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403화 (403/563)

제403화

제3편 언데드의 난 (2)

이 영지의 영주가 있는 도시는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었다.

내 영지의 도시와 비슷한 정도.

그래도, 도시를 빙 두른 제대로 된 성벽도 있었고, 성벽 위에 경계를 서는 병사도 보였다.

나와 기사들은 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숨은 채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에는 밤에 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사들도 모르게 뒤쪽에 숨겨놓은 언데드 마물이 활약하는 것도 밤이 더 좋았고.

기사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데도 밤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은 지금 내 뒤에서 열심히 분장하고 있었다.

투구를 깊게 내려쓴 뒤에, 가죽 갑옷에 피를 칠하고, 흙을 묻혔다.

멀쩡한 갑옷을 망가뜨리자니 속이 쓰렸지만, 사람들을 속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분장하니, 더는 살아 있는 용병이나 기사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공격할 때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르르륵. 끄윽. 하는 신음 정도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지시에 기사들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왕실 기사들 보고, 괴물 연기를 하라는 말이었으니, 다들 마음에 안들만 했다.

기사들끼리 작게 쑥덕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마나에 오염된 용병이라는 개념인가?”

“하지만, 이게 먹히려나? 사람이 오염된 마나에 미쳤다는 말은 소문으로만 있었잖아.”

“뭐, 어차피 우리는 왕실 기사라는 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따로 생각이 있겠지.”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다행히 기사들은 내 지시를 따라주었다.

어차피 주역은 마물들이었지만, 내가 ‘악신의 추종자’라고 소문이 나려면 해골 기사들의 대체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대체품은 열심히 분장한 카를로스 왕실 기사들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밤이 찾아왔다.

정보를 얻기 위해 미리 도시로 들어갔었던 레스티는 성문이 닫히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그는 신전에 도착한 기사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왔다.

“아쉽게도 신전 안에 교인이 없어서 3 황자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신전 앞에서 장사하는 교인이 있어서 기사들이 도착한 것은 확인했습니다.”

이 도시에도 교인이 있다니. 셀린의 교인은 정말, 대륙 전체에 퍼져있는 듯했다.

“갑옷을 입은 기사 중에는 여자가 둘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그녀들과 또 한 명의 기사를 호위가 아니라, 호송하는 식으로 신전으로 데리고 들어간 모양입니다.”

얼굴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3 황자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했다.

그리고, 왜 조아나가 연락을 못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대주교가 온 뒤로 3 황자와 일행의 대접이 안 좋아진 듯했다.

설마, 나 때문은 아니겠지?

어쨌거나, 레스티에게서 도시의 병력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영지병과, 영지의 기사단, 그리고, 신전에는 3 황자 일행을 데려온 신관 기사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 정도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만했지만, 이제 내 목적은 3 황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잠든 심야.

나는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을 학살할 필요는 없다. 최대한 혼란만 일으키다가 내가 지시할 때 우리 왕국 쪽으로 후퇴하도록.”

“그럼, 저쪽 기사들은 누가 상대를 하는 겁니까?”

그건 따로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 상대가 알아서 괴성을 지른 것이다.

성벽 위, 언데드 마물이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아앙!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미리 보내 놓았던 언데드 마물들이 성벽 위로 올라선 것이었다.

오염된 마나로 돌연변이 마물이 된 늑대들이라, 언데드가 된 지금도 이 정도 성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마물이다! 마물이 나타났다!”

경계를 서던 병사들이 기함해서 비명을 지르고, 성벽 곳곳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땡땡땡!

이제 곧 사람들이 깨어날 터.

그 전에 움직여야 했다.

갑작스러운 마물의 등장에 분장한 왕실 기사들은 어리둥절했다.

나는 기사들을 분장시킨 것과 비슷한 방법을 쓴 것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정반대의 분장이었지만, 내 설명에 기사들은 억지로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기사들을 이해시키고, 나는 기사들과 함께 성문으로 내달렸다.

도시를 지키는 성벽에 달린 성문이라 그런지, 성문은 언뜻 보기에도 무척이나 튼튼했다.

나는 달리는 기사들의 선두에 서서 대검을 치켜들었다.

부서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능력을 지닌 대검은 죽기 전과 달리 별빛에서 날이 번쩍였다.

죽기 전에는 유물의 능력을 막아서인지, 이 대검도 처음으로 여러 군데 날이 나가 있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그때, 살아나갈 수 있었더라도, 대검 때문에 자살했을지도 몰랐다.

그때와 달리, 지금 이 대검은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끄떡없을 거라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밀어 넣고, 마나를 변형해서 무게로 전환해, 저 두꺼운 성문을 내려친다고 해도, 눈곱만큼도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을 믿고, 눈앞에 다가오는 성문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성문이 점점 다가왔지만,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검에 밀어 넣은 마나를 변형하니, 검이 미친 듯이 무거워졌다.

나는 문에 부딪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 마지막 순간, 들고 있기도 힘든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내가 달리는 가속도와 마나로 변형된 검의 무게. 힘차게 휘두른 검의 속도까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마나를 가득 품은 검이 성문을 두드렸다.

콰아아아앙!

성문에서 성벽 위에서 들리는 종소리와 마물들의 괴성을 묻어버리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두꺼운 철로 만든 성문이 폭발하듯 박살이 났다.

“맙소사.”

“와아…….”

“저게 검에 부서지는 거였어?”

“세상에…….”

뒤따라오던 기사들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물론, 실력이 좋은 기사들이라면 마나를 가득 담아 철문을 잘라 낼 수 있겠지만, 나처럼 박살 내는 사람은 처음 보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처음 봤다.

이 정도로 박살 날 줄은 나도 생각도 못 했다.

녹슨 철문이었으려나…….

어쨌거나, 한 방에 문이 박살 난 것은 좋은 일이었다.

“크르르릉.”

나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손짓으로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기사들은 내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으며 거리로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발레아와 함께 신전으로 향했다.

이제 3 황자를 다시 볼 시간이었다.

성벽 위에 마물들이 날뛰고, 성문이 부서지고, 거리에 소란이 일어났지만, 영지의 기사들은 현장에 바로 나타날 수 없었다.

기사단 앞에 마물 넷이 나타나 난동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만 있는 성벽 위에 마물 전부를 놔둘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마물 두 마리만 성벽 위에 남겨놓고, 나머지 마물들은 도시 북쪽, 영주의 저택 옆에 있는 기사단 숙소로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데드 마물에 대한 통솔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일으킬 수 있는 마물의 숫자만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거리도 늘어나고, 더 자세히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먼 거리였지만, 레스티에게 들은 위치로 마물들을 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며, 나는 신전이 있는 도시의 중심으로 달려갔다.

발레아도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지팡이를 건네 준 뒤로, 발레아의 영역은 이제 환상이 아니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지금도, 땅이 그녀를 받치고, 나와 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집마다 불이 켜지고, 열려 있던 창문들이 오히려 닫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오래지 않아 신전 앞에 도착했다.

소란 때문인지 신전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다만, 신전 앞에는 3 황자를 데려왔던 기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전 안에서 마나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안에 숨어 있는 모양이었다.

“3 황자를 만나러 가세요. 방해자들은 제가 치워놓을게요.”

신전 앞에 멈춰서자, 같이 도착한 발레아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신전을 향해 지팡이를 가리켰다.

죽기 전에 수도원에 있던 성물 때문에 영역을 펼치기 힘들어하던 발레아는 이곳에 없었다.

지금 막 도착했지만, 발레아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그녀의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하루 이상 열심히 준비했을 때 느껴졌던 그 영역이었다.

덜컹.

잠겨 있었을 신전의 문이 활짝 열리고.

크악.

문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숨어 있던 기사의 비명일 터였다.

나는 발레아에게 감사의 눈짓을 한 뒤에 열린 문으로 향했다.

열린 문 안은 다른 신전들처럼 커다란 예배당이 있었다.

예배당 안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관 기사들이 사제들을 방에서 나오지 않게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발레아가 사제들을 고립시켜놓았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건 내 앞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예배당 구석에 이상하게 일그러진 벽이 보였지만, 나는 그 벽을 무시하고 예배당 안쪽 문을 열고, 신전의 내당으로 향했다.

사제들이 있을 방들이 늘어서 있는 복도를 지나, 복도 안쪽 깊숙한 방에 3 황자가 있었다.

문 앞에 서니 안쪽에서 3 황자의 마나가 느껴졌다.

아마도, 문 앞을 기사가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복도의 목재 벽 나이테가 사람 형태로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조금 착잡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어찌 되었건 같이 여행하며, 호위를 섰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죽이는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마음에 들어서도 곤란하고.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3 황자가 안에 있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3 황자는 나를 봐도,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3 황자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대주교가 온 뒤에 저렇게 되었어요. 대주교가 교단을 따르는 이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면서 3 황자를 끌고 가더니, 이렇게 변했어요. 일종의 세뇌겠죠.]

때마침, 머릿속으로 조아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딸깍.

동시에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아나가 있던 방이었다.

조아나가 방에서 나오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더 이상했어요. 아예 인형 같았어요. 지금은 그래도 대답 자체는 잘하니까요.]

나는 3 황자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지?”

“제국의 3 황자다. 황제의 후계자이며 교단의 충실한 신도다.”

조아나의 말대로 그는 내 질문에 잘 대답했다.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아나?”

“모른다.”

[이번에 유적에서 걸린 계약 때문인지, 기억도 온전치 않더라고요. 저도, 엘레나도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이렇게 되면 3 황자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일이 급박해졌기 때문일까?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주교는 3 황자의 정신을 뜯어고치려 했던 모양이었다.

다만, 일이 끝나기 전에 2 황자가 찾아왔고, 대주교는 급하게 3 황자를 숨겨 놓은 것일 테고…….

상황을 알고 보니, 일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더구나, 이렇게 되고 보니, 3 황자를 살려 놓는 게 훨씬 좋아 보였다.

잘하면 교단이 3 황자에게 세뇌를 걸었다고 알릴 수도 있을 듯했다.

그렇다면, 조아나 말고도 증인이 더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아나 뒤로 사람이 한 명 더 모습을 보였다.

엘레나였다.

[그리고, 엘레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어요! 엘레나는 대주교가 3 황자를 세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어요.]

엘레나 누이는 슬픈 얼굴로 잘생긴 3 황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그동안 반했던 걸까?

어찌 되었건 증인은 구한 것 같았다.

그렇게 되어, 3 황자를 죽이는 대신, 살려서 데리고 나오게 되었다.

나는 난장을 치고 돌아온 왕실 기사들과 함께 3 황자를 서쪽으로 떠나보냈다.

두 여사제도, 레스티도 그들과 함께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 뒤를 마물들이 따르게 했다.

‘악신 추종자’가 언데드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는 것을 모두가 알도록.

모두가 떠나보내고, 나와 발레아는 수도원으로 향했다.

원래의 목적을 이뤘으니, 이제 내 일을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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