

“네, 맞습니다.”

“좋아. 무슨 계약이든 전부 하겠네.”

2 황자는 대단한 각오를 한 모양이었지만, 사실 계약 내용 자체는 벌 거 없었다.

저번 삶에서 한 계약과 조금 달라질 뿐이었다.

그날 밤, 요하네스 황자는 수도 기사단장의 집을 찾아갔다.

저번 삶보다 하루빨리 방문한 것이었다.

시간이 달라졌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와 발레아가 집을 지키던 이들을 전부 정리하고, 황자는 기사단장의 충성을 받아냈다.

이번에도 연판장으로 반협박해서 받아낸 충성이었지만, 저번 삶에서도 별문제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터였다.

저번 삶에서처럼 황자가 기사단장과 함께 귀족과 기사들을 모으는 사이, 나는 조직의 지하 기지를 방문했다.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손을 잡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황제가 마물 왕과 싸우지도 않고, 회군하게 되는 일을 막아야 했다.

거기다, 지하 기지에서 찾아야 할 물건이 있었다.

바로, 기사단장에게 황자가 써먹었던 연판장이었다.

연판장에 적혀 있는 이름이 황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아니라, 조직원들이긴 했지만, 내게는 더 중요한 이름들이었다.

저번 삶에서 보았던 연판장이라, 아직 그 이름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연판장을 증거로 내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되어, 조직의 지하 기지는 저번 삶보다 하루빨리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도 일은 비슷하게 진행했다.

다음날 나는 대주교 조아나와 2 황자에게 조직의 연판장을 보여주었다.

2 황자는 조직 연판장에 들어가 있는 귀족들 외에 다른 귀족들을 끌어들였고, 나는 그사이 황자가 넘겨준 명단을 정리해 나갔다.

저번 삶처럼 수도에 소문이 돌았다.

2 황자가 돌아왔다는 소문과 황제가 미쳤다는 소문.

그리고, 소리 없는 암살자에 관한 이야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황자가 전 재상인 로마이어 백작을 끌어들인 날.

나는 다시 한번 버나드 자작의 아버지이자, 요하힘의 아버지인 시라흐 백작 앞에 섰다.

같은 일은 반복되는 걸까?

시간이 달라졌는데, 상황은 그때와 똑같았다.

시라흐 백작은 그때처럼 기사에게 당장 수도를 떠나달라는 재촉을 받고 있었다.

“귀족들을 암살하는 자가 있습니다. 수도 지부가 무너지고, 조직원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지금은 우선 수도를 떠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번 삶 때는 먼저 기사를 죽였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시라흐 백작님이죠? 백작님이 마지막입니다.”

실제로 명단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리가 끝났다.

남은 것은 시라흐 백작뿐.

일이 끝나면, 바로 쿠데타가 시작될 터였다.

그가 맨 뒤에 남게 된 것은 요하힘의 아버지를 두 번이나 죽이는 것도 꺼림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별로 의미 없는 일이었지만…….

그동안 의미 없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 마음이 제일 중요했다.

“누구냐!”

“2 황자를 돕고 있는 사람입니다. 2황자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죠.”

백작의 물음에 나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설마……. 진짜 황자가 살아 돌아온 건가?”

“네. 내일 황궁으로 가실 겁니다.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은 제가 전부 죽였고, 다른 귀족들은 전부 끌어들였습니다. 복수심에 불타고 계시니, 황후와 황제의 자식들은 온전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이어지는 내 자세한 설명에 백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와 달리, 그의 앞에 서 있던 기사는 버럭 화를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감히! 그런 짓이 용서될 거로 생각하느냐!”

꽤나 고지식한 말을 내뱉으며 달려드는 기사의 검은 내 예상보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우리 왕국이었으면, 한 영지의 기사단장까지 노려볼 만한 실력이었다.

역시, 제국의 힘과 조직의 인력 풀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몸을 움직여 빠르게 다가오는 검을 피해냈다.

내가 검을 피해 문 옆으로 이동하자, 그는 다시 나를 공격하는 대신, 문밖으로 그냥 달려 나갔다.

기사의 말과 내게 내지른 검은 모두 거짓이었다.

기사는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문밖으로 도망치는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놔둬요.”

[네.]

지면을 통해 발레아의 말이 들려왔다.

기사가 도망치려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도망치려고 계속 눈치를 보고 있는데 나 정도 실력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원하던 정보도 다 알려 준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왜 그를 놓아준 거지?”

시라흐 백작의 물음에 다시 대답했다.

“일정을 좀 당겨야 했습니다. 지금쯤이면 일정 자체가 틀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사실 더 빨리 황제에게 알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황제가 좀비 거인을 데리고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사실, 내게는 2 황자가 정권을 잡는 것보다, 황제가 끌고 오는 마물 왕이 더 중요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물 왕 머릿속에 있는 검 파편이 필요했다.

검 파편의 기억을 보게 될수록, 검 파편을 모두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편으로 보는 기억도 중요하고, 검 자체도 중요했다.

파편만으로도 무한한 육체 수복과 무한한 마나가 가능한 검이었다.

온전한 검이 되면, 어떤 능력을 지니게 될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였다.

나머지 한 개의 파편도 어느 마물에게 있을지 짐작이 되었다.

나는 그 마물을 잡아, 파편을 다 모은 뒤에 공녀에게 검의 수리를 맡길 생각이었다.

내가 회귀를 이용해서 실력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강한 마왕을 상대하려면 그 검이 꼭 필요했다.

내 말에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기사도 떠났는데, 아직도 내 질문에 잘도 대답하는군. 성격인가? 아니면 나를 놀리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요하힘의 부친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작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로서의 예의이기도 하고요.”

“요하힘이라고? 설마, 자네가 알렉스?”

“네. 조직에서는 적대자라고 부르고 있죠.”

결국, 저번 삶과 비슷한 문답이 이어졌다.

백작은 검을 뽑아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군. 내가 조직에 들어간 이유가 자네 때문이었군.”

“네.”

내 담담한 말에 백작은 혀를 찼다.

“버나드가 그 이상한 남자의 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저번 삶과 다른 말을 꺼낸 뒤, 내게 달려들었다.

“어쨌거나 아들들의 원수이니, 끝을 보지.”

백작의 검은 저번 삶에서 보았을 때처럼 멋진 검이었다.

첫째 아들이 왜 뛰쳐나갔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다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력이…….”

심장에 검이 박힌 백작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쓰러졌다.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을 뿐이었다.

그가 대단하게 보는 내 실력은 마왕에게는 닿지 않는 실력이었다.

나는 발레아에게 다시 백작의 시체를 부탁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백작의 시체가 사라졌다.

“백작의 첫째 아들을 꾄 이상한 남자라…….”

머릿속에 백작이 남긴 말이 맴돌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그의 말에 날려버렸다.

지금은 그런 말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백작의 집을 떠났고, 다음날 2 황자는 황궁과 수도를 장악했다.

쿠데타가 성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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