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2화
제7편 섬 (2)
이 섬은 봉인지가 자리하고 있는 대륙의 동쪽 끝의 섬이 분명했다.
망망대해의 섬이 아니라, 대륙에 붙어 있는 섬.
하지만, 섬과 가까운 대륙은 마물이 득실거리는 봉인지라 사람들은 접근은커녕 알 수도 없는 섬이었다.
마물만 접근하지 않는다면 완벽하다고 느낄 만한 곳이었지만, 조금 전처럼 마물이 육지에서 넘어오게 된다면,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 될 게 분명했다.
“아니, 안전한 곳으로 보내 준다더니…….”
3 황자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섬 안쪽으로 향하는 동안 3 황자는 불만을 계속 토해 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 그의 불만을 받아 줄 사람은 없었다.
해변에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섬의 식생은 봉인지와 비슷했다.
밀림에 가까운 숲과 가슴까지 오는 수풀.
거대한 곤충들까지.
자세히 살펴보니, 봉인지보다, 더 밀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바다에 있는 섬치고는 공기도 훨씬 뜨거운 것 같고.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신관이 그 이유를 알려 주었다.
“그건 이 섬이 화산섬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꺼진 화산이라 연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지만, 온천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곳이 성전이 된 것도, 이 섬이 화산섬이기 때문이죠.”
‘휴화산이라는 걸까?’
확실히 섬 안쪽에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있는 게 보이기는 했다.
나무가 가득 덮여 있어, 화산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산이 화산이었던 모양이었다.
해변가에서 마물들을 만나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섬 안쪽은 위험하지 않았다.
마물은 더 보이지 않았다.
늪이나 독이 깔린 땅도 없었다.
중간에 멧돼지를 닮은 짐승이 덤벼들기도 했지만, 일행은 전부 각성자들이었다.
이 정도 짐승을 무서워할 사람은 없었다.
숲을 헤치고, 수풀을 베어 가며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자, 신관의 말대로 해가 지기 전에 한 성채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섬 중앙, 협곡 끝 절벽에 붙어 있는 성채는 내가 생각했던 성전과 모습이 달랐다.
왕국과 제국에 있는 신전들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성전은 돌로 만들어진 단단한 방어 요새였다.
울창한 밀림 속의 홀로 있는 성채.
그것만으로도 성전처럼 느껴지기가 힘들었는데, 요새의 성벽과 땅에는 마물들의 피와 살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었다.
“이게 무슨…….”
신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성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곳을 처음 본 나나 다른 이들은 안 좋은 광경에 눈살만 찌푸렸을 뿐이었다.
그때, 성벽 위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누구냐!”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성벽 위에는 교단의 신관 기사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신관 기사들에게서는 날카로운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장과 계속된 싸움의 여파로 흘러나오는 살기였다.
“신께 영광을. 신관 알란입니다. 제국 3 황자님과 일행을 모시고 왔습니다.”
신관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외쳤다.
“아……. 잠시 기다리십시오.”
신관의 말을 듣곤, 기사들에게서 흘러나오던 기세가 가라앉았다.
잠시 뒤, 성벽 위에서 신관 기사들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
드드드득.
두꺼운 철문이 위로 올라갔다.
철문 뒤에는 신관 기사들과 사제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든 신관 기사가 앞으로 나와 우리를 쭉 훑어보았다.
그는 신관과 3 황자를 확인한 뒤, 두 여사제를 거쳐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하는 대신에 신관에게 말했다.
“신께 영광을. 수고하셨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인사가 거칠었습니다.”
“신께 영광을.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되는 모양이군요. 저도 보고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주교님은 본당에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했고, 신관 기사는 대표로 3 황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교단의 성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내 예상과 다른 곳이라, 마냥 환영을 받기는 그렇군.”
성전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황자는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황자의 불평에도 신관 기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표정에 나타난 의문도 묻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성문 안으로 안내했고,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성문은 바로 닫혔다.
드드드드, 쿵.
성문이 닫히자, 공기를 타고 흐르던 피 냄새가 사라졌다.
그 뒤에 느껴지는 청량한 공기.
찐득거리던 더위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벽 안은 밖과 완전히 달랐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대로와 대로 양옆으로 심어진 열대 나무.
그 옆으로 펼쳐져 있는 너른 꽃밭.
대로 끝에 있는 절벽에 반쯤 박혀 있는 듯한 건물도 꽃밭에 쌓여 있는 조각처럼 보일 정도였다.
우리가 놀란 얼굴이 되자, 신관 기사는 다시 한번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교단의 성전입니다.”
여사제들도, 황자도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름답고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종교의 성지라기보다, 돈 많은 왕의 별장처럼 보였다.
우리는 신관 기사의 안내로 절벽에 박혀 있는 듯한 건물로 향했다.
나는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살폈다.
겉으로는 정중한 안내처럼 보였지만, 많은 시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절벽을 반원으로 감싼 성벽 위를 지키는 기사들도 멀리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고, 아름다운 꽃밭 안에서도 찐득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함정이나, 마법진 같은 건가?’
꽃밭에서 느껴지는 마나는 사람의 것도 있었지만,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마나도 있었다.
그렇게 숨겨진 시선을 받으며 우리는 대로를 가로질러, 절벽에 조각처럼 박혀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정면의 크고, 두꺼운 철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우리는 철문을 지나, 입구의 로비를 거쳐, 중앙 홀에 들어섰다.
무척이나 큰 홀이었다.
건물의 깊이나 넓이를 넘어선 크기의 홀.
이 정도 크기라면, 이 홀은 절벽을 파낸 안쪽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홀은 일종의 동굴이겠지만, 동굴치고는 무척 밝았다.
천장과 벽의 색 창문,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저것도 유물이겠지?’
홀은 왕국 수도의 교단 메인 홀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었다.
한쪽에는 제단이 있었고, 벽과 가까이에는 교단의 조각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교인들이 예배를 드릴 자리와 그 중앙에는 제사를 지낼 신관과 사제들이 지나갈 메인 통로.
벽도 교단 예배당의 벽처럼 칠해져 있어, 다른 교단의 예배당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 스테인드글라스의 빛 때문에 이 홀은 교단의 다른 예배당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추상적인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였지만, 아무리 봐도 교단의 상징은 아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쏟아지는 제단 앞에는 한 사람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마, 아까 주교라고 말했던 신관이겠지.
주교는 교단의 신관 중 한 지역, 혹은 한 왕국의 수장을 부르는 명칭.
제국에 있는 교단 본단의 주교는 추기경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었다.
이곳이 교단의 성전으로 불리는 곳이니만큼, 이곳의 수장도 주교로 불릴 만했다.
다만, 기도하는 주교의 뒷모습은 생각 외로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섰고, 신관 기사가 그에게 말했다.
“주교님. 3 황자님이 오셨습니다.”
그의 말에 기도를 올리던 주교가 기도를 마치고, 몸을 돌렸다.
주교는 생각보다 훨씬 젊었다.
겨우 30대가 되었을까?
주교로 불릴 나이가 아니었지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두 여사제도 알고 있는 눈치였고, 황자도 그를 알고 있는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를 알고 있었다.
왕국 수도에 있는 교단의 신전에서 그를 봤었다.
왕의 치유 제사를 위해 제국에서 온 신관이었다.
최고의 제사가 가능한 뛰어난 신관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주교가 된 모양이었다.
“3 황자님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그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다가,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여기서 보게 될 줄 몰랐군요. 알렉스 기사님.”
그도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때 겪은 사건 때문에 그도 나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주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은 알렉스 기사가 아니라, 샤를 자작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내 말에 그는 다시 한번 놀랐다.
“와, 작위를 받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때도 나이에 맞지 않는 대단한 실력이셨는데, 바로 공적을 올리셨군요.”
“저보다, 더 대단하신 것 같은데요. 벌써 주교시라니. 그 나이대에는 처음 있는 일일 텐데요.”
거기다, 그냥 주교도 아니고, 교단의 성전 주교였다.
교단의 신성한 성지, 성전의 주교라니.
잘은 모르지만, 성전 주교라면, 추기경으로 향하는 직행 코스일 게 분명했다.
“하하, 제 능력이 아니라 신의 은혜죠. 거기다, 이번에도 고난이 찾아온 것 같아서 이 자리를 지킬 수나 있나 모르겠습니다.”
“주교님!”
주교의 말에 나이 든 신관 기사가 주의를 주었다.
동시에 3 황자가 헛기침을 했다.
“흠. 흠.”
그는 나와 주교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베네틱토 주교는 바로 황자에게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피곤하셨을 텐데. 우선 쉴 곳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교의 말에 황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군. 나는 교단의 성지, 성전은 거룩해서 마물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이 섬에는 마물의 시체가 가득하더군.”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교단의 성전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들었기에,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무척이나 특별한 일인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는 외부인이 있으니, 나중에 따로 말씀하심이…….”
신전 기사가 주교에게 말했지만,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밖에다 알리지 못할 테니, 괜찮습니다.”
확실히 이곳에는 비밀을 지키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유물이라도 있는 걸까?
“성전의 능력으로 마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수백 년간 이 섬에는 마물이 올라오지 못했죠.”
“마물이 섬으로 올라온 것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마물이 강해지고, 섬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마물들이 성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네. 때가 가까워져 온 것 같습니다.”
황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주교의 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는 그때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때라는 것은 마왕이 다시 나서는 날을 말하는 것이었다.
“교단의 노력으로 이날까지 뒤로 미루었으면 충분했던 걸까요? 아니면, 저희 노력이 너무 부족했던 걸까요. 그건 신만이 아시겠죠.”
주교의 말과 함께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왔다.
땡, 땡, 땡.
아름답지만 급박한 종소리.
“마물입니다!”
마물의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