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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08화 (408/563)

제408화

제8편 대주교 (2)

내 손에 들린 기사의 검은 소환으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왕궁을 떠날 때 여왕이 공식적으로 내게 검을 들려준 것이었다.

내가 기사의 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왕이 내게 ‘기사의 검’을 빌려주어도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늘어났겠지만, 반대 세력의 중심이었던 백작이 죽었으니, 이제는 여왕과 그레시아 공작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경악하는 전 대주교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꽤 위험했었다.

대전쟁 때의 용사가 내린 계약이라 평범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계약은 성전에서 억지로 덮어씌워졌던 계약보다 훨씬 강력했다.

수 대를 거쳐 내려온 계약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방심했었는데, 까딱했으면, 계약에 먹혀버렸을지도 몰랐다.

‘악신의 추종자’도 아니었으니, 기사의 검이 개화하지 않았으면, 계약에 걸려서 다음 대 대주교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기사의 검’ 아니, 악신의 신전에서 개화한 ‘정화의 검’은 용사의 계약에게서 내 정신을 지켜주었다.

다행히, 전 대주교께서 미라의 능력을 바꾸어 주어서 검의 능력이 막히지 않았다.

계약의 벌칙들은 전부 사라졌고, 계약 자체도 산산이 부서져,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그, 그 검은 기사의 검? 설마 악신의 추종자가 아니었나? 아니 추종자에게 먹히지 않은 건가?”

노인도 내 검을 알아보았다. 하기야, 카를로스 왕국의 국보이자, 왕궁 홀에 몇백 년간 걸어 놓았던 검이니, 알아볼 만도 했다.

“맙소사, 그 검이 사기를 올리는 능력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추종자의 정신 오염과 용사의 계약을 막을 정도로 정신 방어 능력이 있을 줄이야…….”

전 대주교는 감탄한 얼굴로 검을 보며 떠들어댔다.

모두 사실이었지만, 조금 전의 경악과 달리, 가식이 가득 담긴 감탄이었다.

아마도, 살기 위해 비위를 맞추는 것일 터.

하지만, 그가 할 일은 이 검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 교단의 내력을 들어볼까?”

계약 내용으로 얼추 알게 되었지만, 교단의 전 대주교에게 교차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어찌 되었건 대주교의 계약을 받아들였으니, 나도 들을 권리가 있었다.

“그, 그건…….”

내 물음에 대주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슬쩍 검을 보더니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교단은 용사 비오가 세운 종교일세. 마왕을 불러낸 고대 제국의 죄악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과거의 기록과 유물을 모두 지워버리는 역할을 하기 위한 종교지. 그리고…….”

대주교의 설명은 계약 때 들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유물을 모으고 역사를 지우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았고, 다른 종교를 억압하는 이유도 계약과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고대 제국은 어떻게, 왜 마왕을 불러낸 거지?”

“……그건 초대 대주교가 역사와 함께 묻어버렸네. 아마도 대륙에 있는 이 중에는 그것을 아는 이가 없을 걸세. 다만, 조직의 수뇌는 알고 있을지도…….”

그 뒤로 교단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단의 사제와 신관들이 가지고 있는 치유 능력과 계약 능력도 초대 대주교의 능력에서 파생된 것이었고.

그 능력은 이미 알고 있었던 대로, 수거한 유물의 힘을 뽑아 능력으로 변환해서 신관과 사제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었다.

대주교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참 동안 쏟아냈다.

이 관에 있는 미라가 예상대로 용사 비오의 시체라든가, 다른 중요한 유물들은 모처에 숨겨 놓았다든가.

그는 열심히 떠들면서 유물들을 숨겨 놓은 곳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게 자신이 살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이야기도 이제 지리멸렬해지고 있었고,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끝을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를 죽이면 교단을 장악하지 못할 걸세. 교단에는 다른 주교들과 장로들도 있네. 대주교의 증표만으로는 다른 이들을 이끌지 못할 거네.”

뭔가 노인은 내 목적을 잘못 아는 것 같았다.

내 표정이 바뀌지 않자, 그는 다른 말로 나를 유혹했다.

“무사히 놓아준다면 다른 유물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네. 엄청난 양의 유물들이네. 나라도 살 수 있는 양일세!”

이번에는 조금 혹할 만한 말이었다.

예언을 듣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고민했을지도 모르는 말.

하지만, 지금은 큰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거기다, 노인이 없다고 해도 못 찾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왕실 기사들과 3 황자 일행을 우리 왕국으로 먼저 보내놓았지만, 뒤따르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안심이 되지 않았다.

들을 것은 다 들었으니, 뒤를 따라가 봐야 했다.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기사의 검을 거꾸로 땅에 박아 넣었다.

“악신의 추종자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뜬금없이 휘말린 사람도 아니야.”

나는 가슴에 손을 집어넣은 뒤, 다른 검을 꺼내 들었다.

내가 꺼내는 검을 보고는 노인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조금 전 내가 멀쩡한 것을 알았을 때보다 더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신검을 들고, 교단의 전 대주교에게 말했다.

“나는 셀린 여신의 성기사. 알렉스 디 샤를 자작이다.”

남 앞에서 선언하자니, 조금은 낯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내 선언이 전 대주교에게는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셀린의 성기사가 돌아왔다고?”

무슨 일인지, 내 생각보다 훨씬 놀란 대주교였다.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서 또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검을 들고 그의 앞에 섰다.

“셀린의 고통받던 모든 신도를 대표해서 너를 정죄하겠다.”

다른 때와 달리, 나는 셀린의 성기사로 그를 심판하기로 했다.

내 말에 그는 허탈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룬 자유인데…….”

그의 말을 끝으로 나는 검을 휘둘렀다.

낙담한 노인의 얼굴이 바닥을 굴렀다.

노인이 죽으면서, 미라에 올려놓았던 손이 떨어지자, 다시 주변에 미라의 마나가 퍼져나갔다.

시체가 된 노인에 신경을 끊고, 나는 미라가 든 관 뚜껑을 닫았다.

그러자, 주변에 넘실거리던 마나가 사라졌다.

가슴 속 유물 주머니에서 검은 마나가 슬쩍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졌다.

“수고하셨어요.”

곧이어, 발레아가 내 뒤에서 나타났다.

멀리 숨어 있으라고 했는데, 가까이서 지켜본 모양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덕분에 나는 그녀에게 편하게 부탁했다.

“뒷정리 좀 부탁해.”

나는 관을 다시 커다란 가방에 집어넣었고, 발레아는 지팡이를 바닥에 세웠다.

“걱정 마세요.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이 정리할게요.”

그녀가 영역을 펼치자, 바닥이 꿈틀대며 시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기사들과 사제들, 목이 잘린 전 대주교까지.

모두 땅속으로 사라져갔다.

대주교가 타고 온 마차도, 말도 마찬가지였다.

말들이 놀라 울어댔지만, 발레아는 개의치 않고, 모두 땅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녀가 모든 일을 마치자, 주변은 평범한 길과 야산으로 돌아가 있었다.

협곡처럼 보이던 환상도 사라졌고, 평범한 길만 남게 되었다.

만족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발레아는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정리를 마칠 때까지 나는 가방에 손을 넣은 채로 멍하니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을 넣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가방이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것도 아니었다.

아니, 이 가방도 제대로 된 유물 가방이었다.

관을 넣기 어려울 리도, 무거울 리도 없었다.

단지,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 제대로 된 유물 가방 안에는 관 말고도 다른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여태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그 물건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중에서 하나를 꺼내 보았다.

오래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낡은 창이었다.

나는 창에 마나를 밀어 넣어 보았다.

푸악!

창 촉이 환하게 빛나더니, 그 빛이 쭉 길어졌다.

하늘로 수십 미터는 길어진 창.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방금 전 광경은 뇌리에 남아 있었다.

이 창은 여의봉처럼 길어지는 창이었다.

“유물이네요.”

발레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방 안에는 이런 유물이 가득했다.

“유물을 숨겨놓은 모처가 이 가방이었나…….”

나는 전 대주교가 묻힌 땅을 보며 혀를 찼다.

금방 들킬 거짓말을 그렇게 해대다니.

약속을 하면 바로 넘겨줄 생각이었나?

“아니, 서로 약속 같은 것은 한 번도 지키지 않았는데…….”

뭐, 살기 위해 지푸라기도 잡은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교단의 성물. 미라는 물론이고, 국가를 살 수 있는 유물들이 이 가방 안에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쉽게 시장에 내놓기는 어렵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제 영지나, 나나 돈이 달릴 일은 없었다.

나는 창을 다시 가방에 넣고,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이제 돌아가는 건가요?”

“네.”

발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추살대와 만나지 않는다면 왕실 기사들과 만나 복귀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내 말에 발레아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알렉스는 내 기대 이상이에요. 이번 여행도 정말 즐거웠어요!”

발레아의 표정을 보고, 어느 점이 즐거웠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무슨 대답이든 내 예상을 뛰어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 발레아와 나는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실 기사들을 추격하는 중인 추살대 기사들을 따라잡게 되었다.

“어떻게 할 건가요?”

발레아의 물음에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

그냥 피해 가도 되긴 하겠지만, 이왕 만났는데 피해갈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먼저 간 왕실 기사들의 마나가 언덕 너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왕실 기사들이 아직도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피해 가도 추살대 기사들이 왕실 기사들, 아니 3 황자와 만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유물이 봉인되지도 않고, 능력도 약화하지 않은 채로, 발레아의 지원까지 받은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추살대 1대대, 기사단에 준하는 교단 제일의 기사들이었지만, 나는 짚단을 베듯이 그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얼마 뒤, 추살대를 묻어버리고 나는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왕실 기사들이 늦은 이유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3 황자와 사제들을 데리고 일부만 국경을 넘고, 다른 기사들은 샤를 자작님을 구하러 돌아가야 한다고 떼를 쓰셔서 말리느라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레스티의 말에 기사들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뜻은 좋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내 명령이 먹히지 않은 것이었다.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소속이 달라서인지, 이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한 일을 다 말해줄 수도 없고.

나는 다시금 한숨을 쉬고는 이들과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국경을 넘은 뒤, 남부 숲 초입에 숙영지를 만든 그 밤.

나는 천막에 조아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잠시 뒤, 조아나가 찾아와 머릿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바로 반문했다.

“말씀을 하실 수 있죠?”

내 말에 조아나의 눈이 커졌다.

“계약 때문에 들킬까 봐 일부러 말을 못 하는 척하고 있는 거고요.”

이어진 말에 그녀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제가 그 계약을 없애 드릴 수 있습니다. 사제의 위치를 유지하면서요.”

‘기사의 검’이 계약의 많은 부분을 박살 내 놓았지만,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었다.

신관과 사제의 계약을 조정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교단을 맡아 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나는 다음 대 대주교를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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