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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37화 (437/563)

제437화

제12편 연판장 (1)

만약, 2 황자가 먼저 내게 이 주사위를 닮은 유물을 보여 주지 않았더라면, 조직의 지하 기지에서 이 유물을 꺼내오지 않았을 터였다.

봤을 때부터 마나가 담겨 있어서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하 기지에는 이 유물보다 더 눈에 띄는 물건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약물과 실험에 쓰인 듯한 유물들까지.

그곳에는 내가 근래 쓰지 않고 있는 마나를 늘려주는 목걸이의 보석도 여러 개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물건들은 기지를 지키는 이들과 나와의 싸움에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지만.

주사위를 닮은 유물도 구석에 처박혀 있어, 알아보지 못했다면 지금도 다른 유물들처럼 땅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었다.

묻혀버린 지하 기지를 벗어난 뒤, 나는 다시 대주교를 만났다.

나는 대주교의 응접실에 앉아, 테이블 위에 주사위를 닮은 유물을 올려놓았다.

유물을 보던 조아나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꼽아나갔다.

“처음 공간이동으로 넘어올 때, 지하에 구멍을 뚫어서 마물들을 불러냈고,”

“그 뒤에는 2 황자를 구하더니, 이번에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장원 하나를 묻어버렸다는 거군요.”

대주교 조아나의 말에, 뭔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 사실이었으니,

열심히 뛰어다녔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조아나의 말을 들으니, 내가 과격한 테러리스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제국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가 맞는 건가.

“그 묻어 버린 장원 지하에서 가져온 겁니다. 수도에 있는 조직원 목록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말과 함께 유물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유물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2 황자 때도 그랬지만, 이 유물은 처음 설정된 방식으로 마나를 정확하게 불어넣지 않으면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일종의 잠금장치가 달려있던 셈이었다.

그래서 황자도 몸에 지니고 있었고, 조직도 이 유물을 따로 숨기지 않은 듯했다.

유물에 설정된 정확한 양과 방식으로 마나를 주입하라니. 마나가 보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은 활성화하는 게 불가능했다.

물론, 나는 마나를 볼 수 있었고, 이 유물도 열 수 있었다.

우우웅.

테이블 위로 떠 오른 반투명한 이름들.

그 이름들은 황자가 꺼냈던 유물보다 훨씬 많았다.

조직이란 곳은 이번 황제가 제위에 오르면서 반쯤 공식화되었지만, 그전까지는 암중에 숨어서 제국과 대륙을 좌지우지하던 곳이었다.

지금도 겉으로 드러난 조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쉽게도 눈앞에 나타난 이름들은 제국인이 아닌 나에게는 대부분 모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조아나는 달랐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명단을 훑어내렸다.

“역시, 교단의 신관과 사제도 명단에 있습니까?”

“저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맙소사, 신관만이 아니라 장로 이름도 있어요.”

역시,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제국이 만들어질 때부터 암중에서 제국을 좌지우지하던 곳이었으니, 교단에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내가 이 유물을 조아나에게 보여 준 이유 중의 하나가 교단 내의 조직원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명단을 옮겨 적어서 레스티에게 보내세요. 셀린 교단 신도 중에도 조직원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세요.”

“네?”

내 말에 조아나가 깜짝 놀랐다.

“교단에 조직원이 있다면, 셀린 신도중에도 조직원이 있을 테니까요.”

조직이란 곳은 신앙과 믿음과는 아무 상관 없었다.

조직은 원래 목적이 제국을 중심으로 마물과 마왕을 무찌르자는 곳이었으니, 교단 소속일 수도 있고, 셀린 교인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조직원이 셀린 여신을 믿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셀린 교단을 감시하기 위해 잠입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을 내리는 것은 레스티와 셀린 교단이니. 나는 명단만 전해 줄 생각이었다.

그건 교단 안에 있는 조직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돌아다니며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일 수는 없었다.

셀린 교단의 일은 레스티와 셀린 신도들에게 맡기고, 교단의 일은 대주교 조아나에게 맡기면 될 터였다.

어떤 식으로 처리되던지, 내 일만 방해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다행히, 내 말을 잘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레스티아도 신관님께도 정확하게 전해드리고, 제게 맡기신 일도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조아나는 굳은 얼굴로 대답하며, 나를 보며 성호를 그렸다.

교단의 성호가 아닌, 셀린 여신의 성호였다.

성호까지 긋다니.

내 생각보다, 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시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나는 대주교가 유물의 목록을 옮겨적게 한 뒤에, 이번에는 황자를 만나러 갔다.

황자는 수도 치안 기사단장의 집에 있었다.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니, 그의 집은 처음 내가 왔을 때보다 훨씬 더 삼엄해 보였다.

집 안에 있는 마나를 보니, 낯선 사람들도 여럿 와 있었다.

각성한 귀족들이었다.

귀족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황자도 열심히 일한 모양이었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도 처음 왔을 때와 다른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의 실력이 전보다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치안 기사단장은 내 기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전에 쓴 투구를 두드렸다.

기사들이 바뀌었으니, 이 투구를 알아볼 리가 없었다.

아니, 전에 있던 기사들도 나를 보지 못하고 쓰러졌으니, 마찬가지려나.

어쨌건, 이 모습으로 조용히 정문을 지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또 쓰러뜨리고 지나가기도 그렇고.

나는 고개를 젓고는 정문이 아닌 저택의 측면 담으로 향했다.

마나를 숨기고, 방음벽으로 소리를 숨기니, 집을 지키는 기사들은 내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담에 손을 올리고, 발레아를 불렀다.

“열어줘.”

[네.]

손을 타고 발레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벽 아래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몸이 땅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집을 떠날 때, 발레아를 두고 갔었다. 당연히 이곳은 이미 발레아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발레아가 만든 통로를 걸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도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이곳은 이미 발레아의 영역.

나는 그들 몰래, 황자가 있는 회의실 문 앞에 설 수 있었다.

물론, 문 앞을 지키는 기사도 있긴 했지만, 그는 이미 땅속으로 끌려들어 간 뒤였다.

똑. 똑.

나는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문 안에서 기사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는 문 앞을 지키던 기사가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야 했지만, 그 기사는 지금 땅속에 있었다.

나는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냐?”

내가 말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사람 중 일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검을 뽑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손에서 불공을 뽑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상석에 앉아 있던 황자가 손을 들어 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 괜찮습니다. 같은 편입니다.”

“그럼…….”

“전에 말한, 저를 구해 준 일행입니다.”

존댓말이긴 했지만, 황자의 말은 힘이 있었다. 다들 황자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어떤 이들은 내 용병 차림을 보고 코웃음을 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황자 옆에 서 있는 기사단장은 나를 노려보았다.

“설마, 이번에도 부하들을 쓰러뜨리고 온 건가?”

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단장은 정문을 지키던 기사를 일부러 바꾼 모양이었다.

집을 지키던 기사들이 전부 소리 없이 쓰러진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단장의 표정을 보니, 평범하게 들어오는 것도 막았을 것 같았다.

“다들 잘 지키고 있습니다. 문 앞에 있던 기사만, 잠시 재웠습니다.”

땅속에서 자고 있었지만, 죽은 것은 아니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니, 죽지는 않았겠지?

“그게 무슨…….”

단장은 내 말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귀족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그것보다, 잠시 나가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이 일은 외인이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만…….”

오, 시작부터 자리싸움인가?

아니면, 진짜 용병 따위가 같이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어느 쪽이든, 오랜만에 듣는 말에 반가운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해 주는 게 좋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황자가 먼저 나섰다.

황자는 말을 꺼낸 귀족을 바라보며 강하게 말했다.

“그는 외인이 아니다. 나를 구한 것 이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회의에 참여할 자격이 충분하다.”

이번에 한 말은 조금 전과 달리, 존댓말이 아니었다.

황자의 강한 말에 귀족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황자는 내가 장원을 박살 낸 것도 보았고, 교단의 대주교와 친한 것도 보았었다.

대주교와의 관계만 생각하더라도, 나를 빼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다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식으로 알리기 시작했다가는 내가 누구인지까지 알려야 할 테니.

“황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사람들은 헛기침하고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말을 하면서 내 쪽은 시선도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치 내가 이곳에 없는 양, 나를 외면했다.

“이렇게 다들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우리야, 황자님께서 돌아오시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으니까요.”

“그렇죠. 그동안 몸을 낮추고 있었지만, 봉기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었죠.”

그런데 회의를 듣고 있자니, 서로에게 금칠만 해대고 있었다.

모두 연판장 때문에 억지로 모인 것일 텐데, 지금 그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황자를 기다려온 충신들이 되어 있었다.

벌써 황자의 옆자리를 꿰찬 기사단장이 오히려 정직해 보일 정도였다.

서로 금칠을 하다 보니, 대화는 점점 과격해졌다.

“거기다, 새 황제의 횡포가 장난이 아니기에 황자님께서 돌아오신 것을 알면 모두 참여할 것입니다.”

“그렇죠. 지금 황제가 친정을 떠난 상태니. 이런 기회가 없어요.”

“그럼, 내일부터는 연판장에 없는 사람들도 끌어들여 볼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다들 입을 닫았다.

“그건 좀…….”

“맞습니다. 아직 조심해야 합니다. 황제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직의 끈은 남아 있을 겁니다.”

“조직이라…….”

“하아. 조직이 있었군요.”

조직이 입에 오르자,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새 황제가 제위에 오른 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조직이 밖으로 나온 상황.

이곳에 모인 귀족 중에 조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군. 조직이 있었지. 그들을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까?”

조용해진 회의실에 황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다들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앞으로 걸어가, 손에 쥐고 있던 주사위 유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방법이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유물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발레아 이 방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과 문, 천장과 바닥에서 두꺼운 송곳이 가득 솟아올랐다.

콰과과곽.

고슴도치처럼 변한 방.

놀란 사람들이 고함을 치려고 할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이름을 물어봐야겠군요. 이 안의 이름과 맞춰봐야 하거든요.”

말과 함께 유물에 마나를 불어넣자, 모두의 눈앞에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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