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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58화 (458/563)

제458화

제8편 지하 도시

황궁 터를 감싼 마나는 눅눅하고, 어두웠다.

마왕의 기억에서 본 다른 세상의 광기에 찬 마나와 다른 정말 이질적인 마나였다.

거대했을 황궁 터는 지금은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다.

단지, 거대한 건물의 폐허만 남아 있었다.

다만, 이 이상한 마나 때문인지, 폐허가 된 지 수백 년이 지났을 황궁 터는 밀림에 덮이지 않았고,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다.

나는 꺼림직한 마나를 흘려보내며 황궁 터 중앙으로 향했다.

퍼져 있는 마나를 보니, 이 마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황궁 지하에 있을 터였다.

“입구가 없으면 발레아를 불러야 하나…….”

벌써 부르기는 좀 그랬지만,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발레아는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황궁 터 가운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원래는 황궁 본궁에 있었을 계단인 모양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내가 전에 보아왔던 왕궁과 황궁의 계단과 달리, 무척이나 넓었다.

건장한 남자 열은 나란히 내려갈 수 있을 그런 계단이었다.

한참 아래로 이어진 듯한 계단은 마나를 담은 내 눈으로도 얼마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가득 퍼져 있는 이 이질적인 마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등에 메었던 대검을 손에 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 생각보다 계단은 깊었다.

수백 계단 이상을 내려간 것 같았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이질적인 마나는 더욱 짙어졌다.

고대 제국은 무슨 생각으로 황궁 밑으로 이렇게 깊은 곳까지 파 내려간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은 많이 부서져 있었다.

날카로운 것으로 벽이 잘려 나가고, 계단 중간이 박살 나기도 했다.

격렬한 싸움이 계단에서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기야, 황궁 전체가 평지가 될 만한 싸움이 있었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이 무너지지 않은 게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계단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무너진 곳은 없었다.

나는 계단이 끝난 자리에 서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고대 제국의 황궁 터 지하는 내가 예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나는 이 지하에도 전에 보아왔던 차르 제국의 황실 금고나, 카를로스 왕국의 왕실 창고 같은 곳이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매번 보아왔던 게 그런 거였고, 황궁 지하에 다른 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대 제국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하기야, 고대 제국이 만든 다른 유적들도 평범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황실 별장이라는 섬도, 용사 훈련소라는 유적도 그 규모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곳, 고대 제국의 황궁 지하에도 거대한 지하 도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도시는 들어갈 만한 거대한 지하 광장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차 있었다.

유적들에서만 보던 고대 제국 때의 건물들이었다.

지하 공간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 별을 박아 놓은 것처럼 지하 광장의 천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뭔가, 빛을 내는 것들이 박혀 있는 듯했다.

거기다, 이 지하 도시의 모습과 규칙적인 건물들의 배치를 보니, 평범한 도시는 아니었다.

물론, 이런 지하에 도시가 있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도시일 리는 없었지만, 이 도시는 뭔가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 같았다.

도시의 모양이 거대한 진, 마법진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제사를 지내기 위한 도시이던지…….

하지만, 인제 와서는 그런 규칙과 목적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 지하 도시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폐허만 남은 황궁 터와 달리, 도시의 모습은 남아 있었지만,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부서져 있었다.

지하 도시에도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리고, 생명체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던 밖의 황궁 터와 달리, 이곳에는 나를 가로막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라, 여럿이었다.

내 앞을 막은 것은 고대 제국이 아닌, 차르 제국의 군복을 입은 인간 병사들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낡고, 해진 옷을 입고 있는 병사들은 전부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마른 사람에 대한 비유 같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었다.

나를 막아선 병사들은 뼈에 가죽만 덮여 있는 죽은 미라였다.

크어어어.

“마물이 된 건가? 아니면 언데드?”

나는 건물 사이로 달려오는 미라 병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혹시나 했지만, 병사들은 잘 잘려 나갔다.

하지만, 팔이 잘려 나가고, 머리가 잘려 나간 뒤에도, 미라 병사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병사들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언데드쪽인가…….”

언데드라면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해골만 남은 병사와 기사들이었다.

아무래도 이 병사들은 습기가 적은 이 지하에서 언데드가 된 바람에 미라가 된 모양이었다.

꿈틀거리는 미라 병사들을 살펴보니, 과거 차르 제국이 제국 황궁을 찾기 위해 보냈던 병사들인 것 같았다.

황궁을 찾지 못한 채로 마물들에게 죽은 줄 알았는데, 이 안까지 들어와 죽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죽은 병사가 언데드가 되었다는 건데…….”

내가 아는 언데드는 한 가지 종류밖에 없었다.

바로 ‘죽음의 신’의 종자들이었다.

“아무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솔직히 꺼림직했지만, 확인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죽음의 신의 성물, 검은 육면체를 유물 주머니에서 꺼냈다.

한번 사고를 친 뒤에 나는 이 큐브를 어디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둘 생각이었다.

실제로, 유물 가방에 집어넣은 뒤, 깊숙한 곳에 치워버리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에 물건을 챙길 때 다시 꺼내 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찰일 뿐이라고 말을 하고, 쉽게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는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단순한 정찰이라고 말했지만, 정찰이 잘 된다면 마왕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마왕과 마주치게 된다면,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마왕에 대해 최대한 알아내야 했다.

그래서 가져온 큐브였지만, 역시 볼 때마다 꺼림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큐브, 죽음의 성물에 마나를 불어넣어, 큐브에 명령을 내렸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언데드들을 내 편으로 만들라는 지시였다.

끼긱, 끼긱.

하지만,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미라 병사들은 변화가 없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뒤에도 입으로 나를 씹으려 할 뿐이었다.

“마나 때문인가…….”

생각해보니, 주변에 흐르는 이 눅눅하고 어두운 마나는 이 큐브가 죽은 이들을 일으켜 세울 때 뿜어내던 검은 색 마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언데드들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도, 큐브를 통한 내 지배력이 주변에 퍼져 있는 마나를 이기지 못한 것 같았다.

“뭔가, 저 안에 언데드를 만드는 유물이나 마물 같은 게 있는 건가?”

그렇다면, 마왕이 이곳에 있을 가능성도 적어질 터였다.

하지만, 아직 뭔가 제대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좀 더 가봐야 했다.

나는 대검 대신 성검을 꺼내 꿈틀거리는 미라의 몸을 잘라냈다.

다행히 성검은 잘 먹혔다.

미라들은 성검에 잘린 즉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미라들을 잠들게 한 뒤에, 나는 규칙적으로 만들어진 반파된 도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도시의 중심, 광장 가운데 높게 솟아 있는 건물이었다.

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마나는 저 건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데드들은 그 뒤에도 계속 나왔다.

처음 나왔던 차르 제국의 병사들은 물론, 용병과 기사도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지하 도시 안에 들어왔고, 그들이 다 언데드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도시의 외곽을 지나, 중심으로 다가가니, 언데드의 종류들이 달라졌다.

새로 나타난 언데드들은 미라 병사나 기사들이 아니었다.

고대 제국의 복장을 한 해골들, 그리고, 썩어가는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긴 언데드 역사 박물관이냐!”

나는 성검으로 마물과 해골들을 잘라내며 투덜거렸다.

반쯤 미라로 변한 마물과 해골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짜증 나고 힘든 일이었다.

인간과 마물에게 검을 휘두를 때처럼 잔인하고, 징그럽지는 않았지만, 대신 적막하고, 외로웠다.

캉! 서걱! 서걱!

검이 뼈에 부딪히고, 잘려 나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물들의 괴성도, 사람들의 고함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시체 썩는 냄새가 안나서 다행인건가…….”

그리고, 언데드가 된 마물과 해골들은 조직적으로 공격해 오지 않는 것도 다행이었다.

이 지하 도시에 있는 언데드들은 그냥 도시를 배회하고 있었다.

언데드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누구에게 지시를 받은 게 아니라, 본성에 의해 살아있는 자를 공격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언데드들을 쓰러뜨리며, 나는 도시를 가로질렀다.

좁은 거리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언데드들을 피하고자, 건물을 타고 넘기도 하고, 옥상 사이를 뛰어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긴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쪽에 높은 탑이 세워진 큰 건물.

반쯤 무너져 있었고, 시간이 지나 그 아름다움이 많이 퇴색되어 있었지만, 무척이나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이것도 일종의 황궁이려나…….”

아니면, 신전일지도…….

어느 쪽이든 대단한 건물임이 분명했다.

거기다, 이 건물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부수려 해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건물이 반파되어 있다니…….

이 지하의 싸움도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건물에 다가갈수록 마나가 짙어졌다.

이런 마나에 경험이 있는 나로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마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마나.

이런 마나를 받아들였다면, 살아서 돌아간 사람들이 미쳐버리는 게 당연했다.

계단을 오르자, 부서져서 활짝 열린, 건물의 거대한 입구가 나를 맞이했다.

건물 안은 거대한 홀이 자리하고 있었다.

홀 뒤쪽에는 높은 단상과 그 위에 아름다운 의자에 해골들이 앉아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보석이 가득 달린 왕관을 쓴 해골들.

해골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는 저들이 누구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대전쟁 때, 고대 제국을 다스렸던 황족들이 분명했다.

아마, 저들 가운데에는 황제도, 황자도, 황비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 앞.

홀 중앙에 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니, 기사인 줄 알았는데, 기사가 아니었다.

사람처럼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자는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커 보였다.

거인이라고 항상 말하는 왕실 기사단장보다 더 컸다. 거기다, 낡은 판금 갑옷 사이로 보이는 몸은 온통 고름에 덮여 있었다.

“마왕?”

아니, 마왕은 아니었다.

내 기억 속의 마왕은 저렇게 크지 않았다.

거기다, 마왕도 피부에 고름이 가득하기는 했지만, 홀 중앙에 있는 저 괴물은 피부에 고름이 난 정도가 아니라, 갑옷 사이로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고름으로 만들어진 액체 괴물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저 괴물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죽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 가득한 마나는 저 괴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 괴물이 뿜어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주 조금,

위치가 달랐다.

나는 옆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괴물에 가려져 있던 사람, 아니 해골이 보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괴물 기사 바로 앞에 해골이 서 있었다.

해골은 괴물 기사의 투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마왕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이군.”

물론 처음 보는 해골이었지만, 해골이 입고 있는 옷은 전에 본 적이 있었다.

큐브, 죽음의 신 성물을 잡았을 때 본 기억에서 난 저 해골이 입고 있던 옷을 보았었다.

아니, 기억 속의 내가 저 옷을 입고 있었다.

저 해골은 바로, 내가 기억 속에 빙의했던 죽음의 신 추종자, 악신의 마지막 신관이었다.

그리고, 저 괴물 기사가 죽지 않은 것처럼, 해골 신관도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드드득.

멈춰 있던 해골이 작은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텅 빈 해골의 눈덩이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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