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80화 (380/563)

제380화

제5편 수도원 (3)

뜬금없는 내 등장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내가 살아있는 것에 놀랐고, 검에 찔린 제국의 검호는 요하힘이 아니라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추살대장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살아 있었군요. 거기다 기습까지. 정말 잘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검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내가 살아있는 것보다, 추살대와 나를 먹이로 던져 주었던 검호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신전 기사들과 공멸했습니다.”

“거짓말이다!”

내 말에 한 손으로 옆구리 상처를 틀어막고 있던 검호가 소리를 질렀다.

질베스터 백작이었던가? 아무튼 그의 고함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거짓말이 맞긴 했지만, 그가 생각한 그런 거짓말은 아니었다.

공멸이 아니라, 내가 죽였을 뿐이었으니.

안 믿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결과를 아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거기다, 그는 사실을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전부 의미 없어질 테니.

“그게 사실입니까?”

추살대장도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무튼 다른 검호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상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추살대장이 지금 상황을 깨달은 것 같았다.

우우우웅.

지금 빛나고 있는 바닥의 마법진.

공간 이동진이 가동되기 전에 시간을 끌어야 했다.

황자의 목적지가 이런 외진 수도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 나는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었다.

그중의 하나가 지금 이 지하실에서 보게 된 공간 이동이었다.

공국에도 공간 이동이 가능한 귀족이 있으니, 교단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기대는 크지 않았다.

뭔가 비밀 통로가 있거나, 다른 방법이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하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떡하니 바닥에 아카데미에서 본 마법진과 비슷한 진이 그려져 있었다.

전생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진과는 다른 것이라고 들었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공간 이동진.

저 진 중앙에 서 있는 신관이 공간 이동 능력을 가진 각성자일 터였다.

아카데미에서 경험한 대로라면, 공간 이동진이 가동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지금 추살대장이 그 시간을 벌 생각인 것 같고.

조직의 검호는 그것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방해가 아니라, 따라가려는 걸까?

어찌 되었건, 나도 여기에 조금 훼방을 놓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바쁘게 돌아다닌 것이고.

나는 추살대장 옆에 나란히 선 채 그에게 말했다.

“제가 돕겠습니다. 상처를 입었으니,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추살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합니다.”

나를 남기고 도망칠 때는 반말로 떠들던 추살대장이었다.

상황이 바뀌니 바로 존대하는 것을 보니, 속으로 웃고 말았다.

우리가 이렇게 앞을 막아서자,

검호, 질베스터 백작은 헝클어진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한 방 먹었군.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믿는 수밖에 없겠지.”

그는 옆구리를 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손에는 피가 가득 묻어있었지만, 칼을 맞은 옆구리는 피가 멈춰 있었다.

마나로 상처를 틀어막은 것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내게 상처를 입혔다고 상황이 달라지리라 생각해? 너희들은 검호라는 자들이 어느 높이에 올라와 있는지 하나도 알지 못하는 놈들이야.”

그리고,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은 기습이었지만, 너는 요하힘의 갑옷을 입고 온 것을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될 거다. 너는 내가 절 때 곱게 죽이지 않을 테니.”

아무래도 저 검호는 내 생각보다 요하힘과 친했던 모양이었다.

저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기습이라지만 자신에게 검을 찔러넣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텐데.

하지만, 그는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요하힘의 죽음이 그의 눈을 가려버린 모양이었다.

“우선, 추살대장을 정리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질베스터 백작이 땅을 박찼다.

허리에 부상을 당했다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헉!”

짧은 거리, 빠른 움직임, 추살대장이 반응하기 쉽지 않았다.

검을 겨우 들어 올렸지만,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카앙!

하지만, 다행히도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내가 검호가 나아가는 길목에 검을 찔러넣은 것이다.

나에 대해 전혀 생각지 않아, 쉽게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질베스터는 급하게 내 검을 쳐냈고, 추살대장이 휘두른 검에 다시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둘 다 시간이 많은가 봐요.”

말과 함께 이번에는 내가 검호에게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린 추살대장도 나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이놈들이!”

백작도 고함을 지르며 우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앞에 쓰러뜨린 다른 검호들과 달리, 질베스터 백작은 정통파 기사였다.

각성한 마나 심법으로 실력을 키워서 10대 검호로 불리게 된 귀족 기사.

그가 가진 마나 심법은 왕국의 마나심법과 차이가 컸다.

조금은 거칠고 자유로운 왕국의 마나심법과 다른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게 다듬은 심법.

처음 싸울 때는 너무 낯설어서, 심하게 허둥거렸을 정도였다.

질베스터 백작이 망나니처럼 군 것은 그가 가진 마나심법의 반동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정교한 그의 검은 지금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추살대장은 공격은커녕, 덮쳐오는 검을 막기에 급급했다.

당연히, 막지 못하는 검도 생겨나서,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예전에 죽었을 게 분명했다.

쏟아지는 검 때문에 추살대장은 뭔가 의문을 느낄 정신이 없었지만, 검호는 달랐다.

그는 검을 휘두르며, 내게 시선을 돌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그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고, 그의 검은 조금씩 조심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검이 점차 내 쪽으로 옮겨왔지만, 나는 전과 다름없이 그를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의문을 풀 시간은 없었다.

부우우우웅.

바닥의 문양이 환하게 밝아진 것이다.

이제 곧 공간 이동이 발동된다는 뜻.

그로서는 바로 싸움을 끝내야 했다.

“젠장!”

처음으로 욕을 토해낸 그는 마나를 검에 모아 내게 힘껏 내질렀다.

그리고, 나는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추살대장의 팔을 잡은 뒤, 힘껏 끌어당겼다.

푹.

검은 내 대신, 추살대장 가슴을 뚫었다.

“어?”

의문에 찬 음성이 양쪽에서 들려왔다.

내 대신 검을 맞은 추살대장의 입에서도, 검을 내지른 검호의 입에서도.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기껏 기회를 잡았는데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의문에 답하는 대신에, 추살대장의 등을 뚫고 나온 검날을 잡았다.

드디어, 황제가 선물한 건틀릿을 써먹게 된 순간.

끼이이익.

왼손 건틀릿에 붙잡힌 검이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려 했다.

건틀릿에 붙잡혀도 멀쩡한 검을 보니, 보통 검이 아닌 듯했다.

제대로 된 유물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건틀릿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아직 숨어 있는 기능이 뭔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망가질 걱정은 없는 유물이었다.

건틀릿과 추살대장의 가슴을 뚫은 검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나는 손에 들린 대검을 놓고, 검을 붙잡고 있는 검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추살대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그와 나는 대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도 남겨 두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팔을 들어 내 주먹을 막아 내려 했다.

하지만, 내 주먹은 비어 있지 않았다.

내 주먹 안에는 소환한 단검이 들려 있었다.

서걱!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 정도 갑옷은 유물 단검과 내게는 의미 없는 물건이었다.

들어 올린 그의 팔은 갑옷과 함께 어깨에서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팔이 공중에 떠오르고, 검호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배가 뚫린 추살대장이 이제야 비명을 지르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상대가 검을 놓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건틀릿을 통해 검에 마나를 밀어넣었다.

마나 심법으로 가공된 검을 맞닿은 상대를 끌어당기는 마나를.

당연히 그의 검은 ‘인력’이 발동했고.

검을 놓았지만, 검호의 손에는 계속 검이 붙어 있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는 것도 불가능했고, 목에 내 단검이 박히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백작은 목에 단검이 박힌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뭔가 깨달은 것 같았지만, 목에 칼이 박힌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백작이 쓰러지고, 내가 검에 밀어 넣었던 마나를 풀자, 이번에는 추살대장도 허물어졌다.

아직 추살대장은 죽지 않았다.

그는 누운 채로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게 도대체…….”

“덕분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더듬거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내 감사를 받는 대신, 다시 질문했다.

“넌, 넌 누구지?”

“아실 텐데요.”

“우, 우릴 속인 건가?”

그 질문을 끝으로 추살대장도 숨을 멈췄다.

“글쎄요. 속인 것은 당신만이 아니니까요.”

두 사람만 속였던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있었다.

추살대장의 숨이 끊어진 뒤, 나는 조금 전 펼쳐둔 방음벽을 거두었다.

거리가 있어서 듣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조심해야 했다.

내가 쓰러진 이들을 뒤에 놔두고, 신관과 두 여사제에게 다가가자 모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신관이 진을 발동하는 것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기사님의 희생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뒤에 쓰러져있는 추살대장을 가리켰다.

육체 능력자들이 아니라서 싸움의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을 터였다.

내가 추살대장을 끌어들인 것도 못 봤을 테고.

그들이 본 것은 격렬한 싸움 끝에 배에 검을 꽂고 죽어있는 추살대장과 그와 함께 죽은 검호였다.

내 예상대로 신관도 시체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고, 이상한 점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10대 검호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상, 내 설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신관은 내 말과 시체들을 보고, 열심히 사건을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체와 나를 보다가 무언가 듣는 표정이 되었다.

“아, 엘레나 사제님의 동생이시고, 옆 영지의 영주님시군요.”

조아나 사제가 나에 대해 말한 모양이었다.

역시, 추살대장을 죽인 보람이 있었다.

듣는 사람이 없으니, 조아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계속 도와주셨군요. 감사드립니다. 음. 이걸 어쩌지.”

빛나는 문양을 두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발동 중에 멈출 수 있는 것을 보니, 이 신관이 아카데미 교장보다 더 실력이 좋은 것 같았다.

신관은 계속 조아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요. 외부인은 들이면 안 되는데, 대장도 없고, 이렇게 도와주신 분을 죽게 할 수는 없죠.”

[겨우 설득했어요. 공간 이동에 성기사님도 포함되었어요.]

그의 말과 함께 머릿속에 조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수도원에 설치한 시한장치가 가동될 시간입니다. 이제 곧 무너질 테니, 함께 가시죠.”

“알겠습니다.”

신관은 다시 마나를 뿌리기 시작했다.

다시 환하게 빛나는 문양.

“그런데, 이상하네요. 벌써 무너지기 시작해야 하는데……. 너무 늦는데…….”

신관은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되돌리기는 너무 늦었다.

공간 이동진이 가동된 것이다.

신관에게는 미안하게도 수도원은 지금도, 앞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한 시한장치, 마나를 폭주시키는 유물은 내가 다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미리 와서 열심히 뛰어다닌 것도 전부 그 유물을 찾아다녔던 것이었다.

교단은 비밀을 전부 묻을 작정이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조직의 검호가 수도원에서 추살대장과 같이 죽고, 그 옆에는 공간 이동진이 그려져 있으면, 어떻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교단이나 조직이나 이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터였다.

“……이동합니다.”

의문 섞인 신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한 빛이 우리를 감쌌고.

시야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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