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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13화 (413/563)

제413화

제13편 봉인지 파견대 (1)

“왕실 기사단장이 수도에만 박혀 있으면 실력이 썩을 수밖에 없지. 사람 상대를 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껏 날뛸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을 하며 거인이 씩 웃었다.

뭔가, 천진난만하면서도 무서워 보이는 웃음이었다.

어쨌거나 왕실 기사단장까지 보낼 생각을 하다니.

여왕이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왕실 기사단장과 인사를 한 뒤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온 것 같았다.

내가 저택에 있지 않아서 그만큼 늦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예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홀에는 내가 우고 기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많은 기사단장과 선임 기사들이 와 있었다.

당연히 기사단을 이끌고 온 귀족들도 같이 와 있었다.

그들은 따로 모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왕국군 소속의 귀족들. 귀족 장교들이 모여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아는 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찾아가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따로 친하게 지낸 사람이 없었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기사들도 많았다.

당연했다.

내가 아는 이들의 상당수는 없어진 세상에서 만났던 이들이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바로 털어버릴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온 것도 수십 년은 지난 뒤였다. 그런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행히, 나를 먼저 알아보고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샤를 자작, 아니 백작이 되었지? 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었군.”

내게 말을 건넨 사람은 나와 같은 백작이자, 왕국의 장군.

소로카 요새의 영주인 바로드 백작이었다.

영지로 돌아가는 도중에 잠깐 들렸던 터라, 그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제가 떠난 뒤에 별문제는 없었습니까?”

레스티 편에 소식을 듣기도 했었고, 그가 이곳에 온 것을 보니, 별문제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예의상 물어보았다.

“문제야 많았지. 다만, 그 문제가 다 제국으로 넘어가서 제국이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나도 들었었다.

내가 제국의 요새를 부순 덕에 제국 남부가 다시 엉망이 되었다는 소리를.

더구나, 이번에는 제국이 나서서 정리하지도 못했다.

제국 남부 영지들은 이번에 2 황자 편에 섰던 영지들이었다.

반란군이 된 그들은 새 황제와 싸우기는커녕 마물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황제가 마물들과 싸우라고 그냥 놔둔 영지들이었으니, 2 황자가 잡힌 지금도 새 황제는 그 영지들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여왕님의 소환에 응할 수 있었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머리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왕실 기사단장의 목소리였다.

“웬 감사입니까? 또 제가 모르는 일이 있었습니까?”

“아, 모르고 있었나? 그게 말일세…….”

기사단장의 물음에 백작은 반색하며 나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기사단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말에 호응했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니, 여러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다.

알고 보니, 홀에 있는 대다수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기야, 기사들의 최정점인 왕실 기사단장과 내전으로 정리된 왕국군에서 가장 존경받은 바로드 백작이 같이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나도 나름 이슈 메이커였으니,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여왕님께서 오셨습니다.”

총집사가 안으로 들어와서 하는 말에 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세를 바로 했다.

곧이어 여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작고 어린 여왕이었지만, 볼 때마다 더 커 있는 것 같아,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나도 슬쩍 그녀의 모습을 확인 후 고개를 숙였지만, 그 사이에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을 보니,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사람들을 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왕이 홀 안쪽, 상석에 앉고, 같이 들어온 이들이 그녀 주위에 섰다.

그레시아 공작과 공국의 왕세자, 그리고 여러 고위 귀족들.

그들은 모인 사람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고개를 들자, 아직은 어린 여왕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부름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겠지만, 이피로스 왕국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봉인지를 막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지요.”

여왕의 말에 홀에 모인 기사와 귀족들의 눈이 반짝였다.

여왕이 계속 말을 이었다.

“대전쟁 뒤, 왕국이 세워졌을 때부터, 봉인지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나라가 도와주기로 한 맹세가 있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맹세는 이미 잊힌 맹세와 다르지 않았다.

동화책에나 나오는 맹세였고, 과거 마물 왕이 튀어나왔을 때도 외면했던 맹세였다.

여왕은 그 잊힌 맹세를 다시 꺼낸 것이었다.

“우리 왕국에도 얼마 전 마물 왕의 난동이 있었습니다. 오라버니와 왕국군의 희생으로 막아냈지만, 우리 왕국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마물 왕을 처리한 것은 나였고, 엎어진 세상과 달리, 피해도 크지 않았지만, 죽은 왕자들을 지지했던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마물 왕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지금, 마물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처럼, 다시 마물 왕들이 봉인지를 빠져나올 거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나는 다시 마물 왕이 이 왕국에서 설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봉인지의 마물을 다른 왕국들과 함께 막겠다는 이야기였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결국, 마물 왕을 막는 곳은 다른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리고, 어린 소녀가 하기에는 냉정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은 카를로스 왕국의 여왕이었다.

나도 다른 기사와 귀족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되자, 여왕은 모두에게 선언했다.

“기사단과 왕국군은 병력이 모이는 즉시 편재를 마치고, 출발합니다.”

모두 자세를 바로 하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이번 파견은 참모장으로 바로드 백작, 파견부대장으로 왕실기사단장이신 엔리케 경이 맡으실 겁니다.”

좋은 인선이었다.

왕실기사단장이라면 무력도 그렇고, 기사들을 통솔하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내외로 존경을 받고 전략에도 밝은 바로드 장군이라면 참모로 안성맞춤이었고.

다만, 백작이라는 높은 위치가 문제인데.

왕실 기사단장을 부사령관으로 세운 것을 보니, 기사단과 균형을 맞추려는 것일까.

다만, 사령관이 누가 될지 걱정이었다.

왕실기사단장과 바로드 장군이 서포트를 해주겠지만,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두 사람 다 직위로 깔아뭉개기가 불가능한 사람들.

두 사람 이상의 실력이 있지 않으면 파견 대장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될 확률이 높았다.

설마, 그레시아 공작이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공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공작은 여왕이 말하는 동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지만, 여왕과 같이 들어온 고위 귀족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여왕의 말이 들려왔다.

“파견대 대장은 알렉스 디 샤를 백작입니다”

고위 귀족만이 아니라, 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잠깐.

내가 왜?

이런 기사들과 귀족 장교들을 통솔하려면, 실력은 물론이고 작위도 높아야 했다.

참모와 부대장도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했고.

거기다, 이피로스에 파견하는 부대의 장이라면, 이피로스의 권력자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했다.

……음. 이거 참.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내가 꽤 정답에 가까웠다.

벌써 이만큼 성장한 건가…….

뭔가 감개무량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눈을 하는 이들은 꽤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네가 맡아주면 안심이지.”

“좋았어. 대장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혼자 설치지 말고, 밑에 애들에게 시키라고.”

반대로 참모와 부대장을 포함해서 내가 이들을 이끈다는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함께 싸우고, 내 실력을 본 사람들이었다.

어찌 되었든, 여왕이 선언하고, 반대도 없으니, 인선과 출발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물론, 착착 진행된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전 이후로 처음 모이는 대규모 기사와 귀족들이었다.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서 숫자 자체는 내전 때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전력 자체는 이번이 더 강할지도 몰랐다.

왕실 기사단과 여왕이 새로 모은 기사단, 그리고, 여왕의 명령으로 각 영지에서 파견된 기사와 귀족 장교들까지.

수백의 기사와 귀족들이 모여 있으니, 말이 나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도 부대장인 기사단장과 참모인 바로드 백작도 고생이었지만, 출발하기 전까지 정말 고생하는 것은 서기관, 수도의 관료들이었다.

“힘들어 보이네요.”

내 위로에 서류를 정리하던 책임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이니까요. 버틸만합니다. 백.작.님.”

그는 고위 귀족인 내게 작위를 한 자씩 끊어가며 말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빨리 직위가 높아지네요. 이 정도라면 얼마 안 있어서 작위도 받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내 말에 그는 지친 얼굴로 나를 흘겨보았다.

“작위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백작위에 오르신 분이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의 푸념에 나는 씩 웃었다.

내게 이렇게 함부로 말하고 있는 사람은 아카데미 1년 선배인 벤자민이었다.

작위를 얻었을 때, 그를 만나 편하게 이야기하라는 말을 했던 만큼, 그는 지금도 편하게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없을 때, 딱, 내가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내 길을 막으려 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왕자들이 죽고, 그는 여왕의 즉위를 막는 쪽에 섰었다.

물론, 여왕이 즉위하고, 그와의 서먹함도 풀었지만, 아예 잊은 것은 아니었다.

잘 해결된 일이었고, 그의 처지도 이해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뒤끝이 꽤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백작이라는 작위를 가지게 되었으니, 복수할 때였다.

“다행히 끝이 아닙니다. 이번 파견에 같이 가시게 되었습니다. 관료 대표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내 말에 그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백작님. 그게 무슨…….”

그가 벌떡 일어나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것처럼 움직였지만, 내가 잡힐 리가 없었다.

그에게 손을 흔들고, 천막을 빠져나왔다.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복수는 여기서 끝날 게 아니었다.

이제는 그를 영지에 부를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이번 파견이 끝난 뒤에도 그는 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부대는 수도를 출발했다.

수백 년 만에 이피로스를 지나, 봉인지 경계로 향하는 파견부대.

그는 그 부대의 대장이 되어 부대를 이끌었다.

디오구 기사가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카를로스의 영광을! 부대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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