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81화 (381/563)

제381화

제6편 섬 (1)

환한 빛이 사라지자, 나는 다른 곳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공기가 달랐다.

소금기가 가득한 공기.

촤아아악.

가까운 곳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발밑에는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돌판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모래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모래 뒤에는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가 있었다.

이곳의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해안가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공간 이동된 우리는 해안가 안쪽의 큰 석판 위에 서 있었다.

“여긴…….”

엘레나 누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3 황자도 조아나 사제도 신기한 얼굴로 사방을 쳐다보았다.

신관이 큰 숨을 내쉬고는, 일행에게 설명했다.

“성전이 위치한 섬입니다. 성전은 섬 안쪽에 있습니다.”

“섬이라니……. 이래서 사람들이 못 찾은 거였군.”

신관의 말에 3 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공간 이동으로밖에 올 수 없는 섬이라면, 비밀을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바다는 처음 봐요.”

“섬이 이렇게 생긴 거였군요.”

두 여사제도 이곳은 처음 온 듯했다.

하긴, 수도원을 무너뜨려 안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여서라도 비밀을 지키려 했던 성전이었다.

교단의 사제들이라도 이 섬에 쉽게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제들도 오지 못하는 곳에 외부인을 들일 리가 없었다.

‘설마, 기껏 데려왔는데 바로 죽이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데려온 사람을 바로 섬에 가둘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비밀을 지킬 방법이 있다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는 중, 눈앞에 메시지가 보였다.

<가짜 신의 섬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을 설정하시겠습니까?>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창이었다.

예언가를 만난 뒤에 보았던 ‘저장 시점’ 뒤에 처음으로 보는 메시지.

그 뒤에 사절단을 마치고, 영주 일을 보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메시지였다.

10대 검호 둘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위험하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인지…….

지금, 나로서는 알기 힘들었다.

‘뭔가 자기 맘대로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벌어져서 다시 반복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시점’을 저장할 수는 없었다.

신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섬이었다.

여기서 ‘시점’을 저장했다가 섬에서 갇힐 수도 있었다.

이 섬에서 갇힐 바에는 몇 개월을 다시 반복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죽지 않고, 돌아가는 게 최선이겠지만.’

메시지창이 떠버렸으니, 쉽게 끝날 리는 없었다.

그리고, 메시지창을 치우자마자, 눈앞에 그런 상황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모래사장 너머 바다에서 이질적인 마나가 느껴졌다.

그 마나는 멀리 바다 깊은 곳이 아니라,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에서 느꼈다.

이질적인 마나, 아니 오염된 마나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마물이 다가옵니다!”

나는 일행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

“마물이요?”

내 말에 여사제들과 3 황자가 놀라고.

“그럴 리가.”

신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검을 들어 바다를 가리켰다.

바다 위로 하나 둘 긴 등지느러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게 좌우로 움직이며 해변으로 다가오는 지느러미들.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아니라, 등지느러미가 달린 도마뱀이나 과학 잡지에서 보았던 공룡의 지느러미 같았다.

“마물 맞죠?”

“어떻게 섬에 마물이……?”

내 말에 신관은 아직도 혼란한 얼굴이었다.

“빨, 빨리 달아나야…….”

3 황자도 겁을 집어먹었는지, 들고 있는 검을 떨며 처음부터 도망갈 곳을 찾고 있었다.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저희는 어떻게 하죠?]

그나마, 두 사제가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다가오는 마물의 수와 느껴지는 마나로 대충 상대를 가늠해보았다.

문제없었다.

“모두, 뒤쪽에 피해 계십시오. 금방 끝내겠습니다.”

나는 일행을 안심시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문양이 그려진 석판을 벗어나자, 신발 아래로 푹신한 모래가 느껴졌다.

‘이번 생에는 나도 처음인가.’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는 나도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이었다.

고운 모래와 밀려오는 파도.

바다와 해변은 전생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저런 마물이 바다에서 올라오지는 않았지.’

일행을 안심시키는 사이, 마물들이 물 밖으로 나왔다.

등지느러미를 가진 긴 꼬리의 마물들이었다.

도마뱀을 닮은 마물들.

마물들은 도마뱀을 닮았지만, 도마뱀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네 발과 긴꼬리, 등지느러미로 헤엄을 친 마물들이었지만, 물 밖으로 나오자, 마물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발로 선 것이다.

오염된 마나가 동물들을 오염시켜서 마물로 바꾸는 일은 대륙의 땅만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벌어지는 일이었다.

바다에도 그렇게 변해버린 마물들이 있었다.

원래부터 근해에서 물고기나 잡고 다녔던 이 세계 어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낚싯배들이 마물의 습격에 침몰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단단하게 준비한 작지 않은 객선과 중형 낚싯배들은 아직 다니고 있다지만, 이제 이 세계의 바다는 인간의 손을 떠나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들은 바다 마물은 저런 마물들이 아니었다.

저렇게 물 밖으로 나오는 마물들도 아니었고.

저건 오염된 마나로 변형된 동물들이 아니었다.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마물들.

봉인지의 마물들이었다.

“그동안, 봉인지 마물들은 여기까지 못 왔었는데…….”

의미심장한 말이 뒤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우선 해변으로 올라온 두 발로 선 도마뱀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소설에서 읽은 리자드맨이 이런 느낌이려나.’

수십의 공룡 인간, 도마뱀 인간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우리를 발견했다.

크아아앙!

처음 보는 마물이었지만, 이 마물들도 마물의 기본 특성인 인간을 보면 바로 달려든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괴성을 지르며 마물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이었지만, 발에도 물갈퀴가 달려 있어, 마물들은 무척이나 빨랐다.

달려오는 마물들의 손에는 길게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소설에서 봤던 것처럼 방패와 검을 쓰는 도마뱀 인간들은 아니었지만, 날카로운 손톱과 단단해 보이는 비늘도 방패와 검에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달려오는 마물들을 보며, 대검을 쥐고, 슬쩍 몸을 움직여 보았다.

푹신한 모래가 움직임을 방해하려 했지만, 마물들에게 물갈퀴가 있는 것처럼 내게는 마나가 있었다.

마나를 순환하며, 앞으로 걸어가니, 모래에 발자국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마물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허공에 그어진 하얀 선이 달려오는 마물들을 향해 밀려 나갔다.

마물들이 다가오는 빛의 선을 보고, 가슴 앞을 양팔로 가로막았다.

퍽!

사방에서 피가 튀었고, 정면에서 달려오던 마물 한 마리가 바닥에 굴렀다.

‘죽은 놈은 없다.’

죽기는커녕 ‘마나 방출’을 막은 팔이 잘려 나간 마물도 없었다.

팔이 반쯤 잘려 나가 바닥을 구른 마물도 덜렁거리는 팔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마물은 내 생각보다 강했다.

‘적어도 기사급.’

나는 검을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편하게 싸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크아아아앙.

분노한 마물들이 선두에 선 내게 덤벼들었다.

나도 마물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평화로웠던 섬의 모래사장에 학살극이 벌어졌다.

사람 한 명을 향해 수십의 마물이 달려들었고, 그 마물들은 달려드는 족족 분해되었다.

아름다운 모래사장은 피와 살점으로 지저분해지고, 조용한 해변은 마물의 괴성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알렉스의 말대로 안쪽으로 물러서 있던 일행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럼, 내가 괜히 호위로 부른 게 아니야.”

신관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하자, 3 황자가 자신이 칭찬을 받은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전하다고 생각되어서인지, 황자 얼굴에 남아 있었던 공포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가 저렇게 강했었나?”

[어찌 되었건, 10대 검호에게서 살아 돌아오고, 다른 10대 검호도 죽인 분이잖아.]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엘레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떻게 싸운 건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동생이 자꾸 자신을 낮추는 바람에, 일행은 알렉스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들은 지금에 와서야, 그의 실력을 조금이나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

[추살대장님이 돌아가셔서 당장은 괜찮아. 교단에서 새로 지정해줄 때까지는 따로 듣는 사람이 없을 거야.]

[이건, 정말 너무했어요. 다시 사람을 정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모든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듣는다는 건 정말…….]

[내가 감안해야 하는 일이겠지. 제대로 써주기를 바랄 뿐이야.]

엘레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조아나를 바라보았다.

훌륭한 능력 덕분에 수화로 이야기를 해야 하다니.

지금 엘레나 신앙이 흔들리는 데에는 조아나에 대한 안타까움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행이 감탄하는 사이, 모래사장 위의 학살이 끝났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고, 다시 등에 멨다.

그리고, 일행에게 돌아가니, 일행은 전과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3 황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했어.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얼마 전까지, 내게 실망한 것 같더니, 금세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어요. 모두 놀랐어요.]

누나도 조아나 사제도 내게 감사했다.

나는 엘레나 누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전하고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서둘러야겠습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마물이 섬 위로 올라온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것도 봉인지의 마물이.

나는 이 섬이 어디 있는 섬인지 알 것 같았다.

신관의 말대로 일행은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성전에는 서두르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해는 아직 중턱에 머물러 있었다. 생각보다 섬이 큰 모양이었다.

“도착할 때까지 별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호위가 필요할 것 같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신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맡겨두십시오.”

어차피 성전에 들어가려면, 모두 무사히 성전까지 데려가야 했다.

그렇게 일행이 해변을 벗어나, 울창한 섬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가 내려선 해변을 바라보았다.

마물로 더럽혀진 해변.

그 너머로 아름다운 바다와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마나를 가득 집어넣어 수평선 끝을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 육지가 흐리게 보였다.

수평선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이어진 거대한 육지였다.

마물들은 저 육지에서 헤엄쳐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수평선 위, 육지의 하늘에 거대한 마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의 육지는 봉인지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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