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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95화 (395/563)

제395화

제20편 라포스 백작

여왕의 말은 사절도, 귀족들도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에……. 그것은…….”

사절은 조금 전까지의 유능한 모습을 잊어버리고, 입을 뻐끔거렸다.

사절이 헤매고 있자, 다른 사람이 대신 입을 열었다.

“하지만, 3 황자의 위치를 모르면, 잡아준다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동부의 백작. 라포스 백작이었다.

“맞, 맞습니다. 저희 제국도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데…….”

라포스 백작의 말에 사절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왕국 귀족이 제국 사절에게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그 모습을 보고, 내 마음속의 시곗바늘이 딸깍, 한 눈금 움직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향해.

여왕은 여유롭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3 황자는 교단이 빼돌렸다고 들었다. 맞지?”

여왕의 말에 사절은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제국 사절은 여왕이 그 사실을 알 거라고 생각도 못 한 듯했다.

“제국의 일을 듣고, 우리도 그동안 교단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 와중에 3 황자의 위치도 알게 된 거고.”

여왕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여왕이 보자 나는 고개를 숙였고, 시드 백작은 그제야 어제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듯했다.

어제, ‘지시하신 일을 마치고 왔습니다.’라고 했던 내 말은 교단을 감시하라는 여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왔다는 말이었고.

그 와중에 내가 3 황자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 외유는 교단의 감시가 아니라 3 황자의 도주를 돕는 일이었고, 3 황자의 위치도 교단을 감시해서가 아니라, 교단 내에 있는 스파이가 알려줘서였다.

3 황자의 위치는 영지에 돌아온 뒤에 조아나가 레스티 편으로 알려주었다.

당장, 그녀의 텔레파시를 감시할 사람도 없었고, 교단이 성전 같은 곳을 더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교단은 조아나의 연락을 막을 수 없었다.

여왕의 이야기는 어제 그녀와 나, 공작 세 사람이 짜 맞춘 이야기였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 사실이 가득 담겨있으니, 그럴듯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3 황자의 위치를 아십니까? 그 위치를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사절도 여왕의 말을 믿게 된 것인지, 급한 목소리로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은 고개를 저었다.

“3 황자가 제국 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제국은 이피로스에 집중하고 3 황자는 우리가 잡는 게 좋을 거야.”

여왕의 거절에 다시 라포스 백작이 나섰다.

“위치를 아시면 차라리 제국에 알리시는 게……. 놓치기라도 하면 문제가 이만저만 아니게 될 겁니다.”

그럴듯한 말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여왕의 말에 반대하는 말일 뿐이었다.

딸깍.

다시 한번 초침이 움직였다.

“잡지 못하면 추가로 파병하고, 내가 제국의 황제께 사죄하지.”

백작은 이어진 여왕의 말에 입을 닫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를 보는 눈에 살짝 살기가 돌았다.

사절은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럼, 본국에 연락해보겠습니다.”

당연히 일개 사절에게 그런 결정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도, 우리도 여왕의 이 제안을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그동안 3 황자를 잡기 위해 움직이도록 하죠.”

사절의 대답을 들은 뒤, 여왕은 공작과 다른 두 귀족을 둘러보며 말했다.

공작은 여왕의 말에 고개를 숙였고, 시드 백작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숙였지만, 라포스 백작은 다시 여왕에게 물었다.

“3 황자를 잡으러 누가 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3 황자가 있는 곳을 알아 온 알렉스, 아니 샤를 자작에게 왕실 기사들을 딸려 보낼 겁니다. 그의 실력은 다들 인정할 테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여왕의 말에 라포스 백작은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사절은 급하게 알현실을 나가려 했다.

사절이 방을 나서기 전, 여왕이 그를 불렀다.

“잠깐, 3 황자가 꼭 살아 있을 필요는 없겠죠?”

담담히 제국 황자의 죽음을 꺼내는 어린 여왕의 모습에 사절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네? 그게 무슨…….”

“살려서 잡느라 우리 기사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운이 나쁘면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어린 여왕은 사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절은 질린 얼굴로 방을 빠져나갔다.

창백해진 것은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긴 했지만, 여왕은 아직도 10대 초반의 소녀였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제국 황자의 죽음을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줄은 모두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설마, 발레아에게 물든 건 아니겠지?’

섬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황자의 죽음은 먼저 내가 꺼낸 말이었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황자를 곱게 제국에 건네줄 수는 없었다.

3 황자는 나를 위해, 우리 왕국을 위해 제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야 했다.

그는 얼마 뒤에 운 나쁘게 사고로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결국, 여왕은 내 이야기를 전한 것일 뿐이긴 했지만, 나를 보고 웃는 여왕을 보니,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 뒤로, 사절은 바로 제국에 파발을 보냈고, 여왕은 왕실 기사들을 뽑아 내 휘하에 붙여 주었다.

나는 발레아와 디오구를 남기고, 후안과 병사들을 영지로 돌려보냈다.

시간이 없어서 내 휘하에 붙여 준 왕실 기사들을 전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발레아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 * *

알렉스와 왕실 기사들이 수도를 떠나기 전날 밤.

수도의 밤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어두운 것은 라포스 백작의 저택도, 그의 침실도 마찬가지였다.

침대 위에는 젊은 여자가 이불만 덮은 채로 누워 있었고.

라포스 백작은 가운만 걸친 채로 침실 옆 의자에 앉아 탁자에 올려둔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는 이불을 잡고, 윗몸을 일으켰다. 한숨을 쉰 그녀는 와인을 마시는 백작을 보았다.

“라포스 백작님이 부르셨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녀의 말에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법 비싼 것 같더니, 아는 게 많군.”

백작의 말에 여자는 풀썩 웃었다.

“뭐, 내전으로 굴러굴러, 바닥으로 떨어진 셈이죠.”

여자는 백작이 거리에서 직접 돈을 주고 데려온 거리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라포스 백작이 확인해주자 오히려 안심했다.

그녀는 너무 많은 돈을 받고, 다른 사람 몰래 이곳까지 오게 되어 걱정했었다.

밤일이 아니라, 험한 일에 걸린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했고, 라포스 백작 정도의 귀족이라면 명예 때문에, 그녀를 몰래 데려올 만했다.

“내가 누군지 알았으니, 비밀을 지키기 위해 뭔가 더 요구할 생각이냐?”

“그런 바보는 아닙니다. 이 집을 나가는 데로 오늘 일은 모두 잊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백작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내가 운이 좋았군. 잘되었다. 혼자 떠드는 것보다 듣는 사람이 있는 게 좋겠지.”

“조용히 경청하겠습니다.”

여성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백작은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배운 여자였다.

“내일 한 가지 일을 할 생각이다. 방해하는 자를 처리할 생각이지.”

말을 하며 백작은 만족한 얼굴로 와인을 들이켰다.

“혹시 너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샤를 자작,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왕의 호위 기사지.”

백작의 말에 여성의 얼굴빛이 조금 안 좋아졌다.

“여왕 옆에 ‘왕의 능력’을 가진 자가 더 있다는 건 왕국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를 않아.”

“더구나, 어린 나이에 실력도 무시무시하고, 거기다, 아버지는 그레시아 공작이니, 우리 쪽으로 붙을 리도 없지.”

백작은 아쉬운 얼굴로 다시 와인을 마셨다.

곧이어 표정이 험악해졌다.

“더구나 서자 따위가 ‘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니. 그런 일을 두고 볼 수는 없어.”

여성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다행히 때가 맞아서 왕실 기사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니, 손을 쓸 수가 있었지.”

여성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모르는 것처럼 백작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왕실 기사단에 새로 입사한 우리 쪽 기사들을 붙여 준 거야. 수도를 나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행은 기습을 받겠고, 젊은 기사는 동료의 검에 목숨을 잃겠지.”

거기까지 말한 백작은 개운한 얼굴로 잔을 들어 올렸다.

백작의 표정과 달리, 여성은 떨리는 입을 열었다.

“저, 저를 죽이실 건가요?”

“역시, 제대로 배웠어.”

백작은 여성의 말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인을 들지 않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다음 순간.

여성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고마웠어. 그래서 곱게 보내주는걸세.”

백작의 말에도 여성의 일그러진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열었지만, 결국 말 한마디 못 하고 이불 위에 엎어졌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 정리해볼까?”

백작이 와인을 내려놓고 하는 말 뒤에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늦었군.”

어두운 방구석에서 들려오는 소리.

“누구냐!”

백작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상황만 보려 했는데, 결국 시간을 다 쓴 것 같네.”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였지만, 백작은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어서 나와!”

“땡! 죽을 시간이 되었어.”

백작이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다시 한번 손가락이 퉁겨지고.

콰직!

목소리가 들려온 허공이 손가락이 퉁겨지는 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며 사라졌다.

동시에 허공에 걸쳐진 바닥도 벽도, 커다란 구 모양으로 소멸했다.

마치, 공간 일부분이 사라진 것 같았다.

조용해진 방.

소멸한 공간을 보고, 백작은 혀를 찼다.

“쯧쯧, 누군지 묻지도 못했군.”

공간 자체를 없애버렸으니,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백작은 자신의 능력이 아쉽지 않았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일정 영역을 소멸시키는 자신의 능력.

이 능력 덕에 그는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방해하는 정적과 동료. 가족과 형제를 이 능력으로 없애고, 흔적마저 남기지 않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능력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곤란한 능력이라, 대놓고 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처럼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침대 위에 놓인 시체를 치우는데도 도움이 되고.

그는 다시 침대 위의 여성을 보며 능력을 조정했다.

“내놓고 쓸 수만 있다면 어느 기사도 다 이길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아쉽기는 해.”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린 그는, 다른 물건이 사라지지 않게 조심하며 손가락을 다시 튕기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퉁겨지지 않았다.

푹.

손가락이 퉁겨지기 전, 검 하나가 그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기사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느려.”

뒤쪽에서 젊은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는 목소리였다.

여왕과 있을 때 들었던 목소리.

여왕 호위 기사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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