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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31화 (431/563)

제431화

제6편 차르마니아의 밤 (1)

제국의 수도. 차르마니아.

대륙에서 제일 거대한 도시이자, 최강대국의 위엄을 보여 주는 웅장한 도시는 얼마 전부터 우울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선왕인 아버지를 쫓아낸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뒤였을까?

아니면, 수도에 마물이 나왔을 때부터였을까?

어느 쪽이든, 점점 안 좋아지던 수도의 분위기는 이번 마물들의 대침공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소식이 들어온 것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수도와 상관없는 먼 동쪽 영지들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제국은 마물 왕도 잡아보았던 대륙의 최강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들려온 소식은 제국인 모두를 경악시켰다.

마물 떼를 몰고 온 마물 왕이 자그마치 셋이었다.

다행히 계속 서쪽으로 움직이지 않고, 동쪽 영지들에서 걸음을 멈췄다지만, 그 소식은 수도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겁에 질리게 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

수도에 마물이 나왔다 한들, 이 수도는 제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도에 모습을 드러낸 마물도 모두 잡을 수 있었고.

결국, 수도의 분위기만 바닥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저녁노을이 음침한 분위기를 더욱 느끼게 하는 저녁 시간.

수도의 제국인들은 한 번 더 충격을 받게 되었다.

쿠구구구궁.

갑자기 시작된 국지성 지진.

도시 북부에서 시작된 흔들림은 근처에 있는 교단 본부는 물론, 더 떨어진 사람들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느낀 지진은 진원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보게 된 광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콰앙!

도시를 울리는 진동은 사실 지진이 아니었다.

평범한 주택가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구멍이 생겨난 여파였다.

신기하게도 주택 사이의 대로에 만들어진 거대한 구멍.

구멍이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었지만,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놀라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마물들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콰라라라락!

케에에엑!

각종 곤충을 닮은 탁한 색의 마물들.

물론, 봉인지에서 뛰쳐나온 마물 웨이브 정도의 수는 아니었고, 평범한(?) 돌연변이 마물들이었지만,

갑자기 쏟아져 나온 수십 마리의 마물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끼아아악!”

“마물이다! 마물 떼야!”

길을 걷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사람들은 급하게 창문을 닫고, 지하실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다가오는 마물들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던 수습 서기관 토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리에 주저앉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미를 닮은 하얀 마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물은 거미를 닮기는 했지만, 사람보다 훨씬 컸다.

토비는 작은 거미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살아남더라도 다시는 거미 근처도 못 가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지만.

“난 죽어도 싸. 욕을 먹더라도 다시 건의해야 했었어.”

다가오는 마물을 보며, 토비는 작게 투덜거렸다.

제국 수도에 마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된 뒤로, 수도의 관료들은 금방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황실과 고위 귀족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 관료들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황실에서 관리하던 던전에서 빠져나온 마물들이 고대 제국의 하수도를 통해서 수도 각지에 출몰하는 것이었다.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관료들은 그 원인을 처리하려 했다.

던전은 당장 정리할 수 없으니, 고대 제국의 하수도를 수색해서 던전과 연결된 곳을 막아버리자는 계획.

토비도 그 계획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아직 수습에 불과했지만, 열심히 건의서도 계속 제출했었고.

하지만, 상부, 아니 황실은 그 계획을 무시했다.

선황제도, 지금 황제도, 아니 황제에게 이야기가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뭔가 고의로 막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지하에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들킬까 봐 조직이 막고 있었지만, 수습 서기관에 불과한 토비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불길한 예상은 들어맞기 마련이었다.

그게 토비 앞에서 나타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토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저항이라도 할 텐데.

그는 형과 달리, 능력을 얻지 못했다.

반쪽짜리 귀족, 서자의 한계였다.

그에게 거대한 침 같은 털들이 가득한 마물의 앞발이 다가왔다.

침이 가득 박힌 낫과 같은 모습.

저 앞발에 쓸리기만 해도 온전한 모습을 남기기는 어려울 듯했다.

등 뒤는 가정집의 담벼락. 피할 곳은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취이이이익.

바로 앞에서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서걱.

무언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생각지도 못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토비는 눈을 번쩍 떴다.

다가오던 마물은 목이 잘려 나간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그 뒤에 목소리의 주인이 서 있었다.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입은 젊은 남자. 그는 커다란 대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마물을 벤 남자는 살아남은 토비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옆에서 숨을 헐떡이는 신관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물들이 밖으로 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실수했군요. 어차피 생길 구멍이었지만, 우리가 난폭하게 싸우는 바람에 일찍 무너진 것 같습니다.”

남자의 말에 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토비도 그의 말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일찍 구멍이 만들어지게 되어버렸다지만, 토비는 그를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도 구멍이 만들어지는 것은 알 수 없을 터였다.

남자, 아니 샤를 백작이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샤를 백작은 토비를 모르겠지만, 토비는 그를 잘 알았다.

전 황제에게 처음으로 직접 상을 받은 카를로스 왕국의 귀족이자 기사.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토비와 그의 동료들에게는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와 같은 서자라는 점.

물론, 토비와 달리 각성한 귀족이었지만, 그렇더라도, 그는 처음으로 서자라는 차별을 뚫고 성공한 사람이었다.

토비가 감동한 눈으로 존경하는 남자를 보는 사이에, 샤를 백작, 알렉스는 신관에게 계속 말했다.

“알란 신관님은 바로 경비대에게 알리세요. 우리는 여기서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알렉스의 말에 알란 신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경비대가 어디 있는지를 모릅니다.”

알란 신관은 제국 출신이 아니었다.

더구나 신관이 된 뒤에도, 제국 수도에 거의 있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능력 덕분에 계속 외진 수도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알렉스도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일을 진행하려면, 알란 신관은 이곳에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뜻밖의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이다.

알렉스가 구해준 젊은이, 토비였다.

“제가 압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었긴 했지만, 생각 외로 호의적인 젊은이와 함께 알란 신관이 구멍 옆을 떠나갔다.

* * *

신관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검기, ‘마나 방출’로 도망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마물들은 벌써 흩어졌지만, 이어서 튀어나오는 마물들을 죽이니, 이제 이제 구멍 주위는 한산해졌다.

그렇게 근처의 사람들이 사라진 뒤, 나는 발레아를 불렀다.

“발레아, 이제 나와도 돼.”

내 말에 발레아가 불쑥 내 옆에서 솟아났다.

이제는 익숙해진 등장.

나는 발레아에게 말했다.

“이제 풀어도 돼.”

내 말에 발레아는 입술을 내밀었다.

“알렉스는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해요. 본 사람이 없으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발레아의 말대로 방금 전 내가 알란 신관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마물이 뚫던 구멍은 없었다.

마물은 지하 수로를 돌아다니고 있었을 뿐이고, 지상으로 구멍을 뚫은 것은 발레아가 한 일이었다.

물론, 그 건 내가 지시한 일이었고.

처음에는 하수도에 있는 마물을 쓸어버리고 묻어버리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마물들이 지상에서 설쳐주는 게 내가 일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발레아에게 지상으로 통하는 구멍을 뚫게 했고.

그 뒤에는 신관을 속이기 위해 연극을 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교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괜한 오해(?)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발레아는 내 연극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증인이 없으면 된다라…….’

그녀다운 말이었지만,

“역시, 발레아는 너무 과격해.”

내 말에 발레아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어이없는 말을 들은 표정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발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잡고 있던 것을 풀라고 했죠?”

발레아는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똑. 똑. 쿠쿠쿠쿠웅

다시 바닥이 떨리고, 구멍 아래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마물들의 괴성.

그 마물들은 발레아가 그동안 영역의 힘으로 막고 있던 지하 수로의 마물들이었다.

이미 밖으로 튀어나온 마물들은 일부분이었다.

저 지하 수로에는 훨씬 더 많은 마물이 있었다.

이제 발레아가 벽을 열어놓았으니, 그 마물들이 모두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에 자리를 피해야 했다.

바빠 죽겠는데, 괜히 마물에 휘말릴 이유가 없었다.

“우선, 교단으로.”

발레아와 나는 주택 지붕으로 올라가, 교단 본부로 향했다.

카를로스 수도에 있는 신전보다 훨씬 크고 장엄한 신전.

그곳이 바로 대륙 제일의 교단 본부였다.

지붕을 뛰어넘으며 달리고 있으니, 뒤쪽에서 마물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크아아앙!

마물들이 지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처음 나왔던 십수 마리의 마물들을 몇 배, 몇십 배나 뛰어넘는 숫자의 마물들.

오늘 제국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힘들 예정이었다.

그렇게 마물들의 소리를 들으며, 지붕 위를 달려가는 동안, 노을이 물러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사방은 어두워졌지만, 마나를 담은 눈으로 보는 광경은 낮과 다르지 않았다.

지붕 위에서 보니, 확실히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멀리, 치안 기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역시, 대응이 빨랐다.

이런 작은 점으로도 대륙 제일이라는 제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달려오는 치안 기사들 뒤에 알란 신관과 생존자도 보였다.

어느새 기사들에 합류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기껏 안전한 곳으로 보냈는데, 위험한 곳으로 돌아오다니.

나는 그가 안전하기를 ‘셀린 여신’에 기도했다.

신전은 가까웠다.

큰 광장 옆에 붙어 있는 신전은 무척이나 장엄했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살벌했다.

신관 기사들이 튀어나와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고, 사제들도, 신도들도 사방으로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갑자기 지붕 아래로 뛰어내린 나와 발레아를 보고, 기사들은 긴장했지만, 다행히 기사들 뒤로 아는 얼굴이 있었다.

엘레나 데 그레시아.

지금은 ‘엘레나 사제’로 불리는 내 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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