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05화 (405/563)

제405화

제5편 종교 전투 (2)

나는 숨길 것은 숨기고,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막스 왕자에게 이야기했다.

“증거가 있습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막스 왕자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내게 반문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부 제가 듣고 확인한 것입니다. 아쉽게도 증거로 제시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예언가에게서 들었던 말은 나만 알고 있는 말이 되어버렸고, 다른 증거나 증인들도 없어진 세상에 남겨졌거나, 이미 죽은 뒤였다.

“그래도 확인해 볼 방법은 많이 있을 겁니다. 이피로스 왕국의 움직임도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보니 이곳에도 조직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있을 테고, 마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조직이 힘을 쓰지 않았다면 이피로스 왕국이 2 황자의 편에 섰을 리가 없었다.

다만, 확인할 방법은 그 정도가 다였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정황 증거들밖에 없습니다. 새 황제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제국 기사들과 군대의 움직임, 교단과의 충돌, 우리 왕국과 이피로스 왕국을 싸움 붙이려고 하는 것까지. 정황 증거들은 가득하죠.”

내가 한 말에는 믿기 어려운 내용도 들어 있고, 확실한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막스 왕자의 표정을 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아무래도 내 말 중에 그에게 신뢰를 준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느 부분에서 신뢰를 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믿어 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에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기 전, 그는 뭔가 결심한 모습이었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씨앗이나 하나 뿌려둘 생각이었는데, 막스 왕자의 표정을 보니, 생각보다 빨리 열매가 나올 것 같았다.

그것도 내 생각보다 더 큰 열매가.

어떤 열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우리 왕국에 도움이 되는 열매 일터.

나는 마음속으로 막스 왕자의 앞길에 축복을 빌어주었다.

막스 왕자는 돌아가기 전, 내게 말을 남겼다.

“지금, 2 황자가 대주교와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들으니, 대주교가 곧 수도원을 떠날 모양입니다. 지금 나누는 이야기가 끝나면 2 황자도, 저도 수도원을 떠날 겁니다.”

내가 정보를 전해주어서인지, 그도 내게 수도원의 일을 말해준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내가 수도원에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그가 말하기 전에는 그의 말대로 수도원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당사자가 나온다는데 사제와 신관들이 득실거리는 수도원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의미로, 막스 왕자의 정보는 내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막스 왕자가 떠나고, 나는 다시 발레아가 파 놓은 참호로 돌아갔다.

그녀의 능력으로 땅 아래에 파 놓은 참호는, 유물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각종 캠핑용품 덕에 무척이나 안락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덤불로 숨겨 둔 작은 입구를 내려가면, 커다란 동굴 속에 큰 텐트가 쳐져 있었다.

그 텐트 안에는 그동안 모아 놓은 캠핑용품들이 놓여 있었다.

대기의 마나를 끌어들여 계속 빛을 뿜어내는 유물 등과 주변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유물 화덕.

대기의 수분을 모아 물을 만들어 내는 주전자까지.

그동안 팔지 않고 가지고 있던 유물들이 야외 생활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쓸모없는 유물들을 왜 계속 모으는지 궁금했는데, 이런데 쓰려고 한 거네요.”

발레아가 의자에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차를 마시며 내게 말했다.

확실히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쓸모없는 유물이 맞았다.

여행을 다니더라도, 귀족들이 직접 손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런 유물들은 호기심을 채워 주는 장식물일 뿐이었다.

나야 전생의 기억 때문에 모은 것일 뿐이었지만, 발레아는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 듯했다.

“이런 곳에서 이런 물건들로 살아야 할 정도로 세상이 망가지는 건가요?”

그동안 내가 해온 일과 진행하는 일들을 보고, 발레아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죠.”

기껏 영주가 되었는데, 아포칼립스가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유물들은 내 취미생활일 뿐, 미래에 대한 대비가 아니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었다.

그 뒤에 우리는 억지로 분위기를 끌어올려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발레아가 영역을 펼치는 데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수도원에서 누가 떠나는지 이 지하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막스 왕자가 떠난 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수도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2 황자의 기사단과 병사들이 떠날 준비를 하네요. 바로 떠날 모양이에요.”

영역을 확인한 발레아의 말처럼 먼저 움직인 것은 2 황자 일행이었다.

“뭔가 잘 안된 모양이에요. 다들 서두르네요.”

대주교와의 이야기가 잘 안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더 화가 났는지, 2 황자 일행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짐을 정리해 수도원을 떠났다.

2 황자가 빠져나가자, 전보다 한가해졌다.

내 목적은 2 황자가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대주교가 나서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준비가 많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대주교가 움직인다는 발레아의 말에 우리도 짐을 정리했다.

유물들을 정리하고 천막을 치운 뒤, 밖으로 나오니, 해가 오후를 알리고 있었다.

발레아와 나는 수풀 속에 몸을 낮추고 수도원을 지켜보았다.

* * *

수도원 정문 앞, 대주교가 타고 왔던 마차가 다시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 옆에는 호위로 남겨둔 신관 기사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말 위에 올라 있었다.

신관 기사들 말고도, 신관 여러 명이 말을 탄 채로 대주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단 본단에서 이 수도원으로 대주교와 함께 왔던 신관들이었다.

이어, 수도원의 정문이 활짝 열리고, 대주교와 일단의 신관들이 밖으로 나왔다.

“다들 기다리고 있었구먼.”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신관 기사 한 명이 대표로 대주교에게 말했다.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두에게 말했다.

“몸이 늙어서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는군.”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신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보내시는 게 어떨는지요.”

대주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악신의 유물을 회수하는 일인데. 거기다, 성물을 쓰려면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그의 말에 따라 나왔던 신관들이 성호를 긋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께 영광을.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이래 봬도 나이에 비해 튼튼하니까.”

대주교는 따라 나온 신관들에게 일일이 축사를 해주고는 직접 큰 가방을 들고 마차에 올랐다.

그가 마차에 오르자, 수도원의 신관과 사제들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이 출발했다.

선두는 신관 기사들이 나섰고, 마차 뒤에는 신관들이 따라갔다.

대주교를 따라다니는 신관들이라서인지, 다들 말을 잘 다뤘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서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

홀로 마차에 타고 있던 대주교는 사람들의 눈이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집 나오면 고역이군.”

조금 전과 달리, 그는 의자에 편하게 기댄 채로 마차 깊숙이 숨겨둔 와인을 꺼내 병째로 홀짝였다.

“이 짓도 벌써 20년째. 기껏 벗어날 방법을 찾았는데, 갑자기 이런 난리가 벌어지다니. 신도 무심하지……. 아니 신은 없으니, 운이 나쁜 건가.”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계약만 없었어도, 이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엉뚱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교단의 계약을 총괄하는 그도, 따지고 보면 계약에 묶여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대주교로 올라올 때, 전대 대주교와 맺은 계약.

교단을 만든 초대 대주교로부터 이어져 온 계약은 족쇄가 되어 그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야 계약을 풀 방법을 찾았는데, 제국 수도에서 쫓겨나더니, 악신의 추종자까지 쫓게 되었다니.

연달아 터지는 악재에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였다.

“그래도 이번만 넘기면,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정말 약속의 때가 다가온 것 같은데, 이대로 휘말릴 수는 없지. 이번에는 기필코 족쇄를 풀어버린다.”

대주교는 입술 아래로 흐르는 와인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마차를 타고 달리니, 창 너머로 노을이 비쳐 들어왔다.

슬슬, 야영을 해야 할 것 같아, 지시를 내리려 했는데, 그보다 먼저 마차가 멈췄다.

히이이잉!

마차를 끄는 말들이 놀라 마차를 멈춰 세운 것이었다.

동시에 앞쪽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크아아아앙!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

마차 벽에 기댄 덕에 겨우 넘어지지 않은 대주교가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다행히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전방에 마물입니다!”

“마물?”

놀란 대주교가 마차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도 보게 되었다.

늑대를 닮은 네발로 선 마물들을.

하지만, 그 마물들은 평범한 마물과는 너무 달랐다.

아니, 딱 봐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오염된 마나로 변형된 짐승들은 대부분 괴기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왕이 불러낸 봉인지의 마물들은 더 이상했고.

그래도, 그 마물들은 살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부가 벗겨져 있어도, 근육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고, 혈관이 드러나 있어도, 심장이 열심히 피를 퍼 나르는 게 보였다.

다리가 수십 개 달려 있고, 장기의 위치가 달라도,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앞의 마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세 마리의 마물들은 전부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가져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물 하나는 머리가 없었고, 다른 마물은 뻥 뚫린 가슴 안에 심장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마물은 더 황당했다. 양다리 모두가 뼈만 남아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놀라고 공포에 질렸겠지만, 여기 있는 신관과 기사들은 놀라지 않았다.

얼마 전에 대주교에게 이런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는 적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대상에 마물이 있지는 않았지만, 신관 기사들은 침착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신관들도, 침착하게 대주교 주위에 모였고.

하지만, 대주교는 그들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함정인 건가? 잘못했군. 기사들과 같이 가는 거였는데…….”

대주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물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마물을 움직이는 추종자도, 해골 기사도 보이지 않지만, 서둘려야 했다.

그는 다시 마차로 뛰어들었다.

* * *

열심히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발레아에게 부탁해서 협곡 비슷하게 지형을 만든 보람도 있었고.

시체로 되돌렸던, 마물들을 다시 끌고 온 보람도 있었다.

다만, 다시 부른 언데드 마물들은 꼴이 영 이상해져 있었다.

“버려둔 지 반나절 만에 저렇게 되다니. 역시 시체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어젯밤에 도시에서 난동을 부릴 때만 해도 저런 몰골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물답긴 했는데, 지금은 마물이라기보다, 시체 무더기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뭐, 저들에게는 이편이 더 먹힌 모양이었다.

마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대주교는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자, 성물이 뭔지 볼 차례인가.”

나는 언덕 뒤에 숨어 대주교가 가방을 여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방이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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