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3화
제8편 탈옥(?) (1)
구르르르르릉.
영역을 활용하는 발레아의 능력은 매번 신기했다.
땅속에 터널을 만들어도, 지상에 흙이 밀려 올라가는 일도 없고, 터널이 만들어지는 속도도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빨랐다.
자신의 앞에서 흙이 밀려나며 동굴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볼 때마다 대단하고 신기했다.
그렇게 탑의 감시를 피하며, 발레아와 나는 장원의 지하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건물 지하가 무척이나 복잡한데요. 지하 감옥 같은 게 있는 듯해요.”
걸음을 멈춘 발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감응력’에도 전방에 있는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다.
지상에서 한참 내려온 땅속에서 느껴지는 마나들은 이 앞에 기사와 귀족이 있다는 말이었다.
“안가가 아니라, 조직의 감옥이었나?”
생각해 보니, 따로 만들지 않고, 둘 다 같이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편하고 자유로우면 ‘안가’이고, 그렇지 않으면 감옥일 테니.
다만, 이렇게 되면, 건물 안으로 바로 들어가기는 힘들어지게 되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발레아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뚫어요.”
내 말에 발레아가 다시 지팡이를 쳐들었다.
구르르릉.
땅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다시 터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흙이 밀려나고, 이어서 돌로 만들어진 벽이 나타났다.
하지만, 벽도 알아서 움직여 구멍을 만들었다.
돌벽 안쪽은 발레아의 말대로 창살이 쳐진 감옥이었다.
“이제 제가 할게요. 좀 쉬어요.”
나는 발레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앞으로 나섰다.
영역을 미리 펼쳐놓지 않고, 여기까지 땅굴을 만든 발레아였다.
그동안 많이 성장을 해왔지만, 지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이곳부터는 마나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전 대주교가 있었던 수도원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딘가 마나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유물이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때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방해가 약했지만, 지친 발레아가 능력을 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유물은 나같이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는 기사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뚫린 벽을 지나자, 작은 방과 그 앞을 막은 창살이 보였다.
발레아와 내가 벽을 뚫고 들어온 곳은 텅 빈 감방이었다.
“설마, 마나를 쓸 수 있는 사람을 가두는 곳이었나?”
확실히 창살도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한 기사는 자르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창살.
이 정도면 유물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다행히, 나는 충분히 자를 수 있었다.
나는 대검을 꺼내 들었다.
대검에 마나를 불어넣고, 힘껏 휘둘렀다.
샤악.
작은 소리와 함께 창살들이 잘려 나갔다.
물론, 그 소리는 나와 발레아만 들을 수 있었다.
창살을 자르기 전에 미리 방음벽을 펼쳐놓았기 때문이었다.
잘린 창살을 뽑아낸 뒤에 복도로 나섰다.
몸 주위에 방음벽을 펼쳐놓고, 마나도 최소한으로 줄인 상황.
하지만, 조용한 지하 감옥 안에서는 충분히 시끄러웠던 모양이었다.
“누구냐!”
복도로 나서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홀로 불이 밝혀져 있는 감방이 있었고, 그 앞에 기사 두 명이 서 있었다.
느껴지는 마나는 셋인데, 보이는 것은 두 기사라.
그럼 다른 마나는 죄수이려나?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었다.
괜히 다른 일을 신경 쓰다가 늦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두 기사가 이쪽을 바라보고, 검을 뽑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발을 박찼다.
마나를 가득 담아, 박찬 발.
쿵!
바닥이 깨지며, 내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창살이 늘어선 빈 감방이 내 옆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놀란 기사들의 얼굴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들은 급하게 검을 치켜들어, 자신의 몸을 지켰지만.
나는 그대로 기사들을 지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기사들의 검은 미리 확인했었다.
둘 다 유물이 아닌 강철 검이었다.
튼튼한 검 같았지만, 마나가 가득 담긴 내 부러지지 않는 검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검이 잘려 나가고, 기사들의 몸도 잘려 나갔다.
이제 평범한 검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었다.
기사들의 판금 갑옷도, 감옥에 펼쳐진 유물의 방해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 정도 능력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지만…….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달려가려 했다.
그때였다.
감옥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를 자작?”
정확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안에 갇힌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나도 그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2 황자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 게 당연했다.
텅 빈 지하 감옥에 홀로 갇혀 있는 사람은 제국의 황족. 그것도 두 번째 황자였다.
아니, 지금은 황제가 바뀌었으니, 황제의 동생이려나.
어찌 되었건, 제국에 끌려갔다던 2 황자가 이곳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는 양팔에 팔찌가 채워진 채로 낡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황자가 차고 있는 팔찌는 유물이었다. 황자가 마나를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물건일터였다.
이런 곳에 황자를 감금하고 있었다니…….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새 황제에게는 충분히 봐준 것이긴 하지만, 이 감옥은 황자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더구나, 갇혀 있는 곳이 수도 바로 옆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그래도, 2 황자의 모습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디 아파 보이지도 않고, 고문을 당한 흔적도 없었다.
황족이라 식사도 제대로 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는 황자의 눈은 늘어뜨린 그의 몸과 달랐다.
“나를 꺼내 주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네.”
자리에서 일어나 창살로 다가오는 그의 눈은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충혈되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테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눈은 복수로 불타고 있는듯했다.
나는 전과 다른 황자의 말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황자님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그냥 지나가려 하지 않았겠지. 기사들을 그렇게 바로 죽일 리도 없고.”
그렇게 말하며 황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동안 충분히 느꼈으니까.”
전에는 마냥 잘생겨 보였던 황자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에 보았던 황태자 옆에 세워놔도 이제는 꿀리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더구나, 황자는 내가 왜 여기 온 것인지 묻지 않았다.
확실히, 그는 구할 보람이 있어 보였다.
다만, 지금은 다른 일이 먼저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내 말에 황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말했지만, 내가 진짜 그렇게 말할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떠나기 전에 황자에게 물었다.
“3 황자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다고 들었다. 정신이 나간 아이를 그냥 감옥에 던져 놓았었다는군.”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잡아 오기는 했지만, 굶어 죽었을 줄이야.
그가 정신이 나간 것은 죽은 대주교 때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죽은 3 황자에게는 조금 미안해졌다.
아무래도 2 황자는 확실히 구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2 황자를 감옥에 둔 채로, 계단으로 향했다.
복도로 나선 뒤로 발레아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숨긴 채로 영역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바로 손을 쓰려고 하겠지.
이곳에서는 그럴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나는 계단을 뛰어올라, 지상으로 향했다.
‘마나 감응력’을 가득 끌어올리니,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나가 모두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아는 마나가 셋.
둘은 같은 장소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방에 있었다.
그런데, 마나들의 위치가 내 예상과 달랐다.
홀로 있는 마나는 예언가의 마나였고, 호위의 마나는 예언가가 아니라 내가 아는 다른 마나와 함께 있었다.
저건 분명, 저번 삶 마지막에 보았던 마나. 황궁 집사장의 마나였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다행이려나.’
어쨌거나, 늦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목표를 바꾸었다.
처음 잡을 상대는 예언가가 아니었다.
쾅!
지상으로 나가는 문은 두꺼운 철문이었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철문을 박살 내며 위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전부 중무장한 기사들이었다.
집사장이 와서인지, 황실 기사들이 복도에 가득 나와 있었다.
복도에 가득 늘어선 기사들.
나는 전생에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다.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장도리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무기가 있었다.
좁은 복도.
나는 대검 대신, 신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 황제가 수여한 건틀릿을 끼고 있는 반대 손에는 단검을 들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단검이었다.
[주인님 빼고는 주위에 유물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오랜만에 꺼내서 단검 에고가 삐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삐진 음성도 듣기가 나쁘지 않았다.
철문을 부수며 등장하자,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누구냐!”
“막아! 적이다!”
“안에 알려라!”
알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첫 상대는 내가 들이닥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덕분에 그 기사는 목에 단검을 박힌 채로 무너졌다.
기사가 무너지기 전, 나는 그 옆을 빠져나와 다음 기사에게 신검을 휘둘렀다.
그 기사는 실력이 좋은 기사였던 모양이었다.
검으로 신검을 막은 것을 보니.
신검이 튕겨 나가고 나는 몸을 반대로 휘돌았다.
동시에 내 신검을 막은 상대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신검의 관통 능력이었다.
주저앉은 기사 옆을 지나며, 나는 빈손을 앞으로 뻗었다.
내 빈손에 다음 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 순간 그는 숨 막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컥. 어떻게…….”
푹.
빈손에서 나타난 단검이 그의 목을 찌른 것이다.
“강적이다! 몸, 몸으로 막아!”
뒤에 있던 기사가 순식간에 기사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남은 기사들이 굳은 얼굴로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고함친 기사는 집사장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집사장을 도망치게 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푹.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로 그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가슴에는 대검이 박혀 있었다.
내가 날린 대검이었다.
단검을 소환할 수 있으면 다른 물건도 소환할 수 있었다.
공중으로 몸을 날린 채로, 마나가 담긴 대검을 날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뒤에 내게 달려드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그 기사들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순식간에 정리된 복도.
대단한 기사들이 앞을 막았지만, 쓰러뜨리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단검과 신검을 유물 주머니에 넣고, 대검을 다시 소환했다.
대검이 사라지자, 앞으로 꼬꾸라지는 기사.
나는 그 기사를 지나, 기사가 열려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집사장과 예언가의 호위, 잔드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