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6화
제6편 종교 전투 (3)
대주교가 마차에서 겨우 들고나온 커다란 가방은 오래전 유행이 지난 가방이었다.
내 배낭과 비슷한 디자인.
결국 저 가방도 고대 제국 시절의 유물이었다.
당연히, 안에 들어 있는 물건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유물 가방에서 세로로 쭉 뽑아낸 것은 관이었다.
수수한 모습의 사람 사체를 넣는 관.
가방보다 훨씬 큰 물건이 가방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놀랍긴 했지만, 유물 주머니를 자주 쓰다 보니, 그것보다 뜬금없이 관이 나온 것이 더 놀라웠다.
대주교가 관을 꺼내자마자, 관을 활짝 열었다.
관 안에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붕대에 감긴 시체가 들어 있었다.
아니, 붕대가 기름에 절여진 것을 보니, 일종의 ‘미이라’ 려나?
당연한 결과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관 안에 미이라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설마, 성물이 아닌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열린, 관에서 마나가 확 퍼져나갔다.
아니, 마나가 퍼져 나오기 시작한 곳은 관이 아니라, 관 안에 있는 미이라였다.
저 관은 미이라의 마나, 혹은 능력을 막는 유물이었다.
미이라에서 솟구치는 특이한 마나가 마차 주변을 휩쓸었다.
신관 기사, 아니 추살대 기사들과 잘 싸우던 언데드 마물들이 마나에 휩쓸리자마자, 그대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검은 마나가 비명을 지르며 마물들에게서 빠져나와 내 품으로 돌아왔다.
범위는 훨씬 작았지만, 죽기 전에 보았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었다.
악신의 성물만이 아니라, 유물의 힘을 봉인하는 능력.
저 미이라가 교단의 성물이었다.
있지도 않은 신을 믿는 교단이라 성물도 평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보게 된 성물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평범한 유물이 아니니, 수도원에 함정을 폈을 때도 준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다른 유물의 힘을 봉인하는 능력은 더 강화되기 어려울 듯했다.
물론, 강화되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대검을 뽑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발레아에게 말했다.
“피해 있어요.”
내 말에 발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원에서 영역이 막히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는 지팡이를 쓰지 않고 영역을 펼쳤던 발레아였다.
하지만, 표정으로 보니, 지팡이를 쓰지 않더라도 영역에 간섭이 있는 듯했다.
발레아의 몸이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때와 달리, 간섭받는 영역은 넓지 않았으니, 나를 직접 돕지는 못해도 멀찌감치 물러서면 충분히 능력을 쓸 수 있었다.
발레아가 숨은 것을 보고, 나는 숨어 있던 언덕을 내려갔다.
발레아가 만들어 놓은 언덕을 걸어 내려가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모두 내 모습,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하기야, ‘악신의 추종자’가 나올 만할 때 평범한 용병 차림의 젊은 청년이 홀로 나왔으니 나 같아도 놀랄만했다.
이번에는 변장도 하지 않고, 투구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얼굴을 보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게 하면 될 일이었다.
“넌 누구냐!”
기사 중에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기사가 검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당신들이 찾는 사람. 당신들이 말하는 이단의 성기사이자, 성물을 가진 사람.”
“네놈이 악신의 추종자인가!”
“감히 직접 모습을 드러내다니!”
내 말에 신관 기사들과 다른 신관들이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
자신들의 신을 믿어서일까?
아니면 혼자 나와서 얕보였던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내가 말한 것은 저들이 말하는 악신이 아니라, ‘셀린 여신’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해를 바로잡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들에게는 다를 바가 없을 테니.
기사들과 신관들이 호통을 치는 동안, 대주교는 그들과 달리 열심히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면서도, 열심히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내 기사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한가 보지?”
내 말에 주위를 살피던 대주교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추종자가 힘에 취했다! 악신의 추종자를 죽여라!”
그가 꺼낸 말은 대답이 아니라, 나를 죽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꺼낸 말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 본 사람을 바로 죽이라니.
사랑과 자비의 교단. 그곳의 대주교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자들은 모두 교단이 자랑하는 광신자들이었으니, 그의 명령을 바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악신은 지옥으로!”
선두에 선 두 기사가 검을 뽑아 들고, 내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단이 자랑하는 추살대 기사들답게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내게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그들이 검을 휘두르기 전, 아직 검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내가 먼저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검을 들어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닿지 않을 거리였기도 했지만, 그들의 놀란 얼굴을 보니, 내 검의 속도를 따라오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서걱.
달려오던 두 기사의 허리가 동시가 반으로 갈라졌다.
검이 닿지 않을 거리였지만, ‘마나 유형화’로 늘린 보이지 않는 마나검은 두 사람의 허리를 충분히 잘라낼 수 있었다.
먼저 덤벼든 두 기사가 한순간에 허물어지자, 뒤따라오려던 기사들이 움찔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도 실력이 있는 기사들이었다.
한눈에 내 실력을 알게 된 것이었다.
“저희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기사입니다!”
나이 든 기사가 대표로 대주교를 향해 소리쳤다.
기사의 말에 대주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얼굴도 가짜란 말인가?”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저희로서는 막기 어렵습니다.”
그 말에 대주교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대주교를 빤히 마주 보았다.
나는 지금,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솔직히 그냥 다 죽이고 떠나도 되긴 했지만, 죽기 전에 고생한 경험 때문인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저 미이라처럼 보이는 성물도 궁금했고.
그래서, 차근차근 공격을 다 받아낸 다음에 대주교에게 질문을 좀 해볼 생각이었다.
죽기 전 내게 정보를 얻어내려 했던 대주교처럼.
대주교는 이를 악물더니, 신관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관들과 함께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그러자, 미이라에서 흘러나오던 마나의 일부가 대주교에게 흘러 들어가 다시 변형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죽기 전에는 제대로 못 봤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봤다.
귀족을 약하게 만드는 대주교와 신관들의 능력은 유물을 봉인하는 미이라의 능력을 변형한 것이었다.
변형된 마나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쿠웅.
내 능력이 확 낮아지는 게 느껴졌다.
마나 양도 줄고, 심법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나 방출’도 ‘마나 유형화’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선명하게 보이던 마나와 감각도 흐릿해졌다.
적어도 반 이상은 약해진 느낌이 들었다.
“악신의 추종자가 약해졌다. 지금 공격해라. 오래 버티지 못해!”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서인지, 죽기 전과 달리 시간제한이 있는 듯했다.
물론, 시간제한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었다.
능력이 약해지고, 마나양이 줄었다고 해도, 내 훈련, 내 검술, 내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주교는 몰랐지만, 나를 상대하는 기사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이여…….”
“젠장.”
내가 검을 들고, 그들에게 걸어가자, 기사들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가짜 신을 찾는 기사도 있고, 욕설을 내뱉는 기사도 있었다.
다만, 물러서는 기사는 없었다.
나이 많은 기사만이 대주교를 향해 다시 소리쳤을 뿐이었다.
“이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도망치십시오! 이 상태라도 추살대 전체가 나서야 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주교가 놀라 소리쳤지만, 아쉽게도 그의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기사들이 나와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캉! 캉!
여러 개의 검이 사방에서 짓쳐들어왔다.
나는 열심히 대검을 휘둘러 검을 쳐냈다.
조금 전이었으면, 기사들을 검체로 자르거나, 날려버렸겠지만, 마나가 부족해 검을 막는 수준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온 검은 뒷덜미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감각으로 모두 파악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서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검을 막고, 빈틈에 검을 내지르니, 기사들은 내 검을 막지 못하고 차례로 쓰러져나갔다.
나이 든 기사가 몇 번을 더 막아 냈지만, 도와주던 기사들이 모두 쓰러지자, 그도 내 검을 막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 기사의 가슴에 꽂아 넣었던 대검을 빼낸 뒤,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감, 감히!”
대주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대주교가 다른 신관들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신관들은 아직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주교에게는 미안했지만, 아무래도 대주교는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보였다.
“달아나십시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건 내가 다가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관들이 단도를 들고, 맨몸으로 내게 달려들 때도, 그는 그 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신관들은 모두 내 검에 쓰러졌다.
나는 신관들을 모두 신의 품에 돌려보내고, 대주교 앞에 섰다.
대주교는 입술을 떨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관들 말대로 도망치지 않은 것을 칭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들과 달리 겁에 질린 대주교를 비웃어야 할까.
신관들이 죽자, 대주교와 신관들이 펼친 능력은 사라졌다.
힘과 능력이 돌아왔다.
슬쩍 마나를 뿌리자, 대주교가 몸을 움찔 떨었다. 얼굴은 더 창백해졌고.
잘하면, 몇 가지 궁금한 일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방금도 죽어갔던 교단의 광신도들을 떠올리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겁에 질린 대주교를 보니, 적절한 고문을 가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대주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대주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 고문은 소용없다. 나를 비롯한 고위 신관들은 교단을 거역하지 못하게 계약되어있다.”
대주교의 말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럴 가능성도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직접 들으니 입맛이 썼다.
“쓸데없이 힘을 썼군.”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교단의 일도 성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검을 치켜들었다.
내가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대주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벌겋게 변하며 꺼낸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나, 나를 살려준다면, 알고 싶은 일을 다 말해주겠다. 성물에 대해서도…….”
알고 보니, 그가 떨고 있는 것은 겁에 질려서가 아니었다.
아니, 겁에 질린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벌겋게 변한 그의 얼굴 위, 머리에서 마나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게 보였다.
교단과 계약을 할 때, 보았던 정신 관련 마나였다.
그 마나가 대주교의 머리 안팎에서 스파크를 튕기고 있었다.
저렇게 마나가 난리 치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계약을 이겨내면서 내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교단의 대주교가 살기 위해, 교단의 계약을 이겨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