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52화 (452/563)

제452화

제2편 황실 금고 (3)

바닥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밀어 넣자, 손에서부터 마나가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마나는 바닥을 거처, 벽을 넘어, 문과 복도를 지나, 다른 방들까지 다다랐다.

금고지기가 한 말대로였다. 이 황실 금고는 하나의 유물이 맞았다.

크기는 말할 것 없이 거대하고, 엄청난 마나를 담아낼 수 있었지만, 결국, 이 금고도 내가 가지고 있는 유물 검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나를 움직이는 것도 유물 검을 쓸 때와 다르지 않을 터.

나는 금고에 퍼트린 마나를 알고 있는 마나 심법을 이용해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손에 쥔 검을 내 몸과 같이 여기고 마나를 순환시킨 것처럼, 금고를 검으로 생각하며 마나를 움직인 것이다.

물론, 마나는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고는 내 마나를 거부하고,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들이니, 금고 전체에 퍼져있던 마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약해져 있었어.’

금고에 남아있던 전 주인, 황제의 마나는 나를 막아내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의 마나는 등록한 지 얼마 안 되었고, 거기다, 이미 죽은 사람의 마나였다.

죽은 사람에게 경보가 갈 이유도 없었고, 그에게서 더 마나를 빌려올 수도 없었다.

죽은 사람의 마나는 내가 충분히 밀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실낱같이 흐르던 마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넓고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금고에 퍼져있던 마나는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오고, 내 몸속에 있던 마나는 다시 금고로 퍼져나갔다.

콰콰콰.

시간이 지나니, 커다란 관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계속 마나를 움직였고,

딸각.

한순간,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동시에 문밖, 복도에서 의문에 찬 감탄사가 들려왔다.

금고지기의 목소리였다.

내가 잘못 느낀 게 아니었다.

나는 금고에 밀어 넣었던 마나를 조심스럽게 회수했다.

전부 흡수했지만, 달라진 느낌은 그대로였다.

나는 정보창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다른 능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 장비 소환: 레벨 3

장비 소환이 2 레벨에서 3 레벨로 변한 것이었다.

이건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나는 그냥 이 창고를 내 소유로 만들 생각이었을 뿐이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큰 유물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스르르르.

금고 문이 열렸다.

이제 구슬을 가져다 대지 않아도 금고 문을 열 수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복도로 나가니, 금고지기가 의자에서 일어나 허공을 두드리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아니, 갑자기 확인이 안 되는…….”

그는 자기도 모르게 대답하다가 입을 꾹 닫았다.

문제가 생긴 것을 내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황실 금고와 연결이 끊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내 눈에도 잘 보였다. 처음 봤을 때 보였던, 금고와 연결된 그의 마나가 지금은 끊어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촉수처럼 뻗어나간 마나는 황실 금고와 연결되지 못하고, 계속 벽과 바닥에서 튕겨 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겠지만, 연결이 안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터였다.

사실, 나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이 된 이상, 누가 내 물건을 관리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방금 전 황실 금고의 주인이 되었다.

카를로스 왕실 창고에서 수련검을 얻은 것처럼, 셀린 교단의 유적에서 신검을 얻은 것처럼 이번에는 황실 금고를 얻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강탈한 게 되려나.’

전에 얻은 물건들은 전부 이유가 있어 제대로 주인이 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전 주인의 마나를 밀어내고 강제로 얻어낸 것이다.

전 주인인 황제가 이 유물을 얻은 지 얼마 안 돼서 죽은 덕분이기도 했지만, 관리자인 금고지기들이 오랫동안 뒷구멍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창고의 약해진 방어 능력으로는 내 마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난감해하는 금고지기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나를 움직였다.

발을 통해 흘러나간 마나는 금고의 바닥으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허공을 배회하던 금고지기의 마나가 다시 금고와 연결되었다.

내가 다시 금고지기를 황실 창고의 관리자로 등록시킨 것이다.

“어?”

금고지기가 화들짝 놀랐다.

금고지기의 마나를 다시 연결해준 이유는, 내가 이 금고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아직 다른 사람이 알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자가 정신을 차려 금고에 새로운 주인으로 등록하려 한다면 들키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라야 했다. 황자는 물론, 금고지기나, 조직까지도.

사실, 이 금고의 주인이 되어도 다시 다른 사람 몰래 금고에 들어와 유물들을 가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황궁 지하에 있는 데다가,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몰래 가져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나중에 영지로 돌아가 다른 방법을 쓰려고 했는데, 마침 장비 소환의 레벨이 올라간 덕에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마나가 금고에 연결되자, 금고지기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조금 전과 달리,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잠깐 착각한 모양이군요. 구경은 잘하셨습니까?”

“네. 잘 봤습니다.”

금고지기는 조금 전 일을 없었던 일로 하기로 한 것 같았다.

역시, 황실 금고의 금고지기라는 수백 년간 이어 내려온 일을 맡은 사람다웠다.

나는 전생에 보아왔던 관료주의를 다시 보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렇게 황실 금고 관람을 마치고,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작에게 유물 구슬을 돌려주었다.

이제, 금고를 들어가는 데 유물 구슬은 필요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자작이 물었다.

“도서관은 언제 보시겠습니까?”

뜸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새로운 능력도 얻었으니, 바로 확인하고 영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럼, 내일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작도 바쁠 텐데 매번 나를 안내해 주다니…….

아무래도 그가 조직이 정한 내 감시역인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평범하게 감사를 표하고, 문 앞에서 그와 헤어졌다.

그날 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밤이 깊었을 때였다.

모두가 잠든 밤, 발레아가 내 침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왔어요.”

발레아는 한밤중에 벽을 뚫고 내 침실에 찾아왔지만, 그녀는 제대로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어서 와요.”

그녀를 맞이한 나도 갑옷을 차려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위한 실내복 대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그녀가 이 시간에 내 침실로 온 것은 내가 그녀에게 와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침실로 불렀지만, 발레아는 약속을 잡을 때부터, 시간과 장소에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발레아는 오래전부터 내 말에 의문이나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적으로 나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녀를 부른 것이기도 했다.

나는 유물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침대 옆 테이블에 던져 놓은 뒤, 발레아에게 말했다.

“한가지 확인해봐야 할 게 있어서 불렀어요.”

내 말에 발레아는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테스트 전에 우선 발레아에게 물었다.

“우선 확인할 게 있는데…….”

“네!”

“발레아는 내 것이죠?”

“네?”

내 말에 발레아답지 않게 눈을 끔벅였다.

그녀는 무척이나 놀란 것 같았다.

아차.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실수한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해보니 말의 뉘앙스가 이상했다.

이건 마치, 고백 같은…….

젠장.

나는 급하게 다시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발레아는 나를 전적으로 믿는지, 발레아가 내 소유라 믿어도 될는지…….”

맙소사.

나답지 않게 말을 할수록 말이 계속 꼬여갔다.

이건 수습하기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요. 저는 알렉스 거예요.”

내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멈추자, 발레아가 바로 대답했다.

대답하는 발레아의 얼굴이 무척이나 반짝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젓고는 발레아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무기를 소환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죠?”

“네.”

“그 능력이 강화되어서, 새로운 기술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소환이긴 한데, 조금 다른 방식의 소환이죠. 이런 식이에요.”

나는 조금 떨어진 테이블 위에 놓인 단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만들었던 시동어를 읊었다.

“전송.”

말이 끝나는 순간, 내가 보고 있던 장면이 확 달라졌다.

“와…….”

바로 앞에 서 있던 발레아의 감탄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설마, 공간 이동인가요?”

발레아의 물음에 나는 손에 들린 단검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공간 이동의 일종이긴 해요. 정확하게 말하면 소환의 다른 방식이지만요. 떨어져 있는 내 장비를 소환하는 대신, 내가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지요.”

사실, 공간 이동 능력이 미리 만들어진 정해진 마법진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새로운 능력과 별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더 좋으려나.

“어디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꽤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소환하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어요.”

“내 소유의 물건은 된다면, 과연, 같은 마나를 지닌 사람도 가능할 것인지…….”

나는 발레아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내 생각만 하고 불러서.”

내 말에 발레아가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뇨. 전 고마운데요. 알렉스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알렉스 말대로라는 거잖아요.”

“네?”

“내가 알렉스 거라는 말요. 실험에 성공하면 알렉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고, 알렉스의 능력도 그걸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렇게 되는 건가?

확실히, 발레아 말은 틀리지 않았다.

“빨리해 봐요. 전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되나요?”

발레아가 몸이 달아, 나를 재촉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단검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바로 부를게요.”

나는 발레아에게 말을 한 뒤에 머릿속으로 내 소유 중 가장 큰 유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시동어를 읊었다.

“전송.”

한순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나는 다음 순간, 불이 밝혀진 커다란 방에 서 있었다.

유물 등으로 환하게 밝혀진 방.

금은 보화가 가득 쌓여 있는 방이었다.

이곳은 황실 금고 안, 금은보화를 쌓아 둔 방이었다.

지금은 낮에 복도에 있던 금고지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퇴근을 한 모양이었다.

일부로 늦은 시간에 움직였는데, 금고지기가 있으면 곤란했다.

장비 소환의 새로운 기술 테스트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 볼 게 남아있었다.

나는 위로 손을 뻗은 뒤, 머릿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읊었다.

“소환.”

화아아악!

위로 펼친 손 위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발레아였다.

나는 떨어져 내리는 발레아를 안았다.

소환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발레아에게 황실 금고를 보여주려 한 내 계획은 실패한 것 같았다.

주변에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발레아는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