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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94화 (394/563)

제394화

제19편 검의 주인 (2)

‘기사의 검’의 능력은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쓸 수 있었다.

여왕의 오빠들.

두 왕자가 죽고, 이제 여왕과 공국의 공국왕, 그리고 그 아들만 가능하다고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이 더 있었고,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여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이 자리에서 모습을 보인다면.

회의실에 있는 귀족들의 모습이 그 결과를 알려주었다.

여왕에게 검을 건네고 여왕의 뒤에 서자, 귀족들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다들, 머릿속으로 뭔가 열심히 계산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론이 안 나온 사람도,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도 슬슬 발을 빼는 게 보였다.

다들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나 앉았고, 시드 백작은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도 그는 제국에 다녀온 것을 이용해, 자신의 실권을 키울 모양이었던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앞에 나섰다고 주동자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전생에도 그랬지만, 이런 일은 항상 숨어 있는 주동자가 있는 법이었다.

그 주동자는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한차례 소란이 지나고, 눈치를 보는 귀족들 사이에서, 시드 백작이 입을 열었다.

“여왕님의 손님이 왔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한발 물러서는 듯한, 시드 백작의 말에 여왕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국에서 온 사절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사실, 여왕의 말은 그들의 의견과 달랐다.

물론, 여왕이 한 말도, 그들의 말 가운데 포함된 말이긴 했지만, 그들의 목적은 사절에게 말을 다시 듣는 게 아니라, 제국과 함께 이피로스 왕국을 치는 것이었다.

“아니, 그건……. 알겠습니다.”

여왕의 말에 시드 백작이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주변의 분위기를 보고 말을 멈춰야 했다.

지금, 당장 제국의 사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긴 상황이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정할 일도 아니었으니, 지금은 먼저 새로 등장한 ‘왕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귀족들은 썰물처럼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전보다 수가 적어진 공작 쪽 귀족들도 눈치를 보다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결국, 회의실에 남은 것은 나와 여왕, 그레시아 공작뿐이었다.

공작은 나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이 나에게 물었다.

“다중 능력자였나?”

“네.”

“언제부터지?”

“꽤 되었습니다.”

“여왕님은?”

나는 슬쩍 아이샤 여왕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한숨 돌렸다는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전부터 아셨습니다.”

여왕이 눈치를 챘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없어진 신검을 내가 건네주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왜 여태 숨긴 건지……. 아니, 숨겨야 했겠지.”

당연히 두 왕자가 살아 있을 때는 절대 밝힐 수 없었다.

아이샤가 왕위를 차지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도 밝히기 어려웠고.

지금도 조금 빠른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주변 상황이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어차피 밝혀야 한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에 말하는 편이 좋았다.

“그동안 준비한 계획이 엉망이 되겠군.”

공작은 이마에 잡힌 주름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어떤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그 계획보다는 제가 나선 편이 좋았을 겁니다.”

내 말에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자, 대신 내가 공작에게 물었다.

“지금 보니, 따르는 귀족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더군요.”

“제대로 일을 해보려 하니까, 싫어하는 귀족이 정말 많더군.”

공작은 전과 달리, 내게 담담한 목소리로 사정을 이야기했다.

작위를 받았을 때와 또 달랐다.

이제는 완전히 동등한 동료로 대하는 듯한 말이었다.

“공작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수도와 왕국을 복구하는 것도, 병력과 기사단들을 복구하는 것도 공작님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어요.”

옆에서 여왕이 공작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말에 나는 툭 하니 속에 있던 생각을 말했다.

“여왕님을 돕기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이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겠죠.”

내 말에 공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내전에 참여한 것도, 여왕님을 도운 것도, 이 나라를 개혁해서 제대로 성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공작이 영주가 되면서 검을 포기한 대가로 추구한 목표였을 터였다.

“수도로 오면서 보니까, 왕국도 수도도 분위기는 좋아 보였습니다.”

“귀족들이 먹어 치우려던 것들을 왕국 전체에 뿌리고, 귀족들이 손을 대지 못하게 막아버렸으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지.”

내전의 전리품을 승리한 귀족에게 주지 않고, 내전의 복구와 왕국의 내실을 키우는 데 쓴 모양이었다.

“대신, 귀족들은 불만이 많아졌어요. 공작님이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브리비아가 불만이 많다.”

공작도, 수도의 사교계를 휩쓸던 공작부인도 이 일은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두 분이 잘하시는 것 같네요.”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여왕님이 하시려는 일이 다르지 않으니까. 오히려 여왕님이 더 과격하게 움직이시는 바람에 나는 일을 줄이는 쪽에 가까웠지.”

공작의 대답을 듣고, 나는 여왕을 쳐다보았다.

여왕은 내가 왜 쳐다보는지 알고 있었다.

“저는 공작님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여왕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확실히 공작은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믿을 수 있는 대단히 훌륭한 귀족이었다.

영지민에게 칭송을 받고, 정치력도 있고, 검술 실력도 대단한, 자신이 아니라, 왕국의 성장을 꿈꾸는 귀족.

내가 그의 아들, 서자가 아니었으면, 존경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서자인 이상, 그동안의 경험을 기억하는 이상, 그를 좋아하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그냥, 모르는 사이로 지내면 좋을 텐데.

지금도 공작을 대하는 것은 거북스러웠다.

다만, 지금은 별수 없었다.

여왕의 말은 결국 공작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의 일을 말씀드리죠. 우선 제국의 새 황제는 조직이라는 곳의 도움으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다녀온 곳은 교단의 성전으로 3 황자를 데리고…….”

나는 저택에서 수하들에게 말한 내용을 다시 여왕과 공작에게 말했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여왕과 공작의 표정이 변해갔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여왕과 달리, 공작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조직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얼마 뒤에 마물 왕들이 봉인지를 벗어나고, 마왕이 봉인을 풀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간에 알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들의 예언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사절에 대한 내 생각까지.

“제 생각이긴 하지만, 2황자를 이피로스 왕국에 밀어 넣은 것도, 이번 사절도 마물과 마물 왕을 움직일 때를 대비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공작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공작답지 않게,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던 그는 쥐어짜듯 입을 열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공작이 거짓말로 느낄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소로카 요새는 지금도 마물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마물 웨이브는 제국 쪽으로 돌려놓기는 했지만, 갈수록 벅찰 것입니다.”

충격을 받았던 공작은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네 말이 맞는다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인가…….”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제가 비밀을 털어놓은 겁니다.”

귀족들에게 내 능력을 알린 것도, 공작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이번에 네 결혼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왕의 능력’에 마왕이라니, 결혼 권유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막아야겠군.”

공작의 말에 수도에 있었던 파티가 떠올랐다.

그때, 수많은 매파와 여성들이 내게 접근하려 했었다.

그때는 발레아 덕에 겨우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소문이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앞일을 떠올리니, 바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절대 파티 같은데는 가지 말아야겠다.

그때, 여왕이 입을 열었다.

“알렉스는 저희 왕국에 둘밖에 없는 능력자예요. 함부로 사돈을 맺으면 귀족들의 권력 추가 움직일 수 있으니, 당분간 결혼은 힘들 거예요.”

여왕의 말대로였다.

나와 결혼을 하면, 확률은 낮지만, 그 자식이 ‘마나 감응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왕위 계승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

서자인 내가 이런 위치가 되었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지만, 여왕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여왕의 말에는 뭔가 다른 뜻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공작과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뒤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야기했다.

원래 두 사람은 제국의 요청을 최대한 뒤로 미룰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거절하는 것도 아닌 모호한 대답으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져온 정보 때문에 두 사람의 계획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왕은 귀족들에게 말한 대로 다시 사절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공작은 조금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만다를 만나러 가봐야겠군.”

갑자기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소리였다.

갑자기 외로움에 사무쳐서일 리도 없고,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 * *

여왕은 다음날 제국의 사절을 다시 불렀다.

사절을 부른 자리에는 여왕 이외에도 여러 귀족이 자리를 차지했다.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여왕의 양쪽으로 선 귀족들.

그레시아 공작은 물론, 심기일전한 시드 백작과 나이가 지긋한 귀족까지.

나이가 지긋한 귀족은 어제 회의에서 보지 못했던 귀족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내전이 끝난 뒤, 왕을 뽑는 공회에서 본 귀족이었다.

그때 죽은 두 왕자의 세력을 대표해서 말을 이어갔던 동부의 귀족이었다.

그레시아 공작령과 비슷한 크기의 영지를 가지고 있던 백작.

아마도, 그가 반대파의 수장인 모양이었다.

그는 여왕 뒤에 서 있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일로 놀라, 급하게 나온 듯했다.

그는 나를 살펴보는 와중에도 열심히 공작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어, 제국 사절이 접견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년의 귀족이 정중한 어조로 여왕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괜한 유세를 부리지 않고,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된 실무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불러주셨다는 것은 여왕님께서 결정을 내리신 것인지요.”

“그래, 결정을 내렸다.”

여왕의 말에 사절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귀족들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이피로스 왕국에 파견을…….”

사절의 말에 여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제국의 황제께서 요청하신 일 대신에 우리는 다른 일을 해드리고 싶네.”

“네?”

이번에는 사절도 귀족들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피로스에 있는 2 황자를 잡는데 손을 보태는 것만큼이나 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

사절의 어리둥절한 얼굴이 이제는 황당한 얼굴로 변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조금은 어이없는 듯한 대답에, 어린 여왕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도망친 3 황자를 잡아주겠네.”

그녀의 말에 사절은 물론, 귀족 전부가 입을 딱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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