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5화
제10편 형제의 난 (1)
제국 황제의 집무실.
다른 집무실에 비할 바 없이 큰 집무실은 고풍스럽고 장엄한 가구와 장식물들이 가득했다.
제국의 역사가 가득 담긴 것 같은 그런 집무실에 젊은 황제가 얼굴 가득 화를 담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래서……. 집사장이 죽었단 건가? 예언가도 죽고?”
그는 책상 앞에 선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조직에서 온 자였다.
황제도 전에 본 적이 있었고, 나름 작위도 가지고 있는 자였지만, 집사장이 조직과의 일을 모두 담당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였다.
그런 그가, 제국 황제의 분노를 차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차분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했다.
“집사장이 방문했던 초소에도 옛 도시의 지하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번 마물들의 난동 속에 초소도 습격을 받아서 모두 죽게 된 듯합니다.”
초소를 지키던 병사와 기사들은 건물 안에서 뛰쳐나온 마물들에게 태반이 죽고 말았다.
그들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걱정되어 도망치지도 않고 마물과 열심히 싸웠고, 그게 더 피해를 키우고 말았다.
덕분에, 조직에 소식도 늦게 전해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때는 도시 전체가 마물로 난리가 났을 때였다.
제국군도 조직도 사람을 뺄 수가 없었다.
그날, 갑자기 땅에서 뛰쳐나온 마물들이 난동을 부려, 제국 수도 차르마니아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많은 이들이 죽고, 마물과 싸운 기사와 병사들도 큰 피해를 보았다.
밤새 마물들을 처리한 덕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잠잠해 진듯하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흉흉했다.
겨우 틈을 내게 되어 조직은 초소, 조직의 안가로 사람을 보냈지만, 그들이 본 것은 피범벅으로 반파된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보이지 않았다.
떨어진 살덩어리와 흔적들만이 남이 있을 뿐이었다.
마물들이 내부의 시체를 다 끌고 간 것이었다.
그래서, 집사장과 예언가의 죽음도 바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조직의 능력자를 모은 다음 날이 돼서야 겨우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생각보다, 수도 지하에 있는 마물들이 강한 듯합니다. 그곳에 있는 기사들이 쉽게 당할 기사들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이 생각을 잘못한 모양이었다.
가끔 밖으로 튀어나오는 마물들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돼버리다니.
지금이라도 지하 수로와 던전을 정리해야 할 듯했다.
조직은 먼저 그런 생각을 했지만, 황제는 달랐다.
“쉽게 당하지 않을 기사들이 왜 그곳에 모여 있었던 거지? 예언가나 집사장은 왜 거기 간 거야?”
황제는 집사장이 그곳에 간 이유가 궁금했다.
“그 초소는 조직의 안가 중 한 곳입니다. 예언가의 호위가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예언가는 호위를 보러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언가는 그렇다 치고, 집사장은 왜 그곳에 있었던 거지?”
황제의 집요한 물음에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집사장이 그곳에 갈 이유는 있었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예언가의 호위에게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개인적인 일인 모양이라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집사장이 안가에 간 이유는 그곳에 가두어둔 2 황자 때문이었다.
조직에서 황실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집사장이 2 황자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황제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황제가 알기로는 2 황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북쪽의 외진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다.
3 황자도 그곳에서 죽었고, 2 황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죽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조직은 2 황자를 빼돌려, 수도 옆 안가에 숨겨 두었었다.
2 황자는 황제에게 문제가 생기면 대체하기 위한 꼭두각시였다.
그런데, 그 안가가 마물에 휩쓸리다니.
조직에게는 2 황자를 잃은 것이 황궁 집사장과 능력을 잃은 예언가를 잃은 것보다 더 큰 피해였다.
“개인적인 볼일이라……. 과연 그럴까.”
그리고, 황제는 그의 설명을 믿지 않았다.
조직에서 온 남자는 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황궁에 대한 일은 모두 집사장에게 맡긴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집사장이 죽은 지금, 조직 안에 황제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계속되는 실패로 지금 황제의 폭주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제어할 사람도 죽었고, 대체할 사람도 죽어버렸으니, 함부로 황제를 제거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조직의 수백 년간의 대계가 진짜로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런 한탄을 하는 사이,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으로 다가가 제일 상단의 검을 끌어내렸다.
“그동안 집사장 때문에 조직을 계속 믿어주었는데, 이제는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하겠군.”
황제는 검을 허리에 차더니, 남자 옆을 지나갔다.
“이제,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황제의 말에 남자는 깜짝 놀랐다.
“폐하는 수도를 지키셔야…….”
“짐을 수도에 가둬 두고 네놈들이 제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생각이었겠지. 이제는 그렇게 두지 않을 생각이다. 마물 왕들도 내가 직접 막고, 마왕도 내가 막을 것이다.”
황제는 그 말을 남기고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집사들이 놀라 고개를 숙였다.
허둥대는 젊은 집사들을 보고, 황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집사장이 죽은 지금, 말을 전할 자들은 이들밖에 없었다.
황제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투레 백작과 기사단장을 불러라. 짐이 직접 출병할 것이다.”
“네?”
놀란 집사들이 고개를 쳐들었고, 이어서 급하게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황제도 검을 찬 채로, 집무실을 떠나갔고, 집무실에 남아 있던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생각보다 문제가 더 심각해진 듯했다.
조직의 책임자 중 한 명이었지만, 이건 그 혼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빠르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진 제국 황제의 집무실은 걸려 있던 검이 빠져서인지, 이상하게도 낡고, 허전해 보였다.
* * *
“황궁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는 널찍한 테라스에 앉아, 시끌벅적한 황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황궁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고 있었다.
기사들이 뛰어다니고, 집사와 서기관들이 허둥거리고 있었다.
권위를 지켜야 할 황궁에서 저렇게 소란이 인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라는 건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제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차는 꽤 맛이 있었다.
맛없기가 유명한 교단에서 내어준 차였지만, 왕국에서 먹었을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대주교가 먹는 차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렇게 테라스에 앉아 제국의 황궁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이 도시에서 황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단 한 장소.
바로 교단 본부의 제일 위층, 대주교의 방 테라스였다.
사실, 황궁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일반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겠지만, 나는 또렷이 잘 보였다.
이곳에 온 것은 어제 2 황자를 구출한 뒤였다.
어제 2 황자를 구출하고, 발레아와 함께 장원을 벗어나자, 메시지창이 눈앞에 나타났었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을 설정하시겠습니까?>
두 번이나 죽음을 반복했던 일이 드디어 끝난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예’라고 대답했고, 바로 이곳 교단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황자도, 발레아도 나도, 최대한 모습을 숨긴 채로 찾아왔었다.
다행히, 그때는 대주교 조아나를 만날 수 있었다.
조아나는 대주교의 방으로 안내했고, 우리는 지금까지 편하게 지낸 것이다.
내가 차를 들어 올리자, 내 앞에서 교단의 대주교가 같이 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장로들을 설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정말, 그동안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았는데, 마물 왕들이 움직인 덕에 겨우 설득이 되었어요.”
대주교가 되면서 옷이 바뀌고, 마나도 전보다 훨씬 대단해졌지만, 조아나는 사제일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앙이 더 깊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그 신앙은 교단이 아니라, 셀린 여신에 대한 신앙이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말대로, 어제 우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장로들을 만나는 중이어서였다.
그녀는 마물 왕들이 뛰쳐나오고 마왕이 다시 등장하는 시기가 되었으니, 교단도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주교들과 장로들을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어제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난 모양이었다.
조아나는 내 생각보다 더 잘해주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해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교단이 큰 힘이 되는 아군이 되어 줄 줄이야.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쓸 수 있는 것은 써야 했다.
그리고, 또, 쓸 만한 사람이 여기 같이 있었다.
그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제국의 2 황자, 아니, 지금은 황제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그는 교단에 도착한 뒤에, 내가 새로운 대주교와 아주 친한 것을 보고, 무척이나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는 의아한 표정을 금방 지워버렸다.
확실히 2 황자는 전과 달라졌다.
그는 이제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런 것은 어찌 되었건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에게는 복수가 제일 중요한 듯했다. 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서는 황제를 몰아낼 필요가 있었다.
“마왕이 봉인을 깨고 나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거군. 내가 황제가 되면 제국의 모든 힘을 다해 그 일을 도와주겠네. 자네도 교단도 내가 황제를 쓰러뜨리는 데 힘을 빌려주게. 필요하다면 계약도 할 수 있네.”
대주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자가 끼어들었다.
교단의 대주교 앞에서 계약까지 이야기하다니.
확실히 황자는 진심이었다.
물론, 지금 황제나 내 앞에 있는 2 황자나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은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황제와 같이 갈 수는 없었다.
나는 황자를 구출할 때부터, 그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거기다, 계약까지 해 준다니.
내게는 금상첨화였다.
나는 황자 모르게 대주교에게 신호를 보냈다.
“걱정 마세요. 교단은 전부터 두 황자의 편이었습니다.”
조아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3 황자를 대피시킨 것도 교단이었다.
지금 황제 대신에 2 황자를 황위에 올리는 것을 교단의 장로나 주교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계약은 해야겠지만.
조아나의 말에 황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교단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다음은 수도 기사단장을 만나고, 황제 몰래 수도의 귀족들과 접촉을 하고…….”
황자는 만날 사람을 손을 꼽다가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수도에서 황제 몰래 일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일 터였다.
거기다, 조직도 있을 테고.
이건 나도 도울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길게 봐야 하는 일이 될 것 같아서 나도 조금은 난감했다.
그렇게 혼자 여유를 부리는 발레아를 제외한 세 사람이 생각에 잠겨있는 가운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대주교가 문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대주교의 방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엘레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황궁에서 급한 소식이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황제가 오늘 마물 왕들을 잡기 위해 친정을 떠난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황궁을 바라보았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기사들이 보였다.
동시에 2 황자가 벌떡 일어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기회가 온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