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30화 (430/563)

제430화

제5편 다시 제국으로 (2)

전에 와봤었던 교단의 신전.

그때는 왕실 호위 기사의 대표로, 전대 왕의 치유를 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 신전에 왔었다.

내가 하는 일이니, 언제나처럼, 제사도 엉망이 되고, 신전에 숨겨놓았던 비밀도 밝혀졌었는데…….

그런 신전을 스스로 다시 찾아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더구나, 그때도 봤지만, 신전의 안채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제재 없이 신전의 메인 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새로운 대주교의 명령 덕분이었다.

대주교 오르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자, 조아나는 나를 교단의 ‘명예 신전 기사’로 삼았다.

그동안 교단을 돕고, 대주교가 된 자신이 살아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이유여서였다.

뭐, 따지고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고, 겉으로 보면 내가 교단을 도운 일도 많이 있어서 ‘내 명예 신전 기사’ 지위는 큰 반발 없이 장로 회의를 통과한 모양이었다.

그걸 알게 된 것도 얼마 전이었고, 이번에 처음 그 직위를 써먹게 되었다.

그 덕분에 알란 신관을 만나는 것도 허락이 되었다.

“알란 신관이 이곳에 계신다는 것은 이 신전에도 아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발레아와 나를 안내하던 신관은 알란 신관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자 의아해했다.

신관의 의문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비밀스러운 일이었으니.

“전에도 그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일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러시다면야.”

내 말에 안내하던 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은 전에 제사를 지냈던 홀로 발레아와 나를 안내했다.

전과 달라지지 않은 홀이었다.

중간중간 기둥이 세워져 있는 그리스 신전과 비슷한 홀.

다만, 전과 달리, 곳곳에 놓여 있던 유물도 보이지 않았고, 제단의 위치도 전과 달라져 있었다.

과거 제단이 있던 자리에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계단은 분명, 제단에 숨겨져 있었던 그 계단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입구 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게 한 뒤에, 신관은 과거 제단이 있던 곳,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가 계단에 도착하기 전에 계단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너무 급격한 변화라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원래 이 진은 이런 큰 도시의 신전에는 없었으니까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대주교님이 되고 이렇게 규칙을 계속 바꾸면 교단이 어떻게 될지…….”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성전도 폐쇄되었고, 제국에도 마물들이 날뛴다는 이야기도 있고. 대주교님이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쯧쯧, 전부, 나이 든 신관의 노파심이었으면 좋겠군요.”

두 사람의 대화 소리였다.

둘 다 들었던 목소리였다.

젊은 목소리는 나를 성전으로 안내했던 공간 이동 능력을 가진 신관이었고.

고지식한 목소리는 전에 이 신전에 방문했을 때 나를 안내했던 중년 신관이었다.

계단으로 향하던 신관은 목소리가 들리자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계단에서 두 사람이 차례로 올라왔다.

올라온 사람들은 내 예상과 같았다.

둘 다, 계단 앞에서 기다리는 신관을 보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 다, 바로 나를 알아보았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샤를 자작!”

젊은 신관의 말을 중년 신관이 정정했다.

“샤를 백작이시군요. 저는 이 신전의 주교입니다.”

분명, 전에 봤을 때는 고위 신관이긴 했지만, 주교는 아니었었다.

내 직위가 올라간 것처럼 저 신관도 직위가 올라간 모양이었다.

“이번에 명예 신관 기사가 되었습니다.”

내 말에 중년 신관의 얼굴 위로 껄끄러운 듯한 표정이 언뜻 스쳐 갔다.

보통 사람이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듯한 변화였다.

주교가 된 신관은 내가 명예 신관 기사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신관은 바로 표정을 바꾸고,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축하드립니다. 교단에도 큰 복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안내한 신관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모신 거지?”

평범한 질문이었지만, 내 귀에는 조금 질책이 담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란 신관님을 만나길 원하셨습니다.”

신관의 대답에 주교의 눈은 슬쩍 나와 발레아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발레아를 지날 때, 슬쩍 찌푸려지는 것이 나는 물론, 발레아가 이곳에 들어온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가…….”

하지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럼, 저희가 자리를 비켜드려야겠군요. 그럼, 신께 영광을.”

“……신께 영광을.”

대신, 깔끔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내가 답을 하자, 그는 안내하던 신관과 함께 홀을 빠져나갔다.

뭔가, 특이한 신관, 주교였다.

내가 홀을 나서는 주교를 신기하게 바라보자, 젊은 신관, 알란이 내게 말했다.

“전에도 듣기는 했지만, 정말, 공과 사가 확실한 분이십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야 이 수도에 가득한 상황이라, 저 정도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이었다.

옆에서 발레아도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신전의 주교는 앞으로도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거죠? 아니, 그보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대주교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물론, 이번 삶에서 들은 것은 아니었다.

죽기 전, 레스티가 알려온 정보 중 하나였다.

대주교, 조아나는 성전이 무너져서 놀게 된 알란 신관을 이곳 카를로스 왕국의 수도 신전에 보내, 공간 이동진을 만들게 했다.

제국 황실과 사이가 틀어진 교단의 탈출을 준비하라는 명목이었다.

물론, 사실은 조아나가 내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내린 명령이었다.

그녀는 이곳 공간 이동진이 완성되면 내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공간 이동진이 완성된 시점이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죽기 전 공국에서 듣게 되었고, 이번 삶에서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 미리 찾아온 것이다.

“분명, 진이 완성되면, 샤를 기사님이 쓰시게 하라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대주교님은 아직 완성된 것을 모르실 텐데…….”

“저도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명예 신관 기사일 뿐이니……. 대주교님에 대한 신의 사랑이 얼마나 클지는 알 수가 없죠.”

오랜만에 풀어대는 거짓말이었지만, 의외로 말이 술술 나왔다.

사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사랑을 주는 신이 다른 신이긴 하지만, 사랑을 받은 것은 맞을 터이니.

“하긴, 평범한 사제로 성전을 가게 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니까요.”

내 말에 알란 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간 이동을 하실 생각이군요. 다만, 이 공간 이동진은 제국 수도에 있는 신전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 신전, 알란 신관을 만나러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제국 수도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시죠. 이렇게 빨리 시험을 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알란 신관의 말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시운전이라니…….

물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알란 신관을 따라갔다.

전에도 내려왔던 긴 계단.

전에는 이 계단에 여러 함정이 숨겨져 있었다.

뚫고 내려가느라 고생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계단을 내려가기가 지루해졌는지, 앞서가던 알란 신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성전에서 다른 분들과 같이 나오지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용케 살아나오셨군요.”

“글쎄요. 저도 기억나는 게 없어서…….”

“그러시군요. 따로 나오셨다고 해서, 기억이 남아 계신 게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표정을 보니, 의심이 들어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단순히, 성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물론, 내게는 큰 함정이 담긴 질문이 되어버렸지만.

평생을 열심히 거짓말을 해온 덕에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한참을 내려와 보게 된 지하 광장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울퉁불퉁한 암석이 노출된 지하 광산 같은 모습은 그대로였고.

전날 제단이 박살 난 여파로 엉망이 된 흔적도 남아 있었지만.

광장 바닥에는 제단 대신 커다란 원형의 문양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공간 이동진이었다.

“이 위에 올라서시면 됩니다. 운이 좋게 큰 힘이 충돌했던 장소가 있어서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충돌은 내가 일으킨 것 같았지만, 나는 말없이 알란 신관의 말에 따랐다.

발레아와 나는 그를 따라, 진의 중앙에 올라섰다.

“출발합니다. 첫 시험이라 오차가 조금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그가 꺼낸 말은 사람을 더욱 긴장시켰다.

나는 그의 말을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오차?”

환한 빛 속에서 신관은 씩 웃었다.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못되더라도, 조금 다른 곳에 나타나는 정도이니까…….”

그 말과 함께 지하 광장은 환한 빛에 휩싸였다.

* * *

확실히, 알란 신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첫 시험이라도 죽거나 다치지도 않았고, 제국 수도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문제는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된다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교단의 본부에 있는 공간 이동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크게 떨어진 곳도 아니었고, 겨우 몇백 미터만 떨어진 곳이었다.

다행히, 수백 미터 높이의 허공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교단 본부에 있는 공간 이동진에서 북쪽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을 뿐이었다.

문제는 교단 본부에 있는 공간 이동진이, 교단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다.

“대실패인 것 같은데요. 첫 이동이라고 해도, 이렇게 멀리까지 떨어진 적은 없었는데…….”

주변을 둘러본 신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 말했다.

깜깜한 어둠 속이었지만, 마나가 담긴 눈 덕분에 그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원래, 실패해도 대부분 교단 본부 안인데……. 교단 근처의 하수도로 공간 이동된 분이 있다는 말은 듣기는 했지만, 제가 그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신관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

그가 열심히 떠드는 것은 공포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교단 근처의 빈 하수도로 공간 이동이 되었다.

원래는 쓰지 않아 비어 있어야 할 하수도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위에는 사람 대신 다른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르르르릉.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는 마물들.

던전에서 풀려나와 고대 하수구로 넘어오게 된 마물들이었다.

그동안, 발레아가 묻어놓은 지팡이 때문에 이 하수도가 마물들 천지로 변해버린 모양이었다.

바빠 죽겠는데, 마물들까지 내 앞을 막다니.

내가 벌인 일 때문이었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걱정이 없었다.

내 옆에는 이런 지형의 최강자가 있었다.

발레아의 눈이 마물들 이상으로 빛이 났다.

그녀가 지팡이를 꺼내 들고, 바닥을 내려쳤다.

쿵!

은은한 진동이 퍼져나가고, 하수도 전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