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0화
제10편 백작 (2)
샤를 백작.
자작이 된 이후로 너무 빠른 승작이자, 너무 어린 나이에 백작이 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반대는 적었다.
왕권, 여왕의 힘이 강해진 것도 있지만, 떠나기 전, 내가 ‘기사의 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왕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능력인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알려진 것이다.
여왕과 공국왕 그리고, 그의 아들인 공국의 왕세자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왕국의 귀족 중에는 왕국에 ‘마나 감응력’을 가진 귀족이 더 나왔다는 것을 반기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서자인 내 출신에 눈을 찌푸리는 자가 더 많았지만.
하지만, 이제는 공식적으로는 서자라고 드러내놓고 꺼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그런 출신은 무시할만한 경력을 만들기도 했지만,
여왕의 비호를 받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인 나를 서자라고 깔볼 사람은 없었다.
나도 이제 이 왕국에서 귀족으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백작위 수여식은 몇몇 사람만 모여 간단하게 끝을 냈다.
원래대로라면, 내전 뒤에 있었던 논공행상 때처럼 중앙 홀에서 거창하게 벌어져야 했지만, 제국 내전에 관여해서 받게 된 작위였기에 승작식은 조용하게 마무리되었다.
왕국에서 백작으로 올라섰다는 것은 작위를 얻을 때와 또 다른 위치가 된다는 말이었다.
분가한 왕의 형제들이 공작이 되는 것과 달리, 백작은 평범한 귀족이 제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작위였다.
후작은 국경을 지키는 백작의 다른 말이었으니, 실질적으로 많은 군사를 빼면 백작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이 왕국에서 평범한 귀족이 올라갈 수 있는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서자가.
거기다, 백작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아래에 다른 귀족들을 세워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주변 영지를 복속시켜 왕국 안에 작은 왕국을 세울 수 있을 정도.
물론, 전생의 봉건 왕국과 달리, 용사의 후예들이 나라를 세운 이 세계의 왕권은 다른 귀족들과 비교가 안 되게 높았다.
전생의 절대왕권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까.
거기다, 제국의 황제는 절대왕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세력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영지도 작지 않은 영지 둘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지금은 그런 세력을 만들 때가 아니었다.
그런 권리를 누리지 않는다면, 승작이 되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문의 문장이 작위에 맞게 달라진다던가, 하녀와 고용인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정도.
거기다, 다른 귀족들의 대우가 달라진다던가.
승작식이 끝나고, 내 아버지, 그레시아 공작을 따로 만나는 자리에서 그 대우가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작은 응접실에서 나를 맞이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의 안내에 소파에 앉자, 그는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데리고 다니는 영애를 두 번째 부인으로 할 생각일 테고, 문제는 첫 번째 부인인데. 생각해 둔 가문이 있나?”
달라진 대우로 처음 듣는 말이 이런 이야기라니.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백작이 되니, 아내를 둘 이상 얻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좋아하는 여자와 정략을 위해 결혼하는 여자가 따로 있다는, 공작의 말은 그런 뜻을 담고 있었다.
“결혼 이야기는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공작이 슬쩍 손을 들었다.
“백작을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네.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였을 뿐.”
전과 달리, 내 말에 공작은 뒤로 물러서 주었다.
확실히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공작을 따로 만난 것은 결혼에 대해 들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기사단, 아니 각성한 귀족들로 병력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피로스에 보낼 병력을.”
내 말에 공작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3 황자를 데리고 제국 사절이 돌아갔잖은가. 3 황자를 받고도 제국이 딴소리할 거라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이피로스 왕국의 정권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쿠데타 실패나, 내전이 벌어지겠죠.”
내 말에 공작은 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공작 입장으로는 뜬금없는 소리일 터였다.
우리도 공격하지 않고, 제국도 가만히 있는데 뜬금없는 내전이라니.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상상이 아니라, 지금 이피로스 왕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수도원에서 일이 벌어지던 그 날.
내 이야기를 들은 막스 왕자는, 뭔가 일을 쳐도 단단히 칠 것 같은 표정을 지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레스티에게 막스 왕자의 뒷조사를 부탁했다.
다행히 이피로스 왕국에는 셀린 교단의 신도가 많았고, 신기하게도 교단의 도움까지 얻어, 그는 어제 내게 새로운 정보를 가져왔다.
수도에 도착한 지 열흘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막스 왕자는 레스티의 정보망에 걸릴 정도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막스 왕자에게는 커다란 세력이 있었다.
그것도 기사와 전투에 능한 귀족들이 모인 세력이었다.
처세에 능한 막스 왕자였으니, 저런 세력과 연계를 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와 세력이 하려는 일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병력을 모아, 왕권을 뒤엎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정보를 얻어온 레스티가 대단한 것인지, 이런 정보를 흘린 막스 왕자의 세력이 엉망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일은 벌어질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제국 2 황자도 칠 모양입니다. 제국이 손을 쓰지 못하게 2 황자를 포장해 제국에 넘길 모양입니다.”
막스 왕자의 방법은 우리 왕국이 새 황제에게 3 황자를 넘겨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성공하던, 실패하던 이피로스 왕국에 격변이 일어날 겁니다.”
최악의 경우 내전을 핑계로 제국군이 이피로스 왕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쿠데타에 성공해도 마찬가지였다.
“……막스 왕자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도 바로 기사단을 지원해야 합니다. 늦지 않게 봉인지 봉쇄를 제대로 해놓아야 합니다.”
이피로스의 기사단만으로 봉인지 경계를 지키기는 어려웠다.
마물 왕이 다른 마물들처럼 북부 산맥을 타고 넘어올 리가 없었다.
경계에서 틀어막아 제국 쪽으로 마물 왕과 마물들을 밀어 올려야 했다.
내 설명에 공작이 굳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마물 왕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제국이 서두르는 것도, 교단이 허둥거리는 것도 모두 그 이유밖에 없었다.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마물의 웨이브나 마물 왕의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없을 텐데?”
역시, 왕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기사.
책상물림이 아니라, 마물과 여러 번 상대한 관록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진행 방향을 바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지금 제국 수도 지하에 깊이 묻혀 있었다.
나는 제국 수도 지하에 묻혀 있는 지팡이를 아직 느낄 수 있었다.
그 지팡이는 아직 내 소유였다.
내 설명에 공작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보는 공작의 습관이었다.
하기야, 위험이 지나갔는데, 다시 병력을 모아 훈련을 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처럼 왕권이 강화되고 공작의 권력이 강해져 있어도, 반대가 많을 일이었다.
그 말을 반대로 하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었다.
내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왕국은 하루빨리 전쟁에 대비하는 국가로 바뀌어야 했다.
나 혼자 하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이번 준비를 시작으로 왕국 전체가 준비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이겨나가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테이블을 두드리던 공작의 손가락이 멈췄다.
“여왕님께서도 알고 계시는가?”
“공작님께서 말씀하시면, 지원해 주실 겁니다.”
여왕에게는 발레아와 함께 만났던 사석. 차모임에서 미리 말해 두었었다.
“여왕님과 친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공작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 말대로 하지. 백작의 정보망은 신뢰할 수 있으니.”
다행히 설득은 성공한 것 같았다.
“흠, 그런데 이 정도 일이라면, 공국도 한발 걸쳐야 할 것 같지 않나? 공국에 연락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은데. 거기다 실력 있는 기사를 단장으로 세워야 할 것 같고…….”
다만, 이어진 말은 나를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영지를 떠난 지 오래되어서……. 저는 영지에 돌아가 있겠습니다.”
공작의 말은 공국에 사신으로 나를 보내던가, 내가 이번에 모을 병력을 맡는 게 어떠냐는 말이었다.
전부 그럴듯한 말이어서 더 무서운 말이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성전 때에 이어, 또다시 영지를 한동안 비운 상황이었다.
이제는 돌아가 봐야 했다.
그렇게 나는 축하연과 파티를 모두 거절하고, 영지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을 잘 뽑은 것 같았다.
내가 없어도 영지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영지에 도착하고, 백작이 된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어머니와 영주 대리, 집사장에서 기사들까지.
영지에 있는 귀족과 유력 인사들의 인사를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예상대로 수하들의 한탄이 시작되었다.
“자작, 아니 이제 백작님이 오셨으니, 저희는 모레나로 돌아가겠습니다.”
영주 대리, 오헨 기사는 바로 짐을 싸려 했고.
“북쪽 산맥 마물들의 준동이 더 심해졌습니다. 백작님이 나서주셔야 합니다.”
“뵙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작은 파티라도 벌여서 인사를 나누셔야 합니다.”
미겔 기사와 집사장 하리스는 나를 바로 부려 먹으려 했다.
“경매장에 한 번 들려주시는 게 좋겠지만……. 다른 유물을 더 내놓으신다면 안 오셔도 알아서 꾸려나가겠습니다.”
유물로 대신하겠다는 레스티가 선녀로 보일 정도였다.
다만, 모두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이번에도 영지에 오래 붙어 있을 수 없었다.
예상보다 빨리 이피로스에서 소식이 온 것이다.
솔직히 이번 왕권찬탈은 나도 기대가 크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있는 내게도 들킨 쿠데타였다.
왕이나 왕세자가 바보가 아니라면 들킬 수밖에 없는 왕권찬탈이었다.
병력을 모으게 부탁한 것도, 내전이 되거나 실패했을 때, 마물 왕의 전장을 이피로스에서 멈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상은 이번에도 나를 놀라게 했다.
놀랍게도 이피로스의 막스 왕자가 쿠데타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막스 왕자의 형과 아버지는 바로 직위를 박탈당한 뒤 모처에 갇혔고, 2 황자는 막스 왕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건, 비유가 아니었다. 그는 둘만의 술자리에서 막스 왕자의 술병에 머리를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술자리여서 그랬는지, 방어 유물들은 가동이 안 되었고, 2 황자는 포장이 되어 제국으로 보내진 듯했다.
그렇게 이피로스에 격변이 일어났고, 제국의 새 황제는 자신에게 돌아온 형제들을 보고 칼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