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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19화 (419/563)

제419화

제19편 회군

지팡이에 마나를 밀어 넣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 동쪽 하늘에서 다시 마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마물들이 다시 움직인 것이다.

역시, 이 지팡이의 위력은 대단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마물을 움직이게 하다니.

조금만 더 성능이 좋았다면, 피리 부는 사나이나 레밍즈처럼 바닷물 속에 마물들을 처박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팡이는 그 정도 위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저, 사람보다 맛있어 보이는 냄새를 풍기는 정도일 뿐이었다.

거기다, 주변에 오래 머물면 익숙해져서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결국, 이 정도가 한계일 뿐이었다.

나는 점점 다가오는 거대한 마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고 말았다.

발레아는 갑자기 고개를 젓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발레아에게 말했다.

“아쉽게도 예상보다 빨리 끝내야겠습니다.”

“네? 왜요?”

발레아는 다시 한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오는 마물중에 아는 상대가 있는 것 같거든요.”

“아는 마물이 있다고요?”

“발레아도 알걸요? 좀비 거인이라고.”

내 말에 발레아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 반쯤 죽은 상태인 거인 마물왕을 말하는 거죠? 전에 알렉스와 싸우다 도망쳤잖아요.”

실제로는 도망쳤다기 보다, 싸우다 지쳐서 돌아간 것이었지만.

“네. 지금 그 마물왕이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네요.”

거리가 가까워져서인지, 아니면 먼저 달려와서인지, 거대한 마나 안에 좀비 거인의 마나가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왕이라 불릴 정도의 마물이 뭐가 급해서 저렇게 선두에서 달려오는지 모르겠지만, 속도를 보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마물왕을 피해 움직이다 보면, 마물들과의 거리가 너무 벌어져서 지팡이의 효과가 닿지 않게 될 테고.”

그렇다고, 여기서 다른 마물들이 올 때까지 마물왕과 싸울 수도 없었다.

조금 전처럼 제국인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더 곤란했고.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내 목표는 마물과 마물왕들이 우리 왕국으로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팡이를 좀 더 안쪽에 묻어놓으면, 마물들이 북부 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가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저 마물왕은 나와 인연이 꽤 깊었다.

이번에 마주치게 되면 벌써 세 번째 보게 되는 마물왕이었다.

마음 같았으면 이번에 끝을 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직 불사신 거인을 죽일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머리에 투구를 쓴 것을 보면 그곳에 약점이 있는 듯한데. 벗길 방법이 없으니 의미 없는 약점일 뿐이었다.

나는 지팡이에 마나를 밀어 넣으며 마나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시간이 지나자 마물왕의 괴성이 은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과거에 들었던 그 소리였다.

“와, 목소리가 그대로예요. 가래가 끓는듯한 목소리.”

마물의 괴성이 들려오자, 발레아가 반가운 얼굴로 동쪽 언덕 너머를 바라보았다.

역시, 발레아의 감성은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나는 저 마물왕이 그리 반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직, 죽일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반가울 리가 없었다.

쿵. 쿵. 쿵.

시간이 지나자, 괴성에 이어, 언덕 너머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말 알렉스에게 화가 난 것 같은데요?”

발레아의 말을 들으니, 달려오는 발소리에 화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뭐,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일 터였다.

더구나, 화가 맞는다고 해도, 화는 내가 내야 했다.

만날 때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좀비 거인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야 할 판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품에 넣었고, 발레아가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솔직히 팔짱을 낄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발레아는 팔짱을 끼고, 지팡이로 땅을 콕 찍었다.

스르르르르.

땅이 발레아와 나를 삼키기 시작했다.

괜히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 어그로를 끌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땅속으로 사라져가는 그 순간.

언덕 위로 투구를 쓴 거인의 머리가 쑥 올라왔다.

거리는 멀었지만, 마물왕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주었고, 마물왕은 다시 한번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앙!

아무래도 발레아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마물왕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저 좀비 거인은 지팡이가 아니라 나를 쫓아 달려온 것이었다.

좀비 거인은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 근방을 돌아다니며 한참 동안 난동을 부린 모양이었다.

결국, 다른 마물들이 좀비 거인보다 먼저, 제국 땅으로 밀려들었다.

마물을 부르는 지팡이는 떠나기 전 발레아에게 부탁해서 좀 더 서쪽, 수도와 가까운 곳에 묻어놓았다.

땅에 묻은 지팡이의 마나는 내가 직접 마나를 불어넣을 때처럼 마물을 강하게 유혹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미 한번 내달리기 시작한 마물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마물들은 봉인지 경계를 넘어, 제국의 동부 영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영지들 가운데는 2 황자의 편에 섰던 영지도 있었지만, 2 황자가 잡혀 들어간 이상, 지금은 전부 새황제에 충성을 다하는 영지들일 뿐이었다.

그런 영지들이 모두 마물들에게 쓸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제국은 총동원령을 내려 온 나라의 귀족과 기사들을 모아 마물들의 웨이브를 막아내려 했다.

총동원령은 봉인지 경계의 요새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뚫린 요새를 지킬 상황이 아니었다.

남은 검호도, 기사들도, 쏟아져 들어온 마물들을 막기 위해 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결국, 요새에는 원래 병력보다 훨씬 적은 병력만 남게 되었다.

이 결정은 갑작스러운 환란에, 예언가가 보지 못한 미래이기에 황실, 아니 황제가 직접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제국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결정은 큰 실수였다.

마물의 웨이브는 이번이 끝이 아니었고, 마물왕은 봉인지에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결국, 계속 이어진 웨이브에 몇 개월 뒤, 봉인지 경계를 지키던 요새는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 * *

우리는 지팡이를 묻은 뒤, 다시 북부 산맥을 넘어 벨루하 공국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다녀온다고 했지만, 일주일이 훌쩍 지난 뒤였다.

나는 공국의 요새 도시가 보이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참모인 바도르 장군과 왕실 기사단장에게는 이야기해 놓았지만, 파견대의 분위기가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파견 대장이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다니. 그것도 여자와 둘이서 자리를 비웠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 걱정을 하며, 요새 도시에 들어섰는데, 도시의 분위기도 파견대의 분위기도 내 예상과 천지 차이였다.

긴장이 가득 감돌던 도시는 반대로 활기에 차 있었다.

짐을 싸고 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짐을 풀고 장사를 하고 있었고, 떠날 것 같았던 용병들도, 다시 몰려와 거리는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카를로스 왕국 파견대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들도 귀족들도, 다들 숙소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었다.

다들 나사가 하나쯤 빠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고, 어떤 귀족은 술까지 마신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아니라, 파견대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는 바도르 백작과 기사단장에게 들을 수 있었다.

“첫날과 둘째 날은 전처럼 마물들이 기승을 부렸는데, 셋째 날부터 마물들의 모습이 뚝 끊어졌습니다.”

“셋째 날이라면 그때네요.”

발레아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셋째 날이라면, 내가 지팡이에 마나를 밀어 넣은 날이었다.

분명, 그때 지팡이가 마물들과 마물왕을 끌어모으긴 했지만…….

“산맥을 넘어서까지 효과를 보였다고?”

하기야, 마나의 양을 보면, 쏟아져 나온 마물들이 작은 지역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효과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날 이후로 마물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정찰대가 밀림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는데, 밀림도 텅 비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다들 의아해 했지만, 어쨋거나 할 일이 없어졌으니 다들 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갔던 일은 잘되었습니까?”

“아, 두 분에게는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출발할 때 두 사람에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었다.

단지, 여왕이 직접 명령한 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는 말만 했었다.

결과가 나쁘지 않으니, 결과를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었다.

“제국 쪽으로 마물왕 셋과 마물들의 대규모 웨이브가 있었습니다. 경계 요새들이 뚫리는 것까지는 확인했고, 아마 지금쯤 제국 동부 영지들로 마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백작도 기사단장도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수만 마리 마물의 웨이브?”

“마물왕이 셋?”

백작과 기사단장은 서로 전혀 다른 부분에 놀란 것 같았다.

내 말에 놀란 두 사람은 각기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바도르 백작이었다.

“아……. 그래서 이곳에 마물들이 없었던 것이군요. 아마도 마물들이 제국 쪽으로 몰려든 덕에, 이쪽 마물이 텅 빈 북쪽 밀림으로 옮겨 간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지팡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추측일 터였다.

갑자기 전생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게 베르누이의 법칙이었나?”

“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 실수.

나는 바로 법칙에 관해 설명했다.

“물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지는 걸 말하는 겁니다.”

“그런 법칙이 있었군요. 비슷하게 생각하면 될 겁니다.”

아마도, 지팡이의 능력과 백작의 생각이 더해져서 마물이 사라진 것일 터였다.

어쨌거나 지금이 기회였다.

“이렇게 놀고 있으면 눈치가 보이겠네요.”

“그렇긴 합니다. 하루 이틀은 모두 좋아만 했는데……. 이제는 슬슬 눈치가 보이더군요. 마물이 없으면 파견대는 요새의 식량만 축내게 되니까요.”

내 말에 백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었습니다. 더 눈치를 볼 수는 없죠. 이 기회에 철수하죠.”

“네? 그렇게 빨리 돌아가도 될지……. 더구나 제국이 지금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니까요. 제국이 당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에 떠나야죠.”

내 말에 백작은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 말씀은…….”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과거의 용사가 아닙니다. 제가 지킬 곳은 이 대륙이 아니라 카를로스 왕국입니다.”

어차피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한 상황.

여기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제국은 물론, 이 공국도, 이피로스 왕국도 우리 왕국을 지키기 위한 방파제일 뿐이었다.

잔인한 이야기였지만, 백작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런…….”

그때, 고민에 잠겨있던 기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설마, 왕실 기사단장은 생각이 다른 걸까?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까운데……. 마물왕 한 마리 정도라면 싸워보고 싶었는데…….”

그의 엉뚱한 말에 우리는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다음날. 카를로스 왕국의 파견대는 공국왕과 공국인의 기쁜 환송을 받으며 요새 도시를 떠났다.

공국에 마물이 보이지 않고, 밀림에도 마물이 사라졌지만, 아직, 마물의 위험이 사라지지 않았고, 마물들의 웨이브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환송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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