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화
제13편 영지 방어전 (1)
나는 유물 주머니에 검의 파편과 해골 앞에 굴러다니고 있는 죽음의 신 성물을 던져넣은 뒤,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멍하니 서 있는 해골은 그냥 두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싸움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곤란했다.
더구나, 지금은 백치가 된 해골과 드잡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해골과 싸우기 전보다 마나가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이 지하 도시에 퍼져있는 이질적인 마나가 다 사라지지 않았다.
영지로 돌아가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지하 도시를 빠져나가야 했다.
지하 도시에는 아직도 언데드가 된 마물과 미이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골 사제가 진짜 해골이 되어서인지, 도시를 돌아다니는 언데드들은 지붕 위를 달리는 나를 보고도, 달려들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지하 도시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시를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 내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마물의 왕을 죽였습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을 설정하시겠습니까?>
저장 시점을 설정할 거냐는 ‘사자 회귀’의 메시지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라고 대답할 리가 없었다.
나는 바로 거절하고 메시지창을 치워버렸다.
메시지창을 치워버린 뒤, 나는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마나를 품은 다리가 내 몸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지하 도시의 건물들이 빠르게 뒤로 흘러갔다.
그 모습은 마치, 지하철을 탔을 때 보았던 거리의 모습 같았다.
나는 그런 광경을 전부 무시하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전송’ 능력을 쓸 수 있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를.
나는 달리면서 계속 기원했다.
* * *
샤를 백작의 영주 도시.
짧은 사이 엄청난 발전을 이룬 도시는 지금 그 발전이 무색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도시를 감싼 성벽 아래에는 수많은 마물이 달라붙어 성벽을 기어 올라오고 있었고,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마물들은 두꺼운 성문을 몸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마물들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기사들은 성벽 위로 올라온 마물들과 싸우고, 병사들은 돌과 기름을 쏟아부어 마물들이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
성안에 있는 영지민들도 각자 열심히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돌을 모으고, 기름을 끓이고, 병사와 기사들의 장비를 정비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도시를 공격하는 마물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마물을 막아 내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거기다, 도시 안에도 부서진 집들이 많았고, 병사는 물론이고 영지민들도 다친 사람이 무척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마물이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간이 많이 지난 듯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성벽 위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두 기사가 있었다.
미겔 기사와 디오구 기사였다.
“그럼, 네가 왼쪽 놈을 맡아! 내가 나머지를 맡을 테니!”
미겔 기사가 몸을 풀며 말하자, 디오구 기사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자살 같습니다만.”
디오구 기사의 말에 미겔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 전에도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그거야, 저번에는 우고 기사님과 미겔 기사님이니까 괜찮았던 거죠.”
쿵. 쿵.
디오구는 아래쪽 성문에 몸을 들이박고 있는 돌 거인 마물들과 가냘픈(?) 자신의 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솔직히 자신의 마나와 검으로 저 돌 거인 마물을 쓰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디오구의 말에 미겔은 눈썹을 씰룩였다.
“전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했었잖아. 깃발 기사 디오구는 어디 가고 이런 겁쟁이만 남은 거야.”
“그만큼 고생했으니까요. 이제는 대충 상황을 볼 수 있게 된 거죠. 이게 죽을 각인지, 살 각인지.”
“그래서 항명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미겔이 정색을 하자, 디오구는 고개를 저었다.
“쩝……. 백작 부인께 더 부담을 드릴 수는 없죠. 가죠.”
지치고, 앞이 막막해서 투덜거린 것에 불과했다.
죽게 되더라도 기사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미겔과 디오구가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휙. 휙.
두 사람은 중간중간 튀어나온 돌들을 밟으며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고,
곧이어, 성문을 두드리는 돌 거인들을 위쪽에서 들이쳤다.
미겔의 검이 하얗게 타올랐고, 디오구의 검도 흐리게 빛났다.
쾅! 퍽!
미겔의 검은 돌 거인 하나를 박살 내 버렸고, 디오구도 다른 돌 거인의 어깨를 반쯤 잘라 냈다.
“젠장, 반발력이 너무 쌔잖아!”
“서둘러! 다른 놈들이 온다!”
“말은 쉽죠!”
디오구는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싸웠다.
그는 마물의 튼튼한 몸과 마나 반발을 이겨내고, 반쯤 자른 어깨를 마저 잘라 냈다.
사실, 그건 가냘파(?) 보이는 그의 새 검 덕분이었다.
어찌 되었건 유물 검이라서 그런지, 이런 튼튼한 마물을 베는 데도 부러지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유물 검을 마물의 목에 박아넣는 데 성공했다.
단지, 그 과정에서 주먹에 얻어맞아 갈비뼈가 다 부러졌지만.
목에 검을 박아넣은 채로 마물과 함께 바닥에 구른 디오구는 맑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깃발을 들고 달리기 좋은 날이네.”
디오구의 머릿속에 젊은 영주님과 다른 기사들과 함께 깃발을 높이 들고 달리던 때가 떠올랐다.
디오구에게는 힘들지만, 정말 좋았던 때였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느끼며 디오구가 추억에 잠겨 있을 때, 하늘 아래로 사람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어디서 죽을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
마물의 피를 뒤집어쓴 미겔 기사였다.
그는 좀 전에 말한 대로, 디오구가 마물 하나를 처리하는 동안, 나머지 마물들을 모두 처리한 것이다.
“어서 도망가자.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어.”
그는 디오구를 어깨에 걸치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성벽을 부수던 마물들이 쓰러진 것을 보고, 사방에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미겔은 성벽을 박차고, 위로 치솟았다.
하지만, 미겔이라도 사람 한 명을 어깨에 메고, 성벽을 계속 오를 수는 없었다.
성벽 중턱까지 치솟았던 그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려 했다.
그때, 그의 앞에 늘어뜨린 로프가 보였다.
병사들이 늦지 않게 로프를 내린 것이다.
미겔은 바로 로프를 잡았고, 로프는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니, 그를 끌어 올렸던 병사들이 그에게서 디오구 기사를 받아 바닥에 눕혔다.
병사 하나가 포션 병을 꺼내 디오구의 입에 부었고, 신관이 달려와 치유 능력을 퍼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미겔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기사라지만, 저렇게 포션을 물먹듯이 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저렇게 포션과 치유술을 퍼붓고, 겨우 일어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디오구는 다시 이 성벽으로 나오게 될 터였다.
이런 식이라면 디오구 기사가 반항적으로 될 만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이 영지, 이 도시는 예전에 무너졌을 것이었다.
이 도시는 그동안 영주가 준비해온 것들로 지금껏 버티고 있었다.
수많은 포션과 식량, 각종 장비들과 저택 지하에 있는 황실 금고에서 나온 유물까지.
그 하나하나가 이 영지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 도시를 지켜내는 사람이 있었다.
급한 치료를 끝낸 디오구 기사들을 병사들이 데려가는 사이, 병사들의 백부장이 그에게 다가와 물을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마워, 후안이 늦지 않게 로프를 내려줘서 살았어.”
마물과의 싸움에는 마나를 쓰지 못하는 병사들은 도움이 안 된다는 상식은 지금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동안 병사들이 마물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영주님이 짜두었던 계획을 마물이 들이닥친 뒤, 후안이 다른 병사들과 함께 행해 왔었다.
제대로 안 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큰 도움이 되었었다.
조금 전 로프도 그렇고, 성벽 아래로 떨구는 돌이나, 기름 같은 것도 성벽을 지키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이 성에서는 병사들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두 열심히 막고 있었지만,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미겔 기사가 물주머니를 입에 털어 넣고 있을 때, 도시 넘어, 반대편 성문 쪽에서 봉화가 올라왔다.
붉은색 봉화였다.
“북쪽 성문이 뚫렸군요.”
“그렇군……. 막아 내던 기사들은 죽었겠지?”
미겔의 물음에 후안은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성문이 뚫렸으니, 미겔처럼 강습했을 기사들이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영지의 기사들이 모두 미겔이나 우고처럼 강한 것은 아니었다.
오헨 기사마저 부상으로 물러난 상황.
결국, 성문을 지키려면 평범한 기사들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성문이 뚫렸다는 봉화를 보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달려가지 않았다.
단지, 두 사람 다 걱정 어린 얼굴로 저택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발레아 님이 얼마나 버틸 수 있으실지…….”
미겔의 말에 우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그저 더 버텨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죠. 이 도시도 백작 부인이 없으셨다면 옛날에 무너졌을 테니…….”
두 사람 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같은 사람을 떠올렸지만, 그것을 말하는 즉시 희망이 사라질 것처럼 두 사람 다 입을 굳게 닫았다.
쿠구구구궁.
그때, 거대한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반대편 성벽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마치, 성벽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발레아는 저택의 지붕 위에 서서 북쪽 성문을 향해 지팡이를 뻗고 있었다.
지팡이가 흔들리고, 창백한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발레아는 지팡이를 내리지 않았다.
그녀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동안, 북쪽 성벽은 계속 움직여 나갔다.
부서졌던 성문이 다시 복구되고, 성문 안으로 뛰어들었던 마물들을 거리와 흙이 빨아들였다.
마물들은 필사적으로 천재지변에 저항했지만, 결국, 모든 마물은 땅속에 파묻혔다.
마지막 마물이 땅속에서 숨이 멎자, 발레아는 거친 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내렸다.
그녀가 지팡이를 내리자, 뒤에 서 있던 집사장이 그녀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기적 같은 광경이었지만, 집사장의 얼굴에는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이 광경은 그가 처음 본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물이 들이닥친 뒤, 성문이 부서지고, 성벽이 무너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발레아가, 발레아의 영역이 마물들을 막아 내고, 성벽과 성문을 복구했었다.
집사장도 처음에는 감탄하고 그녀를 우러러보았지만, 이제는 그녀가 걱정될 뿐이었다.
이 도시 전체에 영역을 펼쳐, 도시와 성벽을 수리하고, 마물을 없애는 신 같은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녀는 신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레아는 점점 지쳐갔다.
지금은 처음과 달리, 발레아는 겨우겨우 영역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쉬시는 것이…….”
집사장의 말에 발레아는 지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전술을 쓸 수 있는 마물들은 무섭네요.”
그녀의 말에 집사장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 한쪽에 점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점들은 점점 커졌다.
시간이 지나자, 점에 날개가 보이고, 다리가 생겨났다.
다가오는 점들은 모두 하늘을 나는 마물들이었다.
“내 힘이 다 빠지기를 기다린 걸까요? 아니면, 여태 내 힘을 빼놓았던 걸까요. 마나가 떨어진 지금에서야 저 하늘을 나는 마물들을 꺼내 놓았군요.”
발레아는 허탈한 듯 말했지만, 집사장은 놀라 발레아에게 말했다.
“빨리, 기사들에게 연락을!”
발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늦었어요. 저 마물들은 여기를 목표로 오고 있어요.”
영역을 사용하면 활을 가진 기사들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지만, 그 기사들을 이곳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발레아에게는 지금 그만한 마나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발레아에게 남은 마나는 겨우 두 사람이 땅속으로 몸을 피할 정도.
마물들에게 완전히 허점을 찔린 것이었다.
“그럼, 어서 피하십시오. 병사들과 함께 시간을 벌겠습니다.”
집사장의 말에 발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집사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피할 생각이었다.
알렉스의 어머니와 자신만.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 순간, 저택을 포위하듯 쏟아져 내리는 수십 마리의 마물들을 향해 빛줄기들이 솟구쳤다.
저택에서 솟아오른 폭죽 같은 아름다운 빛줄기들이었다.
캬아아악!
쾅, 콰앙!
발레아를 공격하려던 마물들이 빛줄기에 맞아 비명과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마물들이 산산이 부서져서 피와 함께 쏟아져 내렸다.
살점들과 함께 저택에 피의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발레아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린 뒤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발레아는 알렉스를 반갑게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