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6화
제1편 예언가와의 대담 (2)
저번 삶에서 예언가의 동료인 여자의 약점을 몇 개 알게 되었었다.
그중의 하나가 그녀의 능력은 항상 시전되는 중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무한한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당연하였고, 항상 운용되고 있다면 생활이 무척이나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인지하지 못하는 갑작스러운 기습에는 그녀의 능력이 반응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갑작스러운 기습이란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지만, 내게는 그게 가능한 유물이 하나 있었다.
검은 쇠뇌.
일회용이라 또 망가지긴 했지만,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제일 큰 방해물이 없어졌으니, 이제 다른 방해물을 처리할 차례였다.
이번에는 기습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망가진 쇠뇌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숲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마나를 마음껏 뿜어내었다.
“너는 누구지?”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내가 하지 않았다.
그가 보호하고 있던 예언가가 나를 보고 물은 것이다.
“설마…… 이곳의 영주인 샤를 자작, 아니 샤를 백작인가요?”
나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나중에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대신 나는 검을 꺼내며 투레 백작에게 말했다.
“그녀가 싸움에 휘말리면 곤란할 텐데요.”
이번에는 백작과도 싸움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자리에 멈춰서자, 백작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예언가는 계속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군. 율리아 님은 여기서 기다리시죠.”
백작은 예언가에게 말한 뒤, 굳은 얼굴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백작이 충분히 걸어 나오자, 나는 작게 말했다.
“발레아, 시작해.”
내 말이 떨어지는 즉시,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백작과 예언가 사이에 커다란 벽이 치솟아 올랐다.
길고 높은 벽이었다. 나조차도 한순간에 넘기 힘든 벽.
놀란 백작이 뒤로 몸을 날렸다.
내 예상과 다르게 백작은 검으로 발레아가 만든 벽을 부숴 버렸지만, 그에게는 아쉽게도 벽 뒤에는 예언가가 없었다.
어차피, 흙벽은 예언가를 빼내기 위한 눈가림일 뿐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예언가가 사라진 것을 보고 백작은 내게 버럭 화를 냈지만, 나는 담담히 그를 향해 검을 겨누었을 뿐이었다.
“예언가가 싸움에 휘말리는 것은 나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일 뿐입니다. 인질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발레아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나는 거짓말이 아니었고, 먼저 거짓말을 한 것도 저기 목에 화살이 박힌 채 죽어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백작은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긍을 한 듯했다.
“정말, ‘적대자’가 맞나 보군. 우선 너를 잡고, 예언가를 되찾아야겠어.”
백작은 굳은 얼굴로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검을 치켜든 그는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 느낌은…… 분명, 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저번 삶에서와 같은 반응이었다.
이미 한 번 설명했는데, 적에게 또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대검을 치켜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대검을 쓴 것은 조금 무리였을까.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대검 대신 신검으로 바꿔 들 수밖에 없었다.
내장이 얼핏 보이던 옆구리의 상처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많이 다쳤어요. 아프겠어요.”
발레아가 옆에서 걱정스럽게 나아 가는 상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이렇게 낫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 그리고 괜히 가두어 둔 예언가에게 화풀이하지 말아요.”
“아……. 안 되나요?”
내 말에 발레아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쿠구구구궁.
그녀의 손을 따라, 땅이 움직였다.
출렁거리는 땅을 통해 예언가가 위로 올라왔다.
“컥. 커억, 컥.”
화풀이도 필요 없을 듯했다.
숨구멍도 만들어 주지 않았는지, 위로 올라온 예언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헛구역질을 해 댔다.
반쯤 정신이 나간 모습. 그래도 발레아 덕에 일이 편해질 듯했다.
숨이 돌아오자, 예언가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투레 백작을 보게 되었다.
내 옆구리를 뜯어 간 대신, 백작은 허리가 둘로 잘려 있었다.
예언가는 잠시 투레 백작을 보더니, 이번에는 싸움의 여파로 한쪽에 처박힌 그녀의 동료를 확인했다.
“결국, 이번에도 전부 죽였군요.”
‘이번에도’라는 말은 얼마 전 알리나 여검호를 죽인 일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적대자’로 그동안 벌여 왔던 일을 말하는 것일까.
잠깐 스쳐 가는 의문을 뒤로하고, 그녀는 나에게 확신에 찬 물음을 던졌다.
“당신은 샤를 백작이 맞겠죠? ‘적대자’이고, 저처럼 미래를 보는 자겠죠.”
다 맞았지만, 마지막은 틀렸다.
“이렇게 미리 알고 찾아온 것을 보니, 나와 달리 지금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건가요?”
이어진 물음도 틀렸고.
하지만, 발레아는 예언가의 말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과 함께 아직도 의문이 남은 얼굴. 뭔가 반신반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에 대한 그동안의 의문이 조금은 풀린 것일까?
나는 그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발레아의 의문에도 따로 변명하지 않았다.
이번 삶에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틀린 말이었고.
“투레 백작을 통해, 마왕과 싸울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그녀는 미안한 얼굴로, 죽은 투레 백작과 동료를 바라보았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네요. 당신은 내 생각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군요.”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은 틀렸다. 아직 나는 부족했다.
‘사자 회귀’가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그냥 휘말려 죽었을 게 분명했다.
더구나, 아직 이번 일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 내려놓은 듯한 예언가의 모습은 내게 큰 도움이 될 듯했다.
엉망이 된 벌판에서 나는 예언가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습니다.”
“역시, 당신도 다 보지는 못한 모양이군요.”
내 말에 예언가는 반색했다.
자신만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었다.
어떤 오해를 하든지 상관없었다. 질문에만 답해 준다면.
다행히, 예언가는 웬만한 것은 다 알려 줄 것 같았다.
사실 일을 벌인 것은 예언가가 아니라, 저기 처박혀 있는 그녀의 동료가 벌인 일이었다.
사실, 저 죽어 있는 여자에게 묻는 편이 더 좋기는 했지만, 예언가와 달리 제대로 말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보다, 저 여자는 생포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은, 예언가에게 제대로 듣지 못한 뒤에 고민해 볼 문제였다.
잘 대답해 줄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부터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직접 찾아온 거죠?”
이미 한번 들었던 것이지만,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죽기 전에 들었던 말과 다른 대답을 듣게 되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직접 찾아갈 필요가 있는지, 그냥 조직이나 황제에게 알리는 게 나을지……. 결국 결심을 한 것은, 교단의 새로운 대주교 덕분이에요.”
‘대주교?’
여기서 대주교가 나온다고?
예언가의 말에 나는 눈을 끔뻑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이 내게 직접 찾아가라고 권하셨어요. 어린 분이긴 하지만, 정말 신심이 크신 분이었어요. 저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고요.”
“아…….”
나는 입도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제국군이 밀고 내려오지 않은 게 새로운 대주교, ‘조아나’ 때문이라니.
나는 뜻밖의 도움에 어이가 없었다.
따로 조아나에게서 연락은 없었던 것을 보니, 연락이 어려웠거나 예언가가 정확하게 말을 안 했던 모양이었다.
연락을 받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도 큰 도움이었다.
“투레 백작은 나도 아는 분인데……. 저 여자 귀족은 누구죠?”
“누군지도 모르고, 화살부터 날렸다는 말인가요?”
예언가는 이어진 내 물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너무 쉽게 봤나?
포기한 듯한 예언가의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을 놓았던 모양이었다.
결국, 고문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예언가의 한숨이 들려왔다.
“하아……. 예언이 막혔을 때도 그렇고, 이미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 살아도 감정은 어쩔 수 없네요.”
그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를 봤으니, 먼저 공격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다행히, 예언가는 내가 고문을 결심하기 전에 감정을 가라앉혔다.
거기다, 알아서 이유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같이 온 여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름은 잔드라.
예언가를 계속 호위해 온 가문의 후예로, 그녀는 당대 예언가의 호위인 모양이었다.
예언가의 후손인 알리나와 다니느라 한참을 방치한 모양이었고, 그사이에 조직이 그녀를 맞아 준 모양이었다.
“원래 전에도 조직 쪽 사람이 도와준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이번에도 맡겼었는데……. 설마, 뭔가 다른 것을 봤나요?”
예언가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오래 살아온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다니.
아니면, 이런 사람만 예언가가 될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결국 고문을 하지 않고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원래, 알리나를 누가 죽였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이건 당연히 보여야 했는데, 볼 수 없었으니 죽인 사람이 그 ‘적대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원래, 처음에는 누가 죽였는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알리나가 죽게 된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마물을 부르는 지팡이를 쓰는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지팡이를 숨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바로 유추할 수 있었죠.”
얼마 전이라는 그때는 바로 내가 카를로스 왕국 수도에 도착했을 때였다.
바로, 시점을 저장했던 그 시간.
내가 알리나의 죽음을 확정하자, 예언가가 내 모습을 보게 된 모양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
그렇게 되어 예언가는 알리나 대신 원래 호위를 찾아갔고, 이어서 투레 백작을 만나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결국, 제국군과 조직이 알게 된 것은 예언가가 호위를 찾아가서 사정을 알린 그때였다.
다만, 아쉽게도 예언가는 자신이 있었던 가문의 안가와 호위와 만난 곳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것은 고문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고문을 안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좀 더 확인을 해 봐야겠군.”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내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는 영지로 돌아와 레스티에게 부탁했다.
정보망을 최대한 풀어서 예언가의 가문과 호위 가문의 위치를 알아내 달라고.
내 강한 어조에 레스티는 놀라면서도 바로 움직여 주었다.
레스티가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나는 홀로 공국으로 향했다.
공국에 와 있을 제국군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