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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09화 (409/563)

제409화

제9편 백작 (1)

대주교를 맡으라는 내 말에 조아나가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페널티 아니, 벌칙은 전부 없앤 채로 계약을 이을 수 있습니다. 성물도 있고, 계약도 있으니 교단을 조아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초대 대주교, 용사 비오의 미이라는 계약을 이은 이들만 다룰 수 있었다.

죽은 대주교가 펼쳤던 대규모 계약도 성물인 미이라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결국, 용사 비오는 자신의 능력을 시체에 남겨, 대대로 대주교가 쓸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거기다, 유물을 봉인하는 능력과 좀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귀족의 능력을 약화하는 능력까지.

대주교가 되면, 한순간에 용사급 능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조아나가 계약을 이어받으면 그녀도 미이라의 능력을 쓸 수 있었다.

거기다, 내가 중간에 계약을 망가뜨렸기 때문인지, 계약을 내려주어도 내게 남겨진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첫 계약자 비슷하게 되어서 저도 미이라로 능력을 쓸 수 있고, 아쉽게도 계약을 취소시킬 수도 있더군요.”

이어진 내 말에 반쯤 정신이 나갔던 조아나가 정신을 차렸다.

“정말요? 그, 그럼 할게요. 제가 잘못하면 성, 성기사님이 거두어 가실 테니, 괜찮을 것 같아요.”

조아나는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이 진짜인지 의심한 게 아니라, 자신이 일을 망치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교, 교단의 사제들은 나쁘지 않아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그들에게 세상에는 많이 신들이 계신다고 알려드리면 모두 올바른 믿음을 찾아가실 거예요. 물론, 조금씩 천천히 해야겠지만요.”

오랜만에 말을 해서인지, 처음에는 더듬거리던 말이 갈수록 자연스러워졌다.

죽은 대주교에게서 계약을 이어받은 것은 나였지만, 내가 대주교를 맡을 수는 없었다.

교단에 신경을 쓸 시간도 없고, 정식 신관도 아니라 내부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물론, 조아나도 평범한 사제일 뿐이었지만, 중요한 자리에서 오래 일한 만큼, 반대가 심하지 않을 터였다.

물론, 아예 반대가 없을 리가 없겠지만, 레스티와 셀린 교단, 그리고 내가 도와주면 될 터.

나는 조아나의 계약을 재조정한 뒤에 바로 용사 비오의 계약을 내려주었다.

제약을 모두 없애버린 계약.

마지막으로 남은 제약은 내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점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약해버린 뒤, 레스티를 불렀다.

“아니, 잠깐, 내가 제대로 들은 것 맞습니까?”

내 설명을 듣자, 얼이 빠진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다행히 그는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황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자작님이 대주교에게 대주교 자리를 받고, 대주교와 추살대 전체를 죽인 뒤에 교단의 성물을 가져왔고, 조금 전에 그 대주교 자리를 조아나에게 넘겼다고요?”

레스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부분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더할 나위 없는 요약이었다.

“끙.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정신이 없군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조아나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티는 한숨을 쉬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은 뒤 내게 물었다.

“자작님, 아니 성기사님은 교단을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조아나가 나를 쳐다보았다.

조아나에게 대주교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조아나도 레스티도 셀린의 성기사인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대주교 자리를 가져와서인지, 나에 대한 두 사람의 신뢰가 훨씬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원래 교단이라는 곳은 마왕을 불러들인 고대 제국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든 종교입니다.”

반복된 실수를 막아, 재앙을 막기 위한 곳. 그곳이 교단이었다.

“마물 왕이 쏟아져나오고, 마왕이 봉인을 풀게 되리라는 게 사실이 된 이상, 교단의 목적은 이제 의미가 없어요.”

목적이 의미가 없어졌으니, 그동안 해온 일도 의미가 없어졌다.

“다른 종교도 이단으로 탄압할 이유가 없고, 고대 제국의 기록과 유물들을 숨길 이유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교단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아나에게 대주교의 자리를 넘긴 것이었고.

“대신, 교단은 교단이 만들어진 본질에 집중해야겠죠.”

“마물 왕과 마왕을 막는 일. 그게 교단을 세운 용사 비오의 목적이었으니까요.”

나는 환상 속에서 초대 왕, 카를로스의 눈으로 교단을 세우기 위해 길을 나서는 비오 용사를 보았었다.

그는 대전쟁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 교단을 만들었었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으니, 이제 교단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악신의 추종자를 만나는 바람에 계약이 변했다고 말하면 될 겁니다. 만약을 대비한 계약이 발동했다는 것으로요.”

대주교가 아니면 용사 비오와의 계약을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대주교의 계약은 교단의 평범한 신관과 신도들에게는 신이 내린 계약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에 없지는 않겠지만, 마물과 마물 왕들이 더 설치게 된다면, 그 반대는 전부 사라질 터였다.

내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냈다.

어차피 세세하게 참견할 생각은 없었다.

나를 고생시켰던 자들은 모두 충분히 빚을 갚아줬고, 남은 교단은 내 앞길을 막지만 않으면 충분했다.

더불어, 뒤에 마물 왕과 마왕과 싸울 때 도움이 되면 더 좋고.

이번에 조아나에게 대주교를 넘긴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는 셀린 여신도, 교단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셀린 여신의 신도들에게 교단을 던져주었으니, 종교인들끼리 알아서 해 나가주면 고마울 터였다.

다행히 두 사람은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더 묻지 않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둘 다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부담되긴 했지만, 오랜 세월 숨어 지내던 셀린 교단이 내 덕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 눈빛을 지을 만도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감동도 가라앉을 터. 이렇게 조금씩 멀어지다 보면 언젠가 평범한 이웃으로 남게 되겠지.

다음 날부터, 우리는 남부 숲을 가로질러, 수도로 향했다.

국경을 넘었으니, 기사들은 모두 왕실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말이 달리는 속도는 이피로스 왕국을 향할 때만큼 빨랐지만, 일이 잘 해결돼서인지, 모두 힘든 기색 없이 숲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며칠을 숲을 가로지르니, 수도 남쪽의 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놀란 영지민들을 무시하고 수도로 내달렸다.

수도에 도착해 성문을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왕실 기사들의 귀환이다!”

우리는 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고함을 치고는 수도 성문도 그냥 지나쳤다.

왕실 기사들이 말을 달리는 모습에 성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았다.

다른 때라면, 천천히 지나가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연극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피로스 왕국인들과 교단은 이피로스의 도시에 언데드 마물과 해골들이 습격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사제들을 납치한 것으로 알고 있을 터였다.

거기다, 교단은 추적을 나선 추살대와 대주교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3 황자와 납치되었던 여사제들이 떡하니 등장하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극이 필요했다.

바뀐 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추살대와 대주교가 악신의 추종자와 싸우다 죽게 되고, 그 와중에 조아나가 대주교의 계약을 이어받아 악신의 추종자에게서 도망친 것이다.

조아나와 엘레나, 3 황자가 도망을 치다가, 훈련 중인 왕실 기사단과 만난 것으로.

물론, 나와 왕실 기사단은 3 황자를 잡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고, 그 3 황자를 도중에 만났다는 너무도 대단한 우연이 있었지만.

어차피, 제국과의 거래이니만큼, 교단에만 알려지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사단의 입을 봉하는 것은 조아나에게 맡겼다.

그녀가 손을 펼치자, 기사단 모두의 머리 위에 표식이 나타났다.

모두가 처음 보는 대규모 계약이었다.

기사단원들은 조아나의 능력에 놀랐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씁쓸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그렇게 계약으로 비밀을 지키게 된 기사들은 급한 얼굴로 수도를 가로질러, 왕궁 옆에 있는 신전 앞에 도착했다.

전에 내가 기사의 검을 가지고 들어갔던 그 신전이었다.

놀란 신관이 뛰어나왔고, 내가 대표로 두 여사제를 신관에게 안내했다.

“훈련 중에 구출한 사제분들입니다. 급하게 신전으로 와야 한다고 해서 모셔왔습니다.”

내 말에 조아나가 말을 이었다.

[제가 대주교님의 유지를 이었습니다. 형제자매분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음성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대주교가 보여주었던 그 빛이었다.

“신이시여…….”

놀란 신관이 가방을 든 두 여사제를 데리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저희는 왕궁에 보고를 해야 합니다. 따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궁에 연락을 주십시오.”

나는 다른 신관에게 말을 남기고 말에 올랐다.

남아 있는 신관도 내 얼굴을 알고 있는지, 우리가 가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떠나기 전 고개를 돌려 조아나가 들어간 신전을 바라보았다.

수백 년간 한 가지 뜻만을 위해 달려온 교단이었다.

조아나는 그런 교단을 바꿀 생각으로 홀로 교단에 들어간 것이었다.

성공하기도 쉽지 않고, 고생이 가득해 보이긴 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조아나는 사제, 그것도 광신도가 된 누이, 엘레나의 마음을 돌린 경험이 있었다.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일을 해낸 여성이었다.

그녀라면 교단을 바꾸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그녀 뒤에는 수백 년간 숨어 지냈던 셀린 여신의 신도들이 있었다.

성기사인 나도 있고.

그녀는 성공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교단의 일을 끝내고, 우리는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까지는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품위를 유지하며, 왕궁 앞에 도착했다.

“수고했습니다. 목표를 호송할 기사들만 남고 모두 기사단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내 말에 기사들 모두가 화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작전이었지만, 어쨌거나 작전은 성공했으니, 다들 기분은 좋아 보였다.

“저도 보고하고 나서 기사단으로 가겠습니다. 모두에게 한턱낼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와아!”

내 말에 이번에는 모두 환호했다.

귀족은 쉽게 보답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귀족의 보답은 제대로 된 보답을 말하는 것이었고, 나는 제대로 보답해 줄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내 유물 주머니 안에는 대주교가 가지고 있던 가방 속 유물이 전부 옮겨와 있었다.

조아나가 가지고 간 가방에는 교단의 성물. 미이라만 들어 있었다.

나중에 다른 유물을 찾는 이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악신의 추종자’가 가져갔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대주교를 죽이고 홀연히 사라진 악신의 추종자에 대해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걱정은 곧 사라질 터였다.

제국이 움직이고, 마물 왕이 쏟아져 나오면 보이지 않는 ‘악신의 추종자’는 생각도 못 할 것이었다.

그렇게 기사들을 보내고, 나는 발레아와 기사들이 부축하는 3 황자와 함께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카를로스 왕국은 바보가 된 3 황자를 제국에 건네줄 수 있었다.

제국에서 온 사신은 3 황자를 데리고 제국으로 돌아갔고, 여왕의 권위는 더욱 강대해졌다.

반대 세력의 대표가 복상사를 해버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여왕에 대들 귀족들은 이제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백작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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