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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17화 (417/563)

제417화

제17편 마물 왕 웨이브 (2)

지팡이에 마나를 밀어 넣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계속 동쪽 하늘을 보고 있으니, 멀리 거대한 마나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수많은 마물이 모여 만들어 낸 특유의 변형된 마나였다.

마나 구름처럼 모여든 마나가 점차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거기다, 그 마나 가운데 진한 마나가 솟구치는 것도 보였다.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진한 마나들은 바로 마물 왕들의 마나였다.

“셋인가…….”

마나로 봐서는 적어도 마물 왕 셋이 봉인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다만, 계속 다가오던 마나는 어느 순간 멈춰 섰다.

“제국군과 만난 건가.”

마나가 멈추어 설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저 대단한 웨이브에, 적어도 셋 이상의 마물 왕과의 싸움이라……. 아무래도 이곳에서 막아 내기는 어렵겠지.”

제국이 인원을 보내 보강을 해두었다고 해도, 저 숫자와 마물 왕들은 막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물론이고, 전에 보았던 검주, 투레 백작이라면 마물 왕 하나 정도는 멈춰 세울 수 있을 듯했지만, 그게 다였다.

제국의 방어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무너지는 것이 확인된 뒤에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나는 옆에서 다른 지팡이를 세우고 있는 발레아에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 영역을 펼치고 있었다.

만약을 위한 대비였다.

내 말에 눈을 뜬 그녀가 물었다.

“계속 마물들을 이끌고 가는 건가요?”

“제국 내부로 어느 정도 진입할 때까지만요.”

제국을 멸망시킬 생각이라면 수도까지 마물과 마물 왕들을 이끌고 가면 될 테지만.

나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나는 조직, 황제와 같은 생각으로 일을 벌였을 뿐이었다.

내 가족과 왕국을 지키기 위해 마물과 마물 왕을 제국으로 유인했을 따름이었다.

괜히, 시간을 끌어 내가 벌인 일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도 곤란했다.

“그렇다면, 우선 다가오고 있는 침입자를 제거해야 할 것 같은데요.”

발레아가 다른 손을 들어 동쪽, 봉인지 쪽을 가리켰다.

“제 영역 외곽에 침입자가 들어왔어요. 정확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이에요. 엄청나게 빠른데요. 상당한 강자인 듯해요.”

발레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마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나?

‘마나 감응력’을 가진 사람 외에는 마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었다.

발레아의 말대로라면 우연히 이쪽으로 오는 것 같지도 않고.

어쨌거나, 손님이 오고 있다니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지팡이를 품속에 집어넣고, 등에 멘 대검을 손에 쥐었다.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으니, 신검을 잡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확실히, 지팡이 덕분인지, 발레아의 능력이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감시 영역이 전보다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그녀가 알려준 뒤로도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야 나도 마나로 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는 마나군.”

낮은 언덕 위로 빠르게 다가오는 마나는 전에 본 적이 있는 마나였다.

사람치고는 대단한 마나.

분명 전에 싸워본 적이 있는, 검호로 불리는 사람의 마나였다.

“2차전, 아니 3차전이려나.”

처음 싸웠을 때는 내가 죽임을 당했었고, 그다음은 그녀가 죽었었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예언가 뒤에 있는 황제와 조직 때문에 두 사람을 속여서 돌려보냈고.

잘 속여서 보내긴 했지만, 항상 찝찝했었는데, 그 상대가 제 발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낸 여검호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했다.

“반갑습니다. 사절단 때 봤었죠?”

내 인사에 알리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다시 발레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는 분명, 샤를 자작이 맞아. 하지만, 체형도 기세도 그때와 완전히 다른데…….”

역시, 검호 정도 되니, 기억력도 눈썰미도 남달랐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 내 목소리도 체형도 기세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하기야 나도 그녀의 마나를 기억하고 있으니 피장파장이려나.

나는 친절하게 그녀의 의심을 풀어주었다.

“아, 그때는 사정이 있어서 대역을 세웠습니다. 발레아의 도움으로 제 목소리를 덮어씌웠었죠.”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설마……. 그때 있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그럼, 그때 한 말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예언가를 속이려고 일부러 하비에르에게 부탁한 대역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팡이 유물을 보지 못했다는 말도…….”

“네. 거짓말이었습니다.”

나는 품에서 지팡이를 반쯤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알리나는 지팡이를 알아보았다.

“그 지팡이를 네가 가지고 있었다는……. 설마, 여기 온 것도?”

“네. 마물들을 제국으로 유인하려고 온 겁니다.”

여검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동안 보아왔던 장난기 어린 표정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네가 조직에서 말하던 ‘적대자’인가?”

“제 별명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조직이 하는 일을 막고, 예언도 계속 망가뜨렸으니, 저들도 누군가 자신들을 막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데, 별명까지 만들어져 있다니.

“그런데, ‘적대자’라니, 조직이 만든 별명이라서 그런지, 정말 단순한 별명이네요.”

“조직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정말 ‘적대자’였군.”

“같이 다니던 율리아 예언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죠. 예언이 막혀서 쓸모가 없어져서 이제는 따로 다니는 건가요?”

“설마, 율리아 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나? 하긴, 그러니까 대역을 썼겠지. 하지만, 예언이 막혔다고 끝날 분이 아니다. 지금 그분은 다른 가문 분들하고 대규모 진을 만들어서 새로운 예언을 받을 준비 중……! 아……. 이런.”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이 여검호의 약점은 예언가였다.

전에도 예언가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지더니, 이런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자신도 실수를 알아차린 듯했지만, 이미 말이 나온 뒤였다.

“실수했군. 뭐 상관없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을 잡을 생각이니. 목숨만 살려두어서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한 명만 살면 될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여검호는 무척이나 화가 난 것 같았다.

다른 이유보다 자신의 말실수에 제일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목적은 이룬 것 같았다.

귀찮게 열심히 설명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내 설명을 듣고 경악하는 상대를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적에게 열심히 설명해 줄 리 없었다.

내가 적에게 진실을 이야기한 이유는,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첫째로 지금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달아날 생각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

“준비되었어요.”

“시작해요.”

발레아가 영역을 움직일 시간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금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전투 예지를 가진 그녀라면 이기기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전에 그녀를 죽였을 때는 숲이라는 환경을 이용했지만, 이곳은 허허벌판.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발레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쿠구구구궁.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를 에워싸는 원형의 벽이 위로 솟구친 것이다.

원형의 흙벽이 하늘로 계속 치솟아 올라, 결국 하늘을 가로막아 버렸다.

우리를 에워싼 작지 않은 돔이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돔에 갇히게 되자, 주변은 깜깜해졌다.

하지만, 나도 여검호도 이런 어둠이 문제가 될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비웃는 얼굴로 돔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던 여검호가 입을 열었다.

“대지 능력자였나?”

“글쎄요.”

발레아 대신 내가 대답을 해주었다.

발레아는 이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흙벽이 올라가는 동안, 그녀는 땅속으로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이런 흙벽으로 검호를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물론, 능력으로 만든 흙벽 정도로 그녀 같은 검호를 가두기는 불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발레아가 만든 이 돔은 평범한 흙벽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부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도 그녀가 흙벽을 계속 부수게 둘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 흙벽은 내가…….”

여검호는 비웃으며 말을 잇다가 표정이 바뀌었다.

그녀는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역시, 반응하기가 쉽지 않은 속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흙벽에 도착할 무렵 나는 그녀 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젠장!”

알리나는 흙벽에 검을 휘두르지도 못하고, 옆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내가 뒤를 따라붙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흙벽에서 수많은 꼬챙이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전부 녹색으로 번들거리는 쇠꼬챙이들이었다.

마물이 아닌 사람이니, 스치기만 해도 독에 중독될 게 분명한 쇠꼬챙이였다.

아마도 꼬챙이에 칠해진 녹색 독은 환상일 테지만, 나조차도 구별하기는 불가능했다.

지금 발레아의 실력이라면, 환상이라도 현실과 다를 바 없을 터.

저 독 쇠꼬챙이에 찔리면 환상통으로 죽을지도 몰랐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면 허실을 파악할 수도, 아니면 힘으로 부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뒤따라온 나 때문에 불가능했다.

쾅!

대검을 힘껏 휘두르자, 알리나의 검이 그녀의 몸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힘도 다르고, 마나양도 다르고, 검도 차이가 나니 그녀가 튕겨 나가는 게 당연했다.

예지 능력을 가진 알리나인 것을 알았지만, 나는 ‘신검’으로 검을 바꾸지 않았다.

그때는 상처를 입어가며 자폭 공격에 가까운 방식으로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무를 터뜨릴 숲은 없었지만, 대신 발레아가 있었다.

그그그긍.

음침한 소리와 함께 돔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접근하기만 하면 독 꼬챙이가 튀어나오는 돔이 우리 두 사람을 죄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 예지자와 싸우는 방법은 몇 없었다.

저번 싸움처럼 나무 파편을 가득 쏘아내어, 너무 많은 변수 때문에 예지가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과.

또 한 가지, 아예 움직일 곳을 없애 예지가 소용없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점점 좁혀오는 경기장 안에서는 그녀의 예지는 큰 소용이 없었다.

물론, 예지를 이용한 검술로 이득을 볼 수 있겠지만, 상대가 대검을 들고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 예지도 도움이 되기 힘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좁아지는 돔 안에서 알리나의 표정은 점점 꺼멓게 죽어갔다.

지금도 신기할 정도로 내 검을 잘 막고, 피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벌써 퍼렇게 물들고 있었고, 꽉 깨문 그녀의 입술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착실하게 그녀를 밀어붙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이 끝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승자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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